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16화 (216/262)

<-- 216 회: 천하제일인 -->

“안됐고만~”

“이게 다 정파 때문이여! 마셔! 마셔!”

제갈 사혁은 술을 마시며 그들과 친해져 마교 내부사정을 듣고 가능하면 신분패도 구해볼 생각이었다.

“저는 무림에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데 신강출입을 막는 일이 흔한 편입니까?”

“정사대전 같이 큰일이 아니면 출입을 막는 건 아닌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말에 제갈 사혁의 눈에서 이채(異彩)가 흘러나왔다.

“한잔 받으십시오.”

제갈 사혁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그들에게 차례대로 술을 따라주었다.

술을 있는 대로 주문해 그들에게 대접한 뒤 그들의 얼굴에 취기가 돌자 제갈 사혁은 앓는 소리를 하며 마교의 내부사정을 깼다.

“그런데 신교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제가 뭘 좀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죠. 막말로 어디 연고(緣故)도 없는데.....”

마교 무사들은 저마다 술기운이 올라와 문어처럼 흐물흐물 거리더니 연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흐헤헤헤~ 무슨 일이랄 것도 없어!”

“맞아. 맞아.”

“윗놈들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러면서 그들은 제갈 사혁의 머리를 잡아당기더니 은밀한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속삭였다.

“이 말 어디 가서 입 밖에도 꺼내지 말어..... 그러니까. 교주께서 문제여.”

교주면 천중기를 말하는데 그는 현재의 마교를 만들어낸 절대자였다. 그런 자에게 문제가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요즘 교주께서는 교리(敎理)도 따르지 않으시고 교인들을 상대로 배례(拜禮)도 올리지 않고 있어.”

마교는 종교적 색채가 짙기 때문에 그들의 우두머리를 부르는 호칭도 교주다. 하지만 그런 교주가 교리를 따르지 않고 예배도 하지 않는다니 그건 조금 문제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신께 올리는 기도문도 모두 교주를 찬양하는 것으로 바뀌고 심상치가 않아.”

그들이 말하는 걸 듣다보면 흡사 천중기가 신을 흉내 내려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 종교를 기초로 하는 무림 단체들은 종교적인 활동보다는 무림활동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문파의 고민거리였다. 힘이 없으면 이 무림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고 이는 화산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마교는 달랐다. 무림을 홀로 독보하는 단일 단체이고 최고 권력자인 교주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 불린다.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오직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다.

‘권력이 가져다주는 광기에 홀렸는가? 천중기.’

교리를 지키지 않고 마치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도록 하다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하여 그를 부를 때 신화천(神話川)이라 부른다. 몇 십 년을 그리 불리더니 미친 것이 분명했다.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한다니 허황된 꿈이었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여. 개종(改宗)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구만.”

“자네 그거 어디서 들었어?”

개종에 관한 이야기는 마교 내에서 금기사항이기 때문에 개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들은 술이 확 깨버렸다.

“나도 지나가다가 그냥 어깨 너머로 누가 말하는 들었을 뿐이여.”

“자네 입조심하게. 잘못하다기 ‘끽’하는 수가 있어!”

그러면서 그들은 제갈 사혁을 쳐다봤고 무슨 뜻인지 이해한 제갈 사혁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목숨이 아까운데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겠습니까.”

술기운에 지쳐 모두가 잠들자 제갈 사혁은 그들을 방에다 데려다주고 그들의 품에서 신분패를 훔쳐왔다.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서른다섯이었다.

“서른다섯이면 좀 많긴 하지만 이동하는데 별 무리는 없겠지.”

신분패 문제가 해결되자 제갈 사혁은 곧바로 신강지역을 활보하고 다녔다.

지난 날 추백성과 유희의 일로 마교의 땅을 밟았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은밀히 봉명공을 만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일을 해선 안됐다.

‘일단 녀석의 본명으로 찾아야 하나?’

마교에서 봉명공이라는 이칭을 썼을 리 없을 테니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찾아야 했다. 그도 아니면.....

‘좌호법 우사가 있는 곳을 찾아야겠군.’

좌호법 우사와 함께 있었으니 우사의 저택을 찾아야 했다.

마교의 본문은 아니지만 마교의 지배지역을 방문한 건 이것으로 두 번째였다. 여전히 마교의 입김이 닿아 있는 지역은 마치 무림에 마교라는 하나의 나라가 건국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마교도인가?’

마교는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갈 사혁이 느끼는 분위기는 하나의 나라를 보는 듯 했고 마교의 무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일반 백성들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여기 더 있어봤자 소용이 없겠어.’

제갈 사혁은 신분패를 이용해 신강과 감숙의 경계지역을 벗어난 뒤 산길을 이용해 다음 마을로 향했다. 아무래도 경계지역은 치안이 엄격해 정보수집이 쉽지 않았다.

경공을 펼쳐 산길을 빠르게 타고 올라가던 중 제갈 사혁은 상단처럼 보이는 마차 행렬을 우연히 보게 됐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가장 앞쪽에 있는 마차가 타고 있는 이의 얼굴을 본 순간 절대 지나칠 수 없었다.

“흉조!”

그는 하오문의 장로이자 현재 하오문을 두 개로 나눈 바로 그 흉죠였다.

흉조는 배교의 하오문 습격이 있은 후 마교로 투신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마교로 이전 시키고 하오문을 둘로 나눴다.

흑운 공주를 내세워 하오문을 장악하려 했던 제갈 사혁에게 있어서는 필히 죽여야만 하는 상대였다. 흉조는 좌호법 우사의 수족이나 다름없었고 지금이 아니면 죽일 수 없었다.

봉명공을 만날 때까지 은밀하게 활동해야 하지만 제갈 사혁은 늘 눈앞에 이익을 추구하는 자.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제갈 사혁은 낡은 천으로 감싼 호황의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지금 망설이면 앞으로 영영 놈을 죽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을 검기를 펼쳐 발현하자 기파는 수 십 갈래로 나눠져 하오문의 마차 행렬을 공격했다.

“웬 놈이.......!”

호위대장 되는 자가 웬 놈이냐며 우렁차게 외치는 순간 그는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머리가 반으로 갈리며 처참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누구냐!”

흉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마차에서 나오자 타인의 피가 뚝뚝 흐르는 호황의 칼날을 겨눴다.

“흉조. 내가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지?”

“!”

흑운 공주를 하오문으로 데려왔을 때 제갈 사혁을 직접 본적이 있는 흉조는 제갈 사혁과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이곳은 마교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흉조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뭐.... 뭣들 하느냐!”

호위무사들에게 소리를 지르자 제갈 사혁은 그런 흉조를 보며 비웃었다.

“고고한 척 뒤에서 하오문을 조종하시던 천하의 흉조께서 왜 이러시나? 남자답지 못하게 애새끼들 뒤에 숨어서는.”

제갈 사혁은 조롱과 함께 호황을 흉조에게 던졌고 그 순간 날아오는 호황을 흉조의 호위무사가 쳐냈다.

“멍청한 놈.”

하지만 제갈 사혁의 그 말과 동시에 호황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움직이며 홀로 매화삼릉검(梅花三凌劍)을 펼쳤다.

허공을 떠다니는 검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경지의 검술을 펼쳤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컥!”

호황이 호위무사의 목을 관통하자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간 제갈 사혁은 무자비하게 호황을 뽑았다.

검 끝으로 자신을 겨누자 흉조는 제갈 사혁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주십시오. 대협!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사실 제갈 사혁은 흉조가 하오문을 반으로 나눠 자신의 전력을 분산 시켰다는 것 이외에도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

용화장에서의 정보누출과 관련해서 흉조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난생애에서의 정사대전은 청하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흉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죽어야 할 놈도 죽여야 할 놈도 한둘이 아니지만.

“정말 보고 싶었다. 이 개자식아!”

제갈 사혁이 황옥을 판돈을 하오문에 투자하게 된 근본적 원인 또한 흉조에게 있었다. 흉조가 하오문의 반을 떼어 마교에 붙었을 때 하오문이 가지고 있는 현물(現物)을 모두 흉조가 들고 갔기 때문이다.

“푸!”

제갈 사혁이 발로 차자 흉조는 피를 뿜으며 바닥을 굴렀다.

“대협!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하오문을 대협께 바치겠습니다.”

하오문를 바치겠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호황을 집어넣었고 흉조는 제갈 사혁이 관심을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제갈 사혁은 흉조의 왼팔을 움켜쥐었다.

“으윽......”

왼팔에 가해오는 힘이 점점 강해지자 흉조는 침을 질질 흘렸다.

“장백만 장로 기억해?”

장백만 장로는 지난생애 흑운 공주가 죽고 난 뒤 하오문 문주 자리에 오르는 자였다.

흉조가 꼭두각시로 쓰기 위해 하오문 문주로 추대했으며 이번 생애에서는 제갈 사혁의 음모로 인해 하오문 문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정말 뜬금없잖아? 갑자기 장백만 장로를 하오문 문도들이 죽이려 했던 상황이..... 그렇지?”

“.............”

흉조는 제갈 사혁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산에서 산적을 만났을 때 가진 것을 다 내어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살려달라며 돈을 줘도 받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이미 그 모든 게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오문은 이미 내꺼야. 내가 골수까지 빨아 먹을 거거든. 장백만을 왜 죽였다고 생각해? 잘 생각해봐. 나한테는 어여쁜 공주님이 있어.......”

그는 아귀(餓鬼)였다.

“너를 죽이면 이제 흑운 공주를 아니....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의 욕망에 비하면 자신의 욕심은 순수하기 그지없었다는 사실을 46년만에 처음으로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악은 정의에 의해 섬멸 되는 게 아니라 더욱 더 커다란 악에 의해 집어 삼켜질 뿐이죠.

이번 편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해두고 후기를 적자면 사실은 제갈 사혁의 마교 라이프~ 우후훗~ 이라는 내용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기로 마음 먹었죠.

아... 마교 라이프 같은 건 1권 초반에 했어야 했는데.....

사실 화산의협을 완결 짓고 난 후 맹세코 무협은 보는 걸로만 만족할 생각입니다.

역시 판타지가 최고야....

저는 이제 캐릭터성을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일종의 말빨로 대변되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무협에 적용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화산의협 초반(수정하기 전)부터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갈 사혁도 말빨이 많이 죽었죠.  동엽신 애드립 터지듯 팍팍 터졌는데 무협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죽인 것은 제갈 사혁의 개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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