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87화 (187/262)

<-- 187 회: 강호분란. -->

흑호가 배교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절대 그들과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살려두었는데 이렇게 뒤통수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대주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알아봐줘.”

“대주직이 아니시더라도 언제나 부탁하시면 저희는 어떤 부탁이든 몸소 이뤄드리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봉황대 대주직을 허투루 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제갈 사혁이었다.

“강위를 조사해줘.”

“네?”

“그는 장년의 노인이야. 과거에 흑호. 아니면 강위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을 거야. 아무튼 현재가 아닌 과거를 조사해줘.”

“알겠습니다.”

흑호가 배교에 붙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어쩐지 이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쳇..... 돌겠네. 서희 앞에서는 별 멋진 척을 다했는데.....)

그렇게 제갈 사혁은 찜찜한 마음을 안고 광동으로 떠났다. 호남을 지나 광동으로 가는 게 안전하지만 제갈 사혁은 일부러 귀주와 광서를 지나 광동으로 떠날 생각을 했다. 이미 무림 삼대 세력 중 무림맹과 흑사련이 배교로 인해 긴장상태에 돌입했지만 이럴 때야 말로 협객행을 나설 때였다. 실제로 제갈 사혁도 지난생애 정사대전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시기에 협객행을 나서 밑바탕을 잘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 챙겼지?”

“네. 사부.”

“좋아. 간다.”

제갈 사혁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때 갑자기 방 안으로 청하가 들어왔다.

“어디가요?”

청하는 바둑판을 들어왔는데 모양새로 보아선 제갈 사혁과 놀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광동에 갑니다. 청하 소저.”

“광동에는 왜요?”

딱히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자신의 몸 상태와 광동에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요.”

그러면서 청하는 바둑판과 바둑알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화났어요?”

“아니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하는 행동은 어쩐지 화가 난 듯 보였다.

(뭐야?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꺼림칙했지만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물어보기 뭐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청하 누나. 자리 비워도 괜찮아요.”

훈련을 제외한 봉황대 정식 임무 때 동행하지 않고 줄곧 청하와 지냈던 이신은 청하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었다.

“출사 임무를 중지 당했거든 바쁘지 않아.”

사실상 일이 이렇게 되면 출사는 오직 무림맹의 직접적인 임무 이외의 평범한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 청하가 하는 일은 대부분 도적 떼 퇴치와 자연재해로 피해 입은 마을 복구 활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 전면 금지 당한 상태였다.

“광동요리 먹고 싶다.”

청하가 갑자기 광동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제갈 사혁은 기회란 듯 외쳤다.

“도착하면 제가 마음껏 사드리죠.”

“얻어먹을 만큼 돈이 없진 않아요.”

“..........”

정색하면서 목소리 음약만 밝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제갈 사혁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사천의 경계를 지나 귀주에 당도하자 제갈 사혁은 돈을 쥐어주고 지나가던 소금장수 행렬에 끼어 흑사련의 눈을 피했다. 귀주는 흑사련의 본거지가 있는 만큼 사파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귀주의 경계를 지나 제법 큰 마을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객잔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귀주요리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고기 위주의 식사였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기다렸다는 듯 객잔에서 싸움이 나자 이신은 먹으면서 저들이 싸우는 걸 구경했다.

“저기 봐요. 의자 들었어요!”

“의자 드는 건 촌놈들이나 하는 거야. 술병을 들어 야지.”

“의자가 더 단단하지 않아요?”

제갈 사혁과 이신은 토론까지 해가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구경했다.

“안 말려요?”

안 말리냐는 청하의 말에 제갈 사혁은 고개를 저었다.

“청하 소저도 그러지 말고 구경해요. 남의 싸움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리고 남들 싸우는데 끼어들어서 뭐해요.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술집에서 일어나는 흔한 싸움 같았지만 칼을 빼들고 나서는 살인으로까지 어이지려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무림인이 제갈 사혁과 청하 그리고 이신에게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이 없었다.

“사부. 저게 사파의 무공이에요? 정파하고 별로 다를 게 없네요.”

“너 미려랑 같이 흑사련 놈들이랑 싸워 봤다며 꼭 사파 무공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한다.”

“그때는 이렇게 느긋하게 구경할 수 없었으니까요.”

“정파 무공이랑 사파 무공이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건 아직 네가 보는 눈이 여물지 못해서 그래. 조금만 더 경험이 쌓이면 차이는 금방 보일 거야.”

칼을 빼들자 하수들 간의 싸움답게 먼저 칼에 베인 쪽이 물러나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

싸움에서 이긴 쪽은 영웅이라도 되는 양 거만한 말투로 손사래를 쳤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내 오늘 기분이 좋으니 오늘 여기 술값은 본인이 전부 계산하겠소!”

술값을 전부 계산한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고 은근슬쩍 제갈 사혁은 여기서 가장 비싼 음식을 시켰다.

“왜 안 말리나 했는데 이런 이유였어요?”

“정파 구역도 아닌데 내가 저놈들보다 힘 좀 쓴다는 이유로 끼어드는 것도 우습잖아요.”

“난 보통 저런 일 생기면 뜯어 말리기 바빠요. 객잔에서 싸움질이라니 꼴불견이잖아요.”

“괜히 끼어들면 그것도 피곤해요. 저기 봐요. 왔네.”

말하기가 무섭게 객잔 문을 걷어차고 거한의 사내가 쳐들어왔다.

“저 놈입니다. 사형.”

방금 전 싸움에서 진 자가 사형을 데리고 온 것이다.

“슬슬 일어나죠. 일 복잡해지니까.”

“정말 이대로 일어나요?”

“도와줘요? 청하 소저. 저 사람 알아요?”

“그건 아니지만.”

이신은 짐을 챙겨 재빨리 빠져나갔고 제갈 사혁도 이신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가면서 사형이라는 자의 혈을 짚었다.

[안 돕는다면서요?]

[누가요? 내가? 언제?]

[잘난 척은!]

그러면서 청하는 제갈 사혁의 등을 세게 때렸다.

사실 도와줄 생각일랑 전혀 없었는데 청하가 ‘정말 이대로 일어나요?’라고 말할 때 얼굴표정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마음이 약해진 것뿐 청하만 아니었으면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

“여기서 하루 묵고 가요.”

“그러죠. 뭐.”

객잔에서는 싸움이 났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기루에 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제일 좋은 방으로 하나 주세요.”

청하가 대뜸 방 하나를 잡자 제갈 사혁은 당황했지만 청하는 막무가내로 제갈 사혁을 끌고 갔다. 기루는 기녀들이 술을 따라주는 곳이지 숙박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이상한 눈치를 봐야했다.

“셋이서 자기 딱이네.”

“왜 셋이서 자야하는데요. 이신이랑 나랑. 그리고 청하 소저는 따로 방 잡아야죠.”

“왜요? 나랑 같이 자기 싫어요?”

그 말이 왜 그토록 원초적으로 들리는지 순간 사레들린 것처럼 이상한 기침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에헉! 에헉!”

“사부. 괜찮아요!”

이신은 제갈 사혁이 잘못 되었나 싶어서 등을 연신 두들겼고 그 모습을 보며 청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녁이 되자 제갈 사혁과 청하는 적당한 술을 마시고 운기에 들어갔다.

제갈 사혁은 운기에 들어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당가의 내공은 뱃속에 혹처럼 달려 있었다.

“어때요? 좀 괜찮아요.”

제갈 사혁은 과도(果刀)를 집어 새끼손가락을 그었지만 여전히 피가 났다.

“안 돼요.”

처음부터 도검불침이 아니었다면 모를까 이미 그 몸 상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외공을 잃은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마요.”

“예. 뭐 내공이 없는 것도 아닌데 별 일 있겠어요.”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청하에게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괜히 허세를 부렸다.

“사부. 온천에 안 가실래요?”

“야! 이런데 온천 후져~ 개방형도 아니고 물 아까워서 대나무 통에 온천수 넣은 후 거기에 몸 담그는 게 다 일걸.”

“그래도 전 갈래요! 화산파 온천만큼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신이 온천으로 가버리자 술도 한잔 걸쳤겠다. 둘만 남았겠다. 제갈 사혁은 마음에 걸렸던 이야기를 했다.

“청하 소저. 낮에 왜 화를 냈어요?”

“무슨 화를 내요?”

“그러니까. 출발하기 전에.”

출발하기 전이라는 말에 청하는 인상을 구겼다. 다 잊어버렸는데 괜히 그 이야기를 꺼내다니 이 남자는 정말 눈치가 없었다.

“그냥요.”

“내가 뭐 잘 못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청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가에서 일 치루고 다쳤다면서요. 그럼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아니 다쳤는데 왜 말을 해요?”

무림인이 부상을 당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일은 그저 허리에 검을 차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상대의 기를 죽이기만 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갈 사혁은 청하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이구~ 이 멍청이!”

============================ 작품 후기 ============================

사실 청하를 넣고 싶지 않았는데 요새 이야기가 너무 고체처럼 딱딱한 것 같아서 청하와 동행하면서 러브 코미디 같은 상황과 현실 같은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남자들이 뭘 잘못 한 거에요? 뭘 잘못 했기에 여자들은 잘못 했어? 안했어? 라고 묻는 거예요?

라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남자는 잘못을 해도 뭐가 잘못 된 건지 모르죠.

그리고 끝으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청하를 안 넣고 쓴 것과 넣고 쓴 것 두개를 쓰느라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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