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66화 (166/262)

<-- 166 회: 낙인 -->

“이번 일을 꾸미신 이유가 뭡니까?”

제갈 사혁은 진공의 이름을 듣는 순간 진공이 이번 일을 일으킬 거라 생각했다.

정확히 피해자 홍림의 ‘자살’과 그 ‘원인’이 ‘이 장로’이고 진공이 홍림을 ‘연모’했다. 라는 세부적인 사실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진공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일어난 예지력으로 인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신과 동경을 살수로 위장시킨 이유는 예지력으로 알게 된 미래로 인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 사건의 범인은 진공이 아닌 ‘다른 누군가’일 것이고 진공은 이로 인해 예정된 운명대로 문파를 나가 흑사련 소속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예지력을 이용해 이번 사건과 진공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뿐이었다. 물론 예상이 틀려도 제갈 사혁에게 피해가 가는 건 없었다. 어차피 며칠이 되었든 이번 자살 사건의 범인이 이 장로라는 건 알아냈을 테고 그 후 이번 일을 덮는 조건으로 황옥 채굴장을 얻고 이신과 동경을 살수로 위장 시켜 이 장로를 죽였을 것이다.

“가르쳐주십시오. 이번 일을 꾸미신 이유는 뭐고 왜 그러셨습니까?”

“내 제자도 아닌데 가르쳐줄 리 없잖아.”

제갈 사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장난스럽게 받아쳤고 초영은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제갈 사혁을 응시했다.

“초영.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대주 자리는 정치적 입장도 잘 이용해야 해.”

“정치적 입장 말입니까?”

대주라는 자리는 냉정하게 따져보면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나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차지하는 자리다. 현 오대주도 구파일방 출신이고 공석인 흑랑 대주 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도 반드시 그들 중에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번 자살 사건의 범인을 이 장로로 확실하게 지목하고 끌고 갔다면 무림맹은 돈줄을 잃는다. 시용문 입장에서야 애초에 이 지역이 무림맹의 관할이라서 무림맹에 가입한 거지 사상이나 오래된 정도의 뿌리가 있어서 가입한 게 아니야. 막말로 흑사련에 가입해도 그만이란 소리야.”

“그럼 대주님은 정말 그 아이 말대로......”

“그래. 무림맹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사건을 은폐했다.”

제갈 사혁이 사건을 은폐했음을 동의하자 초영은 제갈 사혁에게 실망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겉모습과 달리 마음만은 강직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망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아닙니다.....”

“이해해. 하지만 사실이다. 대주라는 자리는 원래 그런 거다. 만약 이 임무를 원래대로 황룡 대주가 맡았다면 과정만 다를 뿐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황룡 대주가 어찌 나올 지는 제갈 사혁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초영에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무림맹이란 그런 곳이다.”

“...........”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 개새끼를 내가 온전하게 살려둘 리 없잖아.”

하지만 무림맹의 입장이 어쩌고 시용문의 자금이 어쩌고를 떠나 결과적으로 제갈 사혁은 이 장로를 자신의 손으로 아니 타인의 손으로 처리했다.

“시용문의 문주의 목숨을 노리는 살수를 처리한 건 자살사건이 일어난 당일이었다. 그래서 이용해먹기 딱 좋았지. 시용문 문주를 노리던 살수가 그의 동생을 죽인 거야. 뭐 결과적으로 죽이지 않고 사지(四肢) 베어냈을 뿐이지만.”

사람이 죽었지만 제갈 사혁 입장에서는 정말 절묘한 순간이었다. 이 두 사건이 같은 날 일어난 덕에 어렵지 않게 이용해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대주님이 부상을 입으신 건 왜 입니까?”

“나의 아니 정확히는 봉황대의 체면 때문이지.”

“체면이라니요?”

제갈 사혁은 대주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대주다. 게다가 그 임시직 역시 무림 맹주인 판가량이 직접 설득을 해서 앉은 자리였고 임시기 때문에 주의의 편견도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한 번의 임무를 실패했다.”

마화천의 개입으로 인해 소령 사건을 실패한 일을 언급하자 초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임시고 나의 실패는 봉황대 전체의 실패가 된다. 그리고 내게 자리를 맡긴 무림 맹주의 평가도 하락하겠지. 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맹주는 다르다. 명성에 흠집이 생겨버리면 그것이 균열로 발전하게 된다.”

제갈 사혁은 초영이 알아주길 원했다. 결코 이 자리가 의협지도(義俠志道)만으로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몸을 날려 문주의 목숨을 구한 것처럼 연기를 한 것은 우리의 실패를 덮기 위해서다.”

“실패라니요?”

“잊지 않았겠지?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그랬다. 결과적으로 사공신에게 살수가 잡혔지만 아직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봉황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살수로 변장한 동경과 이신의 손에 이 장로를 잃었으니 이는 명백한 봉황대의 임무 실패였다.

“그런 이유였습니까?”

“그래. 내가 직접 몸을 날려 문주를 구한다. 이것으로 우리의 실패는 덮어진다.”

제갈 사혁은 그냥 구파일방의 제자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제갈 세가의 소가주였고 지금은 화산파의 후계자다. 개인의 몸 또한 아니다. 그러한 자가 고작 방파에 지나지 않은 시용문 문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사실이 알려지면 봉황대의 임무 실패는 한낱 술자리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초영은 방파출신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알거야. 무림맹 속에 있는 뿌리 깊은 차별을.”

초영도 방파출신으로서 제갈 사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그 갈등이 조금이라도 해소된다면..... 소수의 명문정파를 다수의 방파가 신뢰하는 것만큼 그거야 말로 값진 것 아니겠어?”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스럽지도 그렇다고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깔려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제갈 사혁을 존경하게 되었다.

“잘 알겠습니다. 대주님.”

“내가 가르쳐준 건 기억해둬. 언젠간 너도 도움을 받을 날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초영도 비로서 알게 될 것이다. 제갈 사혁의 모든 의도를.

하지만 그날이 온다 해도 초영은 차마 제갈 사혁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쯤에는 그녀도 훌륭한 기득권층이 될 테니까........

“이신과 동경이 일으킨 암살 사건은 사공신이 잡아드린 살수에게 뒤집어씌운다. 그것으로 이번 일은 마무리하고 시용문 문주의 체면을 생각해 자살 사건은 묻는다. 이 장로의 사지를 절단했으니 너도 불만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대주님의 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제갈 사혁은 한 가지 거짓말을 한 것이 있었다.

시용문 문주를 보호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봉황대에 대한 무림맹 방파들의 신뢰가 아니라 제갈 사혁 개인에 대한 신뢰라는 점이다. 제갈 사혁은 이미 지난 번 지역 방파인 패천방 출신의 만백의 신변을 구함으로서 무림맹 내에 방파 세력들에게 강한인상을 남겼다. 한번은 변덕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두 번은 다르다. 그러니 이번 시용문 문주 사건이 알려지면 주목받는 건 봉황대가 아니라 제갈 사혁이다.

이 모든 건 후일 직책이 아닌 한 사람의 무림인으로서 무림맹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무림맹에 도착하자 봉황대의 임무 실패가 연일 화제가 되었지만 그 다음날 제갈 사혁의 예상대로 시용문 문주를 구하기 위해 목을 아끼지 않은 제갈 사혁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그날 밤 술집에서는 온통 제갈 사혁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 유일하게 제갈 사혁의 의도를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무진아.”

“네. 사숙.”

“내가 누구냐?”

자기가 누구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사숙이라 답했고 도오 진인은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화살에 맞아?”

어깨에서 손을 떼고 등을 돌리더니 갑자기 제갈 사혁의 오른쪽 눈을 향해 붓을 던졌다.

“!”

제갈 사혁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붓을 피했고 이를 본 도오 진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방금 내가 던진 붓이 화살보다 빠를 것이다. 가볍게 피하는 구나. 하물며 화살쯤은 막아낼 수 있겠지. 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

제갈 사혁은 사숙이 무슨 의도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은 황옥 채석장 양도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시용문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진 없이 말해주었다.

“네게 실망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의 방식이 틀렸다고 나 역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망은 했지만 너를 미워하진 않는다. 너를 탓하지 못한다.”

확실히 제갈 사혁은 이익을 취하는 법도 알고 그것을 융통성 있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한 사람으로서는 부도덕할지 모르나 지도자로서는 단체를 이끌어 가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수고했다. 이 문서는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어차피 네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이걸로 마무리입니다.

사건해결을 결말로 잡은 게 아니라 제갈 사혁의 뒷거래와 씁쓸한 뒷끝이죠.

자살 사건을 크게 확대시키지 않고 축소화하는 조건으로 황옥 채굴권을 얻고.

방파의 인지도를 높여 지난번 사건(마화천과 무형독에 관련된)의 실패를 덮고.

이신과 동경을 이용해 시용문을 흔든 후 사공신이 맨 처음에 잡아서 심문한 살수에게 그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후 시용문 문주 습격사건이 봉황대에 의해 해결된 듯 그럴 싸하게 꾸미고.

모든 게 성공적이었습니다.

여태까지의 제갈 사혁과는 다르게

마지막에 이제 무림맹 장로인 사숙과 대화를 넣은 이유는 분량 채우기~ 는 아니고.

제갈 사혁에 대한 사숙의 경고입니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대중을 속일 수 없다는 뜻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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