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42화 (142/262)

<-- 142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초영.”

“네. 대주님.”

“추격대에게 나호의 위치를 알아오도록.”

하지만 그 후 봉황대는 추격대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받지 않은 채 하남의 성도인 정주(鄭州)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정주에 도착하자마자 봉황대를 반긴 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신이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초영의 물음에 봉황대 대원 한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짐승한테 물어뜯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무림맹 추격대가 정말로 짐승한테 물려서 이렇게 된 건 아닐 테고 역시 나호의 짓인가?”

“사람이 했다고 믿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봐야겠죠.”

추격대의 정보도 없이 하남 정주에 가게 된 경위는 나호를 쫓고 있던 추격대가 모조리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추격대가 모조리 살해당했으니 이 많은 수가 움직이는 게 눈에 띄지만 봉황대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용조수(龍爪手)......”

제갈 사혁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무공의 정체가 드러나자 초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용조수는 나도 익혔으니까.”

“용조수를 익히셨어요?”

분명 제갈 사혁의 바탕은 제갈세가이고 사문은 화산파라고 알고 있는데 용조수를 익혔다니 초영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제갈 사혁을 쳐다봤다.

“권법사라면 용조수 정도는 익혀야지.”

“권법? 하지만 검을 쓰고 계시잖아요.”

“저기..... 지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같은 무공을 익혔다면 알아보는 것도 힘들지 않겠지만 이게 정말로 소림의 용조수라면.

“대주께서도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습니까?”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역시 초영은 봉황대 부관답게 직설적이었다.

사람을 이렇게 찢어발길 수 있냐는 물에 제갈 사혁은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하겠지만 무공이란 게 자연스러워야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초식을 쓴다면 이 정도 위력은 힘들어.”

“그런데 용조수면 소림의 무공이잖습니까?”

봉황대 대원 한명이 예리한 질문을 하자 제갈 사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추격대를 찢어발긴 게 제갈 사혁이 본대로 소림사의 용조수라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었다. 나호가 소림의 용조수를 익혔던가? 아니면 소림사에서부터 그의 탈출을 도운 공모자가 있던가? 그리고 그 공모자가 소림의 사람이라면?

용조수가 아무리 공개된 무공이라지만 마교출신의 나호가 익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괴리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후자를 논할 순 없었다. 그거야 말로 가장 끔찍한 결과기 때문이다. 이미 소림의 수련승이 살해 당했는데 소림 안에서 배신자가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직 멀리가지 못했을 거다. 정주 지역을 돌아다니며 나호를 찾아라. 찾으면 즉시 귀환하라. 전투는 불허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호를 찾지 못한다면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라. 놈은 이제 막 소림사에서 빠져나온 짐승이다. 절대 조용히 있을 리 없다.”

얼굴도 모르고 초상화도 없는 이상 나호를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진짜 명령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조사다. 봉황 대주인 제갈 사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봉황대는 모래바람처럼 정주지역을 쓸고 다녔다.

이신까지 그들과 함께 사라지자 부관인 초영 혼자 제갈 사혁의 옆을 지켰다.

“전부 데려오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뭐가?”

“봉황대 인원축소를 생각하시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제갈 사혁은 인원축소를 생각하고 있었고 초영도 그것을 알기에 이번 임무를 떠나기 전 제갈 사혁이 인원을 뺄 거라 생각했다.

“능력이 없으면 무능한 놈들은 나호 손에 죽겠지.”

“그런!”

“농담이다. 그러려고 했으면 진작 내손으로 잘랐을 거다. 나를 누구라 생각하는 거냐?”

한순간 진담처럼 들린 게 착각이 아니라 느껴지지 않은 건 왜 일까? 초영은 제갈 사혁이라는 사람에 대해 판단할 수 없었다.

(정말 모를 분이야.)

저녁이 되자 봉황대 대원들은 거처로 삼은 객잔에 하나 둘 귀환하기 시작했고 모두 한 자리에 모이자 어느 정도 나호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포목점에서 포목점 주인이 살해당했습니다.”

“주루에서는 기녀들을 뺀 모든 이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이 지역 유지의 식솔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저택에 있는 금품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봉황대의 보고를 토대로 제갈 사혁은 하남 정주의 지도를 펼친 뒤 사건이 일어난 곳을 표시하고 그 표시를 중심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사건이 모두 나호가 행한 일이라 가정하고 이 원을 기준으로 나호를 찾는다.”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이 모두 나호의 소행이라 단정 짓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봉황대 대원의 질문에 제갈 사혁은 식탁 위에 살며시 앉아 젓가락으로 질문을 한 대원을 가리켰다.

“남자란 생물은 꽤나 단순하거든. 몇 십 년 동안 소림사의 구질구질한 동굴에서 소림사 땡중들이 늘어놓는 설교를 들어야 했을 거야.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그 지겨운 곳을 탈출해 오랜만에 바깥에 나왔는데 옷도 새로 사입어야 하고 또 여자 구경 못했으니 여자도 안아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잔뜩 있는데~”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엄지와 검지로 엽전을 의미하는 원을 만들었다.

“돈이 없으니까. 살인을 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했지? 마을 유지?”

제갈 사혁의 질문에 멍하니 서 있던 봉황대 대원은 서둘러 질문에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금품이 사라졌다. 왜 일까?”

회의라기보다는 마치 꼭 무슨 수업을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봉황대 대원들은 꼭 어려운 문제을 앞에 두고 풀지 못하는 학도들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욕구를 충족한 후에는 이제 슬슬 이성이 돌아온 거야. ‘아!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잡히겠구나.’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잣집을 털어서 돈을 챙긴 거지. 아까 뭐라고 했지 금품이 사라졌다고?”

“그렇습니다.”

“금품이라고 하니까. 너무 포괄적인데 정확히는 없어진 게 뭔데?”

갑자기 사라진 금품의 종류에 대해 묻자 조사를 한 봉황대 대원은 당황했고 제갈 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걸 물었군.”

“죄송합니다.”

“아니야. 미안할 거 없어. 그건 나라도 조사 못했을 거야. 사건에 비하면 그건 지극히 사소한 거니까.”

힘없이 고개를 숙이자 제갈 사혁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봉황대를 바라보며 갑자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말했다.

“우리 집이 좀 살아.”

이건 또 뭐하자는 농담인가 싶었지만 제갈 사혁은 다시 식탁 위에 앉아서 지도를 가리켰다.

“이 지역에 황금성이 몇 개나 있지?”

“!”

황금성이라는 말에 모두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집이 좀 사는 건 다들 알거야. 제갈세가니까. 그런데 말이야. 부잣집일수록 금자나 은자 같은 거 별로 없어. 다 어디 상단에 맡겨서 투자금 배당 받거나 이자 챙겨 먹거든”

얼핏 들으면 집 잘 산다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요점은 정말 중요했다.

“비싼 물건 사서 집구석에 놔두는 걸로 돈을 묶는단 말이야. 그런데 금품이란 게 그 비싼 물건일 수도 있잖아. 그렇지? 그렇지?”

제갈 사혁이 일일이 봉황대 대원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물건을 처리하려면 황금성에 가야지.”

황금성은 뇌물이나 장물을 취급하는 곳이고 제갈 사혁은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 채 저택 살인사건이 금품을 노린 나호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었다. 근거는 없다. 그렇다고 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 꼬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반드시 나호를 찾아야 한다. 손아귀에 돈이 쥐어지면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나호를 추적하지 못한다.”

나호의 초상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추적대 만큼이나 정교한 추적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단순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정확한 상대의 욕구를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여야만 나호를 추적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제갈 사혁은 조용히 초영을 따로 불렀다.

“초영. 오늘 사건 보고를 올린 대원들에 대해 기억해둬라.”

“알겠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제갈 사혁은 황금성의 위치를 파악한 후 봉황대를 3개 조로 나눠 이 지역 황금성 3곳을 감시했다. 봉황대의 검증된 실력자 12명 중 6명을 포함해서 한조를 이루고 실력자 4명과 이신을 포함해서 한조를 이뤘다. 이신을 자신의 곁에서 떼어놓은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이신도 제몫을 할 수 있다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초영을 포함해 나머지 한조를 만들어 황금성을 감시했다.

현재 나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가 남자고 노인이라는 점 이 두 가지 뿐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무공을 익힌 노인은 여느 노인처럼 골골대지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는 대상인 셈이다.

어쩌면 이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금품을 교환했을 수도 있지만 정보가 미흡한 봉황대로서는 이 방법뿐이었다.

황금성의 영업 시작 시간부터 황금성을 지켰지만 황금성을 방문한 이들은 이 지역의 관리나 그 부하들이 전부였다.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오늘 하루 관청 공무원 구경 한 없이 했네.”

그 존안을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다는 이 지역 현령(縣令)의 얼굴까지 보게 됐으니 정말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제갈 사혁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방립을 쓰고 있지만 검은 머리카락과 흰머리가 섞인...... 하지만 흰머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분명 노인이지만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걸음걸이에서 무림인 특유의 힘이 느껴지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공격해야 하나?)

현장은 늘 제갈 사혁에게 판단을 요구했고 제갈 사혁은 선택을 위한 고민은 하지만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조에 알려라.”

저자가 나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갈 사혁은 그 노인을 추적하는 한편 일단 흩어진 봉황대를 한 곳을 모았다.

“대주 어째서 나머지 대원들을 부르신 겁니까?”

초영이 그 이유를 묻자 제갈 사혁은 나호로 추정되는 노인이 들어간 객잔 밖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외쳤다.

“오늘 이 임무를 시작하면 생환을 장담할 수 없다.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자신이 없는 자. 임무에 참가 하지 않아도 좋다.”

“대주. 갑자기 지금 상황에 그게 무슨?”

제갈 사혁이 이들을 자르지 않은 진정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타의로 쫓겨나는 것과 자의로 그만 두는 것은 천지차이다. 쫓겨나면 그 내용이 이력에 남기 때문에 무림맹 내에서의 경력은 끝난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자의로 그만두면 그 이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만두는 것도 용기다. 절대 그 누구도 너희를 비난하지 않는다.”

목표를 앞에 두고 갑자기 퇴직권고를 하는 제갈 사혁의 모습은 타인이 보기에 조금 어이없는 촌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에 들어가면 이 상황을 꼭 연출하고 싶었다. 지금 자신들이 쫓고 있는 자가 나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갈 사혁은 애초에 나호를 잡는 일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제갈 사혁이 임무를 자진에서 맡은 이유는 처음부터 봉황대에게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임시지만 봉황대를 이대로 둘 수 없었다.

“모두 사무직에서 직종을 바꿨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대들은 무림인이다. 책상에 앉아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서생이 아니란 말이다. 무림인이면 무림인답게 칼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려거든 그냥 의자에나 앉아 있어라.”

하지만 그 성격이 성격인지라 잘 타일러야 함에도 제갈 사혁은 무의식중에 다소 강경한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은 봉황대를 동요시켰다.

제갈 사혁이 등을 돌리고 객잔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초영을 포함한 12명과 중간에 사건을 보고한 3명이 제갈 사혁의 뒤를 따랐다.

“대주!”

망설이고 있는 봉황대에서 제갈 사혁과 비슷한 나이의 사내가 제갈 사혁을 부르자 제갈 사혁은 미소를 지었다.

“봉황대를 나간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원래의 사무직으로 돌아가면 된다.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면 봉황대에 남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나를 따라나서면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나는 너를 한 사람의 무림인으로서 기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무림인으로서 인정받는 다는 것 그것이 곧 명예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대주. 따르겠습니다!”

젊은 사내 한명이 제갈 사혁을 뒤따름으로서 총 인원 16명.

비록 그 수는 줄었지만 강인함은 그 배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황금성. 이전에도 한번 언급을 했지만 전당포의 업그레이드 형태라 보시면 됩니다.

중국은 뇌물문화(말 그대로 정말 문화입니다.)가 있어서 돈이 아니라 물건을 받을 때도 있는데 이 물건을 돈으로 바꿔주는 곳입니다.

정말로 그 명칭이 황금성인 건 아니지만 현재 중국에 실제합니다.

일단 오타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개를 회계라고 썼네요. 솔직히 둘 다 잘 안쓰는 단어다보니.....

제가 선작한 작품들은 판타지가 대부분입니다. 어차피 연재중단 했으니 뭘 읽는지 밝히긴 뭐하고 연재 중단 하지 않은 소설은 제가 보는 것 중에 천마지로 뿐이네요. 무림백서도 연재 중단은 아닌데 좀 뜸하게 올라옵니다.

그리고 물류센터 말입니다.

이게 알바가 아닙니다. 정말 말 그대로 끌려서가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선배님 말씀인데 어찌 후배주제에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 덕에 어제 휴재 공지도 못쓰고..... 물론 돈은 받았지만 아오~ 힘들어.

그럼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PS. 크리스마스에 남자들만의 모임을 갖기 때문에 연재는 힘들 것 같습니다.

남자들만의 모임= 놀면서 술. 크리스마스날 사내놈들 얼굴 보면서 술. 울면서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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