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10화 (210/262)

<-- 210 회: 격돌. -->

사실 흑사련이 서형귀한테 제갈 사혁을 잡아오라고 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상부에 밉보여서 괴롭힘 비슷한 걸 당하지 않는 이상 이런 명령을 내린다는 거 자체가 부당했다.

“함정일 경우는 정면돌파하면 그만이야. 모르고 당해야 함정이지 알고 있으면 그게 함정인가?”

하지만 제갈 사혁은 함정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왕하면 한 50명? 그 정도 끌고 오면 즐겁게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후자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위장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문제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 서로 대화가 되는 법이다.

“왜 꼭 나지? 왜 꼭 나하고 만나야 하는 걸까?”

화산파 그리고 제갈세가.

이건 무림인으로서 제갈 사혁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배경일 뿐이지 배경을 떠나 정파를 주도하는 무림맹 안에서 봤을 때 제갈 사혁의 순수한 입지는 잘 해봐야 봉황대 전임 대주 신분이다.

물론 개인으로서의 영향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갈 사혁이라는 무림인은 대화상대로 적당하지 않았다.

“동경과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실 동경이 함께 동행해주기를 원했던 터라 초영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일부러 마지못해 수락하는 척 했다.

“동경이 같이 가주면 나쁘지 않지.”

동경과 아미산 근처 마을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2층짜리 객잔에 들어가 위에서 마을을 살폈다.

“대주님과 일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대주는 초영이잖아.”

여전히 봉황대의 많은 대원들이 제갈 사혁을 대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들 마음속에 제갈 사혁이 깊숙이 자리 잡았거나 그게 아니면 그들보다 어린 제갈 사혁에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계속 대주라고 부르는 거 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머리카락 왜 이러신 거예요?”

환골탈태의 부작용(?)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흰머리가 신기했는지 동경은 제갈 사혁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만 좀 만져. 사내새끼가 만지작거리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으니까.”

“서형귀는 어디서 만나실 생각이세요?”

“두루마리에 적힌 건 ‘사천에서 마지막으로 목격’까지야. 그러니까. 사천에 입성한 건 확실해.”

“그 정보 출처가 어디죠?”

“무림맹이면 아무래도 개방 쪽이라고 봐야겠지?”

사실 다른 임무와 달리 이번 임무는 제갈 사혁이 서형귀를 찾는 게 아니라 서형귀가 제갈 사혁을 찾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사천 어딘가에 있다.’ 정도만 알면 그만이었다.

“함정일 경우는 없겠죠?”

“무슨 함정?”

“독살이라던가? 그게 아니면 서형귀가 여자라니까. 뭐 미인계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우르르 몰려와서 그냥 칼 들이대고.....”

“독살은 모르겠고 미인계라면 내가 고맙지. 사실 우르르 몰려오면 그게 더 좋고.”

제갈 사혁이 봉황대 대주로 있으면서 그가 싸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경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 터지면 멀리서 위협사격 정도만 해줘. 그게 아니면 서형귀를 만났을 때 머리에 한방 쏴줘도 되고.”

그렇게 동경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제갈 사혁은 아미산 근처 마을에서 서형귀를 찾기 위한 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오직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그저 그렇게 시간만 보냈다.

그렇게 5일 째 되는 날.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꼭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려는 것처럼.....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이유도 없이 기분이 나빴다.

“손님 주문하신 음식입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돼지 구이가 나오자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울적해진 마음을 먹을 것으로 풀려는 듯 젓가락으로 양껏 집어 한입에 넣었다.

“실례합니다.”

그런데 그때 방립을 쓴 여인이 갑자기 자신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와 덜컥 앉자 슬며시 여인을 쳐다본 후 이내 아무렇지 않게 아침식사를 계속했다.

여인이 쓰고 있는 방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제갈 사혁의 청각을 자극했지만 거슬리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제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으셨군요.”

제갈 사혁과 같은 고수와 마주하고 있는 것치고는 목소리에서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긴장감은커녕 살기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제갈 사혁은 서형귀의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그렇게 한참을 아침 식사에만 집중했다.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차를 마시고 난 후 제갈 사혁은 내공을 실어 찻잔을 젓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마치 음공(音功)을 펼친 것처럼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고 그 순간 빗줄기를 뚫고 날아온 화살 한발이 서형귀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화살 한발!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갈 사혁은 서형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붙잡았다.

“!”

창문 밖으로 화살이 날아오자 서형귀는 깜짝 놀랐고 그 모습을 본 제갈 사혁은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아무 대책도 없는 풋내기네.”

그래도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상대는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삼류에 불과했다.

“자..... 그럼 앞면 없는 우리가 만나야 했던 이유라도 좀 알아보자고 상부에 밉보였나? 그게 아니면 자살하려고 찾아왔나?”

“마화천님께서 기다리십니다.”

“!”

마화천이라는 말에 제갈 사혁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한참을 웃었다.

“흐하하하하~”

한참을 웃은 후 서형귀가 쓰고 있는 방립을 벗겼다.

“독살. 그것도 아니면 미인계.......”

이런 미인이 작정하고 홀리려 하면 눈 딱 감고 넘어가줄 생각이 들 정도로 서형귀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다수의 인원을 동원한 함정. 일거라 생각한 내가 너무 순진했네. 뭐야 나도 아직 순수한 면이 남아 있잖아.”

어떤 근거로 자신이 아직 순수하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과 말투에 스며든 허세는 절대 순수함과 거리가 멀었다.

“전령(傳令). 내 말 그대로 전해. 나는 여기서 기다린다.”

지금 같은 정사대전 시기에 마화천 정도의 고수가 움직이는 건 싫든 좋든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움직이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제갈 사혁은.......

물론 활약상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무림 고수의 계보를 오랜 시간 잇고 있는 마화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는 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때문에 마화천은 서형귀라는 전령을 이용해 먼저 제갈 사혁에게 만날 것을 요구했다.

마화천의 성격상 함정을 파놨을 리는 없고 이 시기에 타인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접촉을 해온다면 아마도 지난 날 무형독을 둘러싸고 겨뤘던 비무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기다리겠다는 의미는 무슨 뜻입니까?”

“언제 어느 때라도 상관없다. 사천. 아미산 아래....... 맹세하건데 우리가 만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곳은 무림맹이 있는 사천입니다. 그대를 어떻게 믿죠?”

서형귀는 이곳이 무림맹이 위치한 사천이라는 점을 내세워 장소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내가.....”

“?”

“내가 귀주로 넘어가면 날 막을 수 있나? 대답해라.”

“.........”

“내가 귀주로 가면 지나가는 개도 죽인다. 너희는 그런 나를 막을 수 있나?”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귓가에 울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뭐야 저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런 해괴한 일이!?”

객잔에 있던 사람들은 창문 너머의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거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대로 멈춰서 빗방울이 공중에 떠 있는 괴상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제갈 사혁이다. 내게 믿음을 요구하지 마라. 너에게 믿음을 줘야 할 이유가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 말과 동시에 멈췄던 빗줄기는 땅에 떨어졌고 그 물이 튀겨 제갈 사혁의 뺨에 닿았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가라. 가서 내 말을 전해라.”

서형귀는 제갈 사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눈조차 마주 볼 수 없었다.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두려워서 칼을 뽑을 것만 같았다.

서형귀가 떠나자 반대편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경이 서형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마화천입니까?”

제갈 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거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흑도섬 검현군과 같은 등급을 먹이기엔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죠. 칠객과 마화천 사이에 간격도 정확하지 않고.....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해지겠네요. 자신 있으세요?”

여전히 그는 말이 없었다. 말없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지만 웃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화천과의 만남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 사혁과 마화천. 무림맹과 흑사련의 실질적인 힘 싸움이자 정사대전의 판도를 바꾸게 될 싸움이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휴재 공지를 띄우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제 약속도 있었고 집에 들어와서 마음이 복잡해서 화산의협 휴재 공지 쓰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일 때문은 아니고 소설 때문입니다.

화산의협은 이제 후반부인데 반해 다음 소설의 시작부분이 문제가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화산의협 다음 소설이지 사실 저의 2번째 조아라 연재작(2005년 75화로 연중 습작화)이었고

(화산의협은 6번째이자 연중을 안한 유일한 성공작이죠.)

주인공은 물론이고 설정까지 한번 싹 갈아엎고 썼을 만큼 애정이 있는 글입니다.

2010년 마지막으로 쓰고 쓰지 않았는데 화산의협을 쓰고나서 출판 교정 작업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 그 글을 다시 보니까. 초반 도입부가 너무 문제가 많은데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화산의협에 집중하고 싶지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잡생각만 많아지네요.

이럴 때는 저도 제갈 사혁처럼 확실한 성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