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94화 (194/262)

<-- 194 회: 반야신공 -->

운남성의 초입.

“여기로 오는 거 맞아?”

“조사단 말로는 이 길로 오는 게 확실하답니다.”

대도를 비스듬하게 맨 낭인은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밤새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대기하고 있었지만 절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그와 똑같은 처지의 열다섯 명 정도 되는 부하들이 있었다.

“망할 새끼...... 더럽게 안 오네. 잘 지키고 있어. 나는 가서 물 좀 빼고 올테니까.”

부하들을 뒤로 하고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 기둥에 일을 보려할 때 낭인의 옆으로 한명의 사내가 다가와 일을 봤다.

“수고하십니다.”

“너도 일보러왔냐?”

“긴장돼서 말입니다.”

긴장된다는 말에 낭인은 코웃음을 쳤다.

“걱정마라. 이번 일만 잘하면 우리도 배교에서 한 자리 할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일을 다 본 후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낭인은 낯선 사내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런데 너 처음 보는데 누구냐? 우리 식구야?”

“아니요. 니가 기다리는 그 망할 새끼요.”

그러면서 그 사내는 낭인의 목을 손가락으로 찔러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는 바로 임무를 맡고 운남성으로 오게 된 제갈 사혁이었다.

꼭두각시의 실이 끊어지듯 쓰러진 낭인을 뒤로 한 채 제갈 사혁은 목을 좌우로 흔들며 몸을 풀었다.

“정보가 흘렀다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운남성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이미 제갈 사혁은 배교측에 정보가 샜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한 상태였다. 과거에도 정사대전이 터졌을 때 종종 임무를 맡은 무림인이 역으로 습격당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해서 옆길로 샜더니 예상 경로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제갈 사혁의 목적지는 천록문(天錄門)이라는 발음하기도 힘든 문파다. 배교가 생겨난 후에 생긴 문파인데 정확히 말하면 기존에 있던 도장들을 통합시켜 만든 문파라고 한다. 말이 좋아 문파지 사실상 치어를 관리하기 위한 그물망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사상과 관계없이 배교라는 힘이 두려워 거짓 충성을 맹세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 중 채억만이라는 자와 접선하는 게 제갈 사혁의 임무였다.

강호와 일반인들의 세계는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운남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일반인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을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곧바로 천록문을 찾았다. 그리고 반대편 건물인 대장간에 돈을 주어 지붕 위에서 몰래 천록문의 동태를 살폈다.

천록문은 배교에서도 문제가 있었는지 경비병들이 꽤 많았고 출입도 신분패 검사를 하는 등 자유롭지 못했다.

제갈 사혁은 약 이틀 동안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살핀 뒤 새벽에 허술한 점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정확히 3일 째 되는 날 새벽 대장간에서 나와 천록문 뒤편 담장을 넘은 제갈 사혁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가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건물에 자리를 잡은 뒤 3인 1조의 경비병들을 유심히 살폈다.

운남성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난 낭인패거리들의 한 사람을 처리할 때 썼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바로 화장실이다.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해도 사내들의 특성상 화장실까지 따라오진 않기 때문이다.

경비병 한명이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자 그곳에서 가까운 건물 위에 있던 제갈 사혁은 재빨리 내려와 그림자를 등지고 손을 뻗어 경비병을 낚아챈 뒤 목을 부러트렸다.

옷을 바꿔 입은 후 시체는 지붕 위에 올리고 경비병들과 같은 복장을 한 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 자는 분명 관장들 중 한명이라고 했으니 잘 뒤져봐야겠어.)

만나기로 한 채억만이라는 자는 천록문을 이루는 도장의 관장 중 한명이었고 나름 간부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숙소 또한 범상치 않았다. 제갈 사혁은 첫 번째 숙소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천장에서 누군가가 제갈 사혁을 덮쳤다.

“!”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이었다. 제갈 사혁을 급습한 자가 피리 같은 것을 불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쳇....”

“네가 제갈 사혁이냐?”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말을 걸자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걸리고 만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잠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교의 그물 속으로 들어온 꼴이었다. 준비하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정보가 샜을지 모른다고 가정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음에도 제갈 사혁이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자신감 때문이었다.

“크악!”

제갈 사혁은 상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뛰어 들어가 무릎으로 목을 쳐 한방에 상대를 꺾어버렸다.

“정보가 샜을 거라는 것도 알고 내심 이게 함정이란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아?”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기운을 터트렸고 좁은 방안에서 제갈 사혁을 둘러싼 경비병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니들 같은 놈. 몇 놈이 와도 쓰러트리고 내 발로 걸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비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 요란하게 그 속을 헤집고 다녔다.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으로 상대의 기를 죽인 뒤부터는 본능적으로 방어와 공격을 해 승기를 잡았다.

긴 창으로 길이를 이용해 위협하자 검기를 뿜어내 창대를 잘랐다.

“이야!”

옆에서 검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대수롭지 않게 검을 붙잡은 뒤 호황으로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

(젠장! 잊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도검불침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도검불침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의 검을 손에 쥐었을 때 그대로 부상으로 이어졌다.

“받아라!”

일곱 명이 합을 이뤄 공중에서 동시에 창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내려놓고 두 팔로 창대를 막아냈다.

“건방진!”

그리고 그대로 기를 터트려 주위를 둘러 싼 자들에게 내상을 입혔다.

제갈 사혁이 주먹을 휘두르면 목이 꺾였고 발로 차면 뼈가 부러졌지만 그들은 절대다수였고 절대다수가 갖는 심리적 우세함은 그들을 더욱 더 무모하게 만들었다. 그런 행동들은 제갈 사혁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왼쪽 어깨에 입은 검상이 제법 깊었기 때문에 자꾸 신경 쓰였다. 자율회복을 믿고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이러한 상황에서 신선의 도술처럼 순식간에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

외공이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갈 사혁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니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알게 모르게 외공에 의존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호조수(虎爪手)!”

이를 악문 제갈 사혁은 손을 뻗어 사람의 몸을 종이마냥 갈기 같기 찢어버렸다.

자신의 피가 아닌 타인의 피를 뒤집어 쓴 제갈 사혁의 모습은 흡사 지옥의 악귀가 따로 없었고 이들이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낄 때쯤.

“!”

더 이상 그들 옆에는 그들을 지켜줄 동료가 없었다.

“......”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채 최후의 1인이 무기를 내려놓자 제갈 사혁은 내공권으로 심장 부분을 정확하게 가격해 숨통을 끊어버렸다.

“하아.... 하아.......”

송수겸의 부하들과 싸웠을 때도 이 정도로 피곤하진 않았지만 외공이 없으니 움직임이 많아져 어쩔 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베고도 피한방울 묻지 않은 호황을 허리에 매고 대문 밖으로 나온 제갈 사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새끼들이.....”

대문 밖에는 그동안 종종 봐왔던 살막의 살수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 있었다.

지친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이정도 인원을 투입할 정도면 강호에서 제갈 사혁의 평가가 그리 야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자리에 누가 누워 있고 누가 서있었는지에 대해서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무림맹에서는 제갈 사혁을 불렀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출타 중이었고 그 이유가 무림맹의 임무 때문이라는 사실에 무림맹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 누구도 제갈 사혁에게 임무를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제갈 사혁과 만났던 숙소 담당자 팔이 소환되었고 제갈 사혁에게 건네준 명령서에는 무림맹 군사인 여망상의 인장이 찍혀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여망상의 인장은 분실이 된 상태고 그 날짜가 제갈 사혁이 없어진 시일과 동일했다.

배교에서 제갈 사혁을 제압했으며 단전을 부수고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 무림에 공표했다. 무림맹은 이에 대해 거짓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로부터 3일 후 무림맹으로 한 자루의 검이 보내졌다. 바로 호황이었다. 무림맹은 이 일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이 일은 소수의 인원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 민이 무림맹 군사 제갈 주원 사후 21년 만에 무림맹에 나타난 것이다.

무림맹은 지난 날 제갈세가에게 진 빚이 있었고 이번에도 빚을 졌다. 다만 그의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똑같은 빚이었다.

“제갈세가는 배교를 적으로 삼을 것이오. 무림맹은 어찌할 것이오?”

아우의 죽음에도 무림맹에 그 책임을 묻지 않았던 제갈 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책임을 지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제갈 민이 무림맹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한 것이었다.

“무당파는 제갈세가와 뜻을 함께 할 것이오.”

성제 진인은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냉정한 말투로 회의에 임했다.

첫 번째로 화산파가 아닌 무당파가 제갈세가와 뜻을 함께하자 모두들 화산파의 장로인 도오 진인을 쳐다봤다.

“이미 화산파 동문회 화산지회 320명이 사천에 모였소. 우리가 당신들의 의견이 필요할 것 같소?”

애초에 화산파는 제갈세가와 의견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화산파에게는 행동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제갈세가와 뜻을 함께하겠소!”

“나도요.”

그때 갑자기 방파 측에서 제갈세가와 함께 할 것을 밝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갈 사혁이 쌓아올린 것이었다.

비록 그 모든 게 거짓 마음이라 하더라도 패천방 만금 형제 중 만백의 신변을 스스로 맡아 주위의 호감을 사고 상설문 창설에 개입했다. 명문정파와 갈등이 극에 달한 방파라 하더라도 제갈 사혁에 대한 인식은 달랐다. 그리고 그 작은 호감은 이럴 때 확실하게 그 효과가 드러났다. 한편 이신은 무풍대의 가후와 함께 청하를 만나고 있었다. 이신의 신변은 당연히 화산파가 맡아야 하지만 제갈 민이 제일 처음 무림맹으로 와서 한 일이 가후를 붙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청하 누나. 사부는 정말로......”

청하는 이신이 말을 잊기도 전에 이신을 안아주었다.

“다 배웠지?”

“네?”

“갈사 소협에게 배운 무공.”

“다 알고 있어요.”

“그럼 됐어. 그걸로....... 그걸로 다 된 거야.”

청하는 이신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잘 있어.”

작별인사를 할 때 청하는 평소의 청하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은 이신도 처음 봤다.

제갈 사혁의 방에서 나오던 길에 청하는 우연히 제갈 민과 마주쳤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저 여인.......”

제갈 민은 그 여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도저히 여인이라 보기 힘들었다. 그 눈은 죽음을 각오한 자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 천산산맥(天山山脈)의 어느 산 정산에서는 한 노인이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야.”

황혼을 바라보며 커다란 바위 위에 손을 올린 노인은 이내 바위에서 손을 떼고 등을 돌렸다.

“어찌되었느냐?”

그곳에서는 십야성주인 망지성이 서있었다.

“무림맹은 이 흐름에 중심을 잡지 못할 것이옵니다.”

마교 내에서 망지성의 위치는 추백성의 자리를 이어받아 명실상부 마교의 우호법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그에게 하대를 할 수 있는 자 나이를 떠나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노인이 윗옷을 벗어던지고 백발을 휘날리며 바위 위에 손을 올리자 아무런 타격을 가하지 않은 바위가 저절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흐하하하하하!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정사대전을!”

그가 바로 범접할 수 없는 자라 불리는 마교 교주 신화천(神話川) 천중기(擅仲耆)였다.

============================ 작품 후기 ============================

이럴 때 연참을 해야 하는데.....

저의 HP는 만땅인데 MP는 0입니다.

이번 편은 과정에 대해 생각한 편이었습니다.

제갈 사혁답게 방심하고 제갈 사혁답게 잡혀야했습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더 이상 도검불침이 아닌데도 맨손으로 검을 붙잡고 부상을 입는 건 제갈 사혁답죠. 쉽게 말해서 게임으로 따지면 치트키를 줄곧 쓰다가 치트키를 안쓰는데 여전히 치트 플레이를 하려하는 꼴이죠.

정사대전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이미 제갈사혁이 청하를 구해내서 마교와 정파간의 정사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흐름상 무림을 뒤흔들 대 사건은 필요했고 역시 무협이라면 정사대전이 최고의 이벤트였습니다.

다만 청하에서 제갈 사혁으로 운명의 도화선이 바뀐 것 뿐이죠.

PS. 정사대전은 알다시피 정파 사파 즉 화산의협에서는 무림맹과 흑사련과의 전쟁을 정사대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뜻만 통하면 그만이라서 사실상 정사대전이라 할 수 없지만 계속 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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