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회: 격돌. -->
사선으로 이랑을 휘두르며 압박하는 마화천의 모습은 내공의 유무를 떠나 여전히 그의 이빨이 부러지지 않았음을 머릿속에 각인시켜주었다.
‘손목을 쳐서 일단 무기를 떨어트려야겠어.’
제갈 사혁은 금나수를 펼쳐 마화천의 손목을 노렸지만 그 속셈을 모를 마화천이 아니었다.
노골적이고 집요한 공격을 피한 뒤 뒤로 몇 발작 물러나 검을 휘둘렀다.
‘교활한 놈!’
‘쳇! 눈치 챘네.’
마화천은 미간을 찌푸렸고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핥으며 아쉬워했다. 서로 내공이 바닥나버렸으니 이런 조그마한 신경전에도 민감했다.
“하아!”
팔을 기괴하게 저으며 이랑을 휘두르자 옆구리를 정확하게 베인 제갈 사혁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았다!”
“!”
오히려 이 상황자체를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랑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화천!”
집요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묵직한 주먹을 날리자 그제야 대력검 이랑과 한 몸처럼 움직이던 마화천을 검에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은 마화천이 다시는 검을 쥘 수 없도록 대력검 이랑을 동경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졸렬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마화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마화천은 손으로 제갈 사혁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허세 부리지 마라.”
“뭐 까짓것 별거라고.”
제갈 사혁은 치유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웠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그 여유 때문에 마화천의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피가 멈췄군.’
이 상황에서도 마화천은 제갈 사혁의 몸 상태를 살피는 침착함을 보였다.
마화천 역시 이 정도 명성을 얻기 위해 수많은 아수라장을 겪은 무림인. 정신적인 면에서는 제갈 사혁보다 월등했다.
‘목에 입힌 상처는 절대 가벼운 게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출혈도 멈췄고 상처도 그리 깊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제갈 사혁은 소령을 놓고 비무를 하던 그때와 뭔가가 달랐다. 도검불침이라 소문난 것 치고는 일반적인 검상에도 쉽게 상처를 입었다. 그 전에는 도검불침이 확실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 머리카락.’
그리고 지난번과 다르게 흡사 노인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은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도검불침을 잃고 다른 능력을 얻은 건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되는군.’
마화천은 제갈 사혁과 짧은 시간 서로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조건으로 비무를 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의 치유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얀 머리카락과 사라진 도검불침 등을 근거로 제갈 사혁이 어떠한 능력을 얻었다 판단했다.
‘혼자 상처를 치유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방법은 이것뿐이다.’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이는 능파미보(凌波迷步)를 펼쳐 제갈 사혁의 눈을 어지럽힌 마화천은 가까이 접근해 검상을 입은 제갈 사혁의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크윽..... 이 개자식이!”
제갈 사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에 무릎을 꿇었다.
‘상처치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 아물지 못하게 소금을 뿌리면 그만이다.’
혼마탈세(魂魔脫世).
옆구리를 움켜쥔 채 마화천은 남아 있는 내공을 모두 갈무리해 장법을 펼쳐 제갈 사혁을 멀리 날려버렸다. 옆구리를 오래 움켜쥐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놈은 맨손으로 사람의 몸을 찢어버리는 맹수, 가까운 거리에서는 필패를 면치 못했다.
‘젠장..... 내공이 완전히 바닥나 버렸군.’
효과적인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문제는 방금 전 공격으로 내공이 모두 바닥나 버렸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는 진짜 체력만으로 싸워야만 했다.
‘나 권법에 자신 있던가?’
마교에 있을 때는 강제로 훈련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지만 요 몇 년간 딱히 검 이외에 권법이나 다른 훈련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마화천이 권법에 자신이 없어 고민하던 그때 장법에 맞고 나가떨어진 제갈 사혁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아프잖아.......... 이 새끼야!”
옆구리에 피를 질질 흘리며 일어선 제갈 사혁은 뒤에 있는 가판대에서 접시를 들고 던졌다.
“!”
마화천은 재빨리 날아오는 접시를 피했지만 놀랍게도 빗나간 접시는 그대로 마화천의 뒤에 있는 가게 벽에 박혔다.
‘농담이지? 저건 유리로 만든 거잖아!’
아무리 접시가 단단해도 유리로 된 물건이 깨지기는커녕 벽을 뚫고 단단히 틀어박힐 수는 없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마화천은 이를 악물었다. 근력만으로 저런 무식한 광경을 연출하는 상대와 지금부터 맨손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력검 이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난 임무 때 제갈 사혁의 밑에 있던 봉황대 대원이 분명했다. 봉황대에 들어갈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은 갖췄다고 봐야했고 내공이 한줌도 안남아 있는 자신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저건 포기해야겠지.’
“마화천!”
“!”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제갈 사혁은 마화천의 눈앞에 까지 다가왔고 그의 주먹을 두 팔로 막는 순간 무슨 쇳덩어리 같았다.
이건 뭐 몇 대 맞다보면 참을만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세가 오른 제갈 사혁이 정강이를 걷어차자 마화천은 무릎을 꿇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발로 찼다.
제갈 사혁이 지르는 모든 공격은 징그럽게 아팠지만 마화천도 오기가 있어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마화천은 제갈 사혁이 끈질기게 달라붙자 방어를 목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본능적으로 내지른 주먹은 우연히 제갈 사혁의 얼굴을 정확하게 때렸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제갈 사혁은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게 제갈 사혁의 가장 큰 실수였다.
‘어라?’
마화천은 그 명성대로 검의 달인이고 평소 훈련 강도는 일반적인 무림인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신체능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검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권법에 조예가 깊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주먹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우연히 제갈 사혁의 얼굴을 때리고 그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마화천의 마음속에는 자신감이 생겼다.
권법을 구사하는 요령이 ‘제갈 사혁보다’ 없을 뿐이지 어린 시절부터 마교의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권법에 있어서 아주 숙맥은 아니었다.
“이거 될 것 같은데.”
제갈 사혁이 상단공격을 하자 마치 격투 교본처럼 상당을 막아낸 마화천은 그대로 상대의 가슴을 때렸다.
‘좋아 느낌 괜찮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갈 사혁이 두 손을 뻗어 목덜미를 붙잡자 그 순간 목구멍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무릎으로 복부를 때린 것이다.
마화천이 배운 권법에는 무릎으로 상대를 공격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의 공격방식은 낯설었다.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몰라 내리 세대를 더 맞고 그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난 마화천은 명치를 움켜쥐었다.
‘너는 자유롭구나.’
제갈 사혁과 상대하면서 마화천은 제갈 사혁의 공격방식이 상당히 자유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형식의 틀이 잡혀 있는가 싶으면 어떨 때는 공격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허를 찔렀다.
검법에 비하면 비교적 몸을 쓰는 권법은 자유로웠다. 이렇게 마화천이 권법을 이해해가고 있을 때 제갈 사혁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화천에게 검을 빼앗자마자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마화천이 우연히 뻗은 주먹에 맞고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 마화천이 권법으로 자신에게 맞서려 하자 더욱 침착하게 상대를 대했다.
제갈 사혁은 복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복부를 감싸며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그 순간 마화천은 무릎을 꿇었다.
복부 공격은 속임수고 진짜는 머리를 노리고 차는 발차기였다.
‘뭐지? 속임수?’
그 후 마화천은 제갈 사혁에게 수차례 공격을 허용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젠장! 이런 식으로 밀리기만 할 뿐이다!’
마화천은 정신적으로 강했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절대 주눅 들지 않았다.
‘분명 다르긴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허초라고 볼 수 있다.’
제갈 사혁은 방금 전 주먹으로 복부를 노리는 척하면서 발로 머리를 찼다. 이는 검법의 허초와 같았다.
‘두 주먹을 검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두 자루의 검을 쥐고 있다.’
애초에 마화천에게 권법은 무리였다. 그래서 마화천은 생각을 달리했다.
권법 그 자체를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두 주먹을 검이라 가정하고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만백신격(萬百申擊)의 초식을 권법처럼 사용하자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제갈 사혁을 당황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뭐지?’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지만 제갈 사혁의 눈빛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무슨 권법이지?’
마화천이 권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 순간.
‘놈의 출신은 마교다. 마교의 권법인가? 하긴 마교에는 권법사가 제법 많았어.’
몸으로 부딪쳤던 경험과 어설픈 추측이 만나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심리를 다뤘습니다.
두뇌싸움은 아니고 마지막에 나와 있듯 자신이 겪은 경험과 어설픈 추측이 난무하죠.
마화천은 3대 검사라 불리는 고수인만큼 조금 다른 식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항상 저는 글을 쓸 때 제갈 사혁의 강력함을 어필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강함에도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강적과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화천 편도 다음으로 마무리네요. 글이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그런데 저는 좀 걱정이네요. 태어나서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거짓말 하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