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회: 낙인 -->
창대의 날카로운 날이 가슴을 뚫고 들어가자 진공은 그대로 쓰러졌다.
“공아!”
시용문 문주는 서둘러 진공을 품에 안았지만 왼쪽 가슴에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생존은 바랄 수 없었다.
“공아! 공아!”
진공이 눈을 감자 시용문 문주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초영 시신을 거두어라.”
“네. 대주님.”
“그럴 수 없소!”
시용문 문주과 진공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봉황대를 막아섰지만 제갈 사혁은 강제로 시용문 문주와 시신을 떼어 놓았다.
“이번 일은 무림맹에 보고하겠소. 기사멸조(欺師滅祖)는 정사를 막론하고 무림공적이오. 죄인이 문주를 공격하려 했음을 여기 있는 모두가 보았소. 뭐하느냐! 시신을 거두어라.”
“네.”
[초영.]
봉황대가 시신을 거둘 때 제갈 사혁은 전음으로 초영을 불렀고 초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공의 죽음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자 시용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돌았다. 하나는 진공의 숨겨진 실력에 관해서였고 나머지 하나는 이 장로에 관한 것이었다. 모두들 진공의 난동을 보았기 때문에 홍림이 자살한 게 이 장로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제자들 사이에서 이 장로에 대한 소문은 전부 사실처럼 이야기가 됐고 소문이 그렇듯 강둑의 물처럼 불어났지만 소문의 원인과 결과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제갈 사혁은 시용문 문주를 찾았다. 문주전에는 이번 일의 원인인 이 장로를 제외한 일 장로와 문파의 핵심인물들이 모여 문주를 위로하고 있었다.
“........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제갈 사혁의 등장에 시용문 문주는 모든 사람을 물리고 제갈 사혁과 독대했다.
“이번 일은 무림맹에 그대로 보고 하겠습니다.”
두 제자를 잃은 슬픔과 그 원인이 자신의 가족 때문이라는 허망함에 비틀거리는 문주를 제갈 사혁은 잔인하게 흔들었다.
“정말 그래야 하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미 이 사건은 덮을 수도 없습니다. 어찌 저들의 입을 막으실 생각입니까?”
계속해서 흔들어대자 시용문 문주는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제갈 사혁은 손으로 턱을 괴더니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꼭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되긴 합니다만.........”
제갈 사혁이 뒷말을 흐리자 시용문 문주는 말없이 두 번째 잔을 들이켰다. 제갈 사혁이 무언가 원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황옥을 캐는 채석장이 하납니까?”
제갈 사혁은 황옥과 관련된 투자를 할 생각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의도치 않게 시용문 문주의 약점을 잡아내 그것을 이용했다.
“원하는 게 그것입니까?”
황옥으로 성공했다지만 황옥은 다른 사치품과 비교해 등급을 먹이자면 최하등급이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의 생각은 달랐다. 정사대전이 터지건 안 터지건 황옥은 투자가치가 있었다. 정사대전을 거치며 황옥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눈으로 봤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동굴이 하나 더 있소. 그곳에 관한 권리를 넘기겠소. 부디......”
“계약은 잘 성사됐습니다.”
제갈 사혁은 황옥 채굴에 관한 권리를 얻으며 이번 일을 덮었다.
일이 끝나자 제갈 사혁은 초영과 손조현이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그들이 있는 방의 문을 열자 놀랍게도 왼쪽 가슴이 뚫린 진공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주님.”
제갈 사혁이 나타나자 초영과 손조현 자리에서 두 발짝 물러났다.
“오른쪽에 심장이 있으니 죽지 않은 거야 당연하겠지.”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말을 들은 초영은 그제야 제갈 사혁이 진공을 치료하도록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심장은 좌측에 있고 보통 사람이 이번과 같은 부상을 입으면 즉사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오른쪽에 심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건 어찌 하셨습니까?”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제갈 사혁은 진공을 비웃었다.
“흥! 멍청한 놈.”
진공(進攻). 그 출신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로 흑사련의 최고 실력자 중 한명이었다. 정사대전 당시 사천당문의 사위 서지악을 일격에 쓰러트린 것으로 그 명성을 떨쳤다. 그때 서지악에 의해 왼쪽 가슴에 검상을 입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 정도 되면 그런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보다 출혈은 없었나?”
출혈이 일어나지 않았냐는 말에 손조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신기하게 상처가 난 부위에서 전혀 피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공을 이용해 출혈을 막은 게 도움이 되었군.”
이 모든 게 제갈 사혁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자 왼쪽 가슴에 단단히 묶인 붕대를 본 진공은 힘겹게 일어나 제갈 사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비록 부족한 몸이지만 이 가슴의 상처를 증표 삼아 제 목숨을 바쳐 소협의 수족이 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부하가 되겠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쭈그려 앉아 진공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강하게 찔렀다.
“윽!”
진공은 괴로웠지만 참아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제갈 사혁은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제갈 사혁에게는 부하 따윈 필요 없다. 그런 건 제갈세가에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꼭 필요한 자가 있다면.
“그 가슴의 상처는 낙인이다. 비록 일이 그렇게 되었다만 스승에게 칼을 들이민 죄. 이것은 사문을 배반한 죄의 낙인이다. 그러니 앞으로 무림맹을 위해 일해라. 무림인으로서 스스로의 이름을 가져라. 그것이 사문을 지키는 일이다.”
무림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뜻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자신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지지 세력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한명의 무림인이 필요했다.
내가요상술로 확실하게 치료를 해준 뒤 날이 어두워지자 제갈 사혁은 손조현을 이곳에 남겼다.
“조현은 여기서 진공을 돌봐라. 나는 초영과 함께 이 길로 귀환하겠다. 운신이 가능하면 그때 진공과 귀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초영과 함께 시용문에 남은 소상과 사공신을 데려가기 위해 시용문으로 다시 온 제갈 사혁은 짐을 싸고 밖으로 나왔다.
“대주님!”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갈 사혁은 물세례를 맞았다.
“이런 미친년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을 향해 물을 끼얹은 이가 진공과 이야기를 나눴던 명이라는 하인인 것을 확인한 제갈 사혁은 검을 뽑아든 소상을 막았다.
“대주님 하지만!”
“됐다.”
명이라는 아이는 제갈 사혁이 뒤돌아서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했다.
“더러운 놈! 나쁜 자식! 당신도 이 장로와 똑같아! 왜 그랬어? 왜! 문주한테 뭐 받아먹었지? 그러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지만 제갈 사혁은 없는 사람인마냥 그 아이를 무시했다.
“대주님.”
“뭐냐?”
“정말입니까? 이 장로를 잡아가지 않은 게 정말 시용문 문주와......”
초영의 말에 제갈 사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을 틈 타 날아온 화살이 경비를 서고 있던 시용문 제자의 가슴에 명중했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등장에 시용문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초영은 무기인 손도끼를 뽑아들었지만 제갈 사혁은 그런 초영을 제지했다.
“너희는 나서지 마라.”
“네?”
속내를 묻기도 전에 소동이 일어난 곳으로 뛰어 들어간 제갈 사혁은 이 소동의 원인을 찾았다. 침입자는 두 명이었고 한명은 화살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시용문 제자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하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제갈 사혁은 먼저 시용문 제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침투원에게 다가가 일격을 날렸다. 그러자 그는 능숙하게 제갈 사혁의 공격을 피했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손목을 붙잡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대주님!”
사공신이 제갈 사혁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 하지 초영이 사공신을 막았다.
“선배!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가만히 있어......”
“네?”
이때 초영의 목소리가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면 사공신은 초영의 제지를 무시하고 뛰쳐나갔을 테지만 초영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천지유벽세......”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제갈 사혁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대로 땅에 떨어지자 어둠 속에서 섬광이 나타났다.
“윽!”
섬광을 만들어낸 화살은 그대로 이 장로의 어깨를 관통했고 곧 수 십 발의 화살이 무자비하게 날아왔다. 그리고 한발의 화살이 시용문 문주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아... 아니!”
제갈 사혁이 시용문 문주를 대신해 팔에 화살을 맞았다. 화살에 맞은 제갈 사혁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침투 자객은 검을 뽑아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뿌리치고 이 장로 앞으로 가 그의 두 다리와 양팔을 베어버렸다. 게다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방해하는 눈앞에 모든 사람을 베고 또 벴다.
“으아아아~”
시용문의 거의 모든 제자들을 쓰러트린 후 두 자객은 달빛이 비추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시용문 문주는 자신의 친 동생인 이 장로와 제갈 사혁을 번가가가며 보더니 일단 제갈 사혁의 안위부터 살폈다.
“제갈 소협? 제갈 소협. 정신 차리시오! 뭣들 하느냐? 소협을 안으로 모셔라!”
이 날 열 명이 사망했고 서른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갈 사혁이 시용문 문주를 감싸다 화살에 맞아 정신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치료를 하고 의원이 돌아가자 사공신과 소상은 정성껏 제갈 사혁을 간호했지만 초영은 달랐다.
“언제까지 기절한 척 하실 거죠?”
“선배?”
“일어나세요. 대주.”
사공신은 초영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지만 얼마 후 제갈 사혁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알고 있었어?”
“네. 알고 있었습니다. 대주님과 상대했던 그자가 쓴 무공은 천지유벽세. 바로 제갈세가의 무공입니다. 사용하는 자는 아마도 대주님의 제자인 이신이겠죠. 그리고 지붕 위에서 화살을 쏘던 사람은 동경일 테고.”
“그래. 그 정도 눈치는 있네.”
============================ 작품 후기 ============================
진공을 부하로 두지 않는 건 제갈 사혁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제갈 사혁은 무림지존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즉 제갈 사혁은 기득세력입니다. 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세력을 규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제갈 사혁의 부하 진공’보다 스스로 무림맹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무림고수 진공’이 필요한 겁니다.
이제 이번 편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을 말씀드리자면 최근 일어난 아르바이트생 성추행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굳이 그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건 풍자도 뭣도 아닙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는데 정말 화가 나더군요.
저런 놈은 이번 편에 나오는 이 장로처럼 되야 한다. 라는 저의 삐뚤어진 감정입니다.
사실 이것을 풍자하고 싶었습니다. 술마셔서 죄가 가벼워진다던가 하는....... 하지만 그냥 제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면 제갈 사혁은 이번 일을 덮어주는 대가로 황옥의 채굴장을 얻게 됩니다. 정말 나쁜 놈이죠.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을 법으로 심판하기보다는 대가를 받아먹고 사건을 덮기로 합니다.
제갈 사혁은 정말 나쁜놈입니다. 그런 놈이 약속을 지킬 리 없죠.
아시잖아요. 원래 나쁜 놈은 약속을 안 지키는 거.
다음편은 이제 이번 에피소드의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