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회: 정사대전 -->
봉명공의 물음에 마화천은 살기를 거뒀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줄곧 원하던 거였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지금이라면 가능하오.”
마화천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마교. 그 모든 게 시작이었다. 고아로 자란 마화천에게는 마교가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열네 살이 되어 강호로 나왔을 때 모든 게 변했다. 그 전까지는 마교 이외의 삶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마교 밖 세상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개인의 의지가 있으며 자유로웠다. 열네 살의 민감한 시기를 겪고 있는 마화천을 바깥세상은 구원해주었다.
처음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교를 탈출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없었다. 마교의 하급무사이고 수많은 졸병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
사는 것은 밖이나 마교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밖에서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흑사련 련주 사지성을 만나 흑사련에 가입했다. 그래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마화천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게 뭐냐?”
“흑사련 내에 있는 마교출신들을 설득해주시오.”
지금의 마교는 더 이상 아수라를 모시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마교는 교주가 우상이며 신이었다. 사람이 신을 흉내 내며 자신과 같은 꼭두각시를 만들었다.
“나는 마교의 사람들이 깨닫길 바란다. 하지만...... 네가 하려는 건 종교전쟁이다.”
“굳이 그것을 둘로 떼어내야 할 필요가 있소?”
봉명공이 흑사련에 가입한 날 흑사련에서는 소림의 제자를 받아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봉명공은 흑사련에 가입하게 됐다. 봉명공이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죄를 범했고 그가 마교 명문가의 핏줄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소림에는 기사멸조의 죄를 지었고. 외숙부의 손에 부친을 잃었으니 마교와는 등을 돌렸다.
그는 흑사련이 원하는 인재였다. 그리고 흑사련에 가입한 직후 자신을 찾아왔다.
함께 마교를 무너트리자며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계획 없이 꿈만 꾸는 자라면 봉명공은 계획은 물론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까지 갖췄다.
“망지성의 호위무사는 어찌된 거냐?”
“그와는 면식이 있었소.”
“부친에 대한 복수는 잊었느냐?”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외숙부가 아니오. 바로 마교 그 자체요.”
봉명공은 마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교에 대한 믿음을 없애고 싶었다. 그것이 종교적 의미이든 교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든.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꿈은 같았다.
“내부 혁명을 일으키고 교주를 몰아낼 것이오.”
“교주는 천하제일인이다. 절대 몰아낼 수 없다.”
“아니. 가능하오.”
봉명공은 자신의 병기인 비룡승천봉(飛龍昇天棒)을 꺼냈다.
“소림의 기보라고는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건 상징적 의미밖에 없다.”
“아니 틀렸소. 비룡승천봉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오. 전설적인 낭인 칠망검(七網劍)이 그 재료를 구해 만든 소림의 기보이오.”
비룡승천봉이 유명한 이유는 소림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상징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그 소림이 아무 이유 없이 만들었다? 이는 곧 많은 이들의 의심을 사기 충분했고 강호에서는 비룡승천봉에 무언가 대단한 내력이 깃들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로 비룡승천봉은 단순히 장식품에 불과했다.
“비룡승천봉은 천근으로 만들어졌소.”
“천근?”
천근이라면 내공이 통하지 않는 전설의 철이었다. 하지만 비룡승천봉이 만들어진 시기에 천근이 발견됐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정말이냐?”
“칠망검 선배가 비룡승천봉의 재료를 구했으니 믿으시오.”
칠망검이 작정하고 재료를 구했다면 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방금 전 검을 휘둘렀을 때 분명 비룡승천봉과 부딪쳤다. 만약 정말로 비룡승천봉이 천근으로 만들었다면 내공이 발휘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검격을 구사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냐?”
“분명 천근은 내공을 사용 못하게 만드는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소.”
그래서 천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온 강호가 떠들썩해진다. 천근으로 만든 무기는 무림인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물건을 제조할 때 내 피를 사용했소. 오직 소승만이 여기에 내공을 불어넣을 수 있소. 그리고 천근의 힘을 봉인하는 것도 소승의 의지이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천중기만 사라지면 마교의 믿음을 무너트리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흑사련 내부의 마교인들 말인가.”
“도와주시겠소?”
“련주께 말은 해보겠다.”
“그가 허락해줄 것이라 믿으시오?”
허락해줄 것 같냐는 말에 마화천은 봉명공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언제부터 봉명공이 남을 믿지 못하게 됐나?”
“!”
“타락했구나. 타락했어.”
그 말이 맞았다. 마교를 무너트리겠다는 집념하나만으로 마교에 잠입해있는 동안 소림의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봉명공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멀었구나. 아직 멀었어.)
봉명공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질타할 때 마화천은 뒤돌아서서 떠났다.
“련주를 믿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라. 뭐가 됐든 결국 넷 중의 하나는 사라져야 해.”
두 사람은 그렇게 정사대전이라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마교의 붕괴라는 목적 하에 손을 잡았다.
정사대전은 흑사련의 사천 침공을 시작으로 무림맹의 신강침공이 이어졌지만 무림맹의 신강침공은 점점 힘들어졌다. 문제는 마교가 아니었다. 바로 배교였다.
제갈 사혁이 일궁성주 번천을 물리치고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서장을 통해 신강으로 칩임한 배교의 무사들이 무림맹을 향해 산공독(散功毒)을 사용한 것이다.
산공독에 중독되면 하루나 이틀 정도 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목숨을 잃지는 않지만 무림인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독이었다. 무리를 이끌고 있는 곤륜파 장문인은 사상자를 내지 않기 위해 결국 후퇴를 결정했다.
어렵게 신강 땅을 밟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어디 숨어서 독 기운이 빠지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무림맹은 마교 입성이 실패했지만 반대로 사천 땅을 밀고 들어오는 흑사련의 기세는 한풀 꺾인 무림맹과 치원이 달랐다. 결국 청해의 병력 중 일부를 사천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우리에게 산공독을 쓸 줄이야.”
“배교의 적은 마교라 하던데 나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배님은 여기 계실 겁니까?”
“마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지.”
“잘 부탁드립니다.”
마교 입성이 이뤄지지 못해 아쉽지만 무림맹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화산지회 선배들과 작별을 하고 사천으로 떠났다.
“사부. 좀 괜찮아요.”
첫날부터 번천을 물리치고 그 부하들을 혼자 쓰러트린 제갈 사혁이었기 때문에 이신은 사부의 몸이 걱정 됐다.
반면 제갈 사혁 정사대전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거 지난생애에서 정사대전은 청하의 죽음 이후 전면전을 미루고 미루고 해서 9년이나 걸렸다. 이번에는 그렇게 오래 이어져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무림맹이 장기전에 가장 취약하니까.)
연합단체 일수록 불리해지면 잡음이 많다. 흑사련은 어차피 정파와 마교에서 떨어져나간 자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결속력은 무림맹보다 뛰어나다. 오히려 같은 처지기 때문에 동료애까지 있지만 무림맹은 다르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지역 방파. 하지만 세분화하면 구파일방도 결국에 전혀 다른 독립세력.
제갈 사혁이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운남 땅을 흑사련에게 내어준 일도 있었다.
(군대는 방어에만 치중하고 결국 개인활동으로 가야 해.)
제갈 사혁은 일단 화산파와 제갈세가를 등에 짊어지고 무림맹에 개인활동을 건의할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의 포인트는 봉명공과 마화천이 손을 잡은 내용입니다.
다음편부터는 포커스를 그냥 제갈 사혁에게만 맞추고 다른 시점으로 이동 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모든 걸 제갈 사혁 위주로 맞추면서 제갈 사혁이 지난생애의 기억을 이용해 슬슬 무림맹을 유리한 위치로 올려놓는 과정도 쓸 생각입니다.
사실 2권 교정 작업과 연재를 동시에 하는 게 쉽지 않네요.
뭔가 팍팍 터트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습니다.
어서 2권 교정을 끝내고 연재에 집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