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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난 후 제갈 사혁은 원래 이 임무를 맡았던 황룡 대주에게 가르쳐줄 건 가르쳐주고 숨길 건 숨겼다.
“나한테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말해주러 온 건가?”
“임무를 넘겨받았고 잘 처리했으니 이제 계산해야죠.”
“보기와는 다르게 그런 건 정확하네.”
뭐 이번 일이 제갈 사혁 입장에서도 황룡 대주 입장에서도 별 일 아니지만 주고받는 건 확실히 해야 했다.
“대주를 뽑을 때 다른 대주들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그렇지. 이 자리는 어떻게 보면 학연과 지연으로 만들어지는 자리니까. 그런데 그건 왜?”
제갈 사혁은 자신이 임시 대주인 상황과 또 현재 봉황대의 상황을 설명한 후 초영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밝혔다.
“초영 좋지. 초영 좋아.”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면 그녀가 명문정파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는 봉황 대주도 잘 알고 있지?”
확실히 그랬다. 명문정파를 떠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초영의 무위는 제갈 사혁이 잘 가르쳤다지만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오히려 실력에서는 동경에게 밀리고 성장속도로는 사공신과 손조현 그리고 소상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녀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
“네?”
“초영은 무허 대사가 키워낸 그야말로 순수배양이지. 실제로 그녀의 당시 실력 가지고는 무림맹 입성도 못할 정도였어. 하지만 무허 대사의 눈에 들었고 지금은........ 그래! 무허 대사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초영을 봉황대에 묶어두지 마라.”
“!”
그랬다. 초영은 봉황대 이외에 경력이 없었다. 물론 봉황대라는 경력이 갖는 의미는 대단했지만 무림인 한 개인으로서의 경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위치는 다르지만 초영과 나는 이래봬도 같은 해에 입단했어. 봉황 대주가 후임으로 생각한다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내정간섭이니까.”
황룡 대주를 찾아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어찌 보면 쓸 때 없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나쁘지 않았다.
봉황대로 돌아온 제갈 사혁은 봉황대 전체의 훈련을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른 봉황대의 성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새로 들어온 대원들의 성장과 기존 대원들의 성장 격차는 크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뭐하는 거야! 허리에 힘이 없으니까. 몸이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절대 칭찬하지 않았다. 무림맹의 다섯 부대 중 하나기 때문에 절대 완성형이란 있을 수 없고 또 설사 한명 한명이 일당백의 실력을 가졌다하더라도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좋아. 모두 모여라.”
또한 제갈 사혁은 무공의 기본을 닦아주는 일 이외에도 수업을 했다. 원래는 이신을 위해 하던 기존의 수업방식이지만 새로 대원을 모집한 이후부터는 이신과 함께 봉황대 전체를 가르쳤다. 솔직히 제갈 사혁이 영입한 사공신 손조현 소상 등은 지난 생애에서 그 이름을 알아보고 영입한 자들이다. 본질적으로는 낭인출신이기 때문에 무림맹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수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오늘도 전시 상황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한 단체와의 싸움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무림맹의 전면전 혹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단체의 전면전은 흑사련과 마교 그리고 우리 무림맹의 삼파전을 말한다. 일단 이 정사대전이 터지면 우리 다섯 부대는 별 일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아는 사람 있나?”
왜 다섯 부대가 하는 일이 없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일이 터지면 무림맹에 소속된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인원이 뽑히기 때문이다. 무림맹이라는 건 하나의 연맹이다. 때문에 가장 먼저 힘을 발휘해야 하는 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기타등등.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한다. 물론 진짜 아무것도 안하는 건 아니고 전투에 참여만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것은 제갈 사혁이 정사대전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헛소리는 아니었다.
“뭐 쉽게 말해 평화로울 때 그리고 정사대전이 끝났을 때 활동하는 게 다섯 부대다. 즉 전쟁이 끝나도 ‘우리는 이 정도 힘이 있다.’라는 걸 표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수업은 저녁쯤 끝이 났고 제갈 사혁은 청하와 이신 그리고 흔치 않게 구월상과 식사를 했다. 구월상과는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지만 청하와 구월상은 상당히 친했다. 구월상은 개방출신이지만 검을 다루고 청하는 무당출신이지만 도를 다룬다는 점에서 서로 특이점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번 임무는 상당히 까다로웠어.”
구월상은 출사로서 임무를 맡는 일의 까다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제갈 사혁은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탈주 무림인인 것 같단 말이야.”
탈주 무림인. 대부분 정파를 배신하고 타 세력으로 가는 자들을 탈주 무림인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 뭔가 심상치 않아. 무림인들이 출신에 상관없이 모이고 있는 것 같아. 지난번에 지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던데.”
탈주 무림인이 모이고 있단 말에 제갈 사혁은 흑사련을 떠올렸지만 곧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흑사련에서도 탈주 무림인이 발생한다는 거야.”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탈주 무림인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파면서 탈주 무림인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흑사련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흑사련에서 탈주 무림인이 발생하다니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 같이 좀 가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구월상은 청하의 손을 잡으면서 눈길은 제갈 사혁에게 주었다.
[야...... 알고 있었냐?]
이번생애에 들어와선 구월상과 서로 말을 놓는 사이가 전혀 아니었지만 이 상황을 놓고 존댓말을 할 수 없었다.
[장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모르겠어.]
구월상은 청하에게 부탁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청하가 함께하면 제갈 사혁도 따라갈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깔끔하게 차려입어도 역시 거지는 거지였다.
“아니요. 지금 맡고 있는 일이 있어서 저는 못가요.”
예상 외로 청하 쪽에서 거절하자 구월상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명구조. 봉사활동 등 무림맹에서 출사들은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청하가 부탁을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청하. 그럼 진짜?”
“예? 그게 무슨 말이요. 진짜라니요? 그럼 거절하는데 가짜도 있어요. 신아 가자.”
“네?”
그렇게 말하면서 청하는 밥을 먹다 말고 이신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구월상은 결국 제갈 사혁과 둘만 남았고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기......”
“왜?”
“돈 필요하냐?”
“.............. 나 돈 많거든.”
“.........”
도저히 그의 힘으로는 제갈 사혁을 꼬실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지곤은 한데?”
“지곤은 물론이고 미려도 하겠다고 했는데.”
뭐 이들은 명색이 후기지수이니 서로 뜻을 맞추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제갈 사혁이 후기지수를 부정한 후 아니 후기지수라 불리기 과분할 정도로 명성을 쌓아 올리면서 제갈 사혁은 더 이상 후기지수라 불리지 않지만 그래도 젊은 신진 고수라는 의미에서는 그들과 같았다.
“봉황대는 임무가 끝난 지 얼마 안됐으니까. 내가 자리를 비워도 문제 될 것 없을 거야.”
“도와주는 거냐?”
제갈 사혁이 돕겠다고 나서자 기쁜 나머지 구월상은 두 손을 마주잡았고 제갈 사혁은 곧바로 인상을 구겼다.
“이 손 놔. 남자랑 마주 잡는 취미 없어.”
“.............”
사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흑사련과 무림맹의 탈주 무림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흑사련과 무림맹 그럼 남은 건 마교인데 이게 여간 껄끄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 임무의 출처가 어디냐?”
제갈 사혁은 일단 탈주 무림인에 대한 임무를 들어가기 전 임무의 출처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임무 아니야.”
“아니면?”
“......................”
구월상의 침묵이 길어지자 제갈 사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이 새끼야! 정식 임무도 아니면 뭐야?”
“자발적 무림의 평화.”
“자발적 무림의 평화 좋아하네! 자선단체 가입했냐? 이 새끼야! 정식 임무도 아니면 임무 완수금도 안 들어오고 무엇보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한 마디로 구월상은 요즘 탈주 무림인이 발생하는 걸 수상하게 여겨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려는 거였다. 잊고 있었다. 구월상은 강직한 무림인의 표본. 즉 앞뒤 꽉 막힌 무림인 그 자체였다. 지금이야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제갈 사혁에게 굽히고 들어가지만 자존심 세기로는 제갈 사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제갈 사혁은 모든 일을 하는데 앞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돈도 명성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임무 완수금 때문이면 내가 줄게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데?”
“얼마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많이 필요해요...... 라고 할 줄 알았냐. 이 새끼야! 웃기지 마!”
그렇게 다 큰 사내들이 서로의 옷자락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너 나한테 빚 진거다.”
제갈 사혁이 괜히 ‘져주는 척’ 했다.
임무 완수금이나 명성도 중요하지만 이번 일을 의뢰한 사람이 구월상이기 때문에 괜히 유난을 좀 떨었을 뿐 처음부터 정파와 사파의 탈주 무림인이라는 특이점에 관심을 가졌고 할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언제 가면 되는데?”
“오늘 새벽.”
“좋아. 그럼 새벽에 만나자.”
탈주 무림인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어왔고 그 결과가 바로 흑사련이라는 거대 단체로 까지 발전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도 진지한 편입니다. 초반 도입부가 유치찬란하지만~
원래 이 사건을 물어오는 브로커(???)를 늘 그랬듯 지곤으로 하려 했는데 맨날 무슨 일만 터지면 그거 다 지곤이 물어다 제갈 사혁 먹여서 그냥 같은 후기지수인 구월상으로 바꿨는데 이거 이름만 구월상이지 완전 지곤처럼 써버렸습니다. (사실 구월상이 엑스트라나 마찬가지라 캐릭터 성격을 못 잡은 것도 있고)
자 그럼 탈주 닌자편 아니 아니 탈주 무림인 편입니다. 부제는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