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92화 (192/262)

<-- 192 회: 반야신공 -->

(해볼까?)

내공은 운용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주화입마에 빠졌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내공운용이 가능했고 주화입마에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된 건가.....”

아직도 속이 더부룩하지만 괜찮았다. 당가의 내공이 몸에 스며들었지만 구슬형태로 남아 단전에 자리 잡지만 않는다면 그 어떠한 상황이라도 받아드릴 수 있었다.

“갈사 소협. 이제 괜찮아요?”

“그런 것 같아요. 조금 쉬고 싶네요.”

“이리와요.”

청하가 무릎을 내어주자 제갈 사혁은 아무 말하지 않고 무릎에 머리를 살포시 댔다.

평소라면 창피해서 거부를 하던가. 아니면 어떤 반응이라도 하겠지만 그것을 순순히 받아드릴 정도로 제갈 사혁은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면 모든 걸 잃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꼭 이것을 없애야 했다. 물론 주화입마라는 댓가를 치룰 정도인가?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제갈 사혁이 몸속에 제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해가 되기 때문이다.

“칼 있어요?”

“칼은 왜요?”

“큰 거 말고 단검 같은 거.”

단검이라는 말에 이신은 팔목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청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왜 거기서 나온 거야?”

“누나랑 수적떼 퇴치하러 갔을 때 기억나요?”

수적떼 퇴치라는 라는 말에 청하는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었지........”

“그때부터 챙겼어요.”

“뭐야 무슨 일인데?”

“수적들이랑 싸우다가 붙잡혔거든요.”

“뭐?”

“벼....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 아무튼 여기 칼 받아요.”

이신의 실력은 수적따위에게 붙잡혔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그런데도 붙잡혔다면 청하가 또 쓸 때 없는 짓을 했을 게 뻔했지만 지금은 일단 모른 척 해주었다.

칼로 새끼손가락을 살짝 베자 놀랍게도(?) 피가 났다.

“괜찮아요?”

“외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네요.”

당가의 내공을 없앤다고 해도 도검불침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 상황에 오게 되니 상실감이 컸다. 무사히 사천까지 가게 된 제갈 사혁은 무림맹에 입성하자마자 상부로부터 호출을 받게 되고 무림맹의 군사 여망상과 독대를 하게 됐다.

“흑사련 지역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난리를 쳤다며?”

“..........”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제갈 사혁이지만 철없는 행동을 모르진 않기 때문에 입이 열 개로 할 말이 없었다.

“잘 했다. 그렇지 않아도 거지같은 놈들 한방 먹이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여망상은 칭찬을 했고 제갈 사혁은 혹시 반대로 말해서 자신을 비꼬는 거 아닌가싶어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징계성 임무가 내려질 거다.”

“징계성 임무가 어디 있습니까? 사실 저한테 내려진 임무들 종합해보면 그게 다 징계성이었습니다.”

사실 제갈 사혁의 무림맹 임무 강도는 일부러 제갈 사혁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났다.

“이번 건 정말 징계다.”

그 후 제갈 사혁에게 내려진 징계는 무림맹의 식당일이었다. 징계성 임무라기에 배교 교주놈 목을 따오라는 임무라도 내려질 줄 알았는데 식당일이라니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징계였다.

식당에 도착하자 제갈 사혁은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잔소리란 잔소리는 다 들었다.

“총각!”

“네. 아주머니.”

“총각. 무림인이라면서 감자도 제대로 못 깎으면 어쩌자는 거야!”

무림인이랑 감자 깎는 거랑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방에서는 감자부터 시작해 설거지까지 주방일은 고됐다.

다 만든 음식을 선반 위에 올려놓을 때쯤 우연히 식당에서 봉황대 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초영의 동기인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대주님.”

“나 이제 대주 아니야.”

“아무렴 어떻습니까? 당가에서 사람 찾아왔던데요.”

“누구?”

“거 왜 있잖습니까. 대주님이 고쳐줬다던 당가의 딸내미.”

“초영. 보고 알아서 하라 그래. 걔가 봉황 대주지 내가 봉황 대주냐.”

당가고 나발이고 이 모든 게 사천당가 때문이기에 제갈 사혁은 당가의 당자만 들어도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대주님이 요 며칠 무림맹에 안계셨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제갈세가로 갔어요.”

“야 이씨! 언제는 찾아왔다며!”

“찾아왔던데요. 라고 말했습니다만.”

“걔네가 제갈세가로 왜가? 은혜를 갚으려면 화산파로 가야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집이 제갈세가일 뿐이지 이번 일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면 무림인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사문을 방문하는 게 옳았다.

“초영. 어디 있냐?”

“초영 대주님은 다른 식당에서 밥 먹고 있죠.”

제갈 사혁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초영이 있다는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초영은 황룡 대주. 백사 대주. 백호 대주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흑랑 대주는 공석인 듯 했다.

“어이~ 제갈.”

“갈이.”

“화산 망종.”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다른 대주들은 전임 봉황 대주인 제갈 사혁을 보자마자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초영.”

“네. 제갈 소협.”

초영. 역시 호칭을 달리 했지만 기본적인 존댓말은 변하지 않았다.

“사천당가에서 사람 왔다며?”

“정확히는 소협께 치료를 받았던 당하란 본인입니다.”

“미쳤냐? 고맙다는 말을 할 거면 나한테 와야지 집은 왜 찾아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온 것으로 봐선 결혼이라도 할 기세였습니다.”

“뭐?”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농담이 아니라면 이건 진짜 어이가 없었다. 딸내미를 구해줬으니 딸내미를 주겠다. 이게 사실 어이없어 보이지만 제갈 사혁은 제갈세가 사람에 화산파 차기 장문인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언제 왔는데?”

“지금쯤이면 제갈세가에 도착하고도 남았다고 판단됩니다.”

“돌겠네.”

제갈 사혁은 당장 제갈세가로 뛰어갈까? 생각까지 했지만 관뒀다. 당가가 무슨 짓을 하든 아니 그게 설사 진짜 혼담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제갈세가에서 세가간의 정략결혼을 허락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식당일을 한 제갈 사혁은 일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 도검불침의 경지가 사라졌다는 상실감과 여러 가지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반야신공을 연마했다.

“사부.”

문 밖에서 이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제갈 사혁은 연공을 멈추고 눈을 떴다.

“안 들어오고 뭐해?”

“사고(師姑)께서 오셨습니다.”

이신에게 사고면서 무림맹에 찾아올 정도면 안 봐도 뻔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서희였다.

“사형. 어떻게 된 일이야?”

“뭐가?”

서희는 들어오자마자 대뜸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제갈 사혁은 일면서도 귀찮아서 모르는 척했다.

“사천당가에서 가주가 찾아왔어. 사형과 자기 딸을 혼인시키고 싶다고 하던데.”

딸내미는 제갈세가로 그 아버지는 화산파로 간 듯 했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을 두고 ‘그래서?’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서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행실을 어떻게 했기에 사천당가에서 혼담이 나와!”

“내 행실이 어쨌는데? 사천당가는 나도 모르는 일이야. 그렇지 않아도 그 새끼들 때문에 나만 개 같은 꼴 당했는데.”

“당장 나랑 사문으로 돌아가서 해명해.”

“해명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넌 그래서 안 돼는 거야. 어른들끼리만 이야기가 되면 정략결혼이 되는 건데 그게 당사자 힘으로 될 것 같아?”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겠다는 거야?”

“바보냐. 스승님이 뭐가 아쉬워서 당가랑 혼인을 맺게 놔두시겠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멍청한 동생아.”

“그러다 사형 백부님이랑 장문 사백께서 허락하시면?”

“그런 일 없다니까. 그러네.”

제갈세가는 정략결혼으로 인해 제갈사혁과 남궁이화가 떨어져 지내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정략결혼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화산파는 지금 절정기는 아니지만 하락세 또한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식으로 남에게 손 내밀 필요가 없었다.

“요점만 말하면 지금은 당가가 아쉬워서 이걸 빌미로 우리한테 손 내미는 거 아니야.”

제갈 사혁은 확실히 부와 명예가 걸린 일에는 모든 정세 파악이 빨랐다.

“어른들끼리 이야기가 잘 될 리도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혼담은 없던 걸로 마무리 되는 게 보통이야. 그리고 판단 잘못했어.”

“뭐가?”

“나는 후계자야. 사천당가의 췌서따윈 될 수 없어.”

사천당가의 당월찬에게는 딸만 하나고 그 딸이 결혼하게 되면 췌서를 들여야 한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화산파의 후계자이고 제갈세가의 인물이다. 그의 자식들이 당가의 성을 잇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걸 모를 당가가 아닌데 급하긴 급했나보네.”

조사결과 추적충이 당가에서 나왔다고 조사를 한 것은 배교에 충성하고 당가를 급습한 무림맹의 배신자들이었다.

실제로 그 추적충은 당가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당가의 사람이었던 자가 만든 거지만 이미 당가가 배교에 추적충을 제공해줬다는 나쁜 소문이 돌기 때문에 무림맹 내부에서도 당가의 위치는 좋지 못했다. 그러니 제갈 사혁이 당하란을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구해낸 걸 빌미로 연줄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이 바닥이 이래. 너도 잘 새겨둬.”

============================ 작품 후기 ============================

이번편을 쓴 이유는 봉황대와 연결점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또 스토리를 끌어올릴 생각이기 때문에 달리기 전에 준비운동입니다.

이번 편에서 제갈 사혁의 성장도 다룰 거고 슬슬 정사대전도 생각해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 후반부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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