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노호는 제갈 사혁의 무공을 그대로 따라했다.
“쳇!”
특히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와 연계를 한 매화장법(梅花掌法)의 합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했을 때는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정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흡정마공을 응용한 타격을 걸어 몸속의 내공을 털어버리거나 흡기를 하고 싶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나호의 모방 수준은 거의 동일하다고 봐야했다. 만약 흡정마공을 사용했는데 제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설프게 모든 내공을 흡수하지 않을 경우.
(저놈이 흡정마공을 똑같이 따라하려 할지도 모르지.)
사실 자하신공과 흡정마공의 충돌을 겪은 후로 무의식중에 겉핥기식으로 응용해서 사용할 뿐 진정 하나의 무공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제갈 사혁은 힘 싸움에서 체력 소모전으로 전략을 바꿨다. 상대가 아무리 무공 초식과 내공 운용을 똑같이 사용해서 자신의 무공을 따라한다고 해도 결국 이 모든 것에는 체력이 따라줘야 했다.
(내가 익힌 모든 무공은 손동작 하나하나 발동작 하나하나에도 그에 맞는 훈련을 해야 했어. 팔굽혀펴기 몇 번으로 단련한 몸뚱아리로 막 쓴다고 될 게 아니라면 말이야. 노인네.)
이는 철사장을 익히기 위해 뜨거운 모래에 손을 담구는 훈련과 비슷하다 결국 무공 초식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그 초식에 알맞은 훈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호는 제갈 사혁이 사용한 무공을 익숙하게 구사했고 결국
(이건 천지유벽세(天地柔劈細)잖아!)
제갈 사혁의 팔목을 붙잡히자마자 노호는 제갈세가의 무공인 천지유벽세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오늘만 벌써 이 비슷한 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정말 완벽하게 똑같이 모방하는군. 알고 있냐? 망할 놈아. 니 놈이 사용하는 그 모든 걸 익히기 위해 내가 오늘날 얼마나 뼈를 깎는 수련을 했는지!)
말 그대로 모든 게 완벽했다.
(멍청한 녀석!)
“!”
그 순간 갑자기 제갈 사혁은 옛일이 떠올랐다. 지금의 옛일이 아니라 지난생애의 옛일이었다. 도산진인이 자신의 스승이었을 때를 말이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고대로 따라하면 그게 무공이냐? 광대놀음이지!)
복호 백열격 아니 복호 백열권을 처음 배웠을 때였다. 그때 분명 스승이었던 도산진인은 처음 복호 백열권을 구사하는 자신의 제자를 크게 야단친 적이 있었다. 당시 제갈 사혁은 왜 혼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 이유는 분명.
(맞아. 그거였어!)
잊고 있었던 옛일이 떠오른 제갈 사혁은 다시 한 번 나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나호는 제갈 사혁에게 훔친 표미각(豹尾脚)을 펼쳤다.
(나의 표미각은 공격할 때의 호흡 때문에 세 번째 초식에서 아주 작은 빈틈이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연타 공격을 할 때 호흡을 하지 않는데 제갈 사혁의 경우 표미각을 구사할 때 약 초식 정도를 강하게 때려 넣어 상대의 기를 꺾은 후 짧은 시간 호흡을 한 번 더 해 맹렬한 공격을 이어간다. 이 중간 호흡은 맹공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동작임과 동시에 제갈 사혁의 표미각에 유일한 약점이었다. 그리고 이 약점 또한 나호에 의해 똑같이 드러났다.
“컥!‘
표미각의 세 번째 초식이 끝난 그 짧은 순간 제갈 사혁은 손가락으로 나호의 목을 찔렀다.
순간 호흡이 흐트러진 나호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제갈 사혁은 그 순간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손날을 세워 나호의 오른쪽 어깨를 찌른 후 그대로 오른팔을 뽑아버렸다.
“이..... 놈!”
나호는 이를 갈며 일권복호(一拳伏虎)를 날렸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오른쪽으로 파고들어 일권복호를 여유 있게 피했다.
(일권복호는 주먹을 내질렀을 때 손목을 비틀어 2차 충격을 준다. 그러니 주먹을 거두는 게 다른 무공의 정권 찌르기보다 늦을 수밖에.)
오른쪽 다시 말해 나호의 품으로 파고든 제갈 사혁은 철산고의 일종인 복호파산(伏虎破山)으로 강하게 나호의 가슴을 때렸다.
“으윽.....”
기어이 굳게 닫은 이빨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오자 나호는 더 이상 비명을 참아내지 못했다.
“죽여 버리겠다!”
나호는 복수를 다짐하며 일어나려 했고 그 순간 다리가 풀려 말을 듣지 않았다.
“어째서?”
아직 다리가 풀릴 정도로 체력이 부족할 리 없는데 다리가 풀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하지 노인네.”
“그게 무슨 말이냐?”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똑같이 구사하는 것에는 분명 그 한계가 있는 법이야. 체력 문제가 아니야.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슨 개소리냐?”
“표미각. 오행매화보. 복호권. 천지유벽세. 용조수.”
갑자기 무공초식 이름을 늘어놓자 나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너는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지? 누가 널 가르쳤나?”
훈련? 애초에 자신에게 훈련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한번 보기만 해도 모든 무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교 내에서도 스승이 필요 없었다. 천재였으니까.
“어떠한 무공도 사용할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할 뿐 특정 무공을 익히기 위해 따로 훈련을 하지 않는다. 스승? 이 나호에게 그런 건 필요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갈 사혁은 나호를 비웃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뭐?”
“거기에 맞는 훈련을 하지 않으니까. 오행매화보를 펼칠 때 무리가 오고 표미각을 펼칠 때 무리가 오는 거야.”
“뭐라?”
“스승이 필요 없다고 했나? 그러니 모를 수밖에! 네 말대로 그 어떠한 무공이든 보는 것만으로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면 스승이란 존재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배움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독학만으로 모든 게 가능할 리 없다. 선대가 겪었던 경험을 무시하지 마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자연스러운 무공은 모두 우리의 스승께서 시행착오를 겪은 후 우리에게 전수되는 것이니까.”
아무리 완벽해도 결국 따라하는 건 거기까지다. 복호 백열권을 처음 구사했을 때 제갈 사혁이 혼난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복호 백열권이 너무 똑같아서.
(하나의 초식에 자신만의 버릇이 스며들 때 비로써 하나의 무공이 완성된다. 스승님이 하시던 말씀이시지.)
표미각으로 예를 들자면 세 번째 초식 후 한 번의 호흡은 자신의 버릇이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제갈 사혁의 표미각’ 그리고 약점이었다.
만약 세상의 모든 무림인이 하나의 초식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이 쓴다면 나호의 꼴이 날 것이다.
(파훼도 약점도 똑같을 수밖에.)
“처리해. 단 죽이진 말도록 회개동에 다시 처넣어야 하니까. 남아 있는 팔 그리고 그 후에는 양쪽 다리가 좋겠지.”
제갈 사혁은 쓰러져있는 봉황대 대원에게 손짓을 건넸고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나머지 왼팔에 화살이 명중하자 나호는 울분이 가득한 외침을 내질렀다.
“내가 그 거지 같은 곳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것 같아!”
정말 회개동에 다시 가기 싫었는지 나호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앞을 가로막은 초영의 도끼가 정확하게 나호의 가슴을 찍었다.
“죄송합니다. 대주. 생포하기 어려웠습니다.”
얼굴을 피로 물들이고 고개를 숙이는 초영을 보며 제갈 사혁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초영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얼굴이 이게 뭐야. 예쁜 얼굴 다 망가졌네.”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뺨에 묻은 피를 닦아주자 초영은 얼굴을 붉혔다. 일생 단 한 번도 남자가 이렇게 웃으면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간다. 나호는 귀찮으니까. 그냥 목만 잘라가지고 간다.”
돌아간다면서 제갈 사혁은 나호의 위압감에 눌려 기절한 이신을 들쳐 업었다.
무림맹으로 귀환한 후 제갈 사혁은 총 16명을 제외한 나머지의 이직 신청서와 추천서를 직접 써주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아무 문제없이 밥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 맞다. 이신. 내 손수건 말인데.”
한편 일이 끝난 후 초영은 제갈 사혁이 준 손수건을 직접 빨았다.
“손수건이 정말 예쁘네.”
순간 자신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주던 제갈 사혁의 미소가 떠올랐고 초영은 얼굴을 붉혔다.
“스물 하나라고 했나? 내가 올해 다섯이니까.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확실히 제갈 사혁이 미남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 목소리와 그 미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갈 사혁의 집무실에 도착한 초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섰다.
“대주님 초영입니다.”
“들어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지만 어째서 이다지도 다정하게 들리는 걸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서류와 씨름하는 제갈 사혁과 그의 제자인 이신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이거.....”
빨리 제갈 사혁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초영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 이거 돌려줄 필요 없는데.”
“하지만 대.....”
하지만 대주의 소중한 물건을 돌려주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제갈 사혁은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렸고 그 광경을 그 자리에서 지켜본 초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 대주?”
“왜?”
“손수건은 왜?”
손수건을 왜 버렸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갑자기 이신을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사부 여기요.”
그러더니 이신이 쪽가위로 실을 끊으며 막 새로 만든 손수건을 제갈 사혁에게 건네주었다. 자신의 뺨을 닦아주었던 그 손수건과 자수까지 똑같은 손수건이었다.
“손수건 같은 건 무명천만 있으면 언제든 이 녀석이 만들어주니까. 필요 없어.”
“하지만 제가 직접 빨았는데.”
“남의 냄새(나호의 피 냄새)가 베인 손수건을 어떻게 다시 쓰냐?”
(남의 냄새? 혹시 내 냄새가 싫다는 거야. 지금?)
향기도 아니고 냄새라는 단어를 써가며 말하자 초영은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지며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실례하겠습니다.”
“음... 그래 가봐.”
별 안간 찾아와서 손수건을 돌려주다니 제갈 사혁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봉황대 대주 집무실 두 번째 기둥에는 누군가의 손자국이 크게 나 기둥에 금이 갔지만 초영이 예산문제를 들먹이며 교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평소에도 늦지만 오늘은 더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파죽지세 편은 이걸로 끝~ 이 아니라 원래 나호를 중점으로 둔 게 아니라 봉황대 육성이 그 과정입니다. 그러니 파죽지세 편은 끝이 아닙니다.
봉황대 성장이 중점이라.
마지막에 러브 코메디 같은 설정을 넣었는데 넣으려고 마음 먹은 요소입니다.
제갈 사혁에게 반하는 초영~ 은 있을 수 없고 집안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제갈 사혁이 왜 첫사랑만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까요?
그렇다고해서 얼렁뚱땅 초영이 계속 제갈 사혁을 좋아하지만 둔감한 제갈 사혁은 그것을 모른다. 라는 것은 짜증나는 설정은 아니고 그냥 제갈 사혁의 성격이 더러워서 정내미가 떨어지는 것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