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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77화 (177/262)

<-- 177 회: 배교의 사술 -->

제갈 사혁은 무공서라는 무공서는 모조리 챙겼다. 그리고 살막 아니 배교에서 파견한 살수들의 옷을 뒤져 비검파가 배교에 의해 멸문 당했다는 증거를 가져갔다.

“이게 뭐야? 무슨 냄새야?”

비록 냄새는 나지만 배교의 살수들이 지닌 물건 중 그럴 싸 한 것이라고는 숫자가 적힌 명패뿐이었다.

비검파가 무림맹을 배신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보다 배교에 의해 무림 맹주의 사문이 멸문 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모양새 좋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태로 정사대전이 터진다면 예전과 같은 3파전이 아니라 4파전 구도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복잡한 구도 속에 무림맹의 맹주가 사문과 관계된 일로 신뢰를 잃는다면 무림맹 나아가 판가량을 지지한 화산파에도 그리 좋지 못했다.

“이 정도면 됐고.”

무공서란 무공서는 모조리 다 챙긴 제갈 사혁은 타고 온 말이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타고 온 말을 팔고 그 돈으로 마차를 타고 갔다. 비록 작은 문파지만 무공서의 양이 제법 많아 말을 타고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차를 타고 사천으로 가는 동안 제갈 사혁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일단 무풍대와 망화각을 동원해 흑운 공주가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흑은 공주를 하오문 문주로 만들었는데 이대로 그 유용한 끈을 잃을 수 없었다. 하오문은 점조직이고 고작 문주가 있던 곳이 급습 당했을 뿐 하오문이라는 세력 자체는 아직도 건재했다.

(그리고 배교의 목적은 마교가 분명해. 하지만 아무리 배교의 정통성을 주장해도 고작 살수조직이 본바탕이었던 주제에 마교를 상대로 싸울 순 없어. 비검파를 멸문 시킨 것도 그렇고 이 무공서들 안에 뭔가가 있어!)

하오문과 끈만 예전처럼 이어진다면 이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횃불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살막이 하오문을 공격한 이유도 알아야했다. 하오문은 정사 중립문파다. 달리 말하면 공격할 수 없는 문파라는 뜻도 된다. 마교를 제외하면 사실상 무림맹과 흑사련은 하오문의 힘이 상대방에게 기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하오문을 공격하거나 흠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새끼들은 대놓고 흑운 공주를 노렸단 말이야.)

배교가 살막이었던 시절 살수 가울을 고용해 흑운 공주를 노린 전력은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흑운 공주의 반대 세력에서 암살 목적으로 고용한 거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행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는 그때 갑자기 마차가 멈춰서고 마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 마차는 말 한필을 팔고 혼자 이용하기 위해 구입한 마차였다.

제갈 사혁은 마차 지붕을 부수고 박차고 튀어나왔다.

‘웬놈들이냐?’ 같은 상투적인 말따윈 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여기에 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 궁금증을 제외하면 자신에게 해를 입힐 곳은 배교뿐이었다.

마차 밖으로 나오자 웃는 얼굴 모양의 가면을 쓴 배교의 암살자들이 제갈 사혁을 향해 암기를 날렸고 제갈 사혁은 무공서가 담긴 보따리를 휘둘러 암기를 막아냈다. 무공서의 손상은 피할 수 없으나 배교는 어떠한 종류의 독을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들을 일일이 상대할 상황이 못 되기 때문에 일단 비류보(飛流步)를 펼쳐 도망쳤다.

자하신공에 의한 내공 소모는 움직이기 전 운기조식으로 어느 정도 내공을 채웠지만 죽이고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무공서를 빼앗고자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내공과는 상관없이 수적으로 불리했다.

“죽어라!”

배교 암살자의 외침과 동시의 그의 팔이 기괴하게 늘어났다.

“뭐야 저건?”

생전 저런 무공이 있다는 건 처음 본 터라 당황했지만 냉정을 유지하며 근본을 꿰뚫어봤다.

(팔만 늘어날 뿐이야. 겉모습에 속아 선 안 돼. 팔이 늘어나는 것만 빼면 단순한 장거리 공격이다.)

호황을 뽑아 긴 팔을 잘라내자 그 감각이 흡사 나무를 잘라내는 느낌이었다. 잘라낸 부위를 보니 나무로 팔이 길게 보이도록 만드는 모형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이젠 하다하다 별 재주를 다부리네.)

하지만 조심해야 했다. 비검파에서처럼 괴인으로 변한다면 또 다시 자하신공을 사용해야 했다.

복호천각(伏虎踐脚)으로 요란하게 상대의 이목을 붙잡은 후 재빨리 접근해 흡정마공을 사용했다.

“으윽!”

배교의 암살자 한명이 흡정마공에 당하자 오히려 다른 암살자는 붙잡힌 동료와 함께 제갈 사혁을 벴다.

“!”

설마 동료가 붙잡혔는데 함께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쇄골에서부터 꽤 아래로 큰 검상을 입었다. 검기에 의한 검상이기 때문에 출혈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검기에 의한 상처라 자율회복도 느리고 상처 자체도 대단히 깊었지만 제갈 사혁의 마음가짐은 상처의 깊이도 통증도 뛰어넘었다.

(이 정도 상처쯤이야. 정사대전 당시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잖아.)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보아 비검파를 멸문시킨 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들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서 가장 앞에 있는 자에게 던졌다. 그는 호황을 가뿐히 피했지만 그 행동 자체도 단순히 상대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검을 피하고 시선을 다시 제갈 사혁에게 두었을 때 이미 제갈 사혁은 그의 멱살을 잡고 이마로 들이받은 후였다.

“한번!”

“큭.......”

쓰고 있던 가면이 박살나며 피가 사방으로 튀기자 제갈 사혁은 다시 한 번 이마로 그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두 번!”

등 뒤에서 또 다른 암살자가 다가오자 멱살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흐윽!”

위치를 바꿔 암살자를 대신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을 피했지만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온 검은 기어이 제갈 사혁의 복부에 까지 닿았다.

(쳇!)

베인 것보다 찔렸을 때 따끔 거리는 통증이 거슬렸다.

손끝에 느낌이 왔는지 찔러 넣은 검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제갈 사혁은 하는 수 없이 무공서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떨어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밀려들어오는 검을 쥐었다. 내공이 스며들어 쥐고 있는 손에도 피가 흘렀지만 근력은 제갈 사혁 쪽이 우위였기 때문에 더 이상 검이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망할 검기!”

이를 악물고 검기를 이루는 기를 자신의 기로 천천히 덮은 뒤 천천히 빛을 빼앗았다.

“죽어 이 새끼야!”

빛을 잃어버린 검을 부러트린 후 제갈 사혁은 자신과 암살자 사이에 끼어 있는 시체를 주먹으로 후려갈기며 상대와 거리를 벌렸다.

“별 걸로 애먹네.”

제갈 사혁이 출혈을 막기 위해 잠시 집중하고 있는 사이 정신을 차린 암살자는 부러진 자신의 칼을 들고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다.

“어지간히 해!”

신발에 달라붙은 개미마냥 붙어대자 짜증이 난 제갈 사혁은 상대 옆구리를 향해 채찍처럼 발을 휘감아 쳤다.

갈비뼈가 부러지자 미친놈처럼 달려들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동시에 숨통도 끊어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재수 없게도 폐를 찌른 것이다. 노리고 때린 것은 아니지만 운이 좋았다.

“하아.... 개새끼들.....”

무공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경쓰다보니 평소에는 당하지도 않을 공격에 당하는 추한 일을 겪게 되자 짜증이 났다.

나무에 박힌 호황을 뽑아내고 한동안 마차로 돌아와 누웠다. 검기에 의한 부상을 자율회복하려면 조금이라도 쉬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알았지?”

그게 정말 의문이었다. 아무리 살막의 살수라지만 이건 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만약 비검파에서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괴인들과 싸울 때 같이 싸워야 했다.

“아! 이씨~”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메뚜기처럼 생긴 곤충이 제갈 사혁의 손등을 물었다.

“뭐야?”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곤충이 있을 리 없지만 아무리 봐도 메뚜기 비슷한 곤충이었다.

“이게 미쳤나!”

손등을 물리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제갈 사혁은 손바닥으로 내려쳐 곤충을 잡았다. 그러자 이상한 향내가 손바닥에서 났는데 이 냄새가 조금 특이했다.

“이게 뭐지? 맡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회복을 서두를 겸 다시 내공심법을 운용한 제갈 사혁은 새살이 돋아나자 길을 서둘렀다. 또 다시 추적자가 나타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잘 닦인 길을 이용하기보다는 험한 산길을 이용했고 기를 감지 당하지 않기 위해 경공도 쓰지 않고 순전히 단련된 육신의 힘만을 이용해 산길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밤이 되자 겨우 이름 모를 마을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기루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으~ 좋다~”

준비된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며 지친 육신을 달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손님. 소지품은 전부 한곳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새 옷을 사두었습니다.”

“당부한 일을 끝냈으면 물러가라.”

종업원이 물러나자 제갈 사혁은 탕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소집품을 챙겼다.

“응?”

소지품을 챙기려는 그때 제갈 사혁은 비검파에서 놈들에게 빼앗은 명패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이 냄새는 분명?”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분명 이 명패에서 나는 냄새는 제갈 사혁의 손등을 물었던 그 메뚜기 비슷한 곤충에서 나는 냄새였다.

“뭐지? 이게 뭔데 이런 냄새가 나는 거지?”

순간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천리충(千里蟲)이다.”

그 향이 천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충이라 부리는 이 벌레는 향이 독특해서 추적용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제갈 사혁도 실제로 그러한 생물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소협. 예향이라 하옵니다.”

잠시 천리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기녀가 제갈 사혁의 방으로 들어왔다.

“난 기녀를 부른 적이 없는데?”

“하오나 이곳은.........”

‘하오나’라고 말하며 눈망울을 반짝이는 기녀를 본 순간 제갈 사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인지라 기녀의 체면이 상하지 않도록 제갈 사혁은 돈을 쥐어주고 기녀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런데

“뭐야?”

흑의를 뒤집어 쓴 배교의 암살자가 창문을 깨고 제갈 사혁이 머물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꺄아~”

기녀가 비명을 지르자 배교의 암살자는 암기를 던졌고 제갈 사혁은 재빨리 기녀의 허리를 붙잡고 반대편 벽을 주먹으로 박살냈다.

“어머~”

“뭐여!”

그러자 반대편 방에서 거사(?)를 치루고 있는 노인과 기녀가 서둘러 이불로 몸을 가렸다.

“영감님 대단하십니다!”

암살자에게 쫓겨 도망을 치고 있는 와중에도 제갈 사혁은 농담을 하며 다음 방의 벽을 주먹으로 박살냈다. 오늘밤은 정말 편히 지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토요일에는 항상 여동생이 컴퓨터를 해서 글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후기를 써도 현재 시간 6:46분 여러분은 무한도전을 보고 계시겠죠....

이번편은 제갈 사혁이 암살자들에게 추적 당하는 게 주 내용입니다.

천리충이라는 이름은 제가 지은 거지만 벌레의 냄새로 사람을 추적하는 건 무협에 자주 나오는 내용입니다.

근데 이거 보통 무협에서 뭐라고 부르죠? 갑자기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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