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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55화 (155/262)

<-- 155 회: 절대신위(絶對神威) -->

무형독 말 그대로 맛도 색도 없는..... 하지만 설마 그게 눈물이었을 줄이야.

“보통의 눈물은 짠맛이 나지만 그녀의 눈물은 다르지. 게다가 이걸 끓여서 그 기체를 들이마시면 말 그대로 진짜 무형독이 된다.”

사람이 하나의 독을 제조해내는 게 아닌 사람을 독 그 자체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수법. 잔혹하다고 알려진 마교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독을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 부족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희생해 독을 만들다니.

“대협. 각오는 되어 있어요.”

소령이 각오를 마치자 마화천은 품에서 가루약과 은으로 된 단도를 꺼냈다.

“선택하십시오. 약은 복용하는 방법과 이 단도로 자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마화천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우리는 소령의 목숨을 보호하는 게 그 목적이다. 네놈 멋대로 하게 놔둘 것 같으냐?”

“아서라. 꼬마야. 무림맹이 그녀를 이용해 어떤 짓을 할 줄 알고 네놈들에게 내어준단 말이냐. 내가 순순히 그녀를 내줄 것 같으냐? 그리고 백사단을 돌려보낸 사실을 상기해라.”

백사단을 돌려보낸 사실이 마치 무슨 재생지은(再生之恩)이라도 되는 듯 말해 같잖았다.

“나는 화산파의 제갈 사혁이다. 그따위 놈들이 두려울 것 같으냐?”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의 부하들도 그럴까? 그리고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애송아. 나는 절대신위 마화천이다. 봉황대 따위를 두려워 할 것 같으냐?”

흑사련이 순수한 의미로 무형독을 처리하든 무림맹이 꿍꿍이가 있어 무형독을 이용하든 제갈 사혁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임무를 완수할 뿐이다.

“저는 이분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당사자인 소령은 그것이 죽임임에도 불구하고 마화천을 따르려 했고 제갈 사혁은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시키려 했다.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삶을 보장 해주겠다고 말했다. 평생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거절했다.

“소저!”

제갈 사혁이 마지막까지 소령을 부르자 청하가 제갈 사혁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두 눈동자에 스며든 슬픔이 마음을 전해졌다. 제갈 사혁이 오직 임무만을 생각할 때 청하는 소령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 마음을 제갈 사혁에게 전했다.

눈을 감고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젓는 그녀를 본 순간 더 이상 고집 피울 수 없었다.

“어느 게 제일 아프죠?”

“안타깝게도 둘 다입니다.”

“지금 이 약을 복용하면 되나요?”

아무 거리낌 없이 지금 약을 복용해도 되냐는 말에 마화천은 그녀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지금 말입니까?”

“그러면 안 되나요?”

이걸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두려움을 모르는 강인함이라고 해야 할지 그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없습니까? 해보고 싶은 거라든지 먹고 싶은 음식이라든지 뭐 그런 것 말입니다.”

사형수도 마지막에는 세상에서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은 후 처형한다. 하물며 그녀는 죄를 지은 죄인도 아니었다.

“글쎄요. 그런 건 지금 생각이..... 아 맞다!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곳은 조금 그렇군. 갑시다. 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으니까. 거기라면 일단 여기보단 낫겠지.”

적대세력의 최고 실력자인 마화천의 주도 아래 자리가 마련되자 모두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거렸고 그런 그들을 보며 소령은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곱 살 때 처음 악기를 연주했는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들과 재능의 차이를 느끼고 그만둔 이야기부터 약방의 의원 보조로 들어가 의원이 된 이야기까지.

소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봉황대도 처음에는 그녀를 동정하듯이 마지못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차츰 감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자랑이라도 하듯 그게 아니면 신세한탄을 하듯 그렇게 하나 둘.

우연치 않게도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제갈 사혁이 걱정하던 기존 봉황대와 신 봉황대의 생각차이도 없어졌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그러니까......”

진행 비스무리한 일을 맡았던 봉황대 대원이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자 갑자기 마화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야기를 해주지.”

이 자리 자체도 소령의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동정의 의미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마화천의 행동이 부담스러웠지만 천하제일의 고수로 이름난 자의 과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마화천은 마교출신으로 젊었을 때 마교를 나와 낭인으로 구르던 시절과 정사대전으로 인해 흑사련에서 활동하고 이름을 날린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화천의 실화야 워낙에 유명해서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본인 입으로 듣는 이야기는 어깨너머로 들었던 소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야기가 슬슬 바닥이 나자 날이 어두워졌고 모두들 자리에 누웠다.

모두가 잠이든 시간 제갈 사혁은 홀로 밖으로 나와 검을 휘둘렀다. 검술도 아니고 새로운 무공도 아닌 그저 휘두르기만 할 뿐이었다.

“왜 잠이 안 오나?”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달빛에 의해 그림자가 거둬지자 소나무 옆에 있는 마화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볼 일이라도 있나?”

“아니 그저 네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아니 거짓말이었다. 마화천은 우연히 이곳을 들른 게 아니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 온 것이었다.

“그녀를 죽이는 게 못마땅한가? 말해봐라. 애송이.”

그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흑사련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게 싫었다.

“무형독은 한 번 만들어지면 생명이 다하지 않는 한 영구적이다. 그 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인지 너는 생각해본 적 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우스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의무도 없었다. 왜냐면 자기 자신이 그 독 때문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인 독 그렇다면 그 독을 없애기보다 그 독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그런 걸 없애려 하다니.

“칼로 죽이든 돌팔매질을 해 죽이든 결국 사람만 죽으면 그만이다. 독이 뭐 어쨌다는 거냐.”

“너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군.”

“아니 나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다.”

제갈 사혁의 뜻이 어쨌든 결국 무형독 아니 소령이 정한 이상 그녀의 목숨은 하루도 남지 않았다. 이런 말싸움 자체가 전혀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갈 사혁은 한마디도 지려 하지 않았다.

“강호는 조금 씩 변하고 있다.”

마화천이 말하는 건 세대교체나 시대의 흐름 같은 게 아니었다.

“눈에 띄지 않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전까지와는 다른 특이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커다란 특이점이 바로 이 무형독의 등장이다. 조만간 무림에 무언가 큰 사건이 터진다. 그래서 흑사련으로서는 무형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즉 무림에 무슨 변고가 생겼고 그 중 하나가 무형독이고 흑사련에서는 최대한 그 변고를 늦추거나 없애려 한다는 건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

“당장 구파일방의 일대제자 한명이 마교에 의해 목숨을 잃으면 마교와 무림맹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특이점? 조만간 무림에 큰 사건이 터져?”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온 산이 떠나갈 듯 웃었다.

“무림은 그 자체가 특이점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모든 게 정상이다. 우리는 땅을 취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사상 때문에 대립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싸워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갈 사혁이 생각하는 무림의 존재 의의는 한 세력에 의한 무림통일이나 무공이나 종교에 의한 사상 대립이 아니다. 편을 나눈 채 싸우고 또 싸워서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그런 것이다. 의미 없는 대립과 계속되는 싸움이야 말로 무림의 존재 의미였다.

“그 말 진심이냐?”

“진심이다.”

“그럼 넌 전혀 느끼는 게 없는 것이냐? 무형독을 만든 제 4의 세력과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전혀 느끼는 게 없는 것이냐?”

제갈 사혁도 잘 알고 있었다. 무형독의 등장과 의도하지 않은 살막과의 접전 그리고 그밖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현 무림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관계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 보이건 보이지 않건 적은 언제나 존재한다.”

“피바람이 불수도 있다. 이 평화가.......”

“평화야 말로 무림을 타락시킨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무림의 다툼 때문에 보모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내뱉는 모순을 저질렀지만 진심이었다. 평화가 싫은 건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난세를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난세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도 안다. 어쩌면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무림인의 싸움이란.

“너는 참 많이 닮았어.”

“............”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마화천은 자신의 무기인 이랑을 뽑아들었다.

“너는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마교의 우두머리와 참 많이 닮아 있어. 싸우는 것만이 존재의미라고? 그 사상에는 아주 구역질이나.”

마화천은 제갈 사혁에게 아니 제갈 사혁을 통해 무림맹에게 강호무림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는 종래의 사건에 대해 경고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 피바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가능하면 스스로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말로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힘으로 깔아뭉개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방식에 의해 얻는 게 없다 하더라도.

“누구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다음날이 되자 그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다. 봉황대의 그 누구도 그 기묘한 변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에요?”

청하의 물음에 제갈 사혁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

“글쎄요?”

“글쎄요가 아니잖아요. 도대체.....”

출발하기 전 제갈 사혁의 옷은 흰색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붉은 색이었다.

한편 마화천은 약을 먹고 자결하려던 소령을 제지했다.

“드실 필요 없습니다.”

“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마화천은 소령이 들고 있던 약을 거뒀다. 사실 소령을 직접 죽이는 건 마화천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조건이었다.

“누가 그러더군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죄라고..... 물론 저는 부처의 가르침 따위 믿지 않지만 말이죠.”

마화천은 오른손으로 소령의 왼쪽 가슴을 잡았다.

“현재로선 이 방법이 가장 편안한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고마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절심장(絶心掌)이네요. 마교의.....”

“마교에서 마공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그들을 편히 보내주는 방법으로 고안된 무공이라고 합니다.”

마화천이 소령을 죽이고 난 후 봉황대는 그녀의 묘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마화천은 제갈 사혁을 향해 단도를 날렸다.

“대주님!”

“호들갑 떨지 마라.”

처음에는 마화천이 제갈 사혁을 공격하는가 싶었지만 그가 날린 단도는 소령을 자결시키기 위해 준비한 단도였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너도 잊지 마라.”

“........”

무심하게 한번 쳐다본 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화천은 제갈 사혁이 약속을 지키리라 믿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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