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회: 함께 한다는 것. -->
대충 가문의 중대사를 논하는 회의가 끝나자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술잔을 나누며 우애를 나눴고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시간을 보냈다.
“혁아.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말이야.”
“네.”
“작년부터 연공하기가 힘들어졌다. 이게 뭐 때문에 이러냐?”
방계출신들은 대부분 무공을 건강 유지의 일환으로 배우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기만 했지 싸울 줄은 몰랐다.
“내공발산은 자주하세요?”
“당연히 하지 나도 어려서부터 멋으로라도 배운 게 있는데.”
“그럼 한 단계 성장하신 게 아닐까요?”
“그런 건가?”
무림인이 되기 위해 익힌 무공이 아니라고 해도 매일 매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간 것은 당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 가문에 무공을 제대로 익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잖아요.”
“무림보다 무림이 아닌 곳에서 얻을 게 더 많으니까.”
확실히 조정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권을 쥐고 있으니 강호무림에 있는 것보다는 더욱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본가는 무림세가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아니 됐다. 힘. 그것이 바로 무림세가의 밑천이기 때문이다. 밑천이 잘 닦여 있다면 혹여 일이 잘못되어 추락한다하더라도 언제든 일어설 수 있었다.
“애들도 슬슬 나이가 됐으니까. 가르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무림세가의 명성으로 얻어지는 것도 많은데...... 물론 제가 있는 동안 제갈세가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제 집에 있는 젊은 남자라고는 현종이 뿐이고 본가에서 무공을 배우며 육촌형제들끼리 우애도 돈독히 나눠야 집안이 잘 되는데.”
제갈 사혁의 육촌 형제들은 제갈 사혁보다 나이가 많았고 대부분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있었다.
“그럼 내년부터 아이들을 보내마.”
저녁식사까지 하고 그날 밤 늦게 종친회를 마무리하자 다들 본가에서 하루 묵으려 했지만 제갈 사혁은 길을 서둘렀다.
“평소 같으면 하루 더 있겠지만 현재 직책을 수행 중이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집안 어른들께 먼저 인사를 올린 뒤 제갈 사혁은 육촌 형제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자..... 잠깐만요. 오라버니! 같이 가요.”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사천이 목적지였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혜아와 함께 사천으로 향했다.
“학사관으로 가는 길을 서두를 필요 있는 것이냐? 조금 더 쉬어도 될 것인데.”
“전 학도잖아요. 오라버니.”
하지만 지금 마차를 이용해 사천으로 가게 되면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이나 이른 아침이었다.
“그래 뭐 일단 가자꾸나.”
사천으로 향하는 동안 제갈 사혁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혜아는 제갈 사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왜 그러느냐?”
“오라버니는 참 미남이에요.”
갑자기 미남이라니 제갈 사혁은 혜아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런 말은 보통 여동생들이 오빠에게서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용돈 떨어졌느냐?”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냐?”
무엇을 원하냐 묻자 혜아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 그 검 말이에요.”
검이라면 호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이게 뭐 어쨌다는 건가?
“미학수업을 듣다 보니 저도 보는 안목이 조금 생겨서 그런데 잠깐만 구경해도 돼요? 되게 좋은 물건 같은데.”
겨우 호황이나 구경하자고 미남이네 뭐네 하면서 아양 떨 리 없었다. 하지만 일단 제갈 사혁은 혜아에게 검을 넘겨주었다. 아닌 척은 하지만 무언가 목적이 있음은 분명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것도 제갈 혜라는 어린 아이를 대하는 제갈 사혁의 육아방식이었다.
학사관에 도착하자 제갈 사혁은 마차에서 먼저 내려와 혜아가 나오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주었다.
“다 왔다.”
“다.... 왔어요?”
말끝을 자꾸 흐리는 게 진짜 무슨 꿍꿍이가 있어보였다.
“안 내리는 거냐?”
“생각해보니까. 학사관이 쉬는 날이에요.”
학사관이 쉬는 날이라 하더라도 숙소가 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이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다. 왜 굳이 학사관이 쉬는데 집을 놔두고 자신을 따라 사천으로 향했냐는 점이었다.
“그럼 숙소로 가거라. 태워다주마.”
“아니요. 저기 그러니까........ 가능하면 무림맹 구경 좀 시켜주시겠어요?”
망설임 끝에 나온 것이 ‘무림맹’이었다. 이것도 목적은 아닌 것 같지만 이왕 모른 척 해주는 거 끝까지 모르는 척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제갈 사혁에게는 봉황대 업무라는 중대한 일이 있었지만 일단 혜아를 무림맹에 데려가기로 했다. 떼어놓은 다고 떨어져나갈 아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맹에 처음 입성한 혜아는 무슨 첩자라도 되는 마냥 이것저것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림맹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그런 혜아를 보며 제갈 사혁을 향해 손가락으로 눈치를 주었고 제갈 사혁은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무림맹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반인 출입을 규제하고 있지만 제갈 사혁의 지인이란 이유로 암묵적 허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엄연히 규정위반이다. 대부분 잘 지켜지지 않는 규정이지만.
더 이상 내버려두면 괜히 경비병들의 신경을 긁을 것 같아서 혜아를 데리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무림맹! 정말 넓네요!”
“중원에서는 황궁 다음이고 무림에서는 가장 넓다고 알고 있다.”
그건 제갈 사혁에 의해 날조된 것이고 사실은 마교가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제갈 사혁은 일단 혜아를 안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 만큼 곧바로 봉황대 집무실로 향했다.
“대주님. 오셨습니까.”
굉장히 이른 아침이지만 초영은 제갈 사혁을 대신에 업무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고했다. 업무 내용은 어떻게 되지?”
“정기 보고서 작성과 공금처리 그리고 예산관련 서류가 있습니다. 오후에는 오대주 회의와 맹주님 개인면담이 있습니다.”
제갈 사혁이 오늘 오기로 한만큼 개인면담 날짜도 오늘이었다.
“언니 이름이 뭐에요?”
“네?”
갑작스러운 혜아의 난입에 무표정이었던 초영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아~ 신경 쓰지 말고 나가봐. 가는 길에 이신 좀 부르고.”
“가보겠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요?”
혜아는 초영이 나가는 그 순간까지 쓸 때 없는 걸 물어서 초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물어봐?)
처음에 초영의 이름을 물은 건 그렇다 쳐도 마지막에 나이는 왜 물어본 걸까? 제갈 사혁도 둔탱이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은 잡은 상태였다.
(학사관도 쉬는 날 부모님과 하루 더 있어도 될 텐데 굳이 따라나선 점. 미학수업이니 뭐니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시간 끌다가 여기까지 와서 보이는 이상한 행동들.)
얼마 후 이신이 안으로 들어오자 혜아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신을 반겼다.
“오랜만이야!”
“혜아 아가씨 오랜만입니다.”
“남자아이들은 진짜 몰라보게 빨리 크네~”
그러면서 혜아는 자신의 키와 이신의 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사부. 부르셨다면서요.”
“그래. 이리 가까이 와봐.”
이신이 천천히 다가오자 제갈 사혁은 이신과 마주한 채 혜아가 들을 수 없도록 작게 속삭였다.
“청하 소저는?”
“무당파로 돌아가신 뒤에는 아직.”
“그래 좋아. 혜아에게 무림맹을 안내해줘.”
이신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다 말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신은 뒤돌아서서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혜아를 마치 시종처럼 받들었다.
“가시죠. 아가씨.”
“오... 오라버니는?”
“사부님은 봉황대의 대주십니다. 오늘 하루 하실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서 아가씨를 돌보실 시간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남궁세가에서 시종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이신은 이런 면에서 머리 회전이 빨랐다. 평소에는 가볍게 사부라 부르면서 혜아에게 말할 때는 사부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적인 말투로 혜아를 압박하며 그 아이를 반쯤 휘어잡았다.
“하......... 하지만!”
“이리 오세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혜아와 이신이 사라지자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라도 내 정인이 있나싶어 감시하러 왔겠지. 요 앙큼한 것~”
이번 일의 배후는 집안 어른들이라고 봐야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의 압박을 받긴 했지만 설마 혜아를 이용해 주변 인물들(여인들)의 호구조사를 할 줄이야.
“하려면 좀 티가 나지 않게 하던가.”
일단 청하가 없으니 안심이었다. 어차피 당사자만 없으면 무림맹 내에서 제갈 사혁과 청하의 관계를 알 방도는 없다.
“그럼 이 서류를 정리하고 회의 들어가는 길에 한번 흔들어 줘볼까?”
원래 성격이 막돼먹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이번 일을 통해 혜아를 괴롭혀볼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희 말고 여동생을 괴롭혀본 건 처음이네.”
창가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생겨난 그의 그림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 작품 후기 ============================
제갈세가가 대기업같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네. 기업처럼 표현하려 한 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종친회라는 걸 참석 안하니(집안에서는 제가 장남인데 아버지가 막내라.)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이걸 단순히 친척 모임으로 하기엔 아깝고 해서 제갈 사혁이란 인물의 성장환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친척들끼리 예산 문제도 다루고 뇌물 문제도 다루죠.
어제 갑자기 연재를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감기 때문에 패기 좀 부렸더니 단순 투통이 열을 동반한 복합적인 증상으로 발전해서 수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집을 건조하게 만들지 마라는데 집에 가습기도 없고 '라라라라라라라라~ 날 좋아 한다고~ 포카O'만 무진장 마셨습니다.
벌써 감기를 몇번째 걸리는 건지 제가 몸관리를 특별히 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초기 감기는 확실하게 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