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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190화 (190/262)

<-- 190 회: 반야신공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이신은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두 자루의 검을 발견했다. 하나는 청하가 쓰던 검이고 하나는 제갈 사혁의 검 호황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일단 호황만이라도 챙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뽑히지가 않았다.

“모르겠다. 사부가 알아서 하겠지.”

포기하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다가 문뜩 묘한 무언가 느껴져 하늘을 올려다봤다.

“!”

나무에 정말 괴상한 게 걸려 있었다.

(귀신인가?)

처음에는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처녀귀신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옷은 다름 아닌 청하의 옷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무에 걸린 사람은 청하였다.

“........”

한동안 그것을 멍하니 본 이신은.

“못 본 걸로 하자.”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청하를 못 본 척을 하고 뒷간으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뒷간에서 나오는데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 담벼락에 사람 몸이 붙어 있었다.

“?”

그것도 벽을 사이에 두고 몸 따로 머리 따로 나와 있는 요상한 형태로 말이다.

벽 뒤쪽으로 가보니 벽에 얼굴이 박힌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갈 사혁이었다.

청하는 나무에 빨래처럼 널려있고 제갈 사혁은 담벼락에 머리가 걸린 기묘한 상황.

“...........”

그 후 이신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제갈 사혁과 청하는 말없이 묵묵하게 밥만 먹었다.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정말 대단했지.)

지난 밤. 두 사람은 상대방의 무기보다 자신의 것이 최고라는 변명 아래 거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를 펼쳤다. 워낙 집중하다보니 서로를 향해 거의 죽일 기세로 검을 휘둘렀고 서로 비무라 하기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급기야 검기를 발산하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바로 그때 일어났다. 묘효 대사가 나타나 두 사람의 검을 하나씩 두 손으로 잡더니 청하는 발로 차서 나무 위로 제갈 사혁은 주먹으로 후려쳐서 날려버린 것이다.

이유는 시끄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린 건 아침밥을 짓는 냄새를 맡고서였다.

밥을 먹고 난 후 제갈 사혁은 반야신공의 이론 수업과 수행을 차례차례 이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묘효 대사를 대하는데 있어 적어도 지난날보다는 공손해졌다는 점이었다.

반야신공은 그 효과가 대단했다. 어느 정도 익힌 후부터는 불경을 이용한 묘효 대사의 음공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반야신공 덕에 음공에 내성이 생긴 게 아니라 음공의 규칙적인 울림을 잡아내서 그것에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도록 몸 속에 있는 내공을 움직였다.

반야신공의 효과를 당사자가 느끼기 힘들어 익히는 자가 드물다는 이야기가 있던 것 치고는 하루 이틀 익힌 것만으로 몸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제갈 사혁은 이것이 자신 똑똑해서 얻은 것이 아닌 묘효 대사의 가르침 때문인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음공을 끝까지 견뎌내지는 못했다.

“대사님.”

한 대 맞은 게 의식에 남아 있는지 ‘대사’라고 부르던 호칭에 ‘님’자가 붙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무엇이냐?”

“저 말고 반야신공을 익힌 사람은 몇 명입니까?”

제갈 사혁은 겨우 이틀 배웠는데도 이 반야신공의 위력을 체감하고 있었고 때문에 자신 이외에 이것의 효과를 본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다.

반야신공을 익힌 사람이 몇 명이냐는 말에 묘효 대사는 귀를 후비며 말했다.

“쌀독에 쌀보다 많다.”

“..............”

“하지만 제대로 익힌 사람은 10명이 넘지 않는다. 그 중에 네 녀석 스승도 있고 개방의 광개도 있다. 아 그래 내가 알기로는 마교의 그 치도 익혔을 거다. 이름이 어찌 되는 자더라. 어험~ 그 뭐냐 흑사련 련주 놈이랑 이름이 똑같은 놈이었는데.”

흑사련 련주의 이름은 사지성이고 그와 이름이 같은 마교의 인물이라면 딱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망지성.”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그때는 아직 마교인이 아니라서 내가 직접 가르쳤다.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가르치지 않는 거였는데 내 실수였지....... 마교인이 될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성이 올바르고 강직한 남자였다.”

원래부터 고수였던 자들이 자신의 힘을 보충하기 위해 익힌 것이 아닌 반야신공을 익힌 후 실질적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의 이름이 나오자 제갈 사혁은 반야신공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제갈 사혁은 틈만 나면 구슬처럼 단전에 쌓인 당가의 내공을 몸 밖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아직인가?”

불경을 이용한 음공을 접할 때 당가의 내공은 단전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제갈 사혁은 조용히 마당 한 가운데에서 검을 휘두르며 초식을 펼치는 이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좋겠다. 막히는 게 없어서.”

솔직히 말해서 이신의 나이가 무공을 익히는데 한참 재미가 붙을 때였다. 성장기에 들어서 힘과 속도가 동시에 성장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때문이다.

“막히는 게 없다?”

순간 제갈 사혁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혈관이었다. 의식을 가지고 아기 때의 몸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채식과 혈관을 이용한 내공 축적으로 제갈 사혁의 혈관은 단 한 곳도 막히지 않았다.

자하신공의 부작용인 완전한 내공소모로도 없애지 못하고 불경을 담아 펼치는 음공에도 배출하지 못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바로 일주천이었다. 그러고 보니 흡정마룡 위대극에게서 흡정마공의 무공서와 함께 얻었던 태을신단을 복용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날 이때까지 일주천을 행한 적이 없었다. 호흡만으로 정순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뒤 애초에 일주천이란 것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신!”

“!”

갑자기 멀리서 제갈 사혁이 부르자 소청검(少淸劍)을 펼치던 이신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사부. 왜요?”

“너 일주천 몇 번하냐?”

“저야 매일하죠. 그거 하면 피곤하지도 않고 원래 다 하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 도오 사숙조님 따라가서 보니까. 사숙들도 하루에 한번 다 하던데.”

어이가 없었다. 남들은 다 하고 있는 걸 여태까지 자신은 필요 없다며 안하고 있었다. 혈관이 계속 몸을 돌고 돌아 일주천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일주천이 아니었다.

고양이에게 줄무늬를 그려 넣었다고 해서 호랑이가 되지 않고 폭류신공이 자하신공을 따라하지만 자하신공이 될 수 없듯 말이다.

제갈 사혁은 자리를 잡고 천천히 일주천을 행하며 모든 내공을 순환시켰다. 그러자 그에 반응해 당가의 내공이 꿈틀대고 있었다. 평소보다 심하게 요동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제갈 사혁은 서둘러 묘효 대사를 찾아갔다.

“뭐냐? 오늘 해줄 것은 다 끝났다. 이놈아.”

“내공을 돌려 일주천을 하고 있을 테니 음공을 펼쳐주십시오.”

“니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일주천은 보통의 운기조식보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묘효 대사의 음공은 치료 목적이지만 어디까지나 공격성향이 짙었다. 운기조식을 하든 일주천을 하든 그걸 하다가 공격당하게 되면 백이면 백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다.

“어제 좀 맞았다고 미쳤느냐?”

묘효 대사가 주먹을 들자 제갈 사혁은 가지도 모르게 두 팔을 들어 막는 모양새를 취했다.

“니놈 치료를 해주고는 있다면 솔직히 말하면 그 당가의 내공이란 건 몸에 지니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쥐젖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운기조식을 할 때 약간의 통증이 있다는 걸 빼면 문제 될 게 없었고 도검불침의 몸을 잃은 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면 그만이었다.

“반야신공이나 배우고 천천히 치료하도록 해라. 괜한 꼼수로 몸 망가지는 수가 있다 요놈아.”

“해봐서 나쁠 것 없지 않습니까.”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있다. 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놈아. 제갈세가 아들놈이 그것도 몰라서 쓰겠느냐?”

묘효 대사 입장에서는 속가제자이긴 하지만 소림의 촉망받는 인재인 함진의 부탁만 아니면 제갈 사혁에게 가르침을 줄 필요도 없었다.

(함진이 놈 때문에 말년에 별 고생을 다하네.)

제갈 사혁이 이곳에 온다는 장원서 일꾼을 통해 전서가 도착하고 나서 다음날 제갈 사혁이 떡하니 태천사에 도착했으니 함진이 얼마나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놈은 한술 더 떠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을 부탁하고 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제갈 사혁이 주화입마라도 빠지게 되면 화산파와 소림사의 관계는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산파는 대사형 무원이 불치의 병에 걸려 두 번째 제자인 제갈 사혁을 후계자로 삼았는데 그 후계자가 소림사의 누군가에 의해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내일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쉬어라.”

묘효 대사가 정확하게 끊어내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지만 대놓고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하는 수 없이 제갈 사혁은 밤새 내공을 돌리고 돌려 일주천을 계속 하면서 당가의 내공을 건드렸다.

============================ 작품 후기 ============================

오늘 화산의협의 E북 표지에 대해 조아라 측에 전화가 왔습니다.

아직 책으로 나오려면 멀었지만.

제가 한 거라고는 그냥 글만 쓰는 일 뿐이었는데 그게 책으로 나온 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생각해두어서 지난 22일부터 쓴 1일 2차 연재는 이것으로 잠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다음 2차 연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후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오랜만에 패러디를 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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