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회: 절대신위(絶對神威) -->
마화천은 소령을 지키느라 제갈 사혁은 더 이상 안중에도 없었고 제갈 사혁은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했다. 아니 이해타산을 맞췄다.
(마화천은 소령을 두고 떠나지 않는다. 데리고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일단 이쪽은 신경 끄고 저쪽을 한번 들쑤셔 볼까?)
출사로서 홀로 임무를 맡고 왔다면 제갈 사혁은 끝까지 마화천과 싸우려 했겠지만 봉황대 대주직에 앉아 있는 이상 마화천이 아닌 소령을 봐야 했고 소령보다는 이번 일의 원인을 알아야 했다.
경공을 펼쳐 재빨리 상대가 있는 곳으로 향한 제갈 사혁은 우두머리를 호위하는 부하들에게 차례차례 흡정마공을 써서 쓰러트렸다. 흡정마공이 완성된 후로 흡기를 해도 상대의 몸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얼핏 보면 점혈을 당해 기절한 듯 보였다.
흡정마공으로 오랜만에 흡기를 하자 혈관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비켜라! 너희의 상대가 아니다!”
우두머리격인 검은 옷의 사내가 검을 빼들고 달려들자 제갈 사혁은 눈으로 상대의 검을 쫓으며 상대의 검법을 유심히 살펴봤다.
(노두창만(努竇瘡悗)?)
그러던 중 아주 익숙한 초식을 알게 되었고 제갈 사혁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렇다면 설마 배극구검인가?)
배극구검은 과거 금광수가 우연히 손에 넣어 사용한 검법이고 제갈 사혁이 겪어 본 바로는 살막의 무공이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자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얼마 전에 만난 가울도 그렇고 그보다 더 전에 만났던 흑호도 그렇고 배극구검이라는 공통점은 단순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가울이란 자는.
(분명 흑사련의 흑요칠마 황성의란 말이지.)
이 모든 것이 정리가 되지 않아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침착하게 얼굴표정부터 관리했다. 혹여 배극구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앞으로 살막의 실체를 잡는 일이 힘들어진다.
제갈 사혁은 상대의 검을 잘 막아내더니 교묘하게 당하는 척 연기를 했다.
“마화천과 대등하게 싸우던 그 기세는 어디 갔느냐?”
상대가 도발하자 제갈 사혁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응수했다.
“너 같은 놈은 맨손으로 죽일 수 있다.”
“천주.”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허공에서 사람이 나타나더니 제갈 사혁과 그 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어서 떠나셔야 합니다. 백사대가 오고 있습니다.”
“백사대가 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어서 떠나셔야 합니다.”
“하지만 무형독을 놓고 갈 수 없다.”
“막주께서는 절대 흑사련과 부딪히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잊으셨습니까?”
평소라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미친놈처럼 달려들겠지만 제갈 사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천천히 들으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하물며 지금 이 상황에 무형독을 빼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분위기로 봐서 흑사련의 무력단체인 백사대가 도착한 것 같았고 그것은 제갈 사혁에게도 안 좋은 일이었다.
“!”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침이 날아왔고 그것은 정확하게 제갈 사혁의 어깨에 맞았다.
“으윽!”
그러자 어깨에 담이 온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고 제갈 사혁은 자신이 맞은 침이 예사롭지 않은 물건임을 깨달았다. 어떠한 종류의 술수를 부린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혈도를 눌러 스스로 감각을 마비시켰다.
(오른팔만 움직이면 그만이야!)
제갈 사혁은 도망치는 이들을 뒤쫓았고 기어이 그의 어깨 뒤에 칼을 꽂았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집념 하나는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었다.
“이놈이 진짜!”
“천주!”
“으아아아악!”
등 뒤에 칼을 꽂고 제갈 사혁은 웃으면서 그의 왼팔을 뜯어냈다.
“난 네놈의 이름이 무엇이고 또 너희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앞에서 등 돌리고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천주 가십시오! 이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호위를 하던 부하가 대신 막고 나서자 제갈 사혁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네가? 나를? 주제를 알아라. 버러지........”
제갈 사혁의 손이 먹이를 물어뜯는 뱀처럼 목을 움켜쥐자 그 당당하던 그 기세도 얼마 가지 않아 무자비한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멀리 도망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대주님. 큰일 났습니다!”
놈을 뒤쫓아 가려는 그때 흑사련의 백사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화천이 건물 지붕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백사대는 사방에서 봉황대를 포위했다.
봉황대는 연이은 난전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고 살막에 의해 고용되거나 거기에 가담한 무림인들은 이미 봉황대에게 당하거나 살기위해 도망치다가 백사대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고작 백사대 쯤이야!”
살막의 애송이가 날린 침 때문에 왼팔이 마비가 되어 온 몸의 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황을 들어 올리자 엄청난 양의 내공이 몸에서 흘러나와 주변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혼자 청사단을 몰살 시키고 무형독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던 제갈 사혁이다. 하물며 지금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고작 뱀 몇 마리에 겁을 먹을 리 없었다.
“무림맹의 봉황대인 것을 확인했다. 순순히 항복해라! 우리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백사대의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항복을 권하자 제갈 사혁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해보던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 한마디에 공무원 나부랭이 같았던 백사대 대주의 눈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
그는 못마땅한 듯 입술을 오므리며 제갈 사혁을 노려봤다. 아무리 절차상 항복을 권하고 있다지만 백사대는 절대 만만한 세력이 아니다. 하물며 적대 세력인 봉황대에게 항복을 권한 것 자체가 백사대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쏴라.”
“하지만 그랬다간!”
“상관없다. 쏴라.”
그 말에 한줌 거짓도 없다는 건 누구보다 제갈 사혁이 잘 알고 있었다.
[초영. 방어 대형을 갖춰라.]
[허나 대주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제갈 사혁의 명령에 초영은 방어대형을 짰고 봉황대의 준비가 끝나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은 마주보고 있는 자들의 피부를 찔렀다.
“백사대. 멈춰라.”
봉황대 아니 제갈 사혁과 백사대가 충돌하려는 그 순간 마화천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 절대신위!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마화천은 흑사련 소속이긴 하지만 딱히 무슨 직책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백사대 대주는 마화천의 등장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임무 수행 중이다. 돌아가도록.”
“네?”
“돌아가라 했다.”
“하지만 마화천 대협!”
“자네의 방금 전 그 행동은 뭔가? 자네 설마 정사대전이라도 일으키고 싶은가?”
마화천은 정사대전이라는 말로 상대를 압박하며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쥐었다.
“봉황대의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 이번 일은 련주께서 직접 하달하신 명령이니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또한 이 시간 이후로 봉황대에 대한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마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사대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힘 없이 물러났다.
흑사련의 우두머리인 련주의 이름을 대면서까지 상황을 정리하려는 마화천을 보며 제갈 사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건방 떨지 마라. 나도 이따위 촌극은 벌이고 싶지 않다. 다만 네가 제갈 사혁이고 화산파이기 때문이다. 저 여자가 무당파기 때문이다. 너희가 짊어진 간판 너희의 목숨을 구한 거다.”
정사대전을 피하고 싶은 건 흑사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화천에게 정사대전은 겨우 20년 전에 일어난 생생한 기억이었다.
“소령 소저.”
갈색 피부를 가진 도저히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소령의 모습을 본 봉황대는 저마다 소곤대기 시작했다.
“봉황대.”
“네. 대주님.”
“지금부터 한마디라도 떠드는 놈이 있다면 턱뼈를 뽑아버리겠다.”
제갈 사혁이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내자 봉황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구하러 오시긴 한건가요?”
갈색 피부를 지닌 여인에서 중원의 언어가 나오자 그제야 사람들은 그 여인이 자신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소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흑사련은 무형독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흑사련이 무형독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겼다.
“흑사련이 무형독에 대해 어떻게 알지?”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뭐?”
“봉황대의 임무는 뭐지?”
봉황대의 임무라는 말에 순간 제갈 사혁은 말문이 막혔다. 봉황대의 임무는 바로 소령의 호위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위라면 그럴싸할 테지만 소령을 찾아온 마화천의 임무는 소령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무형독은 20년 전에 배교에서 만들어진 독이다. 이미 20년 전에도 실존했던 물건이다 이거야. 무림맹의 높으신 양반들도 그리고 흑사련의 높으신 양반들도 무형독의 실체를 알고 있다.”
“실체?”
무형독이 20년 전에도 존재했고 또한 그 실체를 무림맹과 흑사련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제갈 사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형독은 수많은 독을 특정 양만큼 몸에 복용한다. 독의 종류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복용하는 양은 정해져 있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독을 복용했던 사람의 피부는 마치 황토처럼......”
“뭐야 그렇다면 무형독이란 건.”
“그래. 소령. 그녀가 무형독 그 자체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지.”
============================ 작품 후기 ============================
마지노선에 대한 올바른 교정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단어의 뜻만 알았지(어떤 상황에 쓰는가?) 유래는 몰랐습니다.
어렸을 때 그냥 어른들이 쓰니까 저도 썼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검색은커녕 그냥 어른들이 써서 한국말인 줄.....
한자 단어 혹은 한글처럼 보이는 외래어를 모르고 또 쓸지 모르니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약속이 있어서 휴재를 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습니다.
최근 여러가지 이유로 휴재가 잦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릴 테니 지켜봐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