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59화 (159/262)

<-- 159 회: 함께 한다는 것. -->

이신을 따라 무림맹 구경을 하던 혜아는 일단 순순히 이신의 안내를 받았다.

“이곳이 평소에 사부님과 제가 묵는 숙소에요. 현재는 봉황대 숙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고 있죠. 하지만 제가 사흘에 한번씩 청소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능숙하게 가재도구로 차를 끓여 대접했다.

“드셔보세요. 최근에서 사부님이 즐겨 드시는 찔레꽃 차에요.”

“고마워.”

차를 마시는 동안 방안 이곳저곳을 훑어봤고 그런 혜아를 이신이 역으로 알게 모르게 관찰하고 있었다. 제갈 사혁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 그의 제자이자 옆에서 수발드는 이신이 쉽게 눈치 챌 수 있던 부분이고 그 꿍꿍이의 대상이 혜아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방 너무 좋다.”

“사부님의 취향에 맞게 공사를 조금 했으니까요.”

“그런데 침대는 하나네. 이신은 어디서 자?”

“침대에서 잡니다. 제가 바깥쪽에서 사부님이 안쪽에서 주무시지요. 사부님께서 자주 침대에서 떨어지셔서요.”

차를 다 마신 후에 한동안 말이 없더니 혜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이곳에 더 있기 불편해했다. 자리가 불편한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니 속이 타는 모양이다.

“나가시죠. 아가씨. 여기 오래 있으면 안내해드리는 보람이 없으니까요.”

공용 복도로 나오자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이신은 혜아가 불편함이 없도록 호위했다.

“이곳은 출두사들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쭉 가면 식당이 있죠. 이제 곧 아침 먹을 시간이니 괜찮으시면 식당에 가야겠지만 아가씨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겁니다. 더 위층으로 모실게요.”

절제된 미소와 여유로운 말투 그리고 몸가짐.

이신과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확실히 사람이 변했다.

“많이 변했네.”

“네?”

“너 말이야. 남궁세가에서 있을 때하고는 너무 많이 달라져서 몰라보겠어.”

“제가 변한 게 있다면 다 사부님 덕분이죠.”

제갈 사혁의 이야기가 나오자 혜아는 이번 일의 본질을 잊지 않고 이신을 흔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오라버니는 친구가 있어?”

제갈 사혁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친구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렸을 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백호 대주 혜성님과 그 밖에 후기지수 분들과 친분이 있으시지만 사전적 의미로 친구는 청성파의 지곤 소협 한분 정도로 좁힐 수 있어요. 그리고 무당파의.......”

“그런데 그 백호 대주 혜성이라는 사람은 여자야?”

마지막으로 청하에 대해 말하려 하자 갑자기 혜아는 말을 끊었다.

혜성이라는 이름의 중성적인 느낌상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일 수도 있기 때문에 혜아는 그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갔다.

“네. 여성분이시죠.”

여성임을 밝히자 그 순간 혜아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늘어놓았다.

“나이는 몇 살이야? 어디 출신이야? 몸무게는 어떻게 돼? 성격은 좋아? 오라버니랑 친해?”

혜성이 여자인 부분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자 이신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사부의 여자관계를 알고 싶으신 건가? 사부가 청하 누나에 대해서 그렇게 반응한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을 정리한 이신은 또 다시 사무적인 어투로 대답해 다음 질문을 미리 차단했다.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렇게 사이가 나빠?”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에 혜아는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사숙 이것 좀 놔요!”

“이 녀석이 여긴 어딘 줄 알고 오는 거야.”

“아~ 나는 전 무림의 지존을 가려야 한다고요!”

멀리서 지곤이 어린아이를 한손으로 붙잡고 다가오자 이신은 먼저 지곤에서 인사를 했다.

“소협.”

“어~ 신이 신이 이신!”

지곤이 말장난을 하자 가볍게 웃으며 장단을 맞춰 준 후 혜아를 소개시켜 주었다.

“제갈세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신 제갈 혜 아가씨에요.”

“제갈세가면?”

“네. 사부님의 사촌 누이 되시는 분이에요.”

“제갈이란 말이지!”

그때 갑자기 지곤에게 잡혀 있던 어린 아이가 갑자기 두 주먹을 쥐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청성파 1대 제자 지학(地學)대협의 제자인 청성 제 2대 제자 현석(玄惜)이다! 제갈 사혁은 어디 있느냐? 나와 겨루자!”

자신을 현석이라 밝힌 아이를 보며 이신은 지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곤을 바라보는 이신의 그 눈빛은 썩은 동태눈깔과 다르지 않았다.

“대사형이 최근 제자를 들였는데 그게 그러니까......”

현석이라면 드디어 청성파 4대째라 할 수 있었다. 보통 항렬이 4대까지 가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축하할 일이지만 이 무례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 그러면 오라버니께 도전하려 한단 말이에요. 귀엽네.”

혜아가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현석은 혜아의 손을 치며 콧방귀를 꼈다.

“어디 여인네가 사내대장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거야!”

순간 지곤은 식은땀을 흘리며 혜아를 쳐다봤고 그런 현석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 귀엽다. 사내대장부래~ 몇 살이에요?”

“올해 열 살이지 이 망할 꼬맹이.”

“사숙 누가 꼬맹이라는 거죠? 나는 맨손으로 철을 휘게 할 수 있다고요! 내 주먹에 걸리면 제갈 사혁 정도는 아주 그냥!”

열 살에 맨손으로 철을 휘게 한다면 분명 천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오만방자함은 그 정도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귀여운 사질이라지만 이런 꼴이 여서야.”

“난 사숙과 달라요! 제갈 사혁을 내 손으로 무릎 꿇리고 무림지존이 될 거에요.”

“무림지존이래! 요즘도 이런 애가 있구나.”

혜아는 그런 현석이 귀여워서 자신의 동생처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스승의 부인인 사모님을 제외하고는 이성에게 안겨본 적이 없는 현석은 얼굴을 붉혔다.

“무..... 무림 지존이 되면 널 내 첫 번째 부인으로 삼겠어!”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돌겠네. 진짜......”

“.........”

어린아이의 패기란 이런 것이었다.

“신이 여기서 뭐해?”

바로 그때였다. 이번 일의 중요 인물인 청하가 나타난 것은.

“청하 누나.”

청하는 평소와 달리 검은색의 무당파 도복을 입고 있었다.

“거긴 누구야?”

“이제 오셨어요.”

“무당산에 한번 올라가면 이것저것 밀린 일을 해야 하니까. 그보다 소개 좀 해줘 음..... 그러니까. 갈사 소협의?”

역시 대단한 눈썰미라고 해야 할까? 친동생도 아닌 사촌에 불과한 혜아를 보고 제갈 사혁을 언급하다니.

“사부랑 관련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왜 모르겠어. 얼굴 보면 딱 알겠는데.”

얼굴 보면 알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다른 사람들은 혜아의 얼굴에서 제갈 사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분은 누구셔?”

“무당파의 청하 소저이십니다. 사부님과는......”

평소와 달리 이신이 청하의 눈치를 보자 청하는 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야.”

“동생인 제갈 혜라고 해요. 오라버니가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혜아는 빠르게 청하를 보며 견적(?)을 뽑았다.

(얼굴은 미인이네. 무당파면 출신은 상당하고 나이도 오라버니와 동갑이거나 비슷할 거야.)

“우와와~”

그런데 갑자기 가만히 있던 현석이라는 녀석이 청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러댔다.

“이 녀석이 왜 이래?”

“내 첫 번째 부인으로 삼겠어!”

정말 뜬금없이 청하를 향해 첫 번째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자 지곤은 ‘맙소사’를 외치며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내가 첫 번째 아니었나?”

혜아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고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이신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안 돼.”

“뭐?”

“안된다고......”

그 말을 외치는 순간 묘하게 살기가 일어나자 현석은 갑자기 공포를 느끼고 지곤의 등 뒤에 숨었다.

“신아 그러면 안 돼. 애 겁먹었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곤은 속으로 이 대책 없는 꼬맹이가 한방 먹은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했다.

(이신은 이 언니를 좋아하는 구나. 그럼 이 언니는 오라버니의 정인이 아닌 걸까?)

“그런데 네 사람 다 뭐하고 있었어?”

“아니 뭐 나는 이 귀찮은 꼬맹이 데리고 그냥 돌아다닐 뿐이야.”

“무슨 소리야. 사숙! 나는 제갈 사혁의 피로 내 두 주먹을 물들이기 위해 온 거라고!”

“저는 일단 사부님이 오실 때까지 혜아 아가씨께 무림맹을 안내해드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말은 각자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제갈 사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잘 됐네. 할 일도 없는데 갈사 소협이 올 때까지 같이 다니는 게 어때?”

이렇게 제갈 사혁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각자 모일 일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흔치 않는 경우가 생겼다.

한편 제갈 사혁은 오전 업무가 모두 끝나자 겨우 한숨을 돌렸다.

“으아아아~”

오죽 앉아 있는 게 힘들었으면 초영이 제갈 사혁에게 안마를 해줄 정도였다.

“난 역시 의자와는 안 맞아.”

“대주님은 제갈세가 분이시잖습니까. 예로부터 학문은 제갈세가로 통한다 하던데.”

“초영. 너 그거 편견이다.”

일단 점심까지 쉬게 된 제갈 사혁은 초영을 이끌고 이신을 찾으러 다녔다.

“제갈 사혁이다!”

“눈 마주치지 마!”

“쳐다보면 괜히 시비 걸 것 같아.”

늘 그렇듯 제갈 사혁을 피하는 사람들은 제갈 사혁의 악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저 사람들한테 뭐 했나?”

“아닙니다. 대주님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두려움이 생긴 것뿐입니다. 신경 아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이제 어느 정도 제갈 사혁이라는 인물을 파악한 초영은 알게 모르게 아부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부탁한 건 준비 했어?”

“그거 꼭 해야 합니까?”

“해야지.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데.”

그리고 제갈 사혁이라는 인물을 알아 가면 갈 수록 진지함에 비례해 그만큼 유치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상적인 이야기와 제갈 사혁의 가문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번 중대 사건만 다루면 힘빠지니까 쉬어가는 느낌으로 쓰고 있는데 이때가 아니면 솔직히 제갈 사혁을 제외한 주변 인물을 챙기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공지에도 썼지만 155화 수정 건에 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절대 그 편은 대충 쓰지 않았지만 제 실력이 부족해 여러분이 읽기 불편하게 만든 점

정말 죄송합니다. 확실히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다음 내용을 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도 하나의 경험이겠지만 제 한계가 드러난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네요.

더 잘쓰겠다는 약속은 드릴 수 없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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