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회: 배교의 사술 -->
제갈 사혁은 일단 부러트린 손잡이와 술잔을 가지고 화산파로 향했다. 감숙에서 도장을 운영하는 성혜와의 만남이 만들어낸 인연 바로 성화문의 문주였던 만공을 만나기 위해서다.
성화문에 대해 덮어주는 대신 성화문의 비전을 화산파에 내놓기로 한 후부터 만공은 화산파의 손님 신분으로 머물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쳐 화산파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만공을 찾아가 검 손잡이와 술잔을 건네주었다.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는지 알았으면 하는데 가능하시겠소?”
“처음 보는 물건이네만 옛 서적을 뒤져서라도 찾아보겠네.”
“가능하면 이걸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면 하오.”
“나도 한 사람의 술법사로서 흥미가 생기네. 아마도 자네가 말한대로의 물건이라면 필시 보통 방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 걸세.”
만공이 이 물건의 정체를 꿰뚫는다는 정확한 보장도 없지만 제갈 사혁은 왠지 만공이라면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공의 처소에서 나온 제갈 사혁은 화산파에 온 김에 화산파 전체를 두루 살펴봤다.
“합!”
“합!”
평검수는 물론이고 보무제자들 또한 상당히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상 현 화산파는 누가 무어라 해도 도자 항렬의 시대기 때문에 제갈 사혁이 없다고 해도 장문인과 그 사형제들이 잘 이끌어나갈 테지만 무자 항렬은 문파의 부흥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열정만큼은 그들의 스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사형. 언제 오셨어요.”
평검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무덕이 멀리서 제갈 사혁을 알아보자 손을 저었다. 자신이 왔다고 해서 훈련을 멈춰선 안 되기 때문이다.
훈련이 끝난 후 제갈 사혁은 무덕과 작은 술상을 차렸다.
“잘하고 있는 모양이네?”
“네. 사형. 다만 이번에 실력자들이 많아서 매화검수를 뽑는 일이 힘들 뿐입니다.”
“오호~ 그런 고민을 하게 할 정도라니 네 덕이 크구나.”
“과찬이십니다. 작년에 기초를 잘 닦은 아이들이 이제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저는 그냥 옆에서 잔소리만 했을 뿐이죠.”
“농담도 할 줄 알고 제법이네.”
무덕도 이제 내년 아니 며칠 후 약관이 되면 무림맹에 파견되어 강호를 겪게 된다.
“무림맹을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네. 이곳 일도 중요하지만 밖에서 저 자신을 갈고 닦을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랑생활을 권하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권해주지 못하겠구나. 때가 때인 만큼.”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제갈 사혁은 살막에 관한 것을 제외한 채 최근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살막에 대해 지금 드러내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 새로운 세력이 나타난 겁니까?”
“아직 모르겠다. 지금 그걸 조사하는 중이니까. 그보다 너는 요즘 별 일 없는 거냐?”
“저야 뭐 늘 하는 일만 하면 되니까. 별 일이랄 게 있겠습니까. 다만..... 이번에 속가제자들 들였는데 그게 좀 문제가 있습니다.”
“속가제자를 들여? 그런데 왜 난 모르는 거야? 보통 이런 건 나한테도 기별이 오잖아.”
속가제자를 들이면 보통 문파 밖에 있는 제자나 장로들에게도 기별이 가야 하지만 제갈 사혁은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대주 자리에 앉으셨다고 해서 그냥 무림맹에는 도오 사백께만 전해드렸는데요.”
봉황대 대주직을 수행하느라 바빴으니 기별을 따로 안했을 수도 있지만 약간 소외감 같은 걸 느꼈다.
“그래 계속 말해봐. 속가제자가 뭐?”
“사형께서 강호에 이름을 떨치신 덕에 예년에 비해서 여제자들이 많아졌는데 그게 문제로 이어져서 아시잖습니까. 우리 화산파는.......”
대충 알 것도 같았다. 그동안 화산파는 속가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여제자를 거의 받지 않았다. 받지 않았다기보다는 오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여성 무림인들 사이에게는 이미 아미파라는 여성들을 위한 선호도 높은 문파가 있다. 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화산파는 여성 제자의 비율이 낮았다.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지만 최근 제갈 사혁이 엄청난 활약을 펼쳐서 여성 무림인들 사이에서도 화산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걱정하지 마라. 사내놈들이 다 그런 거지. 본산에 여자들 많아졌다고 얼빠지는 거야 남자로서 당연한 거 아니냐.”
“무슨 소립니까. 사형.”
“아니야?”
무덕은 술 한 잔을 벌컥 마시더니 제갈 사혁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어이가 없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별거 아니네.”
“으아앙~”
여제자들이 많아졌다기에 서희 나이 또래의 제자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이 많아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의 상태가 심히 나빴다.
“울지 마! 사내자식이! 꼴사납게!”
그 중에 어떤 아이는 함께 비무를 한 남자 아이가 울자 발로 차더니 머리에 침을 뱉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나이는 고작 일곱 여덟인데 벌써부터 힘의 의한 계급화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야. 무덕.”
“네. 사형.”
“화산파 남자들은 어디 여행가서 다 죽었냐?”
화산파의 어린 속가제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여존남비 사상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무덕 교관님.”
(뭐? 교관? 이건 또 뭐야?)
엄연히 본산제자든 속가제자든 사형이라 불러야 함이 마땅한데 아이들은 무덕을 교관이라 불렀다.
“옆에 이 사람은 누구에요?”
“너희들 몇 번을 말해야 알겠느냐? 사형이라고 제대로 부르거라. 그리고 이분이 바로 무진 사형이시다.”
“오오~”
그 감탄사조차도 건방지게 들렸을 정도로 아이들은 버릇이 없었다.
“그럼 이 사람이 제갈 사혁이에요?”
(뭐? 제갈 사혁?)
“우리 아버지가 이 사람처럼만 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
막말로 동생 나아가서는 조카뻘까지도 되는 아이들이 당돌함을 넘어서 건방을 떨자 제갈 사혁은 피에 쏠리며 머리가 뜨거워져서 미칠 것 같았다.
“사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무슨 짓이냐!”
“왜요?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거잖아요.”
“맞아.”
화는 나지만 아이들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은 화산파의 속가제자 일단은 자신의 사매기 때문이다.
“사형. 가시죠. 여기 있다간 안 좋은 꼴을 보겠습니다.”
무덕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온 제갈 사혁은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어디 집안 애들이야?”
“무림세가 아이들입니다. 오대세가에 접근하진 못했지만 나름 이름 있는 집안 애들이죠. 그에 비해 사내아이들은 모두 상인의 자식들입니다. 환경부터가 다르니.....”
무림세가에서는 사내아이를 속가제자로 보내는 일이 없었다. 사내아이는 집안의 후계자기 때문에 가전무공을 배우고 여자아이일 경우에만 교육을 목적으로 무림문파의 속가제자로 보낸다.
“쟤네가 5~6년 뒤에 매화검수가 된다고 생각하면 목이 서늘하다.”
“아직 들어 온지 얼마 안 돼서 기세가 좋을 뿐입니다. 제가 잘 교육 시키겠습니다.”
이럴 때 어린 시절 운대관의 교관이었던 장개가 떠올랐다.
“장개 선생님은 언제 오시냐?”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오시겠죠.”
“오면 그 양반 골머리 좀 썩겠네.”
“가시죠. 사형.”
“그래.”
“사형! 큰일입니다!”
무덕의 안내를 받고 다른 사형제들을 만나려는 그때 평검수 하나가 경공을 펼치며 제갈 사혁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큰일입니다! 만공 어르신이 크게 다치셨습니다.”
만공이 다쳤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서둘러 경공을 펼쳐 만공이 머무는 화산파 끝자락으로 향했다.
“사형!”
만공의 주거지에는 무종과 서희 그리고 평검수 다수가 있었다. 만공의 주거지를 지키는 일은 매화검수가 하는데 매화검수는 보이지 않았다.
“매화검수들은 어디 있느냐?”
무덕이 매화검수를 부르자 어린 평검수 한명이 무릎을 꿇었다.
“평검수 아진이 아뢰옵니다. 매화검수는 현재 다섯은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무덕이지만 화산파 내에서 부상자가 생긴 만큼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무덕.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네?”
하늘에 떠 있는 건 분명 두 자루의 검이었다. 분명 이기어검을 흉내 낸 검은 반으로 갈라버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 자루의 검은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기어검?”
“이기어검이 아니다. 그걸 흉내 낼 뿐이지. 다만 그것의 흉내라 하더라도 살상력은 진짜다.”
“미안하네....”
검상을 심하게 입은 만공이 평검수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나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만공 선생 어찌된 일이오?”
제갈 사혁의 물음에 만공은 고개를 저었다.
“녹옥을 연구하다가 그것을 다른 검에 붙인 후 내공을 불어넣었더니 이리 되었네.”
“녹옥을 검에 옮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굳이 검이 아니어도 됐을 텐데 어째서?”
무덕은 만공을 탓했고 만공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하네.......”
“그만 둬라 무덕. 일단 저 물건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허공을 훨훨 날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 작품 후기 ============================
후기 쓰는 거 깜빡했습니다.
일단 차별편은 끝이고 배교의 사술편이 시작됐습니다.
차별편의 내용이야 본문에서 그 내용이 나왔으니 일단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소제목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어지는 이야기니 뭐.... 별거 없습니다. 소제목이 바뀌면 전체적인 흐름도 바뀌는 다른 이야기와 달리 쭉 이번 이야기가 이어질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