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회: 시대의 변화. -->
초영은 제갈 사혁이 걱정됐지만 당사자인 제갈 사혁은 절대 동요하지 않았다.
(내공이 부족할 뿐. 그런 사소한 것만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최고의 상태다.)
절대 정상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초영은 봉황대 대원들에게 신호를 주어 제갈 사혁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해 정면으로 오는 공격 이외에는 전부 차단해 제갈 사혁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예전의 봉황대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상향평준화된 지금이라면 전체가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당가의 내공을 잘 못 흡수해서 생긴 통증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중요한 외공이 유지되지 않고 있었다. 외공을 자연스럽게 이루려 해도 당가의 내공이 외공이 구축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수와 다수의 난전인 만큼 제갈 사혁은 과장된 몸짓으로 검을 휘둘렀고 이는 기량이 부족한 상대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
“우리가 밀리고 있소. 더는 날뛰게 두어선 아니 되오!”
“맞는 말이오. 더 늦기 전에 협공합시다.”
남은 두 방주가 제갈 사혁을 노리자 사공신과 손조현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두 사람이지만 문파를 이끄는 수장인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룻강아지 주제에!”
“그 정도 실력으로 우리와 맞서려 하다니 아직 멀었다!”
사공신과 손조현이 위험에 빠지자 제갈 사혁은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물러서 있어!”
“대주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물러서!”
내공도 평소보다 부족하고 외공도 유지할 수 없지만 제갈 사혁은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항상 몸을 단련해왔다. 하물며 지금 이 상황을 최악이라 가정할 수는 없었다.
(팔 다리는 멀쩡하잖아.)
제갈 사혁에게 최악의 상황이라는 건 육신이 자신의 의지를 따르지 못했을 때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에 불과했다.
(좋아. 문제없어.)
주먹을 움켜쥔 제갈 사혁은 호황을 집어넣었다.
“덤벼라.”
무기를 넣었지만 두 방주는 제갈 사혁이 권법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들의 반 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미 그 실력은 전 무림이 인정한 강자.
그들도 제갈 사혁을 눈앞에 두고 한 단체의 수장으로서 손잡이를 꽉 주었다.
“하앗!”
“앗!”
두 방주가 먼저 공격해 들어오자 제갈 사혁은 두눈을 부릅뜨고 주먹으로 검을 쳐냈다.
평소에도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외공을 믿기 때문에 늘 여유를 잃지 않는 반면 외공을 잃고 상대적 여유도 없는 지금은 단련된 육체와 정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검기가 서린 검과 직접 마주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조금 남아 있는 내공을 이용해 손을 보호한 후 손바닥으로 검을 감싸 부드러움으로 힘을 제압했다.
직접적인 방어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게 대부분이었고 공격을 흘려낸 후 틈이 생기면 그 틈새 사이로 공격을 퍼부었다.
“이.... 이놈이!”
몸통보다는 검을 쉰 손목이나 팔뚝을 집요하게 노렸다. 평소처럼 힘이 넘치는 강력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상대에게는 하나하나 집요하고 성가신 공격뿐이었다.
“정말 빈틈없군. 힘이 부족하면 기술로서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무림인의 표본 그 자체야.”
두 방주와 겨루는 모습을 본 당월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저렇게 가르치고 싶을 정도로 제갈 사혁은 이상적이며 모든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었다.
“이것도 한번 받아봐라!”
실영방 방주가 상청인(上淸印)을 펼치자 제갈 사혁은 왼팔로 급히 상청인에서 뿜어져 나온 장력을 막아냈고 그로인해 기세가 꺾였다 생각한 두 방주는 동시에 변칙적인 공격으로 압박에 들어갔다. 하지만 고작 그런 공격으로 기세가 꺾일 제갈 사혁이 아니었다.
칠객 송수겸의 일격에 비하면 이런 건 이 악물고 참아낼 가치도 없었다.
육합권법(六合拳法)의 초식을 적용해 두 사람의 공격을 전부 막아낸 뒤 검기 손가락을 세워 실영방 방주의 상복부를 찔렀다.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자 남은 진천방 방주의 무릎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무릎을 꿇자 제갈 사혁은 두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숨통을 끊어버렸다.
“대주님이 적의 숨통을 끊으셨다! 모두 대주님을 따라라!”
초영은 이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해 적의 전의를 꺾으며 동시에 봉황대의 사기를 불러일으켰다.
침입자들은 믿고 있었던 세 명의 방주가 당하자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려 했고 사천당가의 사병들은 본가를 지키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하다가 도망치는 적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죽였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제갈 사혁은 구함마의 부축을 받으며 당월찬과 마주했다.
제갈 사혁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것을 빠르게 정리했다.
“추적충과 관련된 것은 무고하다 보고를 하겠습니다.”
“모든 증거가 당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 사람은 자네가 아니었나?”
“제 이름을 걸고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강호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오늘의 일 당가는 기억하리라 믿겠습니다.”
제갈 사혁은 사천당가가 적들의 공격을 받았단 사실을 당월찬에게 상기시킴으로서 사천당가는 반드시 무림맹의 일원으로서 함께 싸워야 한다는 뜻을 못 박았다. 괜히 도움을 요청했다가 상대 쪽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갈 사혁이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사천당가를 쳐들어온 방주들 때문이었다. 아직 물증 없지만.
(무림맹에 가면 알 수 있겠지.)
말을 타고 서둘러 무림맹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곧바로 봉황 대주 신분으로서 직속상관인 군사 여망상 그리고 무림 맹주 판가량과의 대면을 청했다.
“무슨 일인가?”
“당가의 독충에 대해 조사한 문파가 어디입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독충이 당가에서 나온 것이라 조사한 문파가 어디입니까?”
제갈 사혁이 ‘문파’라고 확실히 못을 박자 여망상은 인상을 구겼다.
“진천방에서 조사했네.”
바로 이게 그 물증이었다. 사실 이번 일은 제갈 사혁도 경솔했다.
독충을 가져오고 그것에 대해 조사를 한지 채 한시진도 아니 반각도 되지 않았다. 독충의 출처가 사천당가라는 것에만 매달려 조사 시간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도방과 진천방 그리고 실영방이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사천당가를 무단으로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배교와 연이 닿아 있었습니다.”
정말 배교와 연이 닿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천당가를 음해하려 했던 정황상 배교로 넘어갔다고 봐야 했다.
“군사. 지금 당장 매도. 진천. 실영의 장로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오게!”
제갈 사혁은 당하란과 당하령 사건을 맹주 판가량에게 말해 사천당가가 무고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단순히 봉황 대주로서의 일방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지만 판가량은 당가라는 전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제갈 사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할 말이 무엇인가?”
“일전에 저와 하신 약조를 시켜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아직 불가하네.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고 또 지금 상황에서.”
“지금 상황이기 때문에 부탁드리는 겁니다. 후임은 따로 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해둔 사람이 있는가?”
제갈 사혁이 침묵하자 판가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여망상이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왔다.
“맹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매도방. 진천방. 실영방이 세 방파가 배교로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봉황 대주가 가지고 온 비검파의 무공서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무공서 관리를 하던 자들은 누구인가?”
“그것이........”
분위기로 보아 매도방이나 진천방 아니면 실영방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완전히 당했군.”
실제 지난생애 정사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배신자들이 출몰한 적은 없었다. 그 당시 정사대전은 청하의 죽음으로 인해 무림맹이 마교와 전면전을 펼치고 거기에 흑사련이 가세한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은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한 가지 더 일어났다.
흑사련의 초지강(草地姜)이 배교의 천주와 싸워 패배한 것이다.
칠객이라 불리며 오랜 세월 흑사련의 최강자들이라 불린 이들이 여섯이 되고 다섯이 되고 기어이 칠객(七客)에서 사객(四客)이 된 것이다. 배교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정파에서 배신자들을 꼬여내 끌어 모으는 식으로 정파를 공격했지만 오늘 드디어 칠객 중 1인인 초지강을 죽임으로서 흑사련을 도발하기에 이르렀다. 무림 삼대 세력의 시대가 서서히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후기에 달리 쓸 말은 없고 오늘이 넘어가지 전까지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