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91화 (191/262)

<-- 191 회: 반야신공 -->

그렇게 일주천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될 듯 말 듯 할 뿐이지 확실하게 되지는 않았다.

“여인의 마음처럼 남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인가?”

“무슨 마음이요?”

일주천을 끝내자 청하가 기다렸다는 듯 매운 양념에 볶은 감자를 가지고 다가왔다.

“그런데 그거 굳이 할 필요 있어요? 대사님 말씀대로 당가의 내공 없앤다고 해도 상관없고 안 없애도 문제없는 거잖아요.”

사실 이걸 없앤다고 해도 사라진 외공이 돌아오진 않는다.

“맞아요. 약간의 통증만 제외하면 별 문제 없죠. 하지만 내 몸속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꿈틀대는 게 좀 그렇잖아요.”

제갈 사혁도 단순히 찜찜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러는 건 아니었다. 흡정마공으로 수 십 가지의 내공을 흡수해도 이미 완벽하게 흡정마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별 탈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당가의 내공만큼은 달랐다. 흡수하자마자 구슬처럼 동그랗게 모양을 갖추고 뱃속에 자리를 틀고 있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당사자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보다 이 감자 되게 맛있네요.”

“원래 다른 요리에 쓰는 양념이라는데 한번 응용해봤어요.”

“아~ 그 느낌 알 것 같아요. 백모님께서 왕도출신이라 북경요리를 많이 먹거든요. 닭요리 나오면 특히 그 양념에 만두를 찍어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런 느낌이죠?”

“아니요. 그런 느낌은 아닌데. 그냥 소금 쳐서 먹으면 별로 일 것 같아서.”

“이럴 땐 그냥 그럴 것 같다고 해주면 안돼요?”

“아닌 건 아닌 거죠. 사람은 야무져야 해요. 그래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거든요.”

청하는 정말 아닐 땐 아니라서 그녀를 상대해야 하는 제갈 사혁과 기본적으로 의견대립이 있었다.

“바둑이나 한판 둘래요?”

“바둑은 별로고 주사위? 아니면 뭐 마작? 그건 머릿 수가 부족해서 안 되려나?”

뭐 의견대립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것도 분쟁의 이유가 되었다.

“저기...... 전부터 생각했는데 갈사 소협은 도박에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도박이라니요. 건전한 여가생활입니다.”

“건전한?”

건전한? 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청하의 표정은 놈팽이 아들을 둔 어머니와 같은 표정이었다.

“돈을 거는 게 건전해요?”

“약간의 돈을 거는 것은 사나이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서일 뿐이죠. 남자는 무언가를 잃을 각오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무림과 닮아있죠.”

“아니에요. 바둑이야 말로 심리싸움의 결정판! 바둑알을 손에 쥔 순간에도 상대의 앞 수에 앞 수를 읽어야 하는 바둑이야 말로 강호무림의 축소판이죠.”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면 둘 다 지기 싫어해서 한번 사소한 대립이라도 일어나면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서로 말싸움을 하면서 자신을 지켜나갔다. 서로 누군가의 내가 되지 않고 나의 누군가로 만들거나 구속하지 않았다. 처음 무림인으로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서로의 속내를 터놓았을 때처럼.

물론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밤이 되자 묘효 대사는 제갈 사혁과 청하 그리고 이신까지 한꺼번에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왜 부른지는 알고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말은 잘하는 구나!”

갑자기 묘효 대사가 화를 내자 제갈 사혁은 물론이고 청하까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묘효 대사에게 지난 날 한방에 나가떨어진 게 머리 깊숙한 곳에 각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광동을 오려면 호남을 이용해서 와야지 귀주랑 광서를 뚫고 지나와? 정령 미친 것이냐?”

설마 그것 때문에 불렀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광동은 일반인들과 장사꾼들이 특히나 많기 때문에 무림에서도 특별히 이 지역에서만큼은 싸움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 녀석들이 흑사련의 아귀소굴을 뒤집어 놓은 덕에 지금 난리가 났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제갈 사혁은 이게 묘효 대사의 귀에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뒷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상태였다.

“떠나거라.”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묘효 대사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도 어디까지나 광동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강호의 분위기 속에서 광동에 대한 강호의 약조가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알 수 없었다.

제갈 사혁이 광동에 별 문제 없이 들어올 수 있듯 흑사련이라고 해서 광동에 출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광동성에 들어와 제갈 사혁을 찾았을 때 그때가 문제였다.

흑사련이 제갈 사혁을 발견하고 나서 ‘여기는 광동이니 광동성 밖에서 싸우자.’라며 배려해줄 리 없기 때문이다. 무림인에게 그 정도 배려심이 있었다면 지난날 정사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20여 년 전 정사대전 당시 싸움에서 패배한 흑사련의 무사들이 광동성으로 들어왔을 때 뒤를 쫓던 무림맹 무사들이 광동성으로 쫓아 들어가 그들을 모조리 베어버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무림맹은 광동에 대한 강호의 암묵적인 약조를 언급할 것이고 그것은 싸움의 불씨가 될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의 흑사련 관할지역 침입. 흑사련의 무림맹 중요인물 위협. 광동성 무력행사.

그 불씨는 꺼질 줄 모르는 화마(火魔)가 되어 전 무림을 불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사님!”

“치료라면 되었다. 어제부로 반야신공을 전부 익혔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 사혁의 문제는 당가의 내공이었다. 반야신공 그리고 묘효 대사의 음공.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치료 가능성’만 있을 뿐이지 반드시 치료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반야신공만으로 이것이 치료가 될 리 없습니다.”

“그 말 그대로 내가 불경을 외운다고 해서 치료되지도 않는다. 쥐젖이라 말하지 않았느냐? 보기 흉하지만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제가 말한 그것을 해주십시오.”

그것이라는 것은 일주천을 하고 있을 때 묘효 대사가 음공을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녕 주화입마에 빠져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부탁드립니다.”

“니놈의 몸은 니놈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부탁드립니다!”

제갈 사혁이 엎드려 부탁하자 묘효 대사는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엎드려 빌다니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좋다. 하지만 각오는 해두어라.”

“네.”

“다들 나가있거라.”

음공의 여파가 두 사람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묘효 대사는 청하와 이신을 밖으로 내보낸 뒤 목탁을 두들기며 음공을 시전했다. 그리고 제갈 사혁도 그에 맞춰 일주천을 시작했다.

일주천을 하면서 음공에 당하자 뱃속이 끓어오르고 혈관이 평소보다 부풀어 올랐지만 제갈 사혁은 일주천을 그만두지 않았고 묘효 대사 역시 시작한 이상 불경을 끝까지 다 외웠다.

제갈 사혁의 단전에 자리 잡은 당가의 내공은 일주천을 할 때 보이는 현상처럼 뱃속을 이리저리 다니며 속을 뒤집었지만 음공이 몸을 관통하자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아직이다!)

당가의 내공이 움직임을 멈추자 제갈 사혁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 유수(流水)와 같이 음공에 저항하지 않으며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을 받아드렸다.

“!”

하지만 그 순간 눈과 귀 그리고 코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동요해선 안 돼! 단순히 몸이 견디지 못한 것뿐이다.)

단지 몸이 약해서 견디지 못한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일주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 순간 당가의 내공에 조금씩 금이 가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묘효 대사의 불경도 끝이 났다.

(됐다!)

하지만 그때였다. 음공을 멈추자 부서진 당가의 내공은 단전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제갈 사혁의 요장육부에 침투했고 제갈 사혁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만 헛바람을 삼켰다.

“괜찮으냐?”

“대사님.”

묘효 대사를 부르며 제갈 사혁은 피를 쏟았고 묘효 대사는 급히 내가요상술을 시전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의 몸은 도저히 그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제갈 사혁의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력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내공 불어넣기 말고는 달리 이 상태 자체를 치료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실패한 겁니까?”

[말을 아껴라.]

구슬 모양의 당가의 내공은 사라졌지만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장시간의 내가요상술이 끝나자 묘효 대사는 장원소를 통해 마차를 구했다.

“함께 가고 싶지만 나는 소림의 제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을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광동까지 온 만큼 묘효 대사는 강호무림에 몸을 던질 수 없었다. 그도 혼자만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에서 원래는 새로운 길이었는데 반야신공으로 소제목을 바꿨습니다.

좀 더 무협다운 정석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가끔은 고전적인 면모도 보여야 하기 떄문에 소제목도 바꿨습니다.

당가의 내공에 대한 떡밥도 완전히 다른 걸로 바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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