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63화 (163/262)

<-- 163 회: 낙인 -->

“으랏차차차!”

아저씨 같은 기합소리를 내며 기와 50장을 깨는 시용문 제자의 모습을 보며 제갈 사혁은 하품을 했다.

“요새도 기왓장 깨기 같은 거 하냐?”

“에이~ 제 사문이 비록 이름 없는 문파라고는 하지만 저런 건 안 시켰죠.”

“기왓장을 왜 깨요. 그 비싼 걸! 전 벽돌 가져다가 격파 시범 했는데 스승님한테 그날 무진장 맞았죠. 산이고 들이고 돌이 널렸는데 비싼 벽돌 쓴다고.”

“난 격파 시범 보일 스승님도 없었는데 다들 부럽네요.”

제갈 사혁과 봉황대 대원들이 시용문을 이유 없이 무시하고 비꼬는 건 아니었다. 아까부터 시용문 문원들이 넓은 연무장을 놔두고 봉황대 앞에서 일부러 보란 듯이 힘자랑하며 격파를 하고 초식 연무를 펼치기 때문이다. 봉황대 입장에서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무력 시위였다.

사공신과 소상 그리고 손조현은 봉황대에 입단하기 전까지 삼류 낭인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용문의 문원들은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거기 보고만 있기 뭐하면 한번 해보겠소?”

아까 기와를 50장 격파하던 사내가 제갈 사혁을 향해 할 수 있으면 해보란 듯 말하자 제갈 사혁은 코웃음을 쳤다.

“본인은 제갈 사혁이라고 합니다만.”

“누가 이름 물어봤소? 해볼 거요? 안할 거요?”

“!”

순간 제갈 사혁은 눈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양 옆에 있던 봉황대 대원들 역시 눈앞에 깜깜했다. 제갈 사혁이라는 이름을 듣고 무슨 동네 청년 이름 들은 것 마냥 아무렇지 않다니 이건 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아니 수준조차 논할 수 없는 무지함의 극치였다. 솔직히 제갈 사혁이 상당히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름을 알린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으니 모를 수 있다고 쳐도 ‘제갈’이라는 성을 듣고도 저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정말이지 상식 밖이라 할 수 있었다.

“한심하다.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동경은 제갈 사혁을 대신해 기왓장 앞으로 가더니 사람의 이마를 때리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맨 밑에 있는 기왓장 하나가 박살이 났다.

“됐냐?”

동경은 낭인출신이지만 기존 봉황대에 소속된 인물인 만큼 봉황대 내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때문에 힘자랑 하려고 운동 삼아 무공을 배운 것 같은 시용문 제자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푸하하! 저게 뭐야?”

“무림맹이라더니 힘도 제대로 못 쓰는 고만!”

세상에 그래도 그렇지 격산타우(隔山打牛)도 몰라보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건 뭐 소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보니 봉황대는 더 이상 시용문을 상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실력을 떠나 보는 눈까지 없으니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호위임무는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문주와 장로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들을 지키는 일일 뿐 달리 어려운 일은 없었다.

“사형이 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용문의 사형인 벽산(癖狦)이 지역 무술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환했다.

“스승님.”

“오! 벽산아. 소식은 들었다. 우승을 했다고?”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한시도 잊지 않은 결과입니다.”

벽산이라는 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제대로 된 무림인이었다. 그날은 잔치가 열렸고 봉황대도 뜻하지 않게 좋은 술과 음식을 얻어먹으며 호강했다. 제자가 우승했기 때문인지 시용문 문주는 제갈 사혁에게 자신의 제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산아. 이분은 무림맹에서 오신 제갈 사혁 소협이시다.”

“벽산이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제갈 사혁 소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제 한번 시간이 되면 검을 섞어보고 싶습니다.”

삼류 방파 출신이 자신과 비무를 하고 싶다는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잔치가 성황리에 끝을 맺고 그날 밤 예정된 호위임무는........

“뭐야? 지금 시간이 몇신데 사람을 오라 가라야?”

“담장을 넘길래. 잡아왔습니다.”

사공신에 의해 살수가 잡힌 것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예상한대로 삼류 중의 삼류였다. 몇 번 고문 같지도 않은 구타를 하니 눈에서 나온 건 물물 물이오. 입에 나온 건 술술 술이오.

“그러니까. 황옥 독점권을 빼앗기 위해 고용됐다?”

“네. 그렇습니다.”

동경에게 구타를 당하고 기절한 살수를 발로 찬 제갈 사혁은 동경에서 손짓했다.

“이 자식 정신 들면 암살 의뢰인 신상 알아내고 알거 다 알아내면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알지?”

“걱정 마십시오.”

제갈 사혁은 이걸로 호위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암살자도 잡았고 의뢰인만 캐면 그 뒤는 무림맹의 이름으로 압력을 넣어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면 되고 이번 일이 성공하면 제갈 사혁은 시용문 문주에게 접근해 황옥과 관련된 이익에 대해 뒷거래를 할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임무 성공은 덤이고 시용문과의 거래가 주목적이 된 것이다.

밤공기를 마시며 제갈 사혁은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여인의 목소리였지만 비명소리는 아니었고 그냥 좀 화가 난 목소리였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남의 일에 참견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헛간에서 여 제자 한명이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망할!”

뭐 일 좀 쉽게 끝내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일이 이렇게 되자 시용문 문주와 장로들 그리고 시용문의 모든 제자들이 헛간으로 달려왔다.

“아니 그 아이는 림이 아니냐?”

시용문의 문주인 이상 죽은 이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고 제갈 사혁은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아는 사람입니까?”

“네. 맞습니다. 홍림이는 어려서부터 저희 문파의 제자였습니다.”

문파의 제자임이 문주에 의해 밝혀지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문파의 일원 그렇다는 말은 무림인이라는 말이었다.

“지금부터 범인을 수색하겠으니 협조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제갈 사혁이 수색 협조를 구하자 갑자기 문파의 장로이자 문주의 두 형제 중 막내인 서안방(鼠洝謗) 장로가 강하게 반발했다.

“문파 내에 사건은 문파 안에서 해결하는 법이오! 아무리 무림맹이라고는 하나 문파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소!”

문파 안에서의 일임을 강조하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겼다. 비록 사건이 일어난 사실 자체가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릴 순 없었다. 의무를 행하는 자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법도를 잊었소? 비무나 대결 등의 죽음이 아니면 무림인의 모든 사인(死因)에 대해 무림맹은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소. 내정이라 하셨소? 본파는 무림맹의 연맹 아니오? 조사를 거부하면 이는 명백한 적대행위이오!”

“말이 지나치오!”

그때였다. 제자들 사이에서 벽산이 나타나 제갈 사혁에게 정면으로 대항했다.

“적대행위라니? 무슨 근거로 그러는 것이오. 단지 우리는 내부문제이니 내부에서 해결하고 싶을 뿐이오.”

“몰랐다면 모를까? 두 눈으로 목격한 이상 지나칠 수 없소.”

제갈 사혁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을 밝히자 벽산은 검을 뽑아들었다.

“말로 안 되면 우리도 힘으로 하겠소.”

“그래! 무림맹에서 왔으면 다냐!”

“흥! 건방 떨지 마라!”

“사형. 따르겠습니다!”

벽산이 힘으로 봉황대를 압박하려 하자 시용문의 제자들은 모두 칼을 뽑아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격산타우 사건으로 봉황대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던 시용문의 제자들이었다. 무림맹이라는 감투가 무서워 대놓고 어떻게 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벽산이 나서자 거칠 것이 없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초영은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문파의 식구가 자살했는데 조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이렇게 칼을 뽑고 정면으로 대항하다니.

“제갈 사혁이라는 그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

벽산은 제갈 사혁과 비슷한 나이였고 그렇기 때문인지 제갈 사혁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감히.....”

그 말에 반응한 이는 다름 아닌 사공신이었다. 사공신은 제갈 사혁의 가르침과 훈련으로 실력이 늘었고 그만큼 제갈 사혁을 상관 그 이상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사공신. 검을 거둬라.”

“하지만 대주님.”

“너는 하늘이 보이지 않느냐?”

“네?”

하늘이 보이지 않느냐는 말에 사공신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고 그 순간 머리끝에서부터 생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느꼈다.

“시용문을 우습게 본 죄를 묻겠다!”

벽산은 검기를 뿜어내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과연 시용문 최고의 실력자였다.

“사형.....”

“뭐냐?”

하지만 그런 그의 기세에 어울리지 않게 사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희 검이 말입니다......”

“검이 어쨌다는 거냐?”

“위를 보십시오.”

“뭐?”

하늘 위에 펼쳐진 것은 수많은 이들의 꿈이었다.

“이.... 이건.......”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언제 한 번 검을 섞어보고 싶다했지?”

제갈 사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벽산은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모든 게 그자가 만들어낸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때야.”

============================ 작품 후기 ============================

동생이 컴퓨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다음편은 이제 생각해놓은 구성대로 나가려고합니다. 정리할 게 많겠네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네요.

최근 몇개의 에피소드는 주제 없이 그냥 썼는데.

마지막 대사 좀 멋있게 하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네놈을 끝장내는데! 1초도 쓰지 않겠다! 라던가.

나의 이기어검 맛을 쪼금만 맛보거라.

정도로 하고 싶었지만 이성의 끊을 놓지 않은 덕에 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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