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하는 수 없이 초영은 제갈 사혁의 집무실을 나와 임무를 할당 받으러 갔다.
“초영!”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백사단의 부관이 초영을 급히 불러 세웠다.
“선배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다른 부대의 부관이 여기까지 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긴급소집이다. 공석인 흑랑 대주를 제외하고 대주들을 소집하라는 군사님의 명령이다.”
“그런 건 보통 정식으로 사람이 오잖아요?”
“긴급이잖아. 긴급! 아무튼 대주께 보고하고 그 길로 백호대 쪽에도 말 좀 해줘.”
그로부터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공석인 흑랑 대주를 제외한 황룡. 봉황. 백호. 백사단의 사대주들이 직속상관인 무림맹의 군사 여상망(呂想壾)의 명령 아래 한 자리에 모였다. 보통은 각 부대에 따로 임무가 하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쉽게 말해 정말 뭔가 큰일이 터졌을 때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모두들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아~ 미친 또 어떤 놈이 사고 친 거야.”
“이번에 터진 추백성 일만 해도 염통이 쪼그라들었는데....”
혜성은 짜증을 냈고 백사 대주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을 꺼내 복용했다.
“며칠하고 끝날 임시 대주인데 일 터져버렸네.”
“표정은 꼭 뭔가 일이 터져서 즐겁다는 표정인데.”
“그렇습니까? 잘 못 보셨겠죠. 이래보여도 새가슴입니다.”
황룡 대주와 제갈 사혁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군사인 여상망이 녹차 향을 진하게 풍기며 들어왔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다들 앉으시게 긴급소집이니 자잘한 건 생략하겠네.”
여상망이 앉기를 청하자 제갈 사혁을 포함한 세 명의 대주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임시지만 새로 취임한 제갈 사혁 아니 무진... 아니 뭐라고 불어야 하나 자네를?”
화산파의 도호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고 제갈 세가의 일원임을 알리는 그 이름도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여상망은 제갈 사혁의 호칭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봉황 대주면 충분합니다.”
제갈 사혁의 입에서 봉황 대주라는 말이 나오자 여상망은 입 꼬리가 올라갔다. 봉황 대주 그 말은 즉 자신을 상관으로 인정하고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림사 회개동에서 마두가 탈출했다.”
소림사 회개동에서 마두가 탈출했다고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하듯 대주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니까. 그런 걸 왜 만들어서......”
“하여간 뭐가 됐든 땡중들이 문제야. 염병할 마두 새끼들이 회개는 뭔 놈의 회개! 그게 가능했으면 강호가 이렇게 개판일 리 없잖아?”
“아니 일 터지면 뒤처리는 항상 우리가 하는 거 알면서 꼭 이런 식이야. 무림맹에서는 뭐합니까? 그거 좀 없애자고 건의 좀 해봐요! 정권 바뀌었으면 정책도 바꿔야죠. 언제까지 소림사를 봐줄 겁니까?”
“언젠간 이럴 줄 알았어.”
특히 소림사를 최근에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제갈 사혁은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길 가던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요. 회개동 그거 정상 아니라니까요.”
백호 대주인 혜성이 따지고 들자 제갈 사혁을 포함한 나머지 대주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이번 일은 보통이 아니네. 수련승 한명이 살해당했거든. 자네들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지?”
수련승이 살해당했다는 말에 대주들은 저마다 작은 동요를 보였다. 수련승이면 본산제자의 밑 화산파로 따지면 매화검수의 아래인 평검수 정도기 때문이다. 명목상 소림의 제자가 살해당한 것이다.
“누굽니까? 그 놈이.”
“나호(蘿豪).”
나호. 본명은 아니고 그를 부르는 별칭이다. 마교출신의 마두로 지난 정사대전 때 소림사의 방장에게 붙잡힌 인물이다. 나이는 대략 70대 후반으로 추정. 소림사의 방장이 나서서 잡았을 정도면 보통이 아니었다.
(첫 번째 성과로 만들기 나쁘지 않군.)
“제가 가겠습니다.”
“안됩니다!”
이래저래 계산을 끝낸 제갈 사혁이 망설임 없이 임무를 자처하자 대주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백사 대주가 이를 막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대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 봉황대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저기 백사 대주님.”
“말하시게.”
“다른 곳은 뭐 백호대 봉황대 황룡대인데 백사단은 왜 단으로 끝납니까?”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럼 봉황대가 직접 해결하겠다고 소매 거들고 나섰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자네 눈이 호구가 아니라면 봉황대 상태를 봐서 잘 알지 않는가!”
그 말이 나오자 제갈 사혁은 그제야 백사 대주가 자신을 막아서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거 뭐 신입 앞에서 텃새부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보기보다 상냥하네. 이 아저씨.)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려 하는가.”
“무림인이기 때문입니다.”
무림인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군사인 여상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평소처럼 근엄한 웃음소리가 아니라 마치 저자거리의 왈패가 웃는 것처럼 웃어재끼는 여상망을 보며 제갈 사혁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라기에 칙칙한 도사를 떠올렸는데 역시 제갈은 제갈이군. 어떻게 선배랑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하나 그래?”
제갈 사혁은 여기서 그가 말하는 ‘선배’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무림인. 엄연한 무림인이지 그들도.”
이유야 어찌되었건 봉황대에 있는 사람들은 무림인이다. 정말로 어디 글공부만 하던 샌님들이 아니라 칼을 들고 수련한 무림인이란 말이다.
“그럼 봉황 대주. 그대에게 이번 일을 맡기겠네. 곧 무림맹 추적대가 나호의 위치를 파악해놓을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게.”
긴급소집이 풀리자 혜성은 제갈 사혁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 슬며시 앉아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혼자 나대는 건 좋은데 그러다 부하들 다 죽는다. 화산망종.”
“죽으면 죽겠지.”
죽으면 죽는다는 말에 백사 대주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소리 했다.
“부하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건 봉황대를 떠나 그대의 화산파에도 좋지 않은 일이네. 차라리 지금이라도 봉황대에 있을 자격이 안 되는 자는 자르는 게 그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네. 돈도 명예도 좋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니.....”
“선배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래도 봉황 대주의 의견에 어느 정도 찬성하니까.”
황룡 대주가 제갈 사혁을 두둔하자 백사 대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황룡 대주를 쳐다봤고 황룡 대주는 괜히 눈치가 보여서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백사 대주께서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저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부하들을 자를 수야 없죠. 그 사람들한텐 이게 발줄인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잘라내겠습니까.”
“자네 내 말을 이해하지 못......”
“물론 모두 현장에 데려갈 겁니다. 나호라는 자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치열하게 싸우겠지요. 하지만 부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 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전에 그들이 결정하게 해야죠.”
“결정이라니 현장에 모두를 데려간다 하지 않았는가?”
“현장에 데려간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현장에 투입 되는 건 아닙니다.”
“뭐?”
혜성은 제갈 사혁의 이런 면이 싫었다. 꼭 요점은 말하지 않고 뭐라도 있는 척 똑똑한 척 하는 그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단 한명의 사상자 없이 나호를 잡아오겠습니다.”
한때 사문의 무공에 대한 불신과 오랜 방황을 타일렀던 그의 무림인으로서의 그 실력과 자존심만은 믿을 수 있었다.
긴급회의가 끝나고 제갈 사혁은 초영과 의무 기간을 채우고도 봉황대에 남아 있는 11명의 대원들을 따로 만났다.
“만나서 반갑다.”
그러더니 제갈 사혁은 갑자기 한 명 한 명 포옹을 해줬다.
“!”
그 중 유일하게 여성인 초영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노려봤다.
“임시 대주직을 맡고 있지만 나는 말 그대로 임시고 후임이 정해지면 언제든 떠날 사람이다. 하지만 대주로 있는 동안 절대 이 일을 대충할 생각은 없다. 모두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임무는 최상위 등급이다. 모두의 승리는 장담할 수 있지만 봉황대 전체의 생환은 장담할 수 없다.”
“대주님.”
그때 등에 활을 짊어진 대원 한명이 제갈 사혁에게 질문을 건넸다.
“말하라.”
“왜 다른 대원들은 부르지 않고 저희만 따로 부르신 겁니까?”
“자네들만이 진정한 봉황대이기 때문이지.”
진정한 봉황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임무의 결과로 인해 봉황대의 앞날이 결정지어진다. 그러니 자네들만 이번 임무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된다. 다른 대원들에게는 가벼운 척살임무 쯤으로 말해두도록 그 후 현장에서 내가 직접 말하겠다.”
제갈 사혁은 비록 경력을 위해 꼼수를 부렸지만 명문 정파와 방파를 떠나 봉황대에 있는 그들 모두가 무림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제갈 사혁은 지위나 명성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그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는 치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자신은 봉황대주이고 그들이 봉황대 대원이다. 자신의 부하고 자신의 사람이다.
자신의 조직을 벼르지 못하고 자신의 사람을 챙기지 못하면 스스로의 명성과 권위를 내세워 권력을 탐해선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이 제갈 사혁이라는 인물을 지탱해주는 사상이다.
============================ 작품 후기 ============================
물류센터 일은 정말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팔이 쑤시네요. 오늘 점심에 덮밥 좀 만들어 먹으려고 선반 위에 손을 올리는데 손을 올릴 때 엄청 아프더라구요.
조아라를 들어오는 목적이 물론 글을 쓰기 위해서지만 글을 읽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선작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한작품만 연재를 하고 있어서 슬프네요.
다 연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