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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43화 (143/262)

<-- 143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이제 남은 건 나호를 잡아들이는 일 뿐이었다.

“어디 그 잘난 면상 좀 보실까?”

온갖 여유를 부리며 객잔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제갈 사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이상 다가오면 죽는다.]

분명 귀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지만 마치 어깨동무를 하고 귀에다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는 그의 경고를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에 있지도 않은 호황을 찾았다.

나호가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최근에 만난 추백성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추백성과 나호의 차이는 명확한 살기(殺氣).

확실히 제갈 사혁에게 이정도로 강력한 살기를 내비치는 자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살기를 내뿜던 쪽은 늘 제갈 사혁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군.)

제갈 사혁이 나호의 경고를 무시하고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엄청난 기의 파동이 봉황대를 짓눌렀다.

“이신!”

상대의 기에 대응하지 못한 이신은 그대로 쓰러졌고 봉황대는 간신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 소림사 방장이 직접 잡았다고 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유를 부려서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기세에 눌리면 안 돼. 내가 먼저 친다)

“이런!”

봉황대가 기에 눌려 주춤거리는 사이 객잔 벽을 부수고 나호가 나타났고 저쪽에서 먼저 선공을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제갈 사혁은 나호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했다.

“흐악!”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나호는 두꺼운 팔뚝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갈 사혁의 목을 후려쳤다. 단순히 팔뚝으로 목을 쳤을 뿐이지만 순간 호흡이 막힌 제갈 사혁은 반동에 의해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며 머리가 땅에 닿기 전인 약 1초간 의식을 잃었다.

“추격대 놈들을 처리하고 오늘 밤 안에 이 촌구석을 조용히 뜨려했는데 잘도 찾아왔구나.”

추격대에 대해 언급한 이상 눈앞에 있는 이 자는 누가 봐도 나호가 확실했다.

“나호! 무림맹의 봉황대다. 얌전히 따라라!”

대주인 제갈 사혁이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초영은 부관답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당당하게 나호에게 봉황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봉황대인가? 무허 대사 그 애송이는 어디에 있지?”

전임 대주인 무허 대사를 언급하며 보이는 살의는 두 손으로 목을 조이는 것 같았지만 초영은 침착하게 자신의 내공을 몸 전체에 퍼트려 살기를 떨쳐냈다. 그리고 조용히 왼손을 뒤로 뺀 채 자신의 병기를 손에 쥐고 나호를 살피기 시작했다.

(특별히 무기는 없다. 그렇다면 권법가인가?)

나호는 꽤나 오래전 소림의 회개동에 갇혔기 때문에 현재로선 따로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먼저 공격하고 보는 거야!)

“손회(噀洄)!”

초영이 왼팔을 빠르게 휘젓자 손에 쥔 도끼가 섬광을 일으키며 나호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일격을 시작으로 봉황대의 오랜 호흡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약속된 움직임이 이뤄졌다.

초영의 첫 일격을 피해낸 나호는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봉황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던 중 도를 휘두르던 봉황대 대원 한명이 일부러 도를 크게 휘두르며 빈틈을 만들고 나호가 이를 노리고 반격을 하려 하자 다른 대원이 나호의 등에 연화장(蓮花掌)을 적중시켰다.

“받아라!”

한명이 일부러 빈틈을 만들고 적이 그 빈틈을 파고들면 역으로 다른 동료가 적을 빈틈을 노리고 공격하는 약속된 움직임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따라하는 것조차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협동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화장을 맞은 나호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공격한 봉황대 대원에게 똑같이 연화장을 펼쳐 되갚아주었다.

“뭐야?”

나호의 손끝에서 펼쳐진 무공은 누가 봐도 연화장이었고 나호가 연화장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봉황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추격대를 전멸시켰던 용조수도 그렇고 이번에 보인 연화장도 그렇고 나호는 상대의 초식을 똑같이 따라하는 재주가 있었다.

당혹스러움이 만들어낸 정적은 나호에게 절호의 기회였고 일순간 빈틈을 보인 봉황대 대원들은 나호의 아가리에 목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봉황대 전원이 바닥에 쓰러지고 유일하게 남은 초영만이 고개를 들고 나호를 마주 볼 수 있었다.

“........”

도끼를 움켜쥔 손에서 땀이 나자 더욱 더 세게 쥐었다.

나호가 두려워서 긴장했다기보다는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동료가 더 이상 없다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었다.

초영은 오랜 세월 봉황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활동했고 그것은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지만 혼자 남은 상황에서 자신보다 강한 자와 마주하는 압박감을 견뎌내기 들었다.

(정신 차려. 밀리면 안 돼. 그래...... 먼저 공격하는 거야!)

초영은 기세를 잡기 위해 먼저 나호를 공격했다.

“도끼를 사용하는 여자라. 흔치 않군. 그래봤자 내 눈에 날붙이는 다 똑같은데 말이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도끼를 휘두르며 나호를 밀어붙인 초영은 시간을 끄는 것에 공격초점을 맞췄다. 어차피 혼자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동료들이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 최대한 버티는 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죽일 각오가 느껴지지 않는 것만큼 상대를 우롱하는 것도 없는 법이지.”

빈틈없는 난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에 베여가며 손을 뻗은 나호는 초영의 목을 낚아챘다.

“봐. 처음부터 날 죽이려고 도끼를 휘둘렀다면 이런 자잘한 상처가 아니라 팔 한쪽을 잘라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괜히 적당히 시간 끌려 하니까. 기회를 날려버렸잖아?”

분명 휘두른 건 도끼일 텐데 나호의 팔에 난 상처는 요리하다 칼에 비인 것만 못했다.

“무림맹의 주축 세력인 봉황대라기에 기대했는데 별거 없군.”

목을 움켜쥐고 엄지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자 초영은 눈앞에 깜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 그만 죽어라.”

“뭐래? 병신이.”

초영의 목을 쥔 나호의 팔위에 경신법으로 사뿐하게 내려앉은 제갈 사혁은 발로 면상을 걷어 차 나호와 초영을 떨어트렸다.

“대주 놈은......”

“아니 됐다.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

분명 나호는 범상치 않은 놈이지만 어차피 무림이라는 게 몸으로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봉황대는 말이다........”

제갈 사혁이 말끝을 흐린 그 순간 나호는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고 그때 나호의 발목을 노리고 화살이 날아왔다.

“!”

나호는 놀라운 반사신경을 보이며 낮게 깔린 화살을 피했고 화살을 쏜 봉황대 대원은 최후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를 본 제갈 사혁은 미소를 지었다.

“...... 끈기 하나는 대단하거든.”

비록 상대가 무림 최고의 고수라고해도 봉황대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싸울 것이다.

“더 이상 나서지 마라.”

“하지만 대주.....”

“일어나기 힘들지? 아마도 급소를 맞았을 거다. 한동안 일어나기 힘들겠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

봉황대에서 유일하게 의식이 있는 건 초영과 방금 전 화살을 쏜 대원 한명 뿐이다.

(외공권인가? 맞으면 좀 아프겠군.)

봉황대 대원들을 기절시킨 일격은 몸에 충격을 주는 외공권일 가능성이 높았고 일격에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면 제갈 사혁에게도 위협적이라 할 수 있었다.

초영과 봉황대 대원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명령에 불복하는 한이 있어도 제갈 사혁을 도우려 했지만 제갈 사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를 느낀 순간 생각을 거뒀다.

(며.... 몇 살이라고 했지?)

순간 초영은 제갈 사혁의 나이를 떠올리려야 떠올릴 수 없었다.

분명 자신보다 어리다는데 이 위압감은 절대 그 나이 때 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으르렁거리며 적에게 경고를 보내는 식의 소모적인 내공발산일 뿐이지만 과연 그 명성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어리군. 하지만 대단해.”

나호 역시 제갈 사혁의 기를 느끼고 처음으로 기수식을 잡았다.

“그럼 먼저 가겠다.”

먼저 달려들면서 선보인 무공은 소림의 용조수였다. 하지만 제갈 사혁도 용조수를 익혔기 때문에 파훼는 어렵지 않았고 초식의 빈틈이 나오자 나호의 복부에 패권(覇拳)을 찔러 넣었다. 크게 충격을 받았을 텐데 나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제갈 사혁은 오랜 경험상 나호가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럼 정신 좀 차리게 해줄까?)

패권에 의한 통증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때 제갈 사혁은 무릎에 힘을 빼고 채찍처럼 발을 휘어감아 나호의 목을 정확하게 노렸다.

(이 개자식이!)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복부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발차기를 날린 그 순간 방어를 하기보다 도리어 공격을 찔러 넣은 것이다. 게다가 그 공격이 방금 전 먹였던 패권이라면 그 충격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상을 초월했다.

패권에 맞아 제갈 사혁의 무릎이 반쯤 꿀리자 나호는 머리를 집중 공격하려 했고 제갈 사혁은 방어법인 격수(格收)를 펼쳐 나호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뭔가 했는데.... 그런 재수가 있었나?”

용조수를 쓴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설마 설마했다. 하지만 패권을 정확하게 구사했을 때 확실하게 감이 왔다. 패권은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지만 마교출신인 놈이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다. 이 패권은 어디까지나 한손에는 검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상대와의 간격을 조절하는 보조 무공이기 때문이다. 놈이 권법사라면 절대 익힐 필요가 없는 잔기술에 불과했다.

“상대의 무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 별난 놈일세.”

“................”

대답은 하지 않지만 아마도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 사혁도 가끔 상대의 초식을 따라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한까지 단련한 육체를 믿고 부리는 재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호는 달랐다.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진짜인 마냥 정확했다. 타격을 넣는 순간 발산되는 내공의 양과 그 흐름이 완전하게 동일함을 이뤘다.

“너 같은 놈도 있구나. 세상에는.”

“흥!”

오랜 시간 소림사 회개동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말투는 젊은 사람 같았지만 엄연히 무공으로 세월을 보낸..... 임무고 뭐고 떠나서 반드시 꺾어내야 하는 무림인이었다.

============================ 작품 후기 ============================

역시 크리스마스는 젠장.....

사내 놈들끼리 모여서 재미 없게 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홀로 집에도 안나오는데 집에 있어서 뭐하겠냐만은 남자들만 있는 모임을 갈바에는 그냥 나홀로 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시간 5:41분. 술마신 것 치고는 글이 잘 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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