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회: 천하제일인 -->
무림 3대 검사라 불리는 마화천이 제갈 사혁에 의해 패배하자 강호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그가 처음 칠객의 한 사람인 구마준을 꺾었을 때는 당시 그 자리에 청성파를 배신한 서백호 소위가 함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칠객을 정당하게 꺾었을 리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그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갈 사혁은 구마준과 같은 칠객의 송수겸을 꺾음으로서 구마준을 이긴 게 결코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1년 뒤 아니 정확히 몇 개월 뒤 절대신위라 불리는 마화천을 꺾었다.
제갈 사혁의 나이 스물 하나. 그간 동년배 중에 대적할 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마화천을 꺾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무림맹 내부에서는 이 사실을 이용해 수많은 낭인들과 젊은 무림인들을 뒤흔들었다.
정의는 무림맹에 있으며 이 싸움의 대의 또한 무림맹에 있다는 식의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전은 제갈 사혁이 주도함으로서 보다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 덕분에 무림맹에 가입하려는 낭인의 수가 많아졌고 그로인해 사병의 수가 늘었다. 흑사련 측은 마화천의 패배로 인해 충격을 받은 듯 했으나 마화천의 생존과 그의 무공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인지하고 조직의 내정을 가다듬었다.
결국 이 사건은 무림맹과 흑사련 양측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렀고 마교와 배교만이 보이지 않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배교의 경우 배교 천주인 강위가 칠객의 초지강을 꺾고 상승세를 이어가는가하면 같은 천주인 가울이 이기어검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화제를 몰고 왔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묻혀 버렸다.
제갈 사혁과 마화천의 일전이 있고난 후 한 달이 흘렀다.
제갈 사혁은 그 동안 마교의 이름 있는 고수들을 차례로 꺾으며 정사대전의 판도를 무림맹 쪽에 기울게 만드는 한편 정사대전으로 인해 사치품 유통이 어려워지자 그 대체품으로 황옥(黃玉)을 팔았다.
지난 날 시용문의 치부를 덮어준 대가로 얻은 황옥 채굴권을 이용해 황옥을 채취하는가 하면 황옥의 가치가 지금보다 높지 않았을 때 시용문을 이용해 싸게 황옥을 사서 적절한 시기에 유통될 수 있도록 물품을 쌓아뒀다. 그리고 그 돈을 이용해 제갈 사혁은 하오문의 재건을 도왔다.
예정대로 라면 흑운 공주의 문주 취임을 도와 하오문의 뒤를 조종하는 흑막이 되려 했는데 설마 하오문의 장로인 흉조에 의해 하오문이 반으로 잘려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흉조와 관련된 일은 어차피 흑운 공주의 손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황옥으로 번 자금을 대주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를 돕기 위해 자금을 대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오문에 ‘제갈 사혁의 돈’이 유입되면 외부인이라고는 해도 제갈 사혁 역시 하오문 내부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은 무림맹만큼이나 하오문을 수차례 들락 날락 거렸고 오늘은 청하의 부탁 때문에 하오문에 방문해 흑운 공주와 만났다.
“청하 소저가 주라더군.”
흑운 공주의 처소에서 차를 마시면서 제갈 사혁은 품에서 거북이를 본 떠 만든 연적(硯滴)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어머~ 예뻐라.”
흑운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연적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제갈 사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 표정을 읽은 흑운 공주는 제갈 사혁을 보며 말했다.
“혹시 이 선물을 받았을 때 소협의 것이라 생각하셨나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이었다.
처음 저 거북이 모양의 연적을 받았을 때는 청하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갈 사혁을 통해서 흑운 공주에게 주는 청하의 선물이었다.
“후릅~”
못마땅했는지 일부러 소리 내어 차를 마시는 제갈 사혁을 보며 흑운 공주는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선물이라기보다는 보답 차원에서 주는 거니까요.”
그러면서 흑운 공주는 제갈 사혁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읽어보세요. 청하 소저가 부탁했던 거예요.”
“청하 소저가 부탁한 건데 왜 내가?”
“청하 소저께서는 소협이 보셨으면 하니까요.”
두루마리에는 어떤 시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시간이 적힌 시간표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자세히 조사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청하 소저가 이걸 내게......”
그 두루마리에 적힌 건 신강과 감숙의 경계선 쪽에 있는 마교 경계지역의 경비근무 시간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혼자 신강을 쳐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
사실 봉명공과 그런 식으로 만난 뒤부터 그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설마하니 청하가 이런 식으로 해결책을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장술의 달인 정도는 아니지만 하오문에도 변장술에 능한 자가 있어요.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잠입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해결이라며 제멋대로 단정지어놓고는 뒤에서 이런 걸 준비하다니.
‘이래서 여자는 요물이야.’
제갈 사혁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감격에 겨워 두루마리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그 모습을 본 흑운 공주는 미소를 짓는 한편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팔불출 보듯 그를 쳐다봤다.
하오문에서 준비한 변장술 전문가에게 30대처럼 보이도록 변장을 한 뒤 제갈 사혁은 감숙과 신강의 경계로 향했다.
제갈 사혁과 곤륜파 그리고 여러 중소문파가 모여 청해와 신강의 경계가 무너졌지만 마교는 그 일이 있은 후 마교는 고수들을 파견해 잃어버린 지역을 하루 만에 되찾고 무림맹이 유리하게 이끌어갔던 상황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그 뒤 마교로 들어가는 신강 경계가 강화됨과 동시에 무림과 관계없는 일반 백성의 출입까지 통제해 일반인을 가장해 침입하는 것조차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청하는 흑운 공주를 통해 제갈 사혁에게 교대시간이 적힌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멀리서 신강의 성벽을 바라보던 제갈 사혁은 자신이 있는 감숙성의 경계와 성벽의 거리를 계산했다.
‘암향표(暗香飄)를 펼치면 접근까지는 어떻게 가능하다.’
내공소모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단순히 빠르기만 놓고 본다면 화산파의 경공 중에 가장 빠른 게 바로 암향표였다.
제갈 사혁은 두루마리를 펼쳐 교대시간을 확인했다. 성의 경비를 서는 마교의 무사들이 횃불을 잠깐 껐다 키면 이는 교대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약 반각 정도 그들이 자리를 비운다.
제갈 사혁은 암향표를 펼쳐 순식간에 신강성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런 뒤 성벽의 틈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손가락 힘만으로 버티며 올라갔다.
“아오~ 이제 집에 가는 건가.”
“정파 놈들은 아주 그냥 마누라 같다니까.”
위에서 교대를 위해 나가는 무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제갈 사혁은 눈치를 보다가 얼굴을 살짝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지나가는 병사들이 없었다.
재빨리 올라온 제갈 사혁은 허리를 굽히며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반대편을 살폈다. 다행히 제갈 사혁이 있는 곳 바로 아래는 2층짜리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뛰어내리는데 요령이 필요했다.
“후우~”
마음에 준비를 한 뒤 제갈 사혁은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2층 건물 지붕에 발보다 손이 닿도록 해 최대한 소리를 줄이고 무사히 안착한 제갈 사혁은 조심스럽게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으아~”
그런데 우연찮게도 제갈 사혁이 내려간 2층 건물은 객잔이었고 누군가 목욕물에 몸을 담그며 소리를 내자 제갈 사혁은 창문 너머로 탕 내부를 훔쳐봤다.
사내놈이 목욕하는 것 따윈 보고 싶지 않았지만 성벽 아래에 객잔이 있으면 경비를 서던 마교의 무사들이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몰라. 망할 정파놈들. 정사대전은 왜 일으켜가지고 이 난리야. 내 새끼들 얼굴도 기억이 안나네....”
푸념소리를 들어보니 마교의 무사가 분명했다. 이 자 말고도 이 객잔에 머물고 있는 마교의 무사들은 상당히 많은 듯 했다. 그렇지 않아도 봉명공을 만나려면 마교 내부로 들어가야만 하고 그러려면 마교인의 신분이 필요했다.
조용히 내려와 객잔 안으로 들어간 제갈 사혁은 손님인척을 하며 술을 주문했다.
“양하대곡(洋河大曲)으로 부탁하네.”
“야.... 양하대곡 말입니까?”
양하대곡이 비싸긴 하지만 이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양하대곡의 가격은 약 5배에 달했다.
‘좀 비싼데.’
조금 비싸긴 했지만 제갈 사혁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양하대곡이 나오자 객잔 안에 있던 마교의 무사들이 슬금슬금 제갈 사혁이 있는 쪽으로 기어들어 나왔다.
“어이! 형씨~ 비싼 술 드시는 고만.”
“이렇게 좋은 술은 혼자 마시면 안 되지~”
그냥 단순히 시비를 거는 것 같았지만 제갈 사혁은 그들이 마시고 있는 술의 품질을 보고 상황판단을 끝냈다.
‘그런 건가.’
정사대전 중에는 지역 간의 유통이 자유롭지 못하니 강소성의 양하대곡이나 사천성의 노주특곡(瀘州特曲) 같은 특정 지역에서 나는 술은 가격이 오르고 평소 동료들끼리 돈을 모아 마시던 술을 마시지 못하니 제갈 사혁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거였다.
제갈 사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권을 취한 뒤 술을 이용해 그들의 환심을 사려했다.
“고향에 가지 못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랠까 싶어 양하대곡을 주문했는데 괜찮으시다면 저의 푸념을 들으시면서 한잔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양하대곡의 가격이 올라 싸구려 술이나 마셔야 했던 그들은 내심 제갈 사혁을 골려줄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함께 술을 마시자고 권하자 인상을 펴고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탁자에 팔을 걸치지 못할 정도로 우락부락한 사내 일곱이 빙 둘러앉아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술잔을 나눴다.
“그래 형씨~ 고향에 가지 못한다고?”
“양하대곡을 마시는 걸로 봐선 강소성 출신인가?”
강소성 출신이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기다렸다는 듯 거짓말을 했다.
“남경(南京)에서 왔습니다.”
“그래. 나이는 어떻게 되고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나이는 서른둘이고 부모님은 안계십니다. 원래는 서장에서 장사를 좀 해보려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신강까지 오게 됐습니다. 아니 그런데 정사대전이 터져서 여기서 말이 묶였지 뭐니까.”
제갈 사혁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불쌍하게 꾸며 동정을 샀다.
“안됐고만~”
“이게 다 정파 때문이여! 마셔! 마셔!”
제갈 사혁은 술을 마시며 그들과 친해져 마교 내부사정을 듣고 가능하면 신분패도 구해볼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공지를 띄우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셨는데 일어나보니 4일이었습니다.
술은 언제 마셨냐고요? 2일에 마셨습니다.
2일 11시 쯤에 술을 마셨는데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4일 새벽 3:50이 되서 어찌나 놀랐던지 10분 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저의 집안은 부계혈통의 저주로 인해 대대로 간이 약해서 아버지께서 술은 절대 안된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술은 싫어하는데 술 마실 때 하는 게임 같은 걸 되게 좋아하고 또 친구들도 오랜만에 봤기 때문에 무리를 했습니다.
공지를 띄우지 않은 점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사죄를 드려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