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50화 (150/262)

<-- 150 회: 절대신위(絶對神威) -->

한편 소령의 보호를 위해 떨어져 나갔던 초영은 마을 안에서 작지만 계속되는 전투를 겪으며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제갈 사혁이 입구에서 크게 난장판을 만들어준 덕에 중심부 입성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마을 안에 너무나도 많은 적들이 있어 싸우지 않고는 앞을 나아갈 수 없었다.

“동경(同慶). 화살은 얼마나 남았어?”

초영이 봉황대 대원인 동경에게 화살의 수에 대해 묻자 동경은 고개를 저었다.

“10발 조금 넘는 수준이야. 애초에 이렇게 단독 행동을 하게 될 줄이야.”

그들에게 있어 동경이 쏘는 화살의 존재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적습은 제갈 사혁이 일으킨 입구에서의 전투뿐이고 내부로 침투한 초영 일행은 발각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두 한마디의 말보다 동경의 화살 덕이었다.

“어쨌든 무형독을 만들 만한 곳이라면 이 마을에서도 가장 큰 저택이나 장원일 거야.”

지금 전투가 일어난 임봉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고 이런 시골마을은 저택이 그리 흔하지 않다.

“잠깐!”

그때였다. 대원 중 한명이 수상한 기척을 느끼고 몸을 빈집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봉황대 대원들도 서둘러 빈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그래?”

“엄청난 수야 들어봐.”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자 다른 대원들도 그가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명이지?”

“모르겠어. 하지만 일백이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달리는 소리를 들은 초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단지 어떠한 움직임이 만들어낸 소리일 뿐인데 이 소리가 나타내는 수는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우리가 느낀 건 분명 일백이 넘는 적들의 움직임이고 입구에 있는 봉황대는.....”

초영은 이 순간 자신의 독단으로 봉황대의 전력을 나눈 것에 대한 후회를 했다.

“나는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초영이 아랫입술을 깨물자 그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대원 한명이 초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가 무허 대사님께 무엇을 배웠지? 기억해 초영.”

하고자 한다면 무슨 일이 있든 망설이지 마라. 그것이 전임 봉황 대주인 무허 대사의 가르침이었고 초영은 마음을 바로 잡았다.

“알겠어. 모두들 미안해. 소령. 그녀를 계속 찾겠어.”

처음부터 초영을 믿고 따랐던 이들은 초영이 마음을 바로 잡자 안심했고 지금 숨어 있는 방 안에서 동태를 살핀 후 적들의 시선이 입구에 있는 다른 봉황대 대원들에게 쏠린 틈을 타 호위대상인 소령이 있을 만한 마을의 장원이나 저택을 찾기로 했다.

“화산망종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의..... 대주님의 이름값은 절대 거짓이 아니야.”

소령을 찾기로 마음먹은 이상 남은 건 제갈 사혁을 믿는 일이었다.

“이제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바닥에 귀를 대고 전해져오는 진동을 통해 바깥 사정을 살핀 봉황대 대원은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자!”

초영이 앞장서서 길을 서두르는 그때 갑자기 옆에서 나가오던 누군가와 초영이 부딪혔고 그 순간 봉황대 대원들의 무기가 초영과 부딪힌 그 누군가에게 향했다.

“우와악!”

초영과 부딪힌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기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겨우 피해냈다.

“죽어라!”

이곳은 적진이고 여기서 만나는 이들은 봉황대를 제외하면 전부 적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봉황대의 칼부림에는 절대 망설임이 없었다.

“자.... 잠깐!”

날아오는 검을 손뼉을 마주쳐 가까스로 막아낸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사파 놈이 왜 이러는 줄 몰라서 그러냐?”

“뭐야 당신들 내가 사파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는데?’ 그 억양 차이에서 느낄 수 있는 부자연스러움은 묘하지만 어떤 다른 속사정이 있음을 알게 해주기 충분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초영이 그에게 향하는 무기를 거두게 하고 그의 멱살을 잡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사파라는 건 어떻게 알았냐니까?”

“여긴 귀주 땅이고 지금 이 마을에 있는 자들은 흑사련이 아닌가?”

“무슨 소리야. 흑사련에서 파견된 사람은 나 하나뿐인데....... 그런데 누구세요?”

얼마 후 초영 일행은 자신을 흑사련이라고 밝힌 사내를 묶어서 심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놈들은 흑사련이 아니다?”

“그..... 그런 거죠. 나으리.”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천 사이로 드러난 코에서 코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남자는 겁에 잔뜩 질린 상태였다.

“무슨 짓이야. 종려(終勵). 묶여 있는 사람에게 힘을 쓰다니.”

초영이 심문 중인 종려를 나무라자 종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흑사련이면 적이잖아. 뭐 잘못됐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때리면 어떡해.”

초영은 서둘러 그 남자의 얼굴을 가린 두건을 벗기고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주었다. 얼굴만 봐서는 20대 초반으로 단독으로 파견된 흑사련 측 인물이라 보기엔 너무 어렸다. 직책에 대해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얼굴을 가린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흑사련 측의 정보대 소속 같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아니 소협의 말은 이거죠. 적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흑사련과 아무 관련이 없는? 내 말 맞죠.”

자신에게 소협이라는 호칭까지 써주자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소협이라니요. 저는 흑사련입니다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죠.”

“........”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사내는 고민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초영을 쳐다봤다.

“지금은 그냥 무영(無影)이라고 불러주세요.”

무영. 이름을 가르쳐주기 싫을 때 흔히들 쓰는 가명이었고 초영 입장에서는 부를만한 호칭을 가르쳐준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협조는 얻어냈다고 판단했다.

“좋아요. 무영. 일단 정보를 공유하죠. 우리는 소령이라는 의원이 무형독을 제조하고 있다고 해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무림맹에서 파견된 봉황대에요.”

사실 초영이 말하는 것들은 ‘정보’라고 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분위기상 무영보다는 봉황대 쪽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 정도만 말해도 정보교환이 가능했다.

“저와는 요점이 다르시네요. 무형독을 만든 소령을 제거하는 게 저의 임무입니다.”

“어째서죠? 그녀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소령을 제거하러 왔다는 말에 초영은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였고 무영은 담담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흑사련은 ‘무형독이 만들어졌다.’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무형독을 만들 수 있다.’에 의미를 두고 있죠.”

무형독이 실존하건 말건 결국 듣는 쪽에 따라서 소령이라는 인물이 무형독을 만들 수 있다. 혹은 만든다. 즉 무형독의 그 자체보다는 그 제조자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흑사련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독이란 건 위험한 겁니다. 특히 해독가능성도 중독 여부도 알 수 없는 독 같은 건 더더욱.”

“그럼 그건 둘째로 치죠.”

“?”

“일단 무형독이든 소령이든 그것에 접근한 후에 처우를 가리죠. 어찌 되었든 저희는 소령이라는 사람을 보호할 겁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이곳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쪽이 흑사련이 아니라는 사실과 두 단체의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무형독의 존재와 소령의 생사여부라는 공통적인 목표가 있었다.

“소령이 있는 곳은 제가 압니다. 여기 오기 전에 주변 조사를 좀 했죠.”

여유 있게 주변조사까지 한 무영과 달리 봉황대는 이곳이 흑사련의 지배지역이고 또 제갈 사혁이 흑사련의 백사대를 살해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정면 돌파 말고는 다른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저기로 조그만 가면.....”

무영을 따라 천천히 적들의 본거지로 향한 그때였다. 갑자기 검은 천을 휘날리며 사방에서 적들이 봉황대와 무영을 포위했다.

“쥐새끼들이군.”

그들은 여태까지 이곳에서 만났던 다른 무림인들과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봉황대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초영.]

[알고 있어.]

초영이 등에 손도끼를 움켜준 그 순간!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무 잘 못도 없습니다!”

무영이 가장 먼저 달려 들어가 항복을 외쳤고 그 순간 그 어이없는 상황에 마음의 빈틈이 생긴 봉황대는 전원 적들에게 사로잡혔다.

한편 입구에서는 제갈 사혁이 시체로 산을 이루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대주님!”

“또 뭐냐?”

“저기 보십시오.”

봉황대 대원이 가리키는 곳에는 초가집 지붕 위에서 궁현을 당기는 궁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제갈 사혁은 질린다는 표정이었고 그 순간 날카롭게 날이 선 검은 비가 내렸다.

(쳇! 하는 수 없지 전부 내공을 걸어 멈추게 하거나 날아오는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야겠어!)

이기어검의 묘리는 한번 사용하면 내공을 떠나 정신적인 피로가 엄청나지만 봉황대를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현허도법(玄虛刀法). 신패멸진(申敗滅鎭)

하지만 그 순간 청하가 거칠게 몰아치는 검초를 펼치며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쳐냈다. 그 강맹함과 기세는 누가 봐도 하나의 완성된 도법이었다. 성제 진인 그리고 그의 제자 청하로 이어지는 무당파의 도법 재건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빠르게 치고 들어가라!”

청하가 단번에 궁수들을 처리하자 제갈 사혁은 진격명령을 내렸고 봉황대의 순간 사기는 최고조였다.

“수고했어요.”

“무리했어요.”

수고했다는 말을 무리했다며 받아치는 청하는 왼쪽 팔에 화살을 맞았지만 이를 악물고 화살을 뽑아내는 오기를 보여줬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초영에게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고민도 하고 후회도 하고 어떻게 보면 초영이라는 인물보다는 봉황대의 부관이라는 점에 더 중점을 두었죠. 그리고 이번 사건이 흑사련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다음편의 구도는 어느 정도 잡은 상태입니다.

지난번 소제목이 파죽지세인데 봉황대가 그렇게 잘나가진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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