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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40화 (140/262)

<-- 140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가벼운 대련정도로 생각했는데 여유부리다가 허용해버렸네.)

파강권이 제대로 어깨에 닿자 제갈 사혁은 잠시 주춤거렸고 이신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깨 사이사이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노골적으로 여기만 공격하는 게 눈에 선하네..... 아예 한쪽 팔을 못 쓰게 할 생각이구만 이 녀석! 이거~ 가르쳐 준대로 너무 잘 응용한단 말이야.)

어깨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공격을 피해 몸을 숙인 후 아래에서 위로 턱을 후려치자 이신은 반쯤 무릎을 꿇었다.

(오늘도 이겼네.)

가볍게 이신의 가슴을 발로 차 밀어내 듯 쓰러트리려 했지만 이신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혹은 이러한 상황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제갈 사혁의 발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제갈 사혁을 넘어트렸다. 어디까지나 쓰러지는 게 승리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번 비무는 그 결과가 허무할지언정 이신의 승리였다.

“뭐냐 방금 이거?”

제갈 사혁은 갑작스러운 이신의 반격에 크게 당황한 상태였고 이신은 상기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사부는 비무를 할 때 버릇이 있더라고요.”

“버릇?”

비무를 할 때마다 보이는 버릇이라니 그런 게 있으리라고는 제갈 사혁 본인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둘이서 비무를 할 때 무조건 상대를 먼저 쓰러트리는 게 이기는 거잖아요.”

“그렇지 쓰러지는 게 이기는 거지.”

“사부는 항상 비무 때마다 턱을 노리더라고요.”

항상 턱을 노린다라? 물론 턱을 노리는 게 상대를 쓰러트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설마 그게 버릇이 되어있을 줄이야.

“그래도 턱을 맞고 용케도 버텼네.”

“사부가 말했잖아요. 알고 맞는 거랑 모르고 맞는 거랑은 천지차이다. 라고.”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다니.......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느 때 가장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지 묻는다면 물론 제자의 성장이 눈에 보일 때지만 이런 사소한 가르침 하나하나 잊지 않고 실천해주었을 때다.

“턱을 맞고 반쯤 정신을 잃은 것처럼 사부를 속이면서 분명 사부 성격에 이겼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면 저는 그 틈새를 노려 반격준비를~”

“에고~ 에고~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젊은 놈한테 힘에서도 밀리고 지략에서도 밀리네 이제는 은퇴할 일만 남았나?”

고작 다섯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으면서 밀리네 어쩌네 하는 제갈 사혁의 허풍이 오늘은 빈말이 아닌 것 같아서 듣기 좋았다.

한편 그 시각 하남 소림사 회계동.

어두운 동굴 안에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노승을 바라보는 어둠 속의 남자는 그런 노승의 목을 밟아 천천히 발에 힘을 주었다.

“으윽!”

숨통을 조이고 있지만 노승의 눈은 목숨을 구걸하는 패배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남자는 목숨을 담보로 노승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노승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이신과의 비무가 끝나고 제갈 사혁은 간단하게 봉황대 대원들과 한명한명 면담을 가졌다. 인선 파악 목적도 있고 대원들의 성경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봉황대에 생각보다 여자 대원이 많다는 점이다. 제갈 사혁이 흑랑대주 직을 거부했을 당시 봉황대를 맡았던 금광수는 봉황대에 사내놈들뿐이라며 투덜거릴 때가 많았는데 지금보다 그렇지도 않았다. 사내들은커녕 남자 대원보다 여자 대원이 더 많았다.

“사무직에서 올라왔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여자 대원들의 이력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무림맹의 사무직으로 시작해 전투직으로 직종을 바꾼 것이다.

“네.”

“이유가 뭐지?”

그리고 그녀들을 뽑은 사람이 전임 대주인 무허대사였다. 물론 사무직으로 무림맹에 입성했다고 해도 애초에 사무직조차 무림인을 뽑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는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사무직보다는 월급도 많이 주고 위험부담은 있지만 그래 경력면에서는.....”

확실히 명문정파 출신의 제자들이 아니면 방파출신이라는 점은 무림에서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다. 무공이 뛰어나다면 모를까? 대부분이 이렇다.

(하긴 지금은 정사대전이 일어난 과거가 아니니까. 봉황대니 뭐니 해도 그렇게 위험한 일은 임무로 들어오지 않겠지.)

“가봐.”

가보라며 손을 흔들자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확실히 그녀들의 선택은 옳았지만 다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면 무림맹은 무림맹이라는 점이다. 무림맹이 관공서처럼 무림인의 편의를 제공하는 점도 있지만 무림맹은 나라의 관공서가 아니다.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상대 세력의 쇠퇴 혹은 섬멸이다.

“의무 기간이 다들 4년이나 남았네.”

그리고 이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의 수가 남자에 비해 많을 뿐이지 경력 쌓기의 일환으로 들어온 남자들의 수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사무직이서 직종을 변환한 사람들은 다들 같은 기간에 봉황대에 들어왔고 봉황대 총 50명 중 12명만이 의무기간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었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자면 12명만이 진정한 봉황대 대원의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다 쳐내버려?”

단지 경력 쌓기가 목적인 사람들을 계속 놔둔다면 기강문제도 있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무림인으로서 실력도 별 볼일 없어 보여 이 자들을 모두 쳐내야 할지 품어야 할지 제갈 사혁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치자니 이신 하나만으로도 벅찬 자신에게는 너무 주제넘은 일이었고 재능 면에서도 그동안 가르쳤던 화산파의 사제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신도 격체전공으로 부랴부랴 키웠는데 내가 뭔 재주로 이 인간들을 키워내.)

“아이고~ 무허대사 이 양반 자기는 은퇴한다고 멋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입단시켰고만~”

전임이 엉망이면 후임이 괴로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 사혁은 당장 초영을 불렀다. 의무기간을 채운 12명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고 대주의 부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라면 이 일로 의논할 수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초영이 들어오자 제갈 사혁은 봉황대 대원들의 명단이 적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제갈 사혁이 건네준 두루마리를 펼쳐본 그녀는 줄이 그어진 이름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安堵)와 고뇌(苦惱)가 뒤섞인 한숨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유는 임시라지만 현 봉황대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 본 점이었고 고뇌가 스며든 한숨을 쉰 이유는 제갈 사혁이 냉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자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당장 이대로 시행해. 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야. 나도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 모가지 자르는 일이 썩 내키지 않거든. 말 그대로 사람 하나 죽이는 일이면 모를까. 남의 밥줄 자르는 일은 좀.......”

처음부터 아예 사람을 받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을 자르는 것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무허대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인원을 받은 거야?”

“전임 대주께서는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는 초영을 보며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있을 것 같다고.....”

“뭐?”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셨거든요.”

재미? 그 말을 들은 순간 제갈 사혁은 짜증이 울컥 치솟았다. 재미를 운운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꿰어낸 양반이 은퇴를 하다니.

(키우려면 지가 키우던가. 왜 나한테 떠미는데!)

“됐어. 더 이상은 말하지 마.”

봉명공의 사형이라는 작자인데 오죽하겠는가?

제갈 사혁은 일단 무턱대고 자르기보다는 평가를 해볼 생각이었다.

“봉황대에 아직 정식 임무 발령 난 거 없지.”

“없습니다.”

사실 정식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지도 벌써 몇 개월째였다.

“임무가 없으면 직접 가져와. 최상위 등급으로.”

최상위 등급이라는 말에 초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최상위 등급 임무라면 상대 세력의 실력자 제거정도로 꼽을 수 있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봉황대 전력손실이 따를 수.......”

“나는 혼자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초영은 자신보다 어린 이 사내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전력손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가장 원하는 거다. 우리는 서류나 만지는 사무직이 아니다. 적을 죽이는 게 목적인 무사(武士)다. 어디 뭐 나중에 자랑할 만한 경력을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초영이라고 딱히 제갈 사혁의 의견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자르는 게 나았다. 자르지 않고 임무라니 이건 부하들을 죽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당장 자격이 안 되는 대원은 잘라내겠습니다. 재고해주십시오.”

“명령은 번복하지 않는다. 최상위 등급에 준하는 임무를 선정해서 오도록.”

초영은 제갈 사혁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제갈 사혁이 임시 대주로 취임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타협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완전히 그 반대였다.

============================ 작품 후기 ============================

대선투표하고 지인에게 이끌려 강제노동을 몇일동안 했습니다.

지금도 팔에 힘이 하나도 없네요.

택배 물류센터는 지옥이야!!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산처럼 쌓인 물량을 보니 점심시간에 몇번이나 도망치고 싶었던 걸 참았습니다.

돈은 확실하게 챙겨줬지만 다시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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