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57화 (157/262)

<-- 157 회: 함께 한다는 것. -->

호북 제갈세가.

제갈세가의 저택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제로 생활하는 가족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풍대와 여러 시종들이 지내는 장소까지 포함한다면 저택의 범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인척들이 많았으며 특히나 조정 관료로 있는 친인척이 많기 때문에 밖으로나 안으로나 가문의 뿌리는 절대 흔들림이 없었다.

“가주께서 안에 계신가?”

노년의 사내가 가주인 제갈 민을 찾자 경계를 서고 있던 무풍대 대원은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현 가주인 제갈 민에게는 모두들 사촌 형님이고 동생이기 때문에 종친회는 화기애애했다.

“아이고~ 형님 어서 오십시오.”

“가주는 야속하게 먼저 술통을 뜯었고만~”

제갈 민의 사촌 형님에 해당하는 사람이 술통의 천이 벗겨진 것을 보고 못내 서운한 표정을 짓자 제갈 민은 화통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주었다.

“형님도 참~ 내 그래도 아직 한입도 대지 않았으니 형님께서 한잔 하시지요.”

“저 왔습니다. 형님들.”

“어서 오시게!”

그렇게 하나 둘 친인척들이 모이자 밖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제갈 사혁이 대문 안으로 머리만 들이 밀었다. 그러자 뒤에서 중년의 사내가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혁이 너 뭐하냐?”

“혀...... 형!”

나이는 한 스무 살 정도 차이 나지만 당숙의 장남이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제갈 신(諸葛 晨)에게 형님이라는 호칭보다는 형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랑 아저씨들 때문에 그러냐?”

어른들 이야기가 나오자 제갈 사혁은 괜히 더 과장한 된 표정과 억양으로 부정했다.

“아니 내가 왜.”

“그럼 들어가라. 녀석아.”

“잠깐 형!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그러면서 제갈 신은 제갈 사혁의 멱살을 잡더니 소 돼지 마냥 질질 끌고 갔다.

“당숙. 혁이 왔어요.”

제갈 신이 제갈 민에게 제갈 사혁이 왔음을 알리자 이내 가주와 함께 있던 다른 형제들의 눈빛이 변했다.

“동생. 저 놈 아직도?”

아직도? 라는 말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고 제갈 민은 조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혁이 이놈아! 낯짝만 번지르르 하면 뭐하냐! 이놈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사내대장부가 일이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는가? 저놈 저 쌍판때기를 봐. 잘 낳아줬으면 그 쌍판으로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형님 그래도 쌍판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용화장의 일로 제갈 사혁에게 상당한 양의 장물을 받아먹은 재당숙은 제갈 사혁을 감쌌지만 다른 형제들의 반응은 동일했다.

“내 긴말하지 않겠다. 이거나 봐라 이놈아!”

당숙이 두루마리를 던지자 제갈 사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부상서(吏部尙書)댁의 조카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군(領軍)의 여식도 있고 태사(太師) 어르신의 손녀도 있으니 골라 보거라.”

제갈 사혁의 나이는 내년이면 스물 둘이었고 명문가의 남자로서는 늦은 편이었다. 그래도 몇 년 전에는 어지간해서 결혼을 닦달하지 않지만 화산파의 정식 후계자가 되어 소가주 직을 내려놓은 뒤에는 이렇게 종친회가 열릴 때마다 혼인에 대한 압박을 주었다.

“주원이 아들이 너 밖에 없는데 이놈아. 무림도 좋고 다 좋다만 아니....... 무림인이기 때문에 너한테 이러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한번 생각해봐라.”

제갈 사혁의 아버지가 일찍 숨을 거둔 게 오히려 이런 환경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제갈 사혁도 자신의 고집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해보겠다며 두루마리를 품에 넣은 제갈 사혁을 보며 집안 어른들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 딱 보니까. 재끼겠고만.”

“그려. 딱 보니까. 그런 거 같아.”

아무리 제갈 민이 제갈 사혁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는 자신의 다른 사촌형제들과 뜻이 같았다.

“오라버니.”

“혜아야.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에 제갈 혜와 만난 제갈 사혁은 헤아를 안아주었다.

“사천은 오라버니 소문으로 떠들썩하던데.”

같은 사천지역에 있지만 학사관은 특정한 날이 아니면 바깥출입도 외부방문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갈 혜와는 남궁세가에서 만난 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공부는 잘 되냐?”

“아버지 딸이잖아요.”

아버지 딸이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도련님. 시간 있으세요.”

“네. 종수님.”

“애들 좀 봐주세요. 부엌일을 도와야 해서 애들 볼 시간이 없네요.”

제갈 신의 두 아들을 대신 보게 된 제갈 사혁은 그새 다 큰 조카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삼촌삼촌! 나도 나중에 크면 삼촌처럼 강호인이 될 거야!”

“나도 나도!”

아직 애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자 아이 특유의 동경 때문인지 강호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근데 왜 현종이한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해?”

“그래 맞아. 우리가 더 나이가 많잖아!”

가장 막내면서 혜아의 동생인 현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제갈 사혁은 두 조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버지를 삼촌이 뭐라고 불러?”

“형이라고 불러!”

“응. 삼촌이 아버지한테 형이라고 불러.”

“그럼 현종이는 누구 동생이야.”

“혜아 고모랑 혁이 삼촌.”

“그래 그럼 너의 아빠한테는 동생이잖아. 그러니까. 너희한테는 나이 어려도 삼촌이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그래 맞아. 모르겠어.”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현종을 삼촌이라 부르기 싫어서인지 아이들은 제갈 사혁에게 매달려 딴 짓을 하기 시작 했다.

화산파에서 또 집에서 혜아를 돌보며 아이들 보는 일은 익숙했지만 여전히 힘이 넘치는 애들 상대는 강호무림의 그 어떠한 고수와의 일전보다 힘들었다.

저녁이 되자 남자 형제들 끼리 한방에 모여 잠을 잤다. 육촌형제들끼리는 자주 모이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종친회를 기회로 만나면 항상 한방에서 자는 게 유일한 친목모임이라 할 수 있었다.

제갈 사혁만 유일하게 혼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집안일 아니면 돈이나 출세하는 게 기본적인 대화주제였다.

“형님은 요새 좋은 투자처를 발견하셨다면서요?”

“해남에 새우잡이 배가 있어서 거기에 투자를 좀 하려고.”

“해남 새우잡이는 좀 그렇지 않아요. 차라리 광동이 낫죠.”

“안 돼. 광동은 식재료 유통이 거의 포화상태야. 해남에서 싸게 사서 광동에 비싸게 파는 게 나아. 광동에서 잡아서 광동에 팔아봤자.”

한쪽에서는 투자관련 이야기를.

“혁이는 무림맹 일은 잘 하고 있냐?”

“네. 뭐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래요.”

“아니 뭐 듣기로는 너 유명해졌던데.”

“유명해진만큼 날 죽이려고 칼을 가는 놈들이 수두룩할 걸요.”

다른 한쪽에서는 무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영암이는 품계가 올라갔다며?”

“줄을 잘 잡았으니까요. 지방 관리가 뭐 별거 있나요.”

“축하한다.”

“오~ 출세했네.”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관심사가 달라도 축하할 일이 있다면 한마음이 되어 축하해주었다.

다음날이 되자 이른 아침 조상님들이 계신 묘를 찾아 제사를 올리는 한편 자리를 크게 마련해 방계 호위를 위해 흩어졌던 무풍대를 한 자리에 모우는 한편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투자 손실은 어떻게 됩니까?”

“금괴 500근? 뭐 대충 그 정도 됩니다. 작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요.”

“3년 전에 투자하기로 한 대장간 투자 예산을 줄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가의 가주인 제갈 민을 중심으로 회의가 시작되자 가문의 재정을 담당하는 재당숙이 투자와 관련해 의견을 냈다.

“돈이 부족한 겁니까?”

“그렇다기보다는 내년에 이제 조카들 중 몇 명을 뽑아서 상단을 맡겨볼 셈입니다. 지난번에 혁이 녀석을 통해 좋은 장..... 현물이 생겨서 이번 기회에 몸집을 늘려볼 생각입니다.”

순간 제갈 사혁은 등꼴이 싸늘해졌다. 순간 재당숙 어른께서 장물이라는 말을 꺼냈다면 그날로 족보에서 파이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이번에 영암이가 승진을 했는데 각 부서에 이걸 좀.....”

“걱정 마십시오. 그 부분은 제가 아는 사람을 통해 맡기겠습니다.”

역시나 집안의 지원 아니 뇌물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제갈세가가 실력으로 부를 이루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뒷거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사람을 이용하는 법. 돈을 쓰는 법. 거둬드리는 것은 모르겠으나 쓰는 것만큼은 기가 막혔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제갈 사혁의 성장환경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원래는 이제 회귀하기 전에 기억상실증으로 집안 일에 그다지 참여하지 않았지만 회귀를 하고 난 후에는 종친회도 참석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제갈 사혁이 왜 그렇게 선민의식에 사로잡혔고 정치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지에 대한 것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각 친척들의 호칭은 제갈 사혁에게 백부 한분 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촌 형제들 쪽으로 잡았습니다. 호칭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원래는 지금 감기 때문에 휴재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쓰고 싶어서 공지 내리고 연재를 했습니다.

생색 내려고 이 글을 쓰는 게........ 맞습니다. 맞아요. 저 아픈데도 글 씁니다! 는 "진담"이고. 감기가 걸렸는데 포O리스OO를 많이 마시라네요. 이게 뭐 우리가 병원에서 맞는 링거랑 성분이 비슷하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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