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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62화 (162/262)

<-- 162 회: 낙인 -->

임무 당일 호위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용문으로 가는 내내 제갈 사혁은 무림맹 자료실에 있던 시용문에 관한 것들을 필사한 후 마차 안에서 읽었다.

“대주님. 그게 무엇입니까?”

동경의 질문에 제갈 사혁은 그에게 필사본을 주었다.

“이건 시용문에 관한 자료 아닙니까? 호위임무랑 상관이 있는 겁니까?”

“상관이 있지 왜 없어. 하다못해 그 집에서 기르는 개 이름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은 거야. 문파의 수입 구조 즉 이익을 어떻게 얻는지 알면 일하기가 편하지 특히나 이런 신변위협의 경우는 은원관계 아니면 돈 문제일 경우가 크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황옥이란 게 그렇게 가치가 있는 물건이냐?”

제갈 사혁은 황옥이라는 물건이 있는 것만 알지 실제로 황옥을 본적은 없었다. 황옥보다는 그냥 옥 옥보다는 금을 접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법 있습니다. 요새 떠오르는 광물이랄까요.”

수집가들이야 원래 이런 쪽에 안목이 있으니까 그곳에 가면 한번 황옥이라는 물건을 봐둘 필요가 있었다.

도착한 시용문은 문파라기보다는 무슨 거대한 장원이었다. 겉보기에는 으리으리하지만 그 안에서 훈련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무공을 처음 익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신출내기들이었다. 최근에 몸집을 불린 것 치고는 봐줄만한 수준일 뿐이지 그리 대단할 건 없었다.

“무림맹에서 왔다.”

초영이 예의 없을 정도로 쏘아 말하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은 초영과 봉황대를 한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주었고 문이 열리면서 시용문 문주와 그의 제자들이 봉황대를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용문 문주는 한 문파의 문주라기보다는 상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좋게 말해 풍채가 있었고 솔직히 말해 뚱뚱했다.

“무림맹 봉황대입니다.”

“보.... 봉황대!”

봉황대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봉황대라는 말은 곧 그들의 우두머리가 제갈 사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 화산망..... 아니 화산의협으로 이름나신 제갈 사혁 소협이?”

(화산의협?)

초영은 생소한 별호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자신이 아는 한 제갈 사혁의 별호는 화산망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화산’이라는 고유명사가 있으니 제갈 사혁을 소개해주었다.

“그럼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제갈 사혁은 현재 정파의 젊은 고수로 구별하기보다는 기존의 고수들과 같이 생각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명성 중 흑사련 칠객의 두 명을 끌어내린 그 압도적인 실력이 절대 허풍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번 임무로 인해 절대신위라 불리는 마화천과 손을 섞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상식을 뛰어넘는 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갈 사혁이라고 합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시용문 문주와 제갈 사혁이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초영은 동경에게 전음을 날렸다.

[뭐야? 화산의협이라는 게?]

[대주님이 애들 시켜서 소문내고 있다는 게 사실 인가봐.]

[요즘은 자기 별호를 자기가 만들고 그러나보지?]

[솔직히 화산망종이라니 자기 입장에서는 조금 그랬겠지. 게다가 그거 백호 대주가 제일 처음 만들어낸 별호잖아.]

제갈 사혁이 그동안 크고 작게 패악질을 몇 번하다보니 화산망종이라는 별호가 공식적인 별호가 되어버렸고 제갈 사혁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봉황대를 통해 별호를 바꾸고 있었다. 분명 지난생애에는 정사대전 중에 크게 활약을 펼쳐 화산의협이라는 멋진 별호였는데 지금은 망종이라니 참을 수 없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봉황대와 함께 문주전에 들른 제갈 사혁은 아무도 마음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삼류도 안 되는 주제에 문주전을 따로 짓다니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하군.)

시용문의 문주전은 화산파의 문주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꾸며놓은 게 딱 전형적인 졸부 같았다.

“아! 그런데 듣자하니 황옥이라는 물건을 취급하신다고요? 제가 그걸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구경 좀 할 수 있겠습니까?”

황옥에 대해 이야기하자 시용문 문주는 함에서 갈색 빛이 감도는 돌을 꺼냈다.

“이게 황옥이란 말입니까? 그냥 겉보기에는 평범한 돌 같습니다만.”

분명 돌처럼 보였다.

“분명 그냥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가공을 하면 황토색 옥처럼 변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

세공작업을 끝낸 황옥을 보여주자 제갈 사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거였군!)

실제로 황옥을 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지만 세공이 된 황옥을 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당시에 꽤나 비싼 물건이었어.)

정사대전이 터지고 나서 금이나 은 등의 화폐유통은 원활하지만 일반 옥이나 홍옥(紅玉). 취옥(翠玉) 같은 기존 사치품의 유통이 쉽지 않아 황옥이 그 대체품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황옥은 홍옥이나 취옥에 비해 빛깔이 예쁘지 않아 여인들 사이에서 대우가 좋지 않았지만 세공 기술의 발달로 장신구보다는 예술품으로 한 단계 나아가면서 황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수요가 엄청나졌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제갈 사혁이 황옥을 처음 본 자리가 바로 화산파의 문주전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그 황옥이었군. 그리고 이 지역 특산품이고.......)

순간 제갈 사혁의 눈빛이 야욕으로 물들었지만 그것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호위는 이 친구들이 할 겁니다. 그런데 신변의 위해를 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신변의 위해를 가하는 자들에 대해 묻자 문주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일정했기 때문이다.

“원한 관계는?”

“소협도 아시겠지만 무림인이 원한 관계가 어디 한 둘이여야 말입니다.”

삼류 주제에 무림인을 논하는 게 우스웠지만 그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저희는 일단 호위 자체에 집중하겠습니다.”

호위 대상은 문주와 장로로 있는 문주의 두 형제 그리고 식구들이었지만 봉황대의 인원을 적게 잡고 데려온 터라 문주와 두 장로만을 집중 적으로 호위하고 나머지는 시용문의 제자들에게 맡겼다.

“대주님 인원을 너무 적게 데려온 것 아닙니까?”

초영은 봉황대 인원이 적다는 점을 걱정했다.

“일부러 이렇게 데려온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문파의 윗선만 지키면 그만이야. 봉황대 전체를 데려와서 괜히 애들 굴려봤자 얻을 건 없어. 원래 딱 두 명만 데려오려 했는데 둘이나 더 데려왔잖아.”

“하지만.....”

“이 문파가 그렇게 대단해보이냐? 으리으리한 집 몇 채에 마당 넓고 애들 옷 그럴싸하게 입히니까. 무슨 구파일방 난 것 같냐?”

“네?”

“날 죽이려면 살경제를 고용해야해. 아니면 무영곡 곡주라도 와야 해. 그런데 여기 있는 놈들 죽이자고 고용하는 놈들이면 그 실력 알만하지? 그냥 나 혼자 와도 되는데 봉황대라는 구색은 맞춰야 하니까. 데려온 거야.”

제갈 사혁이 비유가 재수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건 사실이었다.

누가 누굴 고용해서 이번 일을 일으킨 건지는 모르지만 무림문파보다 상단 같은 신생문파의 문주 자리 꿰차고 있는 아저씨 하나 죽이자고 살경제나 무영곡 살수를 고용하진 않는다.

“그리고 봉황대 전부 데려와 봐라. 살수 자식들 겁먹어서 이 집 담장이나 제대로 넘겠냐?”

그렇게 시용문에 도착해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시용문의 젊은 무사가 초영의 동기인 동경을 한번 보더니 피식 웃고 지나갔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 사혁은 조용히 다가가 동경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요새 애들은 무림맹이 우습나봐?”

시용문의 무사를 비웃으며 동경에게 그리 말하자 옆에 있던 손조현은 코웃음을 쳤다.

“훗~ 저도 저때는 저랬죠. 무림맹이 잘나봐야 뭐 얼마나 잘났냐? 이런 식으로..... 다 어렸을 때 객기죠. 대가리 커 봐요. 무림맹이 왜 무림맹인데.”

“괜히 사복입고 왔다. 그렇지?”

동경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런데 호위를 서다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시용문 무사들의 복장이었다. 흰색과 파란색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흰색 수련복을 입은 자들은 파란색 수련복을 입은 자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듯 보였다.

“어르신.”

“네. 말씀하십시오. 나으리.”

제갈 사혁은 대뜸 일하고 있는 늙은 하인을 불러 세웠다.

“저 사람들과 저 사람들의 차이가 뭡니까? 보무 제자입니까?”

“소인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듣기로는 도장이었던 시절부터 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쁜데 불러 세워서 죄송합니다.”

시용문이 도장이었을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라면 대우가 더 좋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모습을 보면 흡사 문파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보무 제자 꼴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 그러니까 낙인편은 중심 스토리라고 했지만 사이드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이제 회귀속성도 슬슬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그 첫 스타트를 끊게 되는 게 이 편입니다.

그리고 회귀에서 빼놓지 못할 인재육성도 그렇고요.

현재 임무에 제갈 사혁과 함께 온 사람들은 사공신 소상 손조현 초영 동경입니다.

초영과 동경을 빼면 전부 제갈 사혁이 미래를 알고서 영입한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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