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회: 시대의 변화. -->
당소진은 크게 당황했지만 제갈 사혁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풀 수 있는 건 전부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대화였다.
새벽에 당하란의 침실에 제갈 사혁이 침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천당가는 난리가 났지만 제갈 사혁의 신분이 문제가 되어 면전에 대고 큰소리치는 것 외에 신체적 위해는 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방에 들어갔는가?”
당소진의 아버지이자 당하란의 백부인 당강위가 제갈 사혁의 멱살을 잡자 당소진의 그런 당강위를 막았다.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사혁. 아니 봉황 대주가 어쩌면 언니를 고칠 수 있을지 몰라요.”
당하란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당월찬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가주의 마음을 안 당강위는 찢어죽일 기세로 제갈 사혁을 노려봤다.
“정말 살릴 수 있는 것이냐?”
제갈 사혁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늘어놓았다. 아니 사실 이미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갈 사혁이 딱 한번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곳에서 자신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정말이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가능성에 매달릴 뿐이죠.”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
가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갈 사혁은 곧바로 일에 착수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흡정마공으로 전신의 내공을 빼놓는 방법이다. 이제 그럴 경우 당하란의 몸이 상할 수 있는데 이것을 자하신공으로 보충할 생각이었다. 이때 자하신공은 일종의 연고역할을 하게 된다. 자하신공은 필연적으로 내공소모와 함께 사라지는데 이때 내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흡정마공과 자하신공의 충돌이 걱정됐지만 지금은 사천당가의 일이 우선이었다. 사천당가에 대한 의혹을 벗기고 확실하게 무림맹의 결속력을 단단하게 해야 배교든 마교든 흑사련이든 맞설 수 있었다.
(일단 흡정마공부터.)
제갈 사혁은 흡정마공으로 천천히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사천당가의 내공을 흡수했다. 그때와 같은 부작용을 떠올리면 쓰기 망설여졌지만 천천히 자하신공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충돌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당하란이 우선이었다.
자하신공의 기운으로 장기를 보호하고 완전히 사천당가의 기운을 빼내자 흡정마공을 거두고 천천히 자하신공을 멈췄다. 그리고 당하란의 몸속에 있는 자하신공의 기운은 아무런 문제없이 천천히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며 제갈 사혁이 뒤로 물러나자 사천당가의 사람이 당하란의 상태를 살폈다.
“변화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내공이란 내공은 전부 자하신공에 의해 빠져나간 터라 제갈 사혁은 많이 지쳐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설명을 하려는 그때 사천당가의 사병과 봉황대가 들이 닥쳤다.
“가주님!”
“대주님!”
제갈 사혁은 미행을 떠난 손조현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밖으로 나가자 이미 사천당문의 입구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 아수라장을 만든 원인이 매도(賣濤). 실영(失令). 진천(震天). 모두 사천의 방파 의심할 여지없는 정파였다. 그것을 넘어 무림맹의 방파 3석을 차지하고 있는 무림맹의 중요 문파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모르옵니다. 갑자기 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당월찬은 검을 뽑아들었다.
“어서 대열을 갖춰라!”
일이 이렇게 되자 제갈 사혁은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흡정마공만 사용할 수 있으면 싸우면서 내공을 보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기조식에 들어가던 중 그만 입에서 피를 내뱉었다.
“푸웃!”
“사혁!”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당소진이 제갈 사혁을 살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당소진의 물음에도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젠장!)
“으으.....”
처음에는 흡정마공과 자하신공이 충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건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 영.”
제갈 사혁은 엄청난 통증에도 이를 악물고 누군가를 불렀다.
“초영!”
피를 내뱉으며 초영을 부르자 초영은 서둘러 제갈 사혁을 부축했다.
“대주님. 괜찮으십니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말이라도 걸지 않으면 제갈 사혁이 정말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검을 줘라!”
“하지만 지금 대주님께서는......”
“어서!”
이상했다. 분명 화를 내는데 평소와 다르게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초영.”
“네. 대주님.”
“잘 봐라. 보고 그 눈에 담아둬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제갈 사혁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외쳤다.
“봉황대는 들어라!”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갈 사혁의 외침에 봉황대는 일제히 제갈 사혁을 응시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그것은 언제나 최고의 명령이었다.
명령을 내린 직후 모두의 시선이 전장으로 향하자 제갈 사혁은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대주님!”
초영이 제갈 사혁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절했다.
“초영.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리를 이끄는 자는 어떤 순간이 와도 약해보여선 안 된다.”
초영의 눈에 비치는 그는 정말 고집쟁이였다. 검을 지팡이처럼 의지해 일어나도 될 텐데 기어이 두 다리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충분히 약한 모습 보이셨습니다.’라고 농담을 할 수 없었다.
“초영. 내가 내린 명령이 뭐지?”
그 질문에 초영은 말없이 도끼를 뽑아들었다.
초영의 뒷모습을 보며 제갈 사혁은 온 신경을 내부에 집중했다. 몸에 내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하신공으로 인해 한줌도 남지 않았어야 할 내공이 말이다.
운기조식도 할 수 없었고 기본적인 호흡으로 모울 수 있는 내공도 이 정도로 존재할 순 없었다.
형태로 규정짓는다면 작은 구슬과도 같았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 느낌 그것은 당가의 내공이었다. 하지만 자하신공의 내공상실은 절대적인 것이다. 자하신공을 쓰고 난 직후에는 도검불침에서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하란에게 흡수한 당가의 내공은 달랐다. 끝까지 몸에 남은 것이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해.)
이 당가의 내공 때문에 현재 통증에 시달렸다. 제갈 사혁은 어떻게든 이 내공을 밖으로 배출하려 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내공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며 내공을 모아 당가의 내공을 몰아내려고 한 순간 작은 구슬 형태의 내공이 산산이 부서졌다.
한편 전투를 진행 중이던 매도방 방주는 쉽게 꺾이지 않는 사천당가의 저력에 이를 갈았다.
“사천당가의 전력이 보고 받은 것보다 대단하군.”
“사천당가가 아니네. 무림맹의 봉황대네.”
진천방 방주는 이 전투의 가장 큰 줄기를 잡아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게 저 계집이야.”
바로 초영이었다.
“흥! 계집 따위가.”
그런 초영을 보며 매도방 방주는 콧방귀를 끼었다.
“작전은 실패한 건가?”
실영방 방주가 작전을 언급하자 매도방 방주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작전 따위 성공하면 어떻고 실패하면 어떠한가? 어차피 억지로 이어 붙여 만든 건데.”
“당가 그 계집이 이 일로 콧대가 꺾였으면 좋겠군. 연합 내에서도 그 계집은 너무 건방져.”
“주공 천주만 아니면 진작 죽을 텐데 말이야.”
그들이 말하는 당가는 바로 당하령이었다.
“슬슬 우리도 싸워야겠군. 수가 너무 많이 줄었어!”
봉황대와 사천당가가 힘을 합쳐 방파 삼 세력을 몰아붙이는 듯 했지만 각 방파의 방주들이 싸움에 끼어들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방파라고는 하지만 그곳의 우두머리를 지닌 자들 특히 무림맹의 장로까지 지닐 정도의 저력 있는 방파의 방주는 그 실력에 있어서 여태 다른 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계집부터 없애주지!”
매도방 방주가 초영을 공격하자 그 순간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기며 초영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대주님..........”
여인의 뺨을 붉게 물들인 건 사내를 향한 여인의 마음이 아닌 사내의 피였다.
“네 놈은 뭐냐?”
이름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일격이었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 뒤로 밀려난 매도방 방주는 젊은 놈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제법이구나.”
“내 앞에서 제법이라는 말 지껄인 놈들 중에 살아 있는 놈은 없다.”
제갈 사혁은 초영의 옷을 잡아당겨 피범벅이가 된 손을 닦았다. 검상은 조금씩 눈에 보일 정도로 아물어가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호황을 뽑아들었다.
“너도 이제 곧 죽겠네.”
제갈 사혁이 호황을 휘두른 순간 주변에 있던 자들이 모두 제갈 사혁의 검격에 휘말렸다.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 화산파? 그럼 네놈이 바로 그 제갈 사혁이냐?”
제갈 사혁이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호황에 맺힌 피를 닦으며 매도방 방주를 무시했다.
“화산망종이라더니 듣던 대로 가관이구나.”
“그게 아니지.”
“뭐?”
“넌 지금 나한테 살려달라고 해야지.”
“이런 미친놈!”
매도방 방주가 제갈 사혁을 향해 달려들려고 한 순간 초영이 매도방 방주의 목을 쳐버렸다.
“여기는 혼자 싸우는 곳이 아니다. 멍청아.”
그리고는 나머지 두 명의 방주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 거렸다.
“죽고 싶은 놈부터 튀어나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오만한 모습이었지만 초영은 이를 악물었다.
(평소의 대주님이라면 검에 피가 묻을 리 없다.)
제갈 사혁과 같은 자의 검은 눈 깜빡할 사이에 적을 베기 때문에 절대 적의 핏물로 날을 혹시키시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제갈 사혁은 검을 닦고 있었다. 일부러 여유 있는 척 상대에게 보여주는 허세이며 동시에 그러한 행위를 함으로서 스스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대주님!)
============================ 작품 후기 ============================
기합 좀 넣어서 두편 연재했습니다.
두편을 넣은 이유는 (오늘 연재하게 될 부분.) 너무 말로 설명하는 지루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꼭 두편을 쓰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죠죠..... 아니 독자! 나는 작가를 그만 두겠다!
이제 원래 직업인 전업 백수로 돌아가 밀린 빨래에 설거지 청소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