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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다음에 하는 말은 무림인으로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이거어검을 구사하지 못해도 나보다 강한 자는 존재한다는 뜻이야. 무림에 검을 다루는 자가 많고 또 그 중에 이 경지에 오른 자가 많아서 이기어검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유명해진 것뿐이지”
이기어검과 비슷한 경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백호 소위가 보여주었던 공간 지배하는 그 분위기는 분명 이기어검에 해당하는 서백호 소위만의 경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제갈 사혁이 원하는 것은 이기어검이 아닌 서백호와 같은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으로 인해 깨닫게 된 이 힘을 이기어검 이외의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흡정마공이 그 시작이었다. 흡정마공을 응용하려 노력했고 그로인해 고정관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때문에 설사 이기어검이 원하지 않았던 힘이라 하더라도 제갈 사혁은 이 힘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맞추려 했다.
“이기어검을 얻지 않아도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냐?”
특히 검을 다루는 구월상은 이 이야기에 민감했다.
“실제로 나는 만나봤거든.”
십야성주 추백성과 십궁성주 그리고 구궁성주 망지성. 분명 그들은 제갈 사혁보다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는가?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강함의 기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기어검은 한 번에 엄청난 공력을 사용하게 돼. 문제는 이걸 한번 시작하게 되면 다른 무공과 달리 힘 조절이 안 돼. 정신력도 상당히 소모되지. 예를 들어 이렇게.”
제갈 사혁은 눈앞에서 식탁에 놓은 젓가락을 공중에 띄웠다.
“야! 너! 이거......”
“정말로 할 수 있을 줄이야.”
“짜증나.......”
이것은 흔히 허공섭물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이 힘을 발휘하고 있을 때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해. 이 이외의 행동은 전혀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 놈은 했어.”
“누굴 말하는 거야?”
“출두사 놈들 모아놓고 우두머리 행세하던 젊은 놈 말이야.”
“그도 이기어검을 사용했단 말이야?”
“이기어검 뿐만 아니라 검술을 따로 펼쳐 나와 겨루기도 했지.”
“말도 안 돼.”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제압했지.”
“제압?”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을 흉내 낸 두 자루의 검을 꺼냈다. 비록 손잡이 부분뿐이지만 이번 일에 대해 조사하는데 있어서는 이거면 충분했다.
“그럼 이게 그 이기어검을 펼친......”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갈 사혁은 따로 챙겨둔 술잔을 뒤집어 꺼냈다.
술잔을 뒤집자 녹옥이 박힌 게 눈에 들어왔다.
“이건 녹옥이잖아. 그러고 보니!”
구월상은 검 손잡이에 크게 박힌 녹옥과 술잔 밑에 박힌 녹옥의 연관성을 깨달았다.
“이게 그럼 평범한 장식이 아니라는 거네.”
“맞아. 그 놈은 가짜고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녹옥이 박힌 물건으로 이기어검. 허공섭물을 흉내 낼 수 있어.”
“이기어검을 흉내 낼 수 있는 물건.....”
이기어검을 흉내 낼 수 있다는 말에 구월상은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관둬라. 월상. 자신의 손으로 이루지 못하면 그런 건 힘이 아니다.”
“그래. 맞아.”
구월상은 침착했다.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한 물건이지만 사고가 갇혀 있는 녀석은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도 빨랐다. 이런 면에서는 강함을 떠나 제갈 사혁보다 인물이었다.
“아까 제압했다고 했잖아. 그럼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야?”
이야기를 하던 중 남궁 미려는 이 물건의 주인에 대해 물었고 제갈 사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째서?”
“첫째는 그놈의 실력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야. 이만한 물건을 만들었다면 분명 어떠한 조직이 있을 텐데 이 물건을 지닌 당사자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어. 조직 내에서 별로 대단한 위치가 아니라는 뜻이야. 그 증거로 녀석을 호위하던 자들의 실력은 너희 잘 알지.”
“그게 살려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지 왜 없어? 살아서 돌아가야 이 일에 무림맹에 개입했다는 걸 적에게 알리지. 그리고 앞으로 적이 될지 모르는데 실력 좋은 놈을 살려둘 순 없잖아.”
제갈 사혁이 그동안 살막의 존재를 혼자만 입 다물고 있었던 이유는 배극구검과 관련해 종방영. 김광수. 흑호. 사람으로 만드는 무형독 그리고 지난생애에서 무림맹과 살막의 사업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살막에 대해서 모른 척하며 살막이 하는 일을 알아내고 그것에 대응하며 끝에 가서는 그들을 압박하기 위한.
물론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확신은 필요했다. 지난생애 흑사련의 중심인물인 종방영을 죽이려 했던 청사단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형독 그리고 종방영을 대신한 자신의 죽음.
정파의 최고 후기지수였던 김광수와 그가 우연히 익힌 살막의 검법인 배극구검의 관계. 뜻하지 않게 만난 황성의 아니 살막의 가울.
정확히는 가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가울의 거짓된 이름인 황성의는 흑요칠마의 일원이었고 흑요칠마의 우두머리 격인 종방영은 정사대전을 반대하던 인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종방영은 정사대전의 휴전을 주장하던 인물이다. 당시 종방영은 흑사련 내에서 입지적인 인물이었고 휴전에 대해 흑사련 련주와 뜻을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사대전에 대한 명분이 있었던 무림맹은 출사들 중 가장 뛰어난 자를 파견해 그를 없애기로 했다.
종방영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젊은 무림인 중에 가장 강한 자. 그게 바로.
(나다.)
하지만 이번생애에서는 다르다. 무림맹 측의 정사대전 발발의 명분인 청하를 구하고 정사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 건데?”
“구월상은 개방의 방도들을 이용해 이곳을 감시해줘.”
“이유는?”
제갈 사혁은 뒤집은 술잔으로 탁자를 툭툭 쳤다.
“주인이 물건을 잃으면 응당 찾으러 와야지.”
“좋아. 협력하겠다.”
“지곤은 이번 일에 가담한 놈 좀 찾아봐. 인명부 관리는 청성파 무림맹 장로께서 맡고 계시잖아.”
“얼굴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로 찾냐?”
“방만종인지 방만장인지 하는 놈만 찾아내면 그 후에 줄줄이 새끼 엮어서 보내버리면 돼. 그리고 미려는 할 게 없네.”
“장난치지 마.”
할 게 없다는 말에 남궁 미려는 정색했고 제갈 사혁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벌써 짐 싸고 도망치는 놈들도 있을 거야. 그놈들 찾아서 다 죽여 버려.”
“그럼 나머지는?”
“나머지는 대부분 사문이 있으니 도망치진 못할 거야. 그들의 사문은 무림맹의 연맹 문파니까. 지금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새끼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을 거야. 제발 들키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야.”
아무리 힘없는 문파의 출신들이라지만 이번 일은 몇 개의 문파출신들이 가담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무림맹 최대의 약점은 명문 정파와 지역 방파간의 대립이고 이번 일이 무림맹 내부에 전해진다면 일단 그들은 옹호하려 할 것이다. 정파라는 이름 아래 배신자를 처단해야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다보니 양쪽 다 한 방향으로 밀어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튼 지금 당장 도망치려는 놈들 있으면 찾아내서 다 죽여 버려. 남궁 세가니까. 가능 할 거 아니야.”
“그런 건 제갈 세가에서 하는 게 어때?”
“나는 이걸 해야지.”
제갈 사혁은 녹옥이 박힌 물건을 가리켰다.
“아는 사람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지. 하기 싫으면 그냥 빠져. 네 말대로 제갈 세가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야.”
“설마~”
역할분담이 끝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해보자고~ 탈주 무림인이라니 보통일이 아니잖아.”
제갈 사혁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마치 모든 일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지곤에게 이곳을 감시해달라고 한 이유는 만약 그들이 이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 말은 즉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고 그건 그만큼 상대의 전력이 상상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지곤에게 취조를 맡긴 건 무림맹 내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중소방파들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지만 조직 내 기강은 확실히 잡아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화산파의 이름을 빌어 할 수도 있지만 중소방파를 위하는 척 대외적으로 쌓아올린 인상이 있는 만큼 그런 일은 방파출신의 무림맹주를 뽑는데 크게 일조했던 화산파가 나서서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제갈 사혁은 청성파에게 모든 책임을 돌아가게 할 작정이었다. 물론 지곤이 이 점을 모르진 않을 테지만 지곤과 제갈 사혁은 서로가 서로에게 진 빚이 있었다. 게다가 겨우 이 정도로 틀어질 사이도 아니고..... 그리고 남궁 미려에게 부탁한 일은 무림맹이라는 거목을 속에서 파먹을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경고의 의미다. 이젠 정말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아졌다.
(전쟁이 될지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될지 두고 보자고.)
============================ 작품 후기 ============================
테크노 님: 검술 실력 좋은 사람이 썼으면 죽었겠죠. 제갈 사혁이.
앙투안 님: 이걸 기물(보물 같은)로 할지 양산형으로 할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화산의협은 기본적으로 양민학살 / 일대일은 어렵게를 추구해서 아직 정한 건 없습니다.
브리키오 님: 초입이라는 말은 아마도 소설 초입이 아니라 그 해당 편의 초입을 말한 걸 겁니다. 100편 넘었는데 이제 초입이면 욕먹죠. 그리고 이기어검 장면을 영화로 만드는데 주인공이 원빈이면 CG 구리다고는 못하겠죠.
* 원빈 별명이 CG입니다.
다른 분들도 질문이나 말을 걸어주세요. 후기에 채우게..... (사실 글만 쓰느라 늘 집에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