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199화 (199/262)

<-- 199 회: 정사대전 -->

“곤륜파로 가는 건 마교 때문인가요?”

사실 청하는 가장 먼 길을 택한 제갈 사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순전히 마교 때문은 아니죠?”

“솔직히 배교는 잘 모르겠거든요.”

살막의 몇몇 무사들이 사용했던 ‘침술’과 산시절벽에서 만났던 방파의 방주들.

살막이 아닌 배교는 제갈 사혁에게 미지의 세력이다.

제갈 사혁은 지난생애를 겪으며 남들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배교는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배교가 노리는 건 마교인데 마교가 제일먼저 치고 올라오는 건 청해죠.”

사실 서장이 마교의 세력권이기는 하지만 마교의 세력권은 신강 하나로 보는 게 옳았다.

정파를 노린다면 마교로서는 곤륜파를 뚫어야만 했다.

지금은 세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선도 곤륜. 불도 소림이라 불릴 정도로 곤륜파는 도가계열 정파의 상징적 문파다.

“애증이라고 봐야죠. 마교에게 곤륜은 그리고 배교에게 마교도.”

제갈 사혁은 청해에서 정파와 마교 그리고 배교가 맞붙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게 바로 제갈 사혁이 운남이 아닌 청해를 택한 이유였다. 마교가 있는 곳에 반드시 배교가 나타난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쳐 곤륜파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그곳에서 화산지회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진.”

“선배님.”

사형이라기보다는 사숙에 가까운 선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정대사전이 일어난 원인이 바로 제갈 사혁의 배교 납치 사건이었기 때문에 화산지회는 제갈 사혁을 반겨주었다.

“괜찮은 거냐?”

“그깟 배교 놈들 무서울 게 뭐 있습니까.”

“여전히 그 입은 살았구나.”

“이쪽은 어떻습니까?”

청해 상황에 대해 묻자 선배의 표정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곤륜파 분들은 첫날 크게 당하셨다.”

“석궁대 말씀하시는 거죠.”

“알고 있느냐?”

마교의 석궁대는 유명했다. 한명 한명이 화살에 내공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알려진 이 전설적인 부대는 지난 정사대전 때도 활약을 했는데 마교의 석궁대. 그 실체는 바로 기존의 고수들이다.

마교에 총 500명의 고수가 있다면 이들 중 100명에게 석궁을 발사하게 만든다. 즉 석궁대라는 조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물건에 내공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고수에게 무차별적으로 석궁을 쏘게 한 것이다.

약 100명에서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쏘기 때문에 날아오는 화살의 수와 간격만 보고서 상대인 우리는 석궁대라는 가상의 조직을 만들게 된다.

결국 석궁대는 허상이고 실제로 지난생애에 이 석궁대의 실체를 잡지 못해 정파는 신강으로 진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죠. 여기 책임자를 만나고 싶은데 선배님 안내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책임자라면 당연히 곤륜파의 장문인이겠지만 제갈 사혁은 일부러 자신의 선배에게 만남을 주선해주길 바랬다.

“그래. 따라 오거라.”

화산지회 선배의 안내를 받아 곤륜파의 장문인과 만나게 된 제갈 사혁은 인사보다 먼저 본론으로 들어갔다.

“석궁이나 화살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일전에 청해에서 혜성과의 일로 제갈 사혁의 얼굴을 아는 장문인은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했다.

“어찌하려는 것인가?”

“석궁대를 만들 생각입니다.”

석궁대를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마교와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하면서 너희가 만든 석궁대가 허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라며 경고하기 위해다.

두 번째는 정파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무작정 마교의 석궁대가 가짜라고 말해봐야 이미 한번 석궁대에 크게 당한 전력이 있는 그들에게 그 말이 먹힐 리 없다. 똑같은 그림을 그려서 보여줘야 그들이 믿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물건을 어디서 얻는단 말인가?”

“제가 아는 상단이 있습니다. 가격만 맞으면 이틀 안에 물건이 도착할 겁니다.”

“그대의 말을 믿겠네. 돈은 우리가 지불하겠으니 물건만 확실히 도착할 수 있게 해주게.”

곤륜파 장문인은 제갈 사혁이 짊어지고 있는 화산파를 믿었고 제갈 사혁은 친인척이 운영하는 모든 상단을 동원해 빠른 시간 안에 석궁과 화살을 구했다.

청해는 첫날 큰 피해를 입었지만 화살이 당도한 이튿날 사천에서 무림맹의 고수들까지 합류하면서 부족한 인원이 채워졌다.

이들 중에 발사체에 내공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원은 총 150여 명. 기존 청해의 집결한 고수들의 수를 합치면 약 300여명에 가깝다.

여기서부터는 이름값이 필요했다.

“선배님들. 저는 화산파의 제갈 사혁이라고 합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이름을 밝히자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제갈 사혁은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정사대전의 원인이며 배교의 피해자기 때문이다.

“저를 믿고 화살이나 석궁에 내공을 불어넣어 쏘아 올려 주십시오. 숙련된 궁사가 아니셔도 좋습니다. 내공을 불어넣으실 수 있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정말 그거면 되는 거냐?”

나이 지긋한 노강호가 그거면 되냐고 묻자 제갈 사혁은 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네. 선배님. 동시에 딱 한번만 쏴주시면 됩니다.”

“좋다. 나는 너의 의견을 따르겠다.”

만약 제갈 사혁이 화산파의 후계자이기만 했다면 노강호를 나아가 여기 있는 모두를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교에 의해 단전을 잃었다 알려졌기 때문에 그들은 제갈 사혁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혹은 제갈 사혁의 복수심을 생각해 그 뜻에 동참해주었다.

그들이 모두 동참해주자 모든 게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동시에 쏴주시면 됩니다.”

제갈 사혁의 지휘아래 모든 이들이 동시에 내공이 스며든 화살을 쏘자 그 모습이 마치 마교의 석궁대와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몇몇 무림인들은 제갈 사혁처럼 석궁대에 관한 진실을 깨달았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가 본 게......”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제갈 사혁은 큰소리로 외쳤다.

“네 맞습니다. 마교의 석궁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것과 그것을 연관 짓기는 무리가 있지 않소? 이럴 때는 머리를 맞대고 요목조목 짚어봐야 할 때인 것 같소.”

제갈 사혁에게는 지난생애의 경험 그리고 여기에서는 미래에 해당되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마교는 왜 2차 공격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배님들. 잘 생각해보십시오. 마교가 시간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마교의 석궁대는 단순한 공연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교의 석궁대라는 실체가 없는 것에 겁을 먹고 있을 때 저들은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신강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모였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신강을 허물지 못하면 마교입성은 불가능합니다.”

마교는 시간을 끌며 준비하고 있었다.

신강 땅을 밟아본 적은 있지만 정파가 마교의 본토를 밟아본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신강 땅과 마교의 본토는 그 의미가 달랐다. 제갈 사혁이 가본 적 있는 구궁과 십야성주의 저택도 결국 신강 땅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신강 땅을 넘어 그 고고한 마교의 권좌를 짓밟아야 했다.

“!”

제갈 사혁이 자리에 모인 무림인들을 설득하고 있을 때 곤륜파의 장문인이 제갈 사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제갈 사혁은 장문인의 눈빛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단상 위에서 내려왔다.

어떤 일을 하는데 이름값이 필요하다면 이는 누군가를 설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곤륜파의 장문인으로서 지금 곤륜파의 모든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오. 상처를 움켜쥐고 뛰어가라고!”

곤륜파의 장문인이 나서서 진격할 것을 주장하자 아무도 반대의사를 펼치지 못했다.

“곤륜파는 몇 백년간 마교와 싸우면서 정파를 지켜냈소. 그 사실에 과장은 있을지 모르나 거짓은 없소.”

“장문인을 따르겠소!”

“우리도 따르겠소!”

비록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절대 곤륜파가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장문인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었다.

“동도들은 들으시오. 오늘!”

그 순간 곤륜파 장문인의 외침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신강을 넘어 마교 땅을 밟을 것이오.”

곤륜파 장문인의 외침과 동시에 정파인들은 신강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첫날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살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복세멸강(扑世滅强)!”

그 순간 정파인들의 진격을 멈춘 이가 있었다.

“쓰레기 같은 정파 놈들!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 감히 기어들어오는 것이냐!”

그의 무공은 강맹했다. 또 다시 주먹에서 뻗어 나오는 강기는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막아내기 힘들었다.

“죽어라!”

“!”

그가 주먹을 뻗는 순간 누군가 그의 주먹을 발로 차 권기의 궤도를 바꿨다.

“네놈이냐?”

“우리가 제대로 붙어 본 적이 없지?”

자신의 무위를 막아선 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소개하지. 일궁성주 번천(翻天)이다.”

“화산 1대 제자. 제갈 사혁이다.”

추정 나이 스물여섯. 그 역시 젊은 나이에 상대를 찾아 볼 수 없다고 알려진 자다.

============================ 작품 후기 ============================

사실 일궁성주와 싸우는 게 꼭 필요할까? 싶었는데 제가 만든 설정은 거둬야겠기에 일궁성주를 등장 시켰습니다.

앙투안님 원래 좀 대단한 놈한테 단전을 잃게 하려 했는데 제갈 사혁은 단전을 안쓴다는 설정이 있어서 그냥 배교에서 단전을 폐했다 정도로만 끝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나 원래 이거 안쓰는데." 이런 식으로 마무리 했죠.

극적이진 않지만 굳이 극적일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서 그런식으로 했는데 의견을 참고해서 출판본은 극적인 내용으로 바꾸겠습니다.

갸미님  ......... 죄송합니다. 쓸 때 없는 개드립을 쳐서 소중한 직장을 잃을 뻔하게 만들다니..... 환골탈태를 하면 새하얀 피부가 필수더라구요. 그래서 유명한 광고 내용이 떠올라 후기에 적었습니다. 쓸 때 없는 개드립으로 직장생활에 불편함을 드린 거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정준하 급의 애드립만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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