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회: 정사대전 -->
“장문진인께서 허락하신다면 여기서는 제가 직접 이자와 맞서겠습니다.”
고수들 간의 1:1 대결은 정사대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반드시 이겨야 하네.”
곤륜파 장문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번천이었다.
번천의 기습 공격에 방어하지 못한 제갈 사혁은 첫 공격을 허용했고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외가 권법인가? 야단났군.)
깨달음을 얻어 환골탈태를 이루기는 했지만 잃어버린 외공까지 되찾지는 않았다.
“수라혈천(修羅血天).”
연속으로 장법을 펼치며 외부충격을 가하자 제갈 사혁은 입에서 피를 쏟았다. 하지만 곧바로 섬공각(嬐攻脚)을 펼쳐 번천의 기세를 꺾음과 동시에 복부를 찼다.
번천이 무릎을 꿇자 일권복호(一拳伏虎)를 펼쳐 상대의 머리를 노렸지만 번천은 일궁 성주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피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일권복호가 빗나간 순간 주먹을 펼쳐 번천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
일권복호를 피하고 역공을 노릴 생각이었던 번천은 제갈 사혁이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머리를 움켜쥔 채 번천을 일으켜 세운 제갈 사혁은 그대로 번천의 복부를 무릎으로 찍었다.
그 순간 번천은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제갈 사혁은 좀 더 확실한 공격을 위해 두 손으로 번천의 머리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오른발을 최대한 뒤로 빼 간격을 넓힌 뒤 있는 힘껏 번천의 복부를 무릎으로 찍었다.
“크억!”
번천은 피를 뿌리며 휘청거렸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제갈 사혁은 숨통을 끊기 위해 발로 번천의 머리를 쳤지만 번천은 왼팔을 들어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무공실력 그리고 내공의 유무를 떠나 이미 육체적 능력에서부터 두 사람은 비교불가였다. 하지만 마교의 십야성주 추백성과 싸우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진정한 강자란 그 숨통을 끊어버리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번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번천은 기수식을 바로 잡으며 마음을 바로 잡았다. 이는 제갈 사혁도 자주 쓰는 방법이기 때문에 번천의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밑바닥이 드러났던가? 그게 아니면 숨겨진 저력을 보여주겠지?)
먼저 공격해 들어오는 쪽은 기세가 꺾인 번천이었고 제갈 사혁은 매화권(梅花拳)으로 대응했다.
두 사람의 공방은 적어도 제갈 사혁에게 상당히 유리했다. 공격횟수는 번천이 더 많지만 제갈 사혁은 번천의 모든 공격을 눈으로 보면서 피하고 있었다.
“흐아!”
번천이 기합소리와 함께 강하게 내지르자 가볍게 공격을 피한 제갈 사혁은 천응조(天鷹爪)를 펼쳐 번천의 옆구리를 움켜쥐고 그대로 뜯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정파인들도 제갈 사혁의 잔인한 공격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것이야 말로 천응조의 가장 완벽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은 무릎을 꿇은 일궁 성주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주먹을 겨눴고 이를 보고 있던 마교인이 그를 구하기 위해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성주님!”
제갈 사혁은 손등으로 검을 쳐내고 마교인의 목을 붙잡았다.
“버러지 같은 놈.”
목을 쥔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다 죽어가던 번천이 제갈 사혁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
“나를...... 얕보지 마라!”
어디서 이런 힘이 났는지 제갈 사혁은 그만 번천의 힘에 밀려 마교인의 목을 쥔 손에 힘이 풀렸고 그 순간 번천은 이마로 제갈 사혁을 들이 받았다.
“네놈을 이길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뜯겨져 나간 옆구리를 움켜쥐며 번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공을 모두 쏟아 부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그가 펼치려는 무공은 그 위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수라멸세(修羅滅世)!”
“모두 피해라!”
정파인들은 번천이 만들어낸 수라멸세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물러섰지만 제갈 사혁은 바로 앞에서 수라멸세의 기운과 맞섰다.
“의지는 대단하지만 승자가 되지 않으면 그런 의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수라멸세의 기운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지만 제갈 사혁은 흡성반기공(吸星反氣功)를 펼쳐 수라멸세를 제압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여기서 큰 실수한다. 번천을 얕본 것이다.
흡성반기공으로 제압한 수라멸세는 제갈 사혁의 두 손에 공처럼 둥글게 변했지만 점점 그 부피가 커져 결국에는 폭발했다.
이는 번천의 마지막 남은 의지였다.
“갈사 소협!”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청하는 제갈 사혁을 부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비록 억제되어 있었지만 그 폭발력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제법이네.....”
하지만 제갈 사혁이라는 사람의 허세는 고작 수라멸세 정도로 꺾을 수 없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간 제갈 사혁은 선 채로 죽은 번천을 향해 다가갔다.
“말했지. 승자가 되지 못하면 그 의지도 쓸모없는 거다.”
그리고는 번천을 지나 마교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일궁 성주라는 그들의 정신적 지주를 죽이고 그 부하들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 묻다니.
“네 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마교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무기를 뽑아들었고 정파인들도 그들과 맞설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정파인들을 제지했다.
비록 이 무리를 이끄는 자가 곤륜파의 장문인이라고 하나 제갈 사혁은 승자였다. 승자에게 그 정도 권한은 있었다.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정사대전은 늘 이런 식이었다. 고수들 간의 1:1 대결 하지만 그 뒤에는 항상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추종세력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리고 제갈 사혁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다. 이신!”
이신을 부르자 이신은 제갈 사혁을 향해 호황을 던져주었다.
“너희의 용기를 인정하마. 하지만 너희는 여기서 전부 죽는다.”
그날 청해와 신강의 경계선은 사라졌다. 한 사람의 무림인에 의해.....
같은 시각 서장에서는 정사대전의 상황과 전혀 다른 만남이 이어졌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시장 앞 길거리.......
“네가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때가 되었으니 만나자고 한 거 아니오.”
발에 걸리는 건 모두 시체였고 그들의 복장은 전부 배교의 무사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 사이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상당히 친분이 있는 듯 했다.
한번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방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바닥에 널린 시체들은 아마도 피를 뒤집어쓴 남자가 그려낸 지옥도가 틀림없었다.
“십야성주 망지성의 호위대장이라고 하지. 지금은?”
“그런 건 의미 없지 않소.”
“외숙부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가족 아니오.”
“말장난은 그만 둬라!”
피를 뒤집어 쓴 사내가 방립을 쓴 자에게 검을 휘두르자 사내의 검은 그자의 봉에 막혀 닿지 못했다.
비록 그 검이 닿지는 못했지만 두 사내의 양옆에 자리한 건물을 잘라내는 신묘한 수를 부렸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내는 단 한 사람 바로 마화천 뿐이었다.
“나도 괴짜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너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적어도 너라는 괴짜는 거짓이다. 봉명공.”
방립 사이로 마화천을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닌 봉명공이었다.
“때가 되었소.”
“.............”
“우리와 함께 할 것이오?”
============================ 작품 후기 ============================
늘 제갈 사혁의 강함을 표현하는데 조심스럽다보니 환골탈태 이후 첫 싸움이라고 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사대전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만큼 압도적인 승리를 챙길만큼 만만한 상대가 나오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번천과는 "약간 애좀 먹었다."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에 이제 봉명공을 등장 시켰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되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봉명공은 애초에 만들려고 생각하지 않은 캐릭터다보니까. 이와 관련된 것은 항상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마화천과 봉명공의 만남은 이제 낯설게 느껴지시겠지만 마화천은 원래 마교의 무사였습니다. 그리고 봉명공은 소림을 나와 흑사련에 몸을 두었죠.
마화천의 출신이 마교라는 것은 순전히 봉명공과 엮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등장 때 정체를 숨기고 괴짜처럼 행동하는 것도 봉명공을 연상하며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겠네요. 별거 없는 200회지만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