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68화 (168/262)

<-- 168 회: 차별 -->

출발하기 전 제갈 사혁은 사공신을 불러내 탈주 무림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다. 흑사련에 있었던 사공신도 어떻게 보면 탈주 무림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탈주 무림인을 본적 있나?”

“탈주 무림인은 많이 봤습니다. 흑사련 자체가 그런 곳이라.”

“그래?”

“저는 사문에서 흑사련을 탈단을 했기 때문에 전혀 그런쪽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탈주 무림인들은 사문과 관계없이 소속 단체를 탈단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만큼 무림인에게 사문이란 중요했다.

“흑사련 쪽에서도 탈주 무림인이 발생하나?”

“아니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문파가 그곳에 자리를 잡지 못해서 탈단을 하면 모를까....... 물론 개인이 흑사련을 탈주하는 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없다고 봐야 합니다. 흑사련 자체가 탈주 무림인들의 마지막 종착지인데 거길 탈단하면 강호를 은퇴하지 않는 이상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낭인이 겉으로 보기엔 처소를 결정하는 게 자유로운 것 같지만 결국에는 무림맹과 흑사련 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먹고 살려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보통 사람들이 탈단을 하는 이유는 뭐야?”

탈단을 하는 이유라는 말에 사공신은 말하기를 머뭇거렸고 제갈 사혁은 괜찮다며 눈치를 주었다.

“기존 세력들 때문입니다. 무공실력도 무공실력이지만 흑사련은 실력 이외의 출세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인데 소위 명문출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통에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 무림맹처럼?”

“......... 네. 말하자면 그렇죠.”

흑사련의 본질은 무림맹에 불만이 있거나 마교를 불신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차별 받았던 것 그대로 후대에게 전하고 있었다. 출신차별 없다는 흑사련이 지금은 무림맹과 같은 처지였다.

“알았다.”

사공신에게 대략 흑사련의 상황을 들은 제갈 사혁은 혼자 조용히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구월상 말로는 흑사련에서도 탈주 무림인이 발생한다고 하던데...... 흑사련에서 탈주 무림인이 발생한다면 정파 사파 마교가 아닌 새로운 세력이 생겨나려 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무림을 삼등분 하는 이들 단체의 탈단을 설명할 수 없었다. 물론 아주 가능성 없는 건 아니었다.

무림맹이나 흑사련도 처음 생겼을 땐 그 두 단체와 성격이 비슷한 수많은 단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전례로 보아 지금의 흐름이 계속 된다면 하나의 단체가 새로이 무림에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단체의 등장이라니 아니될 말이지!”

새로운 단체가 생긴다는 건 기존 세력의 전력하락을 가지고 오며 그것은 기존 기득권 세력에게는 썰 달갑지 못한 일이다.

일단 현장에서 모든 걸 판단하기로 한 제갈 사혁은 약속한 시간에 구월상과 지곤 그리고 남궁 미려와 만났다.

“이렇게 넷이서 활동하는 건 처음이네.”

“네명이서 처음이지 너 말고는 이렇게 셋이 함께 임무를 해결한 적도 있어.”

사실은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봐야 하지만 이번 생애에서는 한 번도 이들과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분이 묘했다.

지곤이 다짜고짜 어깨동무를 하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겼다.

“무거우니까. 떨어져.”

“너무 그러지 마.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러던가 말던가 지곤은 제갈 사혁의 반응은 무시한 채 혼자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며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게다가 옆에서는 남궁 미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제갈 사혁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이신은 안와.”

“.........!”

정곡을 제대로 찔리자 한순간 당황했지만 절대 그것을 티내지 않는 노련함. 이쯤 되면 그 노력이 정말 가상했다.

제갈 사혁은 옆에 붙은 지곤을 떼어내고 구월상에게 다가가 대략 이번 일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다.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야?”

“목적지라 할 만한 곳은 없어.”

“뭐?”

목적지라 할 만한 곳이 없다니 이게 무슨 개떡 같은?

“그럼 뭐야 이 새벽에 여긴 왜 모인 건데? 지나가는 놈 아무나 붙잡고 너 무림맹 탈단할 거냐고 물어볼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우리는 이제부터 한 인물을 미행을 할 거야.”

“미행?”

“지화루에서 무림맹 소속 출두사들이 모이기로 했나봐.”

출두사. 힘없는 방파나 낭인들이 무림맹에 봉급을 받고 일하는 직종으로 현재 후기지수들의 직책인 출사가 하기 싫어 버리는 임무 등을 하는 자들이었다.

“이 새벽에?”

“출두사 중에 고참급인 방만장이라는 놈이 있어. 사실 우리 개방은 며칠 전부터 그놈을 감시하고 있었거든.”

“그럼 이 임무의 출처는 개방이냐?”

“정확히 말하면 나와 내 사형제들.”

그러니까 이번 탈주 무림인과 관련된 일은 개방 전체의 일이라기보다는 젊은 개방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일이었다.

“윗선에 말하지 않고 너네끼리 움직인다?”

“탈주 무림인에 대한 사항은 민감하니까.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나와 너를 포함한 너희지.”

탈주 무림인은 대부분 지역 방파에서 발생하는데 이걸 잘못 건드리면 명문정파와 방파간의 대립이 잦은 무림맹 장로회 좌석이 휘청거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청성파의 서백호 소위 문파 탈단 문제가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판국에 출두사들의 대규모 탈단 조짐이라니 밥그릇 챙기기를 떠나 무림맹을 위해서도 이는 막아야 했다.

지화루라는 곳에 도착한 제갈 사혁과 그 일행은 약간의 변복을 하고 요주의 인물인 방만장이라는 자를 찾았다.

“저놈이다.”

방만장의 얼굴을 알고 있는 구월상이 방만장을 가리키자 지곤이 일월신보(日月新步)를 펼쳐 은밀하게 방만장의 뒤를 따랐다. 방만장이 도착한 곳은 지화루 내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방이었고 지곤은 점소이를 통해 바로 그 옆방을 잡았다.

제갈 사혁과 남궁 미려. 구월상이 차례로 들어오자 지곤은 벽에 귀를 가져다댔다. 그리고 제갈 사혁도 지곤처럼 벽에 귀를 댄 채 왼쪽 귀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에 들리는 건 자신의 맥박이 뛰는 소리.

(조금 더..... 조금 더.)

“...........이............시다.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의를 주도하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3~40대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됐다!”

“나도 됐어.”

지곤과 제갈 사혁이 벽 너머의 소리를 감지해내자 구월상은 지곤의 남궁 미려는 제갈 사혁의 어깨에 각각 손을 올려 내공으로 그 소리를 전달받았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여러분께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방안에 있는 자들이 우르르 방 안을 빠져나갔다. 아마도 술자리에 불려나온 기녀들을 물러나게 한 듯 했다.

“아니 방형. 술자리에 꽃이 없으면 어찌 술을 즐기잔 말이오?”

“이 자리는 여러분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내 말에 집중해주시오.”

방만장이 집중해줄 것을 요구하자 여기저기서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가볍게 놀고 마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눈치 챈 것이다.

“여러분은 무림맹에 얼마나 있었소?”

무림맹에 얼마나 있었냐는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방만장의 주도에 이끌려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 10년 이상은 있었을 것이오. 그럼 그 10년 동안 무림맹으로 하여금 여러분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오?”

무림맹에 10년간 몸을 담군 동안 얻은 게 무엇이냐는 말에 모두들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소. 우리가 얻은 것은 없소. 무림맹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없소. 우리는 무림맹을 위해 청춘을 바쳤지만 무림맹은 우리에게 해준 것이 없소. 내 말이 틀렸소?”

이제 더 이상 기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곤을 통해 분위기를 파악한 구월상은 이를 악물었다. 방만장에게 그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10년 더 열심히 일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장로자리를 줍니까? 하다못해 대주자리가 옵니까? 아니면 노후가 보장되는 관리직이 옵니까? 보십시오! 이번에 자리가 난 대주 자리도 그렇습니다. 제갈 사혁? 그게 말이나 됩니까?”

순간 제갈 사혁의 이름이 언급되자 제갈 사혁은 인상을 구겼고 나머지 셋은 필사적으로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았다.

“겨우 화산파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주 자리에 앉는 게 말이나 됩니까? 더군다나 그 놈은 무림맹에서 일한지 1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봉황 대주랍니다. 그리고 다른 방파출신의 장로들도 문제입니다. 말은 명문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지역 문파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그들도 결국에 같은 족속입니다. 서라방. 십열문. 문소방. 말이 방파지 그들 문파에서 벌써 장로만 몇이 나왔습니까?”

방만장의 비난 순서는 상당히 뛰어났다. 처음에는 출두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이끌어내더니 제갈 사혁을 대표적으로 언급하며 명문정파 출신들의 무분별한 자리 차지를 비꼬는 한편 같은 방파 그 중에서도 무림맹 장로 자리를 차지한 방파의 기득권 세력을 꼬집어내 출두사들의 적개심을 이끌어냈다.

“그렇소. 맞는 말이오.”

“방형의 말이 옳소.”

“암! 그렇고말고.”

저마다 동조하며 또 분노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와 함께 다른 꿈을 꾸실 생각 없소?”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오래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글이 오래되다보니 옛날처럼 의욕만으로 써지지 않았습니다.

화산의협 초기에는 이 놈이 나쁜 놈이니까 이 놈만 족치자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써도 됐지만 이제 중반에 들어와서는 제갈 사혁의 위치. 무림 상황 이런 것들과 함께 떡밥이라고 하죠? 그동안 흘렸던 것들도 주워 담고 이걸 또 그것들을 순서대로 배치해야 하다보니 글 쓰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저도 이렇게 오래 써본 게 처음이라 휴재 틈도 길어지고.....

약속한 날짜에서 이틀이나 지나버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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