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09화 (209/262)

<-- 209 회: 격돌. -->

“사혁군은 누군가에게 져본 적 있나?”

무림인에게 패배는 곧 죽음이었다. 패배를 해도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운이거나 불행이다. 제갈 사혁은 지난생애에서 봉명공에게 그리고 이번 생애에서 십야성주 추백성에게 패배했다.

두 번의 패배 모두 제갈 사혁에게는 행운이었다.

하나는 봉명공과의 인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추백성에게서 느낀 한계였다.

특히 추백성과 싸우면서 느낀 한계는 제갈 사혁을 더욱 발전 시켰다.

“네.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한 제갈 사혁은 패배한 적이 있음을 밝혔다.

“누구한테 졌지?”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졌습니다.”

패배를 안겨준 이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니 그게 무슨?

“그 사람들도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한테 졌거든.”

마화천은 분명 강하지만 그 강함이 흑도섬과 동수(同數)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선 마화천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다. 하지만 검현군과 흑도섬은 각각 정파제일검과 흑도섬이라는 별호로 대변되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검현군 사제와 마화천은 안 돼. 그들 위에는 오직 천중기 뿐이야. 다른 선택지가 없어. 사혁군으로 예를 들어볼까? 사혁군이 칠객의 한 사람에게 졌어. 응? 졌단 말이야.”

이미 두 명이나 꺾어서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는 칠객으로 비유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성제진인 앞에서 투덜댈 수는 없었다.

“그럼 사혁군은 칠객 중 다른 사람을 이기면 돼. 사혁군보다 강한 사람은 아직 많으니까. 그것으로 패배를 극복하면 돼.”

패배를 안겨준 이에게 설욕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실력자를 꺾어서 패배를 극복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성제진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옆에 있는 서로가 아니라 오직 천중기 뿐이야. 천중기에게 당한 치욕은 천중기를 꺾어야만 씻어낼 수 있어. 승리 아니면 패배. 그것도 아니면 추락만 있을 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천중기가 왜 그 두 사람을 살려뒀을 것 같아?”

천중기는 승자로서 충분히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살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건 강호무림의 금기였다. 모두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그들을 죽여 버리면 심심하니까. 더 이상 자신과 대적할 자가 없으니까. 혹은....... 또 덤비면 또 싸워서 이길 수 있으니까.”

이번 정사대전의 원인은 분명 제갈 사혁에게 있었고 성제진인은 제갈 사혁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이번에도 천중기를 이기지 못할 거야. 20년 전처럼 몇 월 몇 년 그렇게 싸우다가 지치면 종전을 선언할 거야. 그럼 그들도 기다렸다는 듯 종전에 찬성하겠지. 서로 많이 지쳤으니까.”

씁쓸하지만 그게...... 그게 예정된 순서였다.

“사혁군. 흑사련 련주 사지성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주게.”

사지성이 하지 못했던 일. 그것은 천중기를 죽이는 일이었다.

당시 천하제일인을 가리는 세 사람의 싸움에 흑사련 련주인 사지성도 동행했었다. 세 사람의 대결이 끝난 후 대결에 참여하지 않은 사지성만이 지친 천중기를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지성은 그러지 않았다.

“호랑이를 상대로 칼을 든다고 해서 호랑이와 대적하는 사냥꾼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의미에서 천중기를 제외한 무림인 모두는 칼을 든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이빨과 발톱으로 호랑이와 대적할 수 없다. 그래서 칼을 든다.

“이번에 천중기를 죽이지 못하면 종전이 문제가 아니야. 더 이상 무림을 유지할 수 없어.”

또 다시 천중기에게 이 무림이 무릎을 꿇는다면 그때는 무림맹과 흑사련 어느 한쪽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이루지 못하면 저곳으로 가는 건 당연하니까.”

무림맹이 더 이상 마교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히는 순간 그것은 그 어떠한 무력보다 빠르게 연합이라는 공동체를 무너트릴 수 있었다.

“배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르겠네. 하지만 적어도 쇠락의 위기에서 한차례 버틸 수는 있겠지. 무림맹과 흑사련. 신뢰를 잃어버린 우리 둘 중 하나만 사라지는 거야.”

이야기는 길어졌지만 쉽게 말해 어떻게든 천중기 하나만큼은 꺾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정도 무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성제 진인의 침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이든 제갈 사혁은 오후 늦게 총사인 여망상의 부름을 받았다.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나?”

“괜찮습니다.”

“자네가 하오문과 손을 잡고 배교의 성지를 공개한 덕에 사천이 아주 떠들썩해.”

“조용한 거보다 좋지 않습니까. 활기도 있고 피 냄새도 나고.”

여망상은 제갈 사혁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서형귀(西形晷)라고 흑사련 측에서 제법 알아주는 놈이네.”

제갈 사혁은 지난생애와 똑같은 각 단체의 실력자 처치가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사병의 수보단 보유하고 있는 고수의 수가 그 단체의 힘을 말해주기 때문에 상대 세력의 고수를 꺾는 일은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서형귀. 제갈 사혁이 기억하기로는 이건 구월상이 맡았던 임무였다.

“제가 서형귀를 잡기로 되어 있었습니까?”

“아니.”

“구월상입니까?”

제갈 사혁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지만 여망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놈이 자네를 잡기로 되어 있네.”

“농담이시죠? 저 칠객 잡았습니다. 서형귀는 저와 급이 다른데 흑사련에서 저 죽이려고 고작 이놈을 보낸답니까?”

칠객은 흑사련의 일곱 고수고 제갈 사혁은 그 중 둘을 처리했다. 객관적으로 칠객이거나 그들과 동급의 고수가 아니라면 제갈 사혁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네. 서형귀가 자네를 잡기로 되어있다고 세작에게 연락이 왔네.”

정말로 서형귀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두루마리를 움켜쥐고 인상을 구겼다.

“자네 그거 읽어야 하네만.....”

“읽은 걸로 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 사혁은 구겨진 두루마리를 챙기고서 밖으로 나갔다.

서형귀가 제갈 사혁을 노리고 역으로 무림맹에서 서형귀의 처리를 제갈 사혁에게 맡겼다. 뭐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구색이 맞았다. 하지만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서형귀 정도로 제갈 사혁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제갈 사혁은 봉황대 숙소로 가 대주 집무실 구석에 앉아 구겨진 두루마리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자식 봐라. 벌써 사천 넘었나보네.”

“...... 대주님?”

서류 정리를 하던 초영은 갑자기 제갈 사혁이 찾아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유심히 살폈다. 머리카락도 하얗고 인상도 조금 아주 조금 다르지만 분명히 제갈 사혁이었다.

“대주는 초영이잖아. 난 이제 더 이상 대주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인상이 조금 바뀌셔서 확인차 그렇게 불렀을 뿐입니다. 제갈 소협.”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존댓말은.....”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초영은 제갈 사혁을 향해 붓을 던졌고 제갈 사혁은 일부러 맞아주었다.

“나이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어쩐 일이세요?”

“내가 칠객 처리한 건 알지?”

“네. 실제로 사천에서 괴인을 물리친 사건으로 이름을 알리셨지만 유명해진 건 구마준을 쓰러트리신 후죠.”

제갈 사혁은 내공을 실어 두루마리를 던졌고 그것은 정확하게 초영의 바로 옆쪽 벽에 박혔다.

“나중에 수리비 청구하겠습니다.”

“읽어봐. 그 놈이 나 잡으러 사천에 왔단다.”

“서형귀군요.....”

어쩐지 말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보아 서형귀를 아는 눈치였다.

“아는 놈이야.”

“놈이 아닙니다.”

놈이 아니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초영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쁘냐?”

“............”

짧은 침묵은 제갈 사혁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 간다.”

여자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당장이라도 서형귀를 만나러갈 기세였고 초영은 재빨리 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거 알아보시려고 오셨습니까?”

“아니 뭐 좀 물어보려고.”

“말씀하십시오.”

“나보다 약한 녀석이 나를 잡으러 온데. 말이 안 되지?”

“말 됩니다. 함정을 파면 못 잡을 것도 없지요.”

“미인계?”

제갈 사혁은 서형귀가 여자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 계속 그쪽 방향으로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면 밀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밀회? 아~ 이거 어쩌지 오늘은 잠도 제대로 못자서 피부 상태가 영 아닌데.”

제갈 사혁은 여전히 진지하지 못했고 초영은 그런 제갈 사혁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어.”

그래. 특히 상대가 화를 내면 기다렸다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짓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임무를 핑계로 나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안 그래?”

“네. 맞습니다.”

============================ 작품 후기 ============================

한숨도 안자고 출판본 교정과 연재를 한꺼번에 하려니까 죽겠네요.

이번에 스맛폰으로 바꿔서 밀리언 아서라는 게임을 하게 됐습니다.

저렙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닥 재미는 못느끼고 있습니다.

그냥 여동생이 같이 하자고 해서 하고 있는데 여동생 보스 양념이나 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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