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회: 강호분란. -->
다시 원래의 숙소로 배정 받았지만 한동안 안 온 것치고는 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 맞다. 사부가 없는 동안 사부한테 연락 왔었어요.”
“무슨 연락?”
“풍월 객잔 점소이라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물건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고.’ 이렇게요.”
“뭔소리야?”
“몰라요. 저도.”
“설마?”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제갈 사혁은 곧 이기어검을 흉내 내는 배교의 검을 떠올렸다.
(그거 찾으러 다니는 거면 아직 양산화는 되지 않았나 보군.)
짐을 풀고 무림맹 내부를 돌아다니는 동안 제갈 사혁은 출사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장로 3석을 차지한 방파 세 곳이 탈단했으니 그만큼 출사의 수도 줄었지만 문제는 문파로 귀환한 무림인의 수다.
정사대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무림맹을 위해 출사로서 일하지 않는 것을 택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갈사 소협!”
청하의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 순간 갑자기 청아가 안겨서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뭐! 뭐예요. 갑자기?”
“그냥 반가워서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옆으로 다가온 청하는 제갈 사혁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 앉아 노닥거렸다.
“요즘 사람들 많이 빠져나갔네요.”
“겁쟁이는 빨리 사라져주는 게 좋죠.”
“동감이다. 겁쟁이는 빨리 사라져주는 게 좋지. 모두를 위해서도.”
“사숙.”
청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왼팔 소매를 펄럭거리며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무당파 도복을 입은 외팔의 검사. 그가 바로 정파 최고의 검사라 불리는 검현군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사숙이라 했지.)
나이는 청하의 스승인 성제진인보다 검현군 쪽이 10살가량 많지만 무당파 입문 시기에서 차이가 커 나이가 적은 성제진인 쪽이 사형이었다.
“청하의 연인이라는 그자냐? 화산파의? 장차 좋은 곳에 시집가겠구나.”
“사숙!”
“길잡이 좀 해주거라. 작은 사형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무림맹에 온 게 20년 만이라 길이 어둡구나.”
“그럼 나중에 봐요.”
청하가 떠나자 제갈 사혁은 미친 듯이 웃음을 참았다. 한수 아래라 평가 받는 추백성은 호랑이가 연상될 정도로 정말 무섭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아니 제갈 사혁은 미칠 것 같았다.
“흐하하하~”
기어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동시에 옆에 있던 기둥을 주먹으로 쳐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보통 정파인이 검현군을 봤다면 존경심을 가질 테지만 제갈 사혁은 달랐다.
“정파 최강.....”
(그것도 별 거 아니네.)
어렸을 때부터 그에 대한 소문은 하나의 신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니 다시 태어난 뒤 만난 검현군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 강함은 그런 것이었다.
(그럼 흑도섬은 어느 정도지? 그의 팔을 잘라낸 교주는 또 어느 정도고.)
마화천과도 일전을 가졌지만 사실 마화천과 흑도섬의 간격차이가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비교해본 바 마화천과 검현군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불타오른 호승심은 주위 사람들을 겁주기 충분했고 그 누구도 제갈 사혁의 곁에 가려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렇게 살기가 짙어서 도사라고 할 수 있겠나? 자네.”
“당신은.....”
정협(正俠) 함진(喊陳). 소림의 속가제자로 후일 흑도섬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파의 최고수.
“오랜만이군. 그쪽이 그 소문의 제자?”
함진이 이신을 가리키자 제갈 사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협이 흑도섬과 비견될 만한 고수가 되는 건 아직이다.)
정사대전을 통해 엄청난 실력향상을 이룬 자들이 많은데 그 중 한명이 바로 함진이었다. 제갈 사혁도 그렇기 때문에 그를 존경했던 것이고.
“어쩐 일이시죠?”
“무진에게 연락이 안 되니 소림사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가 돼버렸지. 그래서 밥값하려고.”
밥값이라면서 꺼낸 것은 무림맹 군사인 여망상의 친필이 담긴 서찰이었다.
“출사를 하시기로 한 겁니까?”
“그렇지 뭐.”
확실히 제갈 사혁이 청하를 구하고 정사대전을 막았지만 함진의 등장은 그 시기가 비슷했다.
“그런데 말이야.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내가 잘 못 봤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현재 제갈 사혁은 사천당가에서 흡수한 당가의 내공 때문에 도검불침을 이룬 외공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장생전(長生殿)에서 내게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을 허락했기 때문이지.”
장생전은 소림의 원로들이 있는 자리다. 그런데 그곳에서 속가제자에게 무상대능력을 허락했다면 이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함진을 통해 소림이 무림맹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당가의 내공. 맞나?”
“네.”
“얻은 게 아니군.”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당가의 무공은 당가의 핏줄이 아니면 익히지 못해.”
그 말은 즉 현재 제갈 사혁의 몸에 일어난 반응이 일종의 거부반응이라는 뜻이었다.
“당가는 오랜 세월 독에 내성을 갖기 위해 일정량의 독을 몸에 주입했지. 내 관점에서 봤을 때 당가만큼 미친놈들도 없어. 독으로 무공을 연마하다니 그거 미친 짓이야. 독은 독이야. 뭐 독을 소량만 주입하면 약이 되네 뭐네 지껄여도 몸에 안 좋은 걸 계속 쳐 넣고 있으니 몸에 이상이 가는 건 당연하지.”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독에 대한 내성도 유전되는 거지. 그래서 당가의 내공 자체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형태? 순간 제갈 사혁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분명 그는 형태라고 말했다.
“구슬 같은 모양 말입니까?”
“아직 구슬인가보네.”
함진은 당가의 내공 그리고 그 형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소림은 각 내공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하고 있어. 각 문파의 비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대외적으로 나와 있는 내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그 당가의 내공이라는 것도 사실 사천당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잖아.”
“치료 방법도 아십니까?”
“묘효(妙孝) 사숙을 찾아가면 치료할 수 있겠지.”
묘효대사는 소림 방장의 사제로 소림사 내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현재 강호유랑 중이다.
“그 분이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광동성(廣東省).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광동성에 가면 그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제갈 사혁은 한시가 급했다. 도검불침이 중요하냐 묻는다면 당연히 중요했다. 그 도검불침이 있기 때문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당가의 내공 때문에 제대로 된 운기조식도 할 수 없었다. 자하신공을 사용해도 당가의 내공은 꾸준히 남아 있었고 게다가 내공끼리 충돌까지 일어난다. 몸속에 벽력탄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화산파에서 치료를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제갈 사혁이 모르는 화산파의 무공은 없었고 그 어떠한 내공 심법으로도 당가의 내공을 밀어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까지는 없어. 다만 네가 그분의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 문제지.”
치료 방법만 안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갈 사혁은 광동으로 떠나기 전 사문에 서찰을 남겼다. 치료 목적으로 광동성을 가는 거지만 그곳에서 묘효대사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게 반드시 무공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산파라는 사문을 두고 있는 이상 작은 것 하나 하나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됐다.
“걱정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물론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도 써놓았다. 아무래도 대사형 일도 있고 해서 있는 사실을 상당히 축소했지만 그래도 스승님이라면 그러한 사실도 눈치 챌 가능성이 높았다.
“오랜만이에요. 여행은.”
사실 그동안 말이 좋아. 협객행이었지 출사 임무를 빙자해서 여행을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신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가면 광동 요리도 먹을 수 있을까요?”
사부가 치료 목적으로 가는데 먹는 것 생각부터 하다니 이럴 때는 그 나이 때 애들 같아서 좋다고 해야 할지 철이 없다고 혼을 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여행 준비 중 누군가 문을 두들겼고 문을 열어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초영이었다.
“초영. 어쩐 일이야?”
“대주님께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이제는 대주가 아니지 대주는 초영이잖아.”
“호칭 문제는 그냥 넘어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초영은 제갈 사혁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찾아와서 건네주는 걸 보면 봉황대와 관련된 일은 아닌 듯 했다.
“이거 정말이야?”
“네.”
안 좋은 소식이 둘이나 있었다.
하나는 제갈 사혁이 죽인 세 명(정확히 두 명이지만)의 방주와 관련된 일인데 방주의 죽음 이후 각 세력이 배교에 확실하게 복종했다는 내용이었다.
(하긴 부귀영화를 찾아 정파를 배신했는데 그것을 주도한 우두머리가 없으니 배교에 완벽하게 충성서약을 하는 건 당연하겠지.)
이 정도까지는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어차피 그리 중요한 내용도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바로 두 번째였다. 제갈 사혁 봉황대를 통해 명령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칠객 중 한명인 초지강을 죽인 배교의 천주와 관한 것이었다.
살막의 천주 강위(强位).
제갈 사혁은 얼마 전까지 그를 이렇게 불렀다.
“흑호(黑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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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쉬었다가 다음편도 올리겠습니다.
3시간 밖에 잠을 못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