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76화 (176/262)

<-- 176 회: 배교의 사술 -->

“그래도 자신의 사문이라니......”

“맹주께서도 이번 일이 터지고 아셨다. 사문의 과거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갈 사혁 본인은 멸문당하기 전 배교를 무슨 마교의 하위조직 쯤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 배교의 크기는 마교에 필적했다고 한다. 때문에 배교처럼 거대한 현판을 부수면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 마련이다.

“어차피 곧 공표가 될 테니 미리 말해주마. 배교가 마교에 의해 멸문 당할 때 그 파편이 정파와 사파에 박혀 들어갔다. 지금 현재 배교라는 조직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지난날의 모방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배교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강호에 넘쳐난다.”

제갈 사혁은 그제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새로운 세력의 등장으로 빠르게 자리이동을 하려는 무리도 있지만 원래 거기가 자리였던 자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비검파는 배교에서 무사직책을 가졌던 자가 배교 멸문 후 세운 문파. 배교의 파편 중 하나였다.

“비검파는 반드시 강호에서 지워야 한다. 만약 이번 일이 공표되지 전까지 비검파를 제압하지 못하면 맹주의 정치적 지위가 흔들린다. 현 상황에서 조직의 우두머리를 내칠 수는 없다.”

오걸은 어떻게 해서든 무림 맹주 판가량을 지켜내려 했다. 그 역시 명문정파인 개방 출신이지만 무림맹의 장로로서 판단했을 때 현 무림 맹주는 지금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혼자 멸문 시키는 게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비검파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다. 맹주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 무림맹의 장로에 오르고 맹주 자리에 올랐다. 맹주에게 비검파 문주자리는 무림맹에 보이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마화천과 호각을 이룬 너라면 피검파를 멸문 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

마화천과 호각을 이뤘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오걸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였다. 설마 마화천과의 일전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몇 살이지? 스물? 스물 셋? 젊은 시절의 흑도섬과 비견될만한 가공할 실력이야.”

“흑도섬이랑 마화천은 동급인데 왜 자꾸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 젊은 시절을 들먹이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흑도섬과 마화천은 동급이 아니다. 아무튼 쓸 때 없는 주제로 사설이 길어지기 전에 떠나라.”

삼첩지(三疊紙)를 던져주며 오걸 장로는 비검파로 떠날 것을 명했다. 제갈 사혁은 곧바로 말을 타고 비검파가 있는 지역으로 떠났다. 말을 두필이나 바꿔 타야할 정도로 고된 여정이었지만 제갈 사혁은 진양(晉陽)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 되어 진양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객잔에 들러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운기조식을 하고서 곧바로 비검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급습이라면 어두운 밤이어야 했지만 이건 급습따위가 아니었다.

제갈 사혁은 심호흡과 함께 대문에 주먹을 살짝 올렸다. 그리고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주먹을 살짝 비튼 그 순간 대문이 박살나며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대문이 있던 자리를 넘는 순간 수많은 사내들이 검을 빼들고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비검파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한 걸 떠나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갈 사혁은 눈을 감고 최대한 기감을 펼쳤지만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천천히 비검파의 연무장을 지나 대관의 문을 열려는 순간 추가 달린 사슬이 날아와 제갈 사혁의 왼팔을 옭아맸다.

고개를 돌린 순간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침이 날아오자 제갈 사혁은 서둘러 몸을 피했다. 침에 스며든 내공이 아니었다면 날아오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공격당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비검파 연무장을 두르고 있는 건물의 지붕 위에 네 명의 암살자가 웃는 얼굴을 본 뜬 기분 나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중 제갈 사혁의 왼팔을 옭아맨 자가 사슬을 잡아당기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 사슬을 끊어버렸다.

제갈 사혁은 먼저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고 네 명의 암살자는 일제히 제갈 사혁을 공격했다. 제갈 사혁은 오른쪽에 있는 암살자를 향해 호황을 집어던졌고 그가 호황을 피해내자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서 얼굴에 주먹을 후려갈겼다.

순수하게 근력만을 동원해 때린 첫 일격에 쓰고 있던 기분 나쁜 가면이 박살이 나자 맨얼굴이 드러났고 제갈 사혁은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얼굴을 향해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상대의 코뼈가 부러지며 붉은 피가 뺨에 튀기자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동료 한명이 당하자 남은 세 명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제갈 사혁에게 협공을 가했다. 하지만 일 대 다수의 싸움에 누구보다 능숙한 제갈 사혁은 그들의 공격을 흘러내며 침착하게 방어해냈다. 그러다 빈틈이 생기면 빠르고 정확하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상대의 옆구리를 찌르는 나찰로 흐름을 끊어놓았다. 한명의 움직임이 멈추자 세 사람의 합에는 구멍이 생겼고 그 틈을 타 다른 한명에게 손을 뻗었지만 미꾸라지처럼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제갈 사혁의 공격 실패는 곧 빈틈으로 이어졌고 다른 한명이 제갈 사혁의 등을 칼로 벴다. 하지만 흘러내린 것은 붉은 피가 아닌 입고 있는 옷이었다.

“!”

“!”

제갈 사혁이 검에 베이지 않자 세 명의 암살자는 당황했고 제갈 사혁은 흘러내린 옷을 찢어 가장 앞에 있는 자에게 찢어진 옷을 던졌고 그가 팔을 휘저어 옷을 거둬낸 순간 파옥권(破玉拳)으로 총 다섯 번 양쪽 가슴과 명치를 공격했다. 가면 속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공격을 당한 당사자는 태연한 척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제갈 사혁을 더욱 더 자극했다.

금나수를 펼쳐 상대를 잡아당긴 후 무릎으로 다시 한 번 명치를 가격하자 처음으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두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동시에 때리는 호아구(虎牙口)로 상대의 숨통을 끊은 후 남은 두 명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실력차이는 월등했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에서 대침 하나를 꺼낸 두 사람은 갑자기 그것을 자신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처음에는 자결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침을 찔러 넣은 순간 그들의 몸에 흐르는 내공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면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핏줄이 터질 듯 부어올라 사람의 얼굴이라 생각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야말로 괴인이 따로 없었는데 그들의 몰골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순간 제갈 사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맞고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공격을 허용한 제갈 사혁은 눈앞이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괴현상을 겪었다.

눈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을 땐 머리에 주전자를 쓰고 있었다. 분명 비검파 연무장 가운데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부엌까지 날아간 것이다.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부엌에서 기어 나온 제갈 사혁은 두 괴인의 일격에 동시에 당했다. 이번에도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갈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똑바로 서서 두 괴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딴 걸 비장의 수라고 내놓은 것이냐? 내공의 잠력 폭발로 인한 일시적인 근력상승과 내공증폭은 우리 화산파의 절기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의 몸에서는 자색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자하신공(紫霞神功)을 펼친 제갈 사혁은 도끼자루 같은 두 사람의 맹공을 멀쩡하게 몸으로 받아냈다. 절대 방어나 그와 비슷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 제갈 사혁의 모든 움직임은 그저 공격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태을미리장(太乙迷離掌)을 펼치자 엄청난 양의 내공이 터져 나와 괴인을 압박했다. 자하신공은 모든 무공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렸고 제갈 사혁은 그 힘을 제대로 제어했다.

괴인의 몸을 두르던 천은 넝마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태을미리장의 기파에 의해 온몸에 핏줄이 터져 붉은 핏줄이 몸에 드러났다.

잇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지만 이를 악물고 공격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몇 십 명이 아니 몇 백 명이 그리해왔다. 자신의 의지를! 자신의 힘을! 언제나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늘 결과는 똑같았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항상 제갈 사혁의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했다.

어깨를 뒤로 젖히고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르자 괴인의 목이 뒤로 꺾였다.

남은 한명의 괴인을 붙잡아 목을 졸랐다. 주먹으로 때려서 죽일 수도 있었고 발로 차서 죽일 수도 있었지만 목을 졸랐다. 그러한 행동으로 자하신공의 우수성을 자랑하려는 듯.

기어이 목뼈를 부러트린 뒤 제갈 사혁은 자하신공을 거뒀다. 내공이 한줌도 남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아니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본 제갈 사혁은 비검파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다. 한 가지 묘한 점이 있다면 비검파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자리에서 잠을 잔 채 죽어 있었다. 원인은 인중에 꽂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단침 때문이었다.

제갈 사혁은 서둘러 암살자들의 품속에서 단침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새끼손가락에 상처를 내 피를 모은 후 단침 몇 개에 자신의 피를 떨어트렸다. 색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비검파는 분명 무림맹을 탈단하고 배교에 붙으려 하지 않았나?”

이들은 분명 살막이 확실했고 비검파는 이제는 배교가 된 살막으로 돌아가려했다. 하지만 오히려 배교에 의해 멸문을 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비검파를 몰살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검파에서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나? 아니야 자리는 얼마든지 만들면 그만이야. 겨우 그런 걸로 이런 일을 벌일 리 없어. 뭐지? 나는 뭐를 놓치고 있는 거지?”

보통 강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다.

“목적. 목표. 사람. 물건....... 물건?”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컸다. 절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제갈 사혁은 비검파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림 문파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물건은 누가 무어라 해도 무공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검파 자체는 그리 대단한 문파가 아니었다. 판가량이라는 걸출한 정도 무림인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방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제갈 사혁은 문주 전으로 들어가 책이란 책은 전부 들고 나왔다. 어차피 이미 멸문된 문파이고 이 문파의 문주는 무림 맹주인 판가량이었다. 가져가서 조사해보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 작품 후기 ============================

사실 이번 내용은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교 단체가 무너지면 과연 배교의 인물들은 다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검파의 내력이 나왔지만 비검파는 배교의 무사가 만든 문파입니다. 배교에서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어도 그는 배교의 무공을 배운 사람이죠. 하지만 배교에 대한 정통성은 없습니다.

흑호 편 (소제목은 청하입니다.)에서 보면 배교라고 지칭한 살막도 사실 정통성은 없습니다. 결국 이 정통성이란 게 별 것도 아닌데 이들은 정통성이라는 것에 굉장히 집착합니다.

결국 과거 배교의 누구누구가 만든 문파들이 정파나 사파에서 지역 방파 정도로 있다가 살막이 배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자 정통성이라는 콤플렉스를 딛기 위해 배교로 모여듭니다.

저는 이제 제갈 사혁을 영웅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하지만 진실성 없는 영웅을 만들 생각입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기득세력이 영웅이 되면 과연 어떠한 영웅이 되는가? 그 해답을 내어보려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고 선동하는 어쩌면 우리가 TV 속에서 늘 보던 그런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기득 세력을 몰아내는 게 주인공이라면 그들을 몰아내기보다 그 계층의 정점을 찍으려는 게 제갈 사혁이죠. 철학 같은 건 없어요. 무협답게 그냥 이기는 놈이 정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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