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회: 파죽지세(破竹之勢) -->
나호 사건으로 인해 기존 대원을 이직 시킨 제갈 사혁은 현 체제를 유지하려 했지만 무림맹의 군사력과 직결된 부대인 만큼 최소 인원 40명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신입 대원을 받아야 했다.
“사람 뽑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임시니 뭐니 해도 귀찮은 건 다 나한테 시킨다니까요. 나는 어디까지나 임시인데.”
청하와 점심을 함께 먹는 내내 제갈 사혁은 무림맹 수뇌부가 결정한 인원충당 요구에 골머리를 앓았다.
“사람 뽑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맡은 이상 확실히 해줘요. 대.주.님.”
오늘따라 청하는 제갈 사혁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해줬고 그런 청하의 모습에 제갈 사혁은 괜히 불안했다. 특히 청하의 경우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했다.
“뭐 나한테 부탁할 거 있어요? 임무에 따라가 줘요? 봉사활동 같이 해줘요?”
“아니요. 그런데 봉사활동은 같이 가자고 하면 갈 거예요?”
“그럴 리가.”
그 말과 동시에 청하는 제갈 사혁의 발을 밟았다.
“오늘 되게 좀 그래 보이는데요. 부탁할 것도 없으면서 엄청 사근사근하고.”
“그럴 리가요. 난 원래 이러잖아요.”
그러면서 청하는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옷 바꿨나? 아니야. 저 옷은 평소에도 입고 다니는 거야. 애초에 치장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잖아. 저 사람. 뭐지? 도대체 뭐가 그녀를........)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청하가 허리에 찬 곤색의 도를 발견했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낡은 도가 아닌 새것이었다.
(혹시 저건가?)
“무기 바꿨네요.”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같은 말을 하면서 세 번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 청하는 보며 제갈 사혁은 그런 청하가 어린아이 같아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머리에 하고 있는 장신구가 바뀌었다던가 하는 것들을 알아봐주길 원하는데 무기가 바뀐 것을 알아봐줘서 좋아하는 여자라니.
“이게 뭔지 알아요. 갈사 소협?”
“뭔데요?”
“사천성 백칠 공방에서 만든 리(唎) 겸도(鉗刀) 101번작. 백해(百解)! 어때요. 멋지죠? 사천성 백칠 공방에서 만든 명품 무기에요. 이거 아무나 안 만들어주거든요.”
“전 78번작. 호황이에요. 우와~ 벌써 100번작이 넘었네요.”
같은 백칠 공방에서 만든 무기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무심코 별 감흥 없이 호황에 대해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청하의 눈에 생생했던 생기가 사라졌다.
“.............”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제갈 사혁은 뭔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했고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뭐 확실히 명품을 자랑하고 싶었던 청하에게 대뜸 자신도 같은 명품을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던 건 실수였다. 평소에 이런 자랑을 안 하는 사람인데 눈치 없이 그 상황에 찬물을 부었으니......
“전 직접 받지 못했고 사형이 물려준 건데. 이야~ 청하 소저 대단하네요. 저는 겨우 물려받았는데 그건 백칠 공방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받은 거잖아요. 분명 청하 소저의 명성을 알아보고 만들어준 걸 거예요.”
“그렇죠?”
청하가 기뻐하자 제갈 사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방금 그 발언은 자기가 생각해도 진상이었다.
“그런데 101번작이라니 호황이 만들어진 건 5년 전인데 그 사이에 많이도 나왔네요. 리 겸도 연작은 보통 2년에 한번 꼴로 만들어지는데.”
“그만큼 최근에 이름난 무림인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왜 리 겸도일까요? 번호가 부여된 무기 중에는 검도 있고 심지어 창도 있는데.”
“그건 첫 번째 무기가 도였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멸문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80년 전에 이름난 문파였던 천부신문(天符神門)의 제자에게 만들어 준 무기의 이름이 리 겸도였죠. 어차피 상징적 의미로 쓰고 있을 뿐 당시 만들어진 1번작은 그리 대단한 무기가 아니었다고 해요. 진짜 전설은 2번작부터지.”
“솔직히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그렇지 않아요? 2번작도 그냥 주인이 유명해서잖아요. 명검은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런 것도 있겠죠. 그 주인이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갈사 소협의 외할아버지잖아요. 2번작 본 적 있어요.”
말이 좋아 외할아버지지 외가를 방문한 것도 올해가 처음이고 애초에 리 겸도 연작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뭐 2번작이 어찌 생긴 건지 알아야 대단하고 말고를 알죠.”
평상시도 그렇지만 늘 청하와는 무림과 관련된 비사나 풍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의 관심사가 그것이다 보니 여타 다른 연인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만 다를 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알고 있는데.”
그때 두 사람 사이로 다가 온 사람은 남궁 미려였다.
“넌 웬일이냐?”
“이신은 어디 있어?”
다짜고짜 이신부터 찾다니.
“............”
이신이 어디 있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조용히 남궁 미려를 쳐다보더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초영이랑 밥 먹고 있을 걸.”
“뭐 초영? 그 봉황대에 초영 말이야. 그 미인이라는?”
(초영이 미인은 미인이지만 꼭 그것을 따로 언급해야 했을까? 이 멍청이.)
“그래 봉황대에 초영 말이야. 초영은 이신이 마음에 드나보더라. 자주 같이 밥 먹던데 이신도 뭐 나랑 먹는 거 보다야 그렇게 미인이 같이.......”
“........”
절묘하게 말끝을 흐리자 넋이 나간 남궁 미려는 제갈 사혁의 앞줄에 앉아 처량하게 어깨를 쭉 늘어트린 채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러자 청하는 식탁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제갈 사혁의 옆구리를 꼬집었고 제갈 사혁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짓이에요. 남궁 소저가 딱하지도 않아요.]
[왜요? 난 재미있어 죽겠고만.]
[성격 파탄자.]
[나한테 그 말은 칭찬이에요. 개성 있어 보이잖아요.]
[왜 괴롭히는 거예요. 딱해 죽겠네!]
[난 쟤가 싫어요. 쟤랑 이신이랑 잘되면 내 며느리가 된 단 말이에요.]
사실 뭐 스승이라고 해도 실제 부모는 아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건 없지만 현실적으로 제갈 사혁은 화산파의 제자고 나중에 정말 말 그대로 이신과 남궁 미려가 잘되기라도 하면 이신과 남궁 미려 그리고 제갈 사혁은 화산파에서 함께 살게 된다.
[적당히 해요. 좀!]
[그래서 내가 뭐 잘못 했어요?]
제갈 사혁의 성격이 조금 유치한 건 알고 있지만 상황이 자기 쪽으로 딱 넘어왔을 때는 한술 더 뜨는 게 이 남자의 특징이었다. 물론 그런 면이 아이 같아서 귀엽기는 하지만 청하가 가끔씩 두통을 호소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나중에 혼인하면 내가 잘 막아줘야 하나.]
[혼인? 난 그 혼인 반델세!]
제갈 사혁이 그 혼인은 절대 안 된다고 하자 청하는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제갈 사혁의 엄지손가락에 입맞춤을 하고 자리를 떴다.
“뭐라는 거야. 이 얼간이.”
“엥?”
청하의 이상한 반응에 순간 빠르게 돌아간 제갈 사혁의 머리는 ‘그 혼인’이 자신의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청하의 뒤를 따랐다.
“뭐에요. 청하 소저 이야기를 확실하게 해줘요! 혼인이 뭐 어쩐다고요?”
“창피하니까. 저기로 가줄래요. 7장(丈)장 밖으로 떨어져요.”
그렇게 파란만장한 점심을 끝마치고 제갈 사혁은 자신의 집무실로 왔다.
“오셨습니까.”
집무실에 들어가자 초영이 자신의 자리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미안.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군.”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인걸요.”
어쩐지 그 후로 초영의 태도가 쌀쌀맞아 졌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인원충당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뽑는 일만큼 까다로운 게 없단 말이지.”
제갈 사혁이 묘한 어감으로 난처한 처지를 표현하자 초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임 대주님도 겉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결국엔 귀찮아서 사람을 막 뽑은 것 같습니다.”
무허대사가 사람을 대충 뽑은 것 같다고 말하자 제갈 사혁은 대뜸 책상 위에 앉아 초영이 들고 있는 붓을 빼앗았다.
“분명 무허대사는 재미로 받아드린 게 아닐 거다.”
“네?”
“자신의 후임이 그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랬겠지.”
사람인 이상 누구나 가능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 물론 무허대사가 정말 재미로 그들을 받아드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그들의 역량을 끌어내지 못해. 한 사람으로서의 도량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자신이 잘라낸 사람들이 어떠한 잠재능력을 가졌는지 제갈 사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잠재능력보다 눈에 보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화산파의 사제들은 확실히 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스승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가르치기 쉬웠다. 당장 이신만 해도 처음에는 정말 별 볼일 없었지만 격체전공을 한지 1년도 안 돼서 빠른 속도로 모든 무공을 스스로의 몸에 맞췄지 않았는가?
“사람을 어떻게........”
(아..... 나도 참 멍청하군. 내가 누구인지 깜빡하고 있었어.)
“초영.”
“네. 대주님. 말씀하십시오.”
“무림맹에 모집공고를 낸다.”
“어떤?”
그러더니 초영에게 빼앗은 붓으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림맹 봉황대 대원 모집이지.”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청하와 제갈 사혁 나름의 밀당이나 뭐 시시한 말장난을 주제로 썼습니다.
청하의 공기화를 막기 위해서 쓴 편이지만 최근 스토리에서는 청하가 낄 자리가 없었으니까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음.... 최근에 고민이 한가지 있습니다.
글에 대한 거지만 스토리는 아니고 글의 구별 문제인데요.
생각을 쓸 때는 () 이걸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음을 사용할 때 초창기에는 []이걸 썼는데 편지나 전서를 주고 받을 때
똑같이 []이걸 써버린 겁니다. 그래서 전음을 <> 이걸로 바꿨는데 수정본에서는
다시 []이걸 써버리는 멍청한 짓을 해버렸습니다. 이러다가 E북 나오면 실수한번 크게 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