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회: 정사대전 -->
귀곡산맥을 돌아다니며 제갈 사혁은 배교의 산시절벽에서 만난 강하가 가르쳐준 대로 연못을 찾아다녔다.
“여기 같은데요.”
연못이라고 하지만 연꽃은 하나도 없었고 그냥 흙탕물이 고여 있는 커다란 물웅덩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진짜 이 안으로 들어가려고요?”
“맞아요. 따라오려면 따라와요. 하지만 물 안으로 들어가면 중독되니까. 주의하고요.”
“중독이요?”
“이 연못의 물에는 독이 섞여 있으니까. 당연히 독에 중독되죠.”
물에 독이 섞였다고 하자 청하는 인상을 구겼다.
“잠깐? 내가 지금 잘 못 들었나요? 독이요?”
“걱정할 거 없어요. 여기가 하오문의 비밀통로라면 하오문에 도착했을 때 해독제를 얻을 수 있겠죠.”
“아니면요? 여기가 하오문으로 가는 비밀통로가 아니면요.”
“그럼 내 옷이나 빨아주던가요.”
그런 뒤 제갈 사혁은 상의도 없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흙탕물이라 눈이나 잘 뜰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신아!”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이신도 말없이 연못으로 뛰어들자 청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이곳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두 사람을 따라가는 걸 택한 청하는 그대로 연못에 몸을 던졌다.
흙탕물 속에서 눈을 떠야 하는 게 찝찝했지만 눈을 떠보니 밖에서 봤을 땐 흙탕물이었지만 물속은 굉장히 깨끗했다.
아무래도 연못물에 어떠한 약품을 섞어 만들어낸 속임수 같았다.
“푸앗!”
위로 나온 청하는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제갈 사혁과 이신을 뒤쫓았다.
연못 안에는 성인 한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세 사람은 차례대로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숨을 참기 힘들어졌을 때쯤 가장 앞에 있던 제갈 사혁이 통로와 연결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동굴이지만 종유석도 없고 천장도 상당히 높아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깎아내 만든 것 같았다.
“푸~”
물을 뱉으며 나온 이신은 연신 주위를 둘러봤다.
“신기하네요.”
“푸앗!”
뒤따라 청하가 나오자 제갈 사혁은 손을 내밀어 청하의 손을 잡아주었고 청하는 제갈 사혁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때렸다.
“상의 좀 하고 가요! 나 그렇게 숨 오래 못 참아요! 죽는 줄 알았다고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내 옷이나....... 아오!”
여전히 말장난을 하자 청하는 제갈 사혁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손님 왔어요.”
이신이 손님이 왔다고 하자 그 순간 이신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고 이신은 그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자 청하는 피식 웃으며 현허도(玄虛刀)를 펼쳐 일행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만 쳐냈다.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 이기어검을 펼쳐 검을 날린 뒤 화살을 쏘던 궁수의 목전에서 검을 멈췄다. 의심할 여지없는 무림 고수의 등장에 그들이 당황했다.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 ‘뭐하는 놈들이냐?’ 같은 뻔한 말을 하면 네놈 엉덩이를 걷어 차버릴 거야. 그러니까. 닥치고 흑운 공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그 전에 해독제부터 구해야죠!”
“아~ 깜빡하고 있었어요.”
비류보를 펼쳐 순식간에 궁수들에게 다가간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으로 목에 칼을 들이민 하오문 문도에게 해독제에 대해 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하오문 문도는 해독제로 보이는 환단 3개를 건네주었고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을 풀고 호황을 허리에 찼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건 알거야. 그러니 흑운 공주. 하오문 문주에게 안내해. 우리는 그녀의 지인이니까. 대신, 이건 안 받도록 하지.”
제갈 사혁은 자신의 몫인 환단 하나를 받지 않았다.
“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때 주도록. 당장 독 때문에 어떻게 될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해독약은 복용하십시오. 방금 전 그 행동으로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좋아. 상황 판단이 빨라서 좋군.”
해독약을 복용한 뒤 하오문 문도들을 따라가자 점점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야 이거.......”
“세상에.......”
“진시황릉이 발견됐다고 한다면 딱 여기겠어요.”
놀랍게도 제갈 사혁 일행이 하오문 문도들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하나의 거대한 마을이었다.
“이거 구조가 어떻게 되지?”
너무 궁금해서 안내를 하고 있는 하오문 문도에게 이곳의 구조에 대해 물어볼 정도였다.
“이곳은 산의 내부를 파내서 만든 곳입니다.”
“산을 안쪽에서 파내?”
“저희가 다듬기는 했지만 여러분이 입구로 이용하신 그 동굴만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일 뿐 이 안쪽은 전부 사람의 손으로 파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중원천하. 그 어느 장인을 데리고 와도 산을 파내서 그 안에 이런 거대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가진 자는 없다.
“문주님을 만나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마을에는 시장까지 있을 정도로 생활기반이 탄탄했다.
“햇볕이 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점만 빼면 정말 대단한 곳이야.”
하오문 문도들을 따라 저택에 도착한 제갈 사혁 일행은 그곳에서 사내들과 어떤 물건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흑운 공주를 만날 수 있었다.
“어?!”
흑운 공주는 제갈 사혁과 청하 그리고 이신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청하를 안아주었다.
“어떻게 왔어요?”
“여기저기 물어물어. 찾아왔어요.”
청하를 안아주고 제갈 사혁을 안으려 하자 제갈 사혁은 질색을 하며 거부했다.
“난 됐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어서요.”
흑운 공주가 강제로 껴안자 제갈 사혁은 기분이 이상했다. 흑운 공주의 성격도 그렇고, 이런 식의 환영인사도 그렇고,
(마음에 안 들어.....)
기어이 싫다는 이신까지 포옹하고 난 후 흑운 공주는 저택에서 세 사람에게 차를 대접해주었다.
“........”
흑운 공주에게 대접받은 차는 미숫가루였다. 일반적으로 ‘차’라면 나름 곡물차이긴 하지만 미숫가루는 여간해서 손님에게 내주는 종류의 차가 아니었다.
“먼저 말해줄 게 있는데 무림맹은.........”
“알고 있어요. 하오문의 수뇌부를 공격했던 게 살막이라는 걸.”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건 우리가 사라지는 거죠.”
그녀의 말대로라면 하오문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하오문을 ‘그런 식’으로 공격한 것은 분명 무림맹과 흑사련을 동시에 모함하려는
살막의 아니 배교의 얄팍한 술책이고 우리는 그 후 몸을 숨겼어요. 여기까지는 배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죠.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몸을 숨기고 여전히 하오문으로 활동했어요.”
“잠깐! 여전히 하오문으로 활동했다는 건 뭐야?”
“말 그대로 수뇌부와 5천명의 하오문 문도들만 이곳으로 왔을 뿐 하오문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오문은 점조직이고 점소이. 고용인. 기녀...... 한명 한명이 하오문입니다.”
하오문이 점조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수뇌부 없이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위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하오문의 소속된 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하오문이 그 정도로 탄탄했었나?”
“요점을 콕 찌르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아니요. 말씀대로 하오문은 탄탄하지 않아요. 하지만 하오문은 분명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고 그 눈에 보이는 위기가 하오문을 하나로 엮었어요.”
흑운 공주 입장에서는 배교가 하오문을 공격한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강하라는 자와 만났다.”
“소몰이꾼 강하 아저씨를 만나셨다고요?”
흑운 공주도 강하가 배교에 잡혀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배교에서 나와 함께 탈출해 지금은 무림맹에 있다. 이곳을 알려준 것도 강하였지.”
“이곳은 하오문이 위험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곳이에요.”
“전대 문주 때부터 만든 곳인가? 꽤 좋군.”
“아니요. 이곳은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흑운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흑운 공주를 뒤따라갔고 흑운 공주의 저택을 지나 한참을 걸은 뒤 산의 안쪽을 깎아 만든 이 임시거처의 맨 끝에 당도했다.
“이건!”
거대한 석벽 위에는 누구나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일월신교(日月神敎).
“그럼 여기는 마교의.....”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당시 마교의 분파였던 배교가 있던 곳이에요.”
“!”
“당시 하오문은 마교가 배교를 멸문시키는 일에 동참하고 그 대가로 이곳을 얻었어요. 그리고 배교가 하오문을 공격했던 이유는 우리 하오문을 강호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과 이곳의 위치.”
즉 배교는 배교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 옛 배교가 자리한 이곳을 원했고 그 위치를 아는 건 오직 마교의 수뇌부와 하오문의 수뇌부 뿐이었다.
“마교는 건드릴 수 없으니까. 하오문부터 노렸군.”
“네. 하지만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은 돌아기신 당시 하오문의 장로분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망월 아저씨뿐이에요. 살아있는 사람들 중 이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저와 그리고 강하 아저씨뿐이시죠.”
“정보가 딴 곳으로 흘렀을 가능성은 없나요?”
청하는 이곳이 원래 배교가 있던 자리였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이곳의 위치는 오직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고 머리로만 기억되기 때문에 하오문을 급습했을 당시 그들은 이곳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손에 넣지 못했어요.”
“하지만 정말 생각도 못했어. 이런 곳에 배교가 있었다니...... 하여간 이놈의 땅덩어리는 쓸 때 없이 커요.”
그랬다. 귀곡산맥이 자리한 이곳은 바로 사천이다.
============================ 작품 후기 ============================
이 내용을 쓰고 싶었는데 어제는 진짜 글이 안써졌습니다.
정사대전으로 돌입하고 나서는 점점 신경이 곤두선 채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후반부라서 이래저래 생각을 많이 하고......
사실 마지막 엔딩은 이미 머릿속에 정해놓은 상태입니다. 항상 글을 쓸 때 엔딩부터 정하죠.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다보니 그 결말로 이어질 과정을 정하기 정말 힘드네요.
오늘은 3월 14일입니다.
하얀날 같은 건 지구상에 없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