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회: 격돌. -->
섬한대멸참(閃限大滅斬).
흑도섬은 수라파천황이 회전하는 방향의 역방향으로 검을 휘둘러 수라파천황의 기세를 꺾었다.
단 일격에 상대의 기격을 베어내는 섬한대멸참은 흑도섬의 명성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우사는 이 상황 자체를 예상하고 있었고 섬한대멸참이 수라파천황을 잠재웠을 때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큭!”
우사가 순식간에 품으로 파고 들어와 명치를 공격하자 흑도섬은 그 충격으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고 우사는 그때부터 쉬지 않고 연타공격을 하면서 흑도섬을 몰아붙였다.
우사의 계속되는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흑도섬은 이를 악물고 검을 크게 휘둘러 우사를 위협했고 이에 깜짝 놀란 우사가 뒤로 물러나자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힘은 좋아.”
입에서 핏물이 올라오는데도 흑도섬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니 그런 척을 했다.
겨우 숨통이 트인 흑도섬은 우사의 다리를 노려봤다.
(놈은 두 다리로 중심을 확실하게 잡은 후 안정된 자세에서 권장을 날린다. 일단은 속도를 내볼까.)
“후우~”
흑도섬이 길게 숨을 내뱉자 우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드디어 시작됐기 때문이다.
“흡!”
숨을 들이쉰 순간 흑도섬은 빠르게 보법을 펼쳐 우사에게 접근했다.
흑도섬은 쾌검을 구사하는 동시에 상황에 맞게 손을 오른손 왼손 번갈아가며 바꿨다. 공격은 빠르고 변화무쌍했다.
우사는 침착하게 흑도섬의 공격을 피했지만 흑도섬의 쌍수검이다. 전부 피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흑도섬의 호흡이 끊겨 공격이 중단됐을 때 총 35번의 공격 중 21번을 베였다.
“쌍수배회 검법(雙手徘徊 劍法)?”
흑도섬의 절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의 검에서 펼쳐진 무공은 쌍수배회 검법이었다. 게다가 이 무공은.....
“마화천에게 요령을 좀 배웠지.”
“그 배신자 놈이! 본교의 무공까지 욕보이다니!”
원래 마교의 검법이다. 마화천의 근본은 마교이기 때문에 이 검법을 알고 있었고 현재 진정한 의미에서 이 검법을 제대로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실력자라 할 수 있었다.
“나야 뭐 흉내 내는 정도지만 흉내도 그 정도면 잘한 거지. 응. 안 그래?”
자신의 공격이 어땠냐며 물어보자 우사는 흑도섬에게 주먹을 날렸다. 재빨리 검으로 방어했지만 때리는 힘이 대단해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나 많은 검상을 입고도 우사의 전의는 꺾이지 않았다.
우사의 일격이 얼마나 매서운지 공격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후들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고작 이 정도냐?”
“고작은 무슨 곧 뒤지게 생겼고만~”
더 해보란 듯 소리쳤지만 대답은 정작 다른 사람이 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우사의 부하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주군의 신변을 보호했다. 그러자 나무 위에서 사내 둘과 여인 한명이 내려왔다.
세 사람 중 가장 앞에 있는 남자는 어떤 음식을 먹다 남은 나무 꼬챙이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삼전문(杉全門). 쓸어버렸다는 게 너희들이야? 아니 싸우고 있는 꼴을 봐선 그쪽인가?”
입에 문 나무 꼬챙이로 우사를 가리킨 남자는 그러다가 꼬챙이의 방향을 우사와 대립하고 있는 흑도섬에게 돌렸다.
“어라? 흑도섬이네.”
“!”
흑도섬. 그 이름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고작 서른도 안돼 보이는 젊은 무림인이 가볍게 언급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무림인은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볍게 그 이름을 언급했다.
“그럼 삼전문을 개 박살 낸 건 누구야?”
“시끄럽다. 애송이.”
우사는 남자를 향해 귀찮다는 듯 권풍을 날렸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너구나.”
그 남자는 우사의 권풍을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으로 막아냈다.
“!”
“!”
우사는 물론 흑도섬도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사의 권풍을 막아낸 남자는 뒷짐을 지고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리고 뒤로는 방금 전 허세를 부리며 우사의 권풍을 받아낸 손가락을 끼워 맞췄다.
(망할. 손가락이 삘 줄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남자의 뒤에서 지켜보던 일행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허세. 그리고 그 남자와 대치하고 있는 저 인물이 보통 그 이상의 실력자기 때문이다.
겨우 손가락을 끼워 맞춘 남자는 검지손가락으로 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삼전문은 네가 박살낸 걸로 하자고.”
“이름을 밝혀라. 건방진 놈!”
“제갈 사혁이라고 한다.”
제갈 사혁이 정체를 밝힌 순간 우사는 코웃음을 쳤다.
“흥! 고작 화산파의 애송이 주제에 명성 좀 얻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구나.”
“놀고 있네.”
그 말과 동시에 제갈 사혁은 느닷없이 태을미리장(太乙迷離掌)을 펼쳐 우사를 공격했다.
두 사람은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친 고수 그리고 한 사람은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 문파의 후계자. 우사와 흑도섬의 대결은 제갈 사혁의 난입으로 점입가경(漸入佳境)에 빠져들었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태을미리장을 막아낸 우사는 제갈 사혁의 손목을 붙잡아 흑도섬 쪽으로 던져버렸고 흑도섬은 날아오는 제갈 사혁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제갈 사혁은 경신법으로 몸을 가볍게 해 흑도섬이 휘두르는 검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었다.
“뭐야?”
반면 검을 휘두른 흑도섬은 제갈 사혁의 잡기(雜技)에 놀랐다.
“부드러움은 강하다. 다들 배우잖아.”
부드러움은 강하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무공의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엄청난 도발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부드럽고 유연한 것보다 뻣뻣한 게 좋거든.”
제갈 사혁은 흑도섬의 복부를 발로 찬 뒤 우사에게 다가가 산화무영수(散花無影手)를 펼쳤다. 우사 역시도 권법사기 때문에 제갈 사혁이 금나수로 공격해 들어오자 연자급수(燕子汲水)로 맞받아쳤다. 그런데 그때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흑도섬이 검을 집어넣은 것이다.
“무슨 짓이냐? 흑도섬!”
제갈 사혁을 상대하고 있는 와중에도 우사는 흑도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싸우면 나야 굳이 낄 이유가 없지.”
흑도섬은 어떤 의미에서 참 속이 편했다. 삼파전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갈 사혁과 우사가 싸우면 자신이 굳이 나설 필요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던 것이다.
우사는 물론이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멋지게 분위기를 휘어잡으려 했던 제갈 사혁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너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우사와 금나수 대결을 펼치는 와중에 우사의 정강이를 걷어찬 뒤 제갈 사혁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 흑도섬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너야말로 분위기 파악해라. 애송이!”
등을 돌린 순간 우사는 제갈 사혁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제갈 사혁을 던져버렸다.
“흑도섬!”
정파의 애송이에게 농락당한 것도 우스운데 흑도섬은 거기에 한술 더 뜨자 우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우사가 거품을 물고 달려들자 흑도섬은 재빨리 검을 뽑아 미친 소를 상대했다.
“아편쟁이!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아편쟁이?”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청하는 흑도섬이 아편쟁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의 부하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흑도섬과 싸우고 있는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그의 부하들이 입고 있는 옷은 마교의 무사들이 입는 옷이었다.
“흑도섬이라고 했을 때 데리고 도망칠 걸 그랬나? 일났네.....”
“무슨 일이에요. 청하 누나?”
“저 사람은 마교의 좌호법 우사야.”
청하는 그제야 제갈 사혁이 상대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한명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교인이고 흑도섬이 친한 듯이 아편쟁이라고 부르면 더 볼 것도 없었다.
“갈사 소협. 좌호법 우사에요.”
“뭐요?!”
우사에게 내동댕이쳐져 한쪽 구석에 널부러져 있던 제갈 사혁도 좌호법 우사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저 양반이 좌호법 우사란 말이에요?”
청하에게 재확인을 요구하자 청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미친!”
제갈 사혁은 분위기 좀 휘어잡으려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을 후회했다. 결코 좌호법 우사라는 이름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좌호법 우사와 흑도섬의 일전. 이 싸움으로 흑도섬에 의해 좌호법 우사의 오른팔이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오른팔이 잘린 우사는 정사대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 강호에 더 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그 예정된 사건에 끼어들어 미래를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망했다......”
============================ 작품 후기 ============================
어제 공지 띄우는 걸 깜빡했습니다.
토요일에 아침부터 약속이 있었는데 휴재 공지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는 두 사람이 결단을 내지 전까지 제갈 사혁을 등장 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흑도섬과 우사가 결판 내버리면 한쪽은 단물 다빠지는데 (무협에서 결단나면 한쪽은 죽으니까요.)라는 생각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2화 이상 아저씨들이 주인공인 것도 조금 그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