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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70화 (17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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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능할 리 없다. 그건 사실이다.)

집중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불가능한 건 불가능했다. 이기어검과 그 시전자의 공세를 동시에 막아내며 제갈 사혁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뭐지?)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건 이자의 검술 실력이었다. 아주 형편없었다. 이기어검을 다루는 실력이라 생각하기도 부끄러운 정도였다.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 비교를 하자면 도끼를 쓰는 초영에게 검을 쥐어주면 이 정도 실력이 나왔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공중에 뜬 검 한 자루가 제갈 사혁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검 손잡이에는 녹옥(綠玉)이 크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신구치고는 요란하고 보석을 저렇게 손잡이에 크게 박아놓으면 잡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 보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악취미에 무엇보다 이기어검과 비례하는 검술실력이 전혀 설득력 없는 상태에서 이 부자연스러운 장식은 의심을 하기 딱 좋았다.

두 자루의 검이 날아오자 제갈 사혁은 재빨리 두 개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두 자루의 검은 마치 사내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여인처럼 앙탈부리기 시작했다.

(힘이 손잡이 쪽에서 느껴진다.)

물체를 움직이려는 힘이 손잡이에서 느껴지자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의 정체를 간파해낼 수 있었다. 어떻게 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눈앞에 있는 사내가 이기어검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깜빡 속았네. 그럼 나도 그 보답을 해줘야지!”

제갈 사혁은 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을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던졌고 그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검을 피해냈지만 두 자루의 검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사내의 등을 수 십 차례 난자했다.

“이게 어떻게?”

사내는 드디어 입을 열었고 제갈 사혁은 그런 그를 보며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가짜짓 하다가. 진짜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두 자루의 검을 제어하는 힘을 이기어검의 묘리로 짓누르며 자유자재로 구사한 제갈 사혁은 방금 전 행위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는 듯 약을 올렸다.

“잘 피해야지. 젊은 사람은 몸이 재산인데 말이야.”

두 자루의 검이 만들어내는 파공음에 귀가 먹먹해질 때쯤 날카롭고 무정한 칼날은 한때 그의 주인이었던 자의 두 팔을 베어냈다.

“윽!”

두 팔을 베였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제갈 사혁은 그 모습을 보고 이 남자가 어떤 조직에 속해있다는 걸 더욱 더 확신했다.

“여기서 잠이나 자고 있어.”

팔꿈치를 휘둘러 상대를 기절 시킨 후 제갈 사혁은 기감을 퍼트려 먼저 남궁 미려를 찾았다. 다행히 나머지 일행도 남궁 미려와 함께 있는지 익숙한 기가 느껴졌고 제갈 사혁은 서둘러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앗!”

최근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남궁 미려는 절대 적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압박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구월상과 지곤은 원래 남궁 미려보다 한수 위였기 때문에 적들을 상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3인의 무사가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합공을 펼치자 서로간의 호흡이 맞지 않는 세 사람은 3인의 무사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분명 한명 한명의 실력은 3인의 무사보다 뛰어나지만 서로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상대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쳇!”

지곤은 평소와 달리 인상을 구겼고 구월상은 침착하게 상대의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

“어이~”

그때 제갈 사혁의 가벼우면서도 경박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며 3인의 무사를 향해 두 자루의 검이 날아왔다. 그들은 침착하게 검을 쳐냈지만 진짜는 그게 아니었다. 두 자루의 검 말고도 다른 한 자루의 검이 날아와 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사내 셋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맨 끝에 있는 자는 검의 길이가 짧아 목숨을 건졌지만 그것도 다 제갈 사혁이 계산한 것이었다. 이놈에겐 알아볼 게 있기 때문이다.

“일어설 수 있지?”

옆에서 짜증날 정도로 제갈 사혁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살아남은 자는 살기위해 검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밑장 좀 드러내봐라.”

어떠한 속임수로 이기어검을 흉내 내던 놈은 검사로서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구월상과 지곤 그리고 남궁 미려 이 세 사람을 상대한 이놈들은 달랐다. 분명 검을 마주하면 대충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갈 사혁은 그자와 서른다섯 번의 검을 나눴고 좀처럼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제갈 사혁이 상대를 농락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끌었다.

“왜 저러는 거야?”

남궁 미려가 제갈 사혁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자 구월상은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 검법을 견식하려는 거야.”

“그런 걸 해서 뭐하는데? 중원무림의 모든 검법을 독파하고 있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건 해봐야 의미가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상대와 검을 마주해 검법의 뿌리를 알아내는 건 상대의 검법을 잘 알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의 검을 마주하면 할수록 제갈 사혁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남궁 미려의 말대로 검을 마주해 상대의 사문을 알아내려는 행동은 중원무림의 모든 검법에 대해 알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처음부터 검을 마주해 상대의 사문을 알아내려 했고 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지극히 개인적인 오해는 현실이 되었다.

(역시 살막이군.)

배극구검은 아니다. 하지만 무형독 사건 때 상대한 살막의 조무래기들이 사용하는 검법과 그 형식이 똑같았다. 그것을 재차 확인하고 또 확신을 갖기까지 서른 번이 넘는 경합을 벌인 것이다.

확신을 갖게 된 제갈 사혁은 그대로 검을 상대의 턱밑으로 찔러 넣어 얼굴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사전절광검(射電絶光劍)이야. 미치겠군. 저 녀석은 도대체 화산파의 얼마나 많은 무공을 익히고 있지?”

객기부리 듯 사용하는 검술이 모두 끝을 향해 달려가는 절기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구월상은 난생처음으로 제갈 사혁과의 격차를 실감하고 있었다.

“죽인 거야?”

“알아낼 것도 알아냈고 더는 필요가 없지.”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맨 처음 3인의 무사를 죽일 때 던졌던 이기어검을 흉내 내는 검을 가져왔다.

“그건 뭐야?”

구월상의 물음에 제갈 사혁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들의 꿈.”

“뭐?”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손날을 휘둘러 손잡이 부분과 칼날을 박살내고 손잡이 부분을 따로 챙겼다.

“그건 뭐에 쓰게?”

“그냥 좀 아는 데가 있어서 감정 좀 해보려고.”

감정을 하겠다는 말에 세 사람은 두 자루의 검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루에 좀 다시 가자.”

“거긴 왜?”

“확인해야 할 게 있어.”

자신들이 난장판으로 만든 주루로 향하자 주루 관계자들이 능숙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다 도망치고 없네. 반란분자 새끼들.”

“반란분자라니 너 무슨 말을.”

구월상의 표현이 다소 극단적이지만 제갈 사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따위 놈들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손댄 적 있나?”

강압적인 태도로 묻자 옷에 피가 묻은 제갈 사혁을 보며 주루 관계자에게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건 피해보상비다. 받아두도록.”

제갈 사혁은 돈 주머니를 던진 뒤 무림맹 탈단을 모의하던 자들이 이용한 술상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술잔 하나를 찾았다. 술잔을 뒤집어엎자 검에 장식된 녹옥이 박혀 있었다.

“이 술잔. 이 집에서 쓰던 물건이냐?”

녹옥이 박힌 술잔을 던져주자 주루 관계자는 술잔을 요목조목 살폈다.

“아닙니다. 사씨 공방에서 만드는 것만 쓰는데 이 물건은 공방의 인장이 없습니다.”

“알았다. 그럼 이 물건을 내가 따로 챙기지.”

“그러십시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부탁이라고 하면서 제갈 사혁은 주머니에서 또 다른 돈주머니를 꺼냈다. 아까 던진 전냥이 아니라 이번에는 은자 주머니였다.

“하.... 하명하십시오.”

“만약에 누가 여기 있는 식기를 어떻게 했냐고 물으면 무림맹의 무림인들이 와서 난장판을 만들어 전부 버렸다고 하게.”

어차피 깨진 물건 하나 없지만 이 물건들은 흠집이나 여러 하자가 생겨 버려야 할 물건들이었다.

“내 이름은 제갈 사혁이네. 그리고 혹시라도 이 식기의 행방을 찾으러 오는 자가 있다면 내게 기별 넣어주게 그래줄 수 있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뒤처리를 끝낸 주루의 아래층에 자리를 잡고 위층의 소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게 뭐야?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는가?’ 꼭 우리 스승님 보는 줄 알았다.”

지곤이 제갈 사혁의 말투를 비꼬자 제갈 사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선지 특정 상황만 되면 그런 아저씨 같은 말투가 튀어나오곤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비꼬다니.....

“그래서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번 일.”

이번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에 대해 묻자 제갈 사혁은 천으로 된 죽엽청주(竹葉靑酒)의 마개를 열어 물 마시 듯 벌컥 벌컥 마셨다.

“이기어검은 무공의 끝이 아니야.”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사실 제갈 사혁 혼자 처리하도록 하면 좀 그럴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제갈 사혁 혼자 처리하는 쪽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그럴 라면 왜 구월상과 지곤 남궁 미려를 포함 시켰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일단 제갈 사혁에게 시선이 집중 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쓰다가 중간에 바꿨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고백할 게 있는데 앙투안님과 테크노님께서 추측하신 게 맞습니다.

처음에는(글을 쓰기 전에) 검을 조종하는 자가 따로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는데 그렇게 되면 차라리 그 사람이 제갈 사혁과 싸우는 게 구색이 맞아 떨어져서 그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판타지에 마법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걸 결합했죠.

살막은 마교에 멸망한 배교의 후예를 자처하고 또 배교는 주술이나 사술(말이 주술이나 사술이지 이걸 사실상 무협의 마법이라고 봐야죠.)에 능하다는 이미지기 때문에.

무협인데 후기에 대놓고 마법검이라고 명시하면 무협에 대한 환상이 깨질 수 있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언젠가 언젠가는 꼭 한번씩 글을 쓰실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후기를 씁니다.

설정에 있어서 어이 없게 무슨 파이어볼 이런 거만 아니라면 이름을 각색하고 설정을 조금 바꿔서 판타지와 결합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검기는 판타지나 무협이나 두루 사용해도 거부감이 없는 것처럼요.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종종 그런 글들이 있잖아요. 판타지인데 고유 설정으로 내공심법이 존재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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