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96화 (196/262)

<-- 196 회: 반야신공 -->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공을 흡수할 때 손끝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큭.........”

멈추려 했지만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놈은 한명이다. 쳐라!”

판상걸이 죽자 흥분한 다른 이들은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었고 그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어떤 이유에선지 흡정마공은 계속해서 내공을 원했고 제갈 사혁은 흡정마공을 자신의 뜻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내공을 흡수하면 할수록 제갈 사혁의 피부는 숯처럼 검게 변했고 절벽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의 내공을 흡수한 뒤 제갈 사혁은 겨우 흡정마공을 멈출 수 있었다.

“젠장 이게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흡정마공을 한 뒤 피부가 검게 변하고 손으로 꼬집어서 통증을 느껴 보려 해도 딱딱해서 꼬집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 소협?”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하는 조심스럽게 제갈 사혁 불렀다.

“무슨 일이냐?”

다행히 제갈 사혁이 대답을 하자 강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 일어났다.

“큭..... 크아아!”

제갈 사혁의 몸속에 있던 내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제갈 사혁은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채억만을 만나기 위해 천록문으로 향했던 그때 천록문에 있던 자들을 모두 죽이고 문밖을 나선 순간 만난 것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배교의 무사들이었다. 처음에는 별 문제 없었다. 조금 지쳤을 뿐 침착하게 상대를 쓰러트리면 기회를 봐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지휘하던 자를 본 순간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배교의 무사들을 지휘하던 자는 지난생애 자신에게 무형독을 사용해 죽게 만든 바로 그 흑사련의 청사단 단주였다. 그 뒤로는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성적인 판단 같은 건 무의미했고 오직 끓어오르는 분노만이 그에게 남은 모든 것이었다.

“하아!”

“소협!”

이성을 잃은 듯한 기합소리와 함께 제갈 사혁은 벽을 타고 산시 절벽을 올랐는데 그건 더 이상 경공도 뭣도 아닌 그냥 힘으로 절벽을 올라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성을 잃은 제갈 사혁이 절벽을 타고 올라오자 눈앞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황야가 펼쳐져 있고 등 뒤에는 절대 일반적인 방법으로 넘을 수 없는 성벽이 버티고 있었다.

무영공공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허공을 박차며 날아오르는 무영공공보라면 저 성벽을 간단히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죄인이 도망쳤다!”

망루 위에 있던 누군가가 죄인의 탈출을 알리자 성벽 위에 있던 배교의 무사들이 수십 또는 수백 자루의 창을 던졌다.

그들이 날린 창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처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갈 사혁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촘촘하고 빈틈없이 날아오던 창은 어떤 힘에 의해 제갈 사혁이 있는 자리만 피해갔다.

1차 공격이 실패하자 성벽의 문이 열리고 배교의 무사들이 제갈 사혁을 향해 달려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자가 제갈 사혁의 왼쪽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두르자 딱딱한 피부를 베지 못한 채 오히려 부러졌다.

“!”

쇠로 만든 검이 부러지자 배교의 무사는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제갈 사혁은 아래에서 위로 턱을 쳤다. 그러자 하늘 높이 떠오른 무언가가 툭하고 땅에 떨어졌다.

“............”

그건 제일 먼저 달려 나간 자의 목이었다.

동료의 떨어져나간 목을 보자 배교의 무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쳐라!”

이곳에 배치된 자들은 모두 살막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은 동료의 넋을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가 죽음이라 하더라도.....

사방에서 배교의 무사들이 몰려오자 제갈 사혁은 오히려 그들을 반겼다. 여러 명이 동시에 검을 휘둘러 제갈 사혁을 베려고 해도 사람의 피부라 생각할 수 없는 까만 피부는 베이기는커녕 역으로 그들의 검을 부러트렸다.

제갈 사혁이 손을 뻗자 정면에 마주보고 있는 자의 몸에서 푸른빛을 띠는 기운이 빠져나와 제갈 사혁에게 흡수되었고 그 기운을 빼앗긴 자는 눈과 귀에 피를 흘리며 죽었다.

그것은 분명 흡정마공이었지만 붙잡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모습은 평상시의 흡정마공이라 보기 힘들었다.

배교의 무사들은 사력을 다해 제갈 사혁과 맞섰지만 그의 손은 살을 찢어발겼고 그의 발은 뼈를 부러트렸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개죽음이라는 걸 잘 알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면 더 이상 그들은 배교의 무사가 아니었다. 천하다고 멸시받던 살막의 살수로 돌아가게 된다.

성벽 위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거한의 사내는 부하들이 죽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내가 가겠다!”

“천주님.”

부하들이 제지하자 거한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라. 명섬대침(命殲大鍼)을 쓰겠다.”

그러는 사이에도 제갈 사혁의 손에 죽어나가는 배교의 무사는 줄지 않았고 그 많은 사람들 중 살아남은 이는 딱 한명 남은 상태였다.

“멈춰라!”

“처.... 천주님....”

“나는 배교의 천주. 전덕승(電德昇)이다. 정체를 밝혀라!”

제갈 사혁의 피부는 겉으로 보기에 먹물로 칠갑을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제갈 사혁을 아는 사람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 해도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

하지만 제갈 사혁은 상대가 이름을 말하든지 말든지 눈앞에 있는 배교 무사의 관자놀이를 후려쳐 죽여 버렸다. 그는 더 이상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 이놈! 살기를 바라지 마라.”

목함(木函)에서 대침을 꺼낸 전덕승은 그것을 자신의 배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얼마 후 몸이 사람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점점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비검파에서 만난 살수들이 쓰던 방법과 똑같았다.

“흠!”

기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다가온 전덕승은 등룡장(登龍掌) 정확하게 구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갈 사혁은 등천장을 맞고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 괴물이! 쌍천장(雙穿掌)!”

양손으로 상복부와 하복부를 동시에 타격하는 쌍천장이 들어가자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제갈 사혁이 피를 쏟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공격을 하려는 순간 한 박자 더 빠른 제갈 사혁의 주먹이 날아왔다.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힘은 전덕승을 성벽이 있는 곳까지 날려버렸다.

“으윽....”

주먹에 맞은 순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 충격은 전덕승을 뒤흔들었다.

“천주님. 위험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위에서 소리 지르는 부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이미 뒤따라온 제갈 사혁이 하늘 위로 높이 뛰어올라 무릎으로 천승덕의 가슴을 찍어 내렸다.

“크억!”

시전자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명섬대침의 효능조차 눈앞에 있는 자를 꺾을 수 없었다. 명섬대침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그의 무자비한 공격을 죽지 않을 만큼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떨어져!”

두 손으로 사력을 다해 제갈 사혁을 밀어내고 겨우 숨을 돌린 천승덕은 공격을 하려 했지만 더 이상 주먹을 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괴물은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으아!”

제갈 사혁은 괴상한 기합소리를 내며 성벽을 등진 전승덕을 쉬지 않고 때리기 시작했다. 제갈 사혁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 성벽은 구멍이 생겼고 이성을 잃은 제갈 사혁은 악귀와 같은 모습으로 전승덕을 쫒아갔다.

“천주님!”

성벽 위에 있던 전승덕의 부하가 그를 구하기 위해 내려왔지만.

“오지 마!”

목숨을 바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5초도 안 되는 시간을 버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부하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분하지만 분해서 미쳐버릴 것 같지만 저 개자식의 얼굴조차 때릴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증오한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성을 잃은 제갈 사혁은 불연듯 청사단 단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천록문에서 수많은 적들을 뚫고 그의 숨통을 끊었다.

“아아......”

자신의 손으로 청사단 단주를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제갈 사혁은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으.... 아! 아!”

하지만 제갈 사혁의 마음속에는 이미 분노가 아닌 마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완벽히 흡정마공을 지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제갈 사혁의 착각이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순간 흡정마공은 본성을 드러내고 제갈 사혁의 몸을 지배했다.

완전한 흡정마공 그리고 그 흡정마공으로 흡수한 정순한 내공. 하지만 흡정마공으로 빨아드린 내공은 더 이상 정순하지 않았고 더 이상 제갈 사혁의 것이 아니었다.

“젠장!”

흡정마공으로 빨아들인 내공이 터질 것만 같았다.

“건방 떨지 마라..... 나는.... 나는......”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반야는 지혜를 뜻한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묘효 대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반야의 지혜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는 반야의 지혜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제갈 사혁은 그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되냐며 철없는 질문을 했고 묘효 대사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수행해야 한다.)

제갈 사혁은 흡정마공의 마성에 지배되지 않기 위해 반야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반야신공과 흡정마공은 충돌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제갈 사혁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지금 화산의협 교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정작업과 연재는 힘드네요.

이번 편은 무협을 보신분들이라면 감 잡으셨겠지만 그 이벤트입니다.

클린O클리어 없이도 제갈 사혁은 촉촉하고 맑고 자신있는 피부를 갖게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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