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21화 (221/262)

<-- 221 회: 천하제일인 -->

“사형! 이곳이 무너집니다. 어서!”

천중기의 물음에 제갈 사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고 그때 머리 위로 돌이 떨어져 그의 머리에 맞았다. 희극에나 나올 법한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지만 제갈 사혁은 그 돌에 맞더니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나는 환골탈태가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몸으로 만들어주는 신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신을 보니 환골탈태는 재능 없는 자를 그들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주는?”

“신의 변덕스러운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제갈 사혁 말대로라면 환골탈태는 천중기와 같이 재능이 뛰어난 자들과 평범한 범인(凡人)의 격차를 줄여주는 수단이었다.

“그럼 너는 재능이 없다는 거냐?”

천중기가 그러는 너는 재능이 없는 것이냐 묻자 제갈 사혁은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며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

그 순간 제갈 사혁의 흰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내공이 흘러넘쳤다.

“말했잖아. 변덕스러운 연민이라고.... 그 변덕이 나 같은 사람에게 찾아왔을 뿐이야.”

“시시한 다른 놈들이랑은 달라. 재미있는 놈이야. 네놈은.”

무너져가는 배교의 성역을 뒤로 하고 제갈 사혁은 이신 그리고 무덕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형. 보셨습니까?”

“그래.”

그 인간 같지도 않은 강인함과 일격에 그 거대 요새를 무너트리는 압도적인 힘은 틀림없는 천하제일인 그리고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봉명공. 너는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

천중기와 같은 우두머리가 있는 마교가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무덕 여론을 움직여라.”

“네?”

“정치공작이다.”

천중기가 배교의 성역을 무너트린 것은 어디까지나 배교에 대한 일종의 경고차원 혹은 배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제갈 사혁은 일단 천중기에 의해 살해당한 흑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흑호는 배교의 천주로서 칠객 중 한명을 처리함으로서 강호의 이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런 흑호를 천중기가 직접 죽였으니 이것을 잘만 이용하면 마교에 대한 배교의 적대심을 더욱 커지게 할 수 있었다.

“일부러 이번 사건을 크게 내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당사자가 아무리 침착해도 옆에서 수군거리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기 마련이지. 배교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교에 보복을 할 거다.”

지금의 배교가 있기 전부터 흑호는 배교의 사람이다.

흑호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마도 조직 내부에서 꽤나 인정받거나 그 이상의 존재.

배교 멸문의 원흉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교의 천중기가 그 흑호를 직접 죽였다는 사실이 그 주위로부터 퍼지면 배교 내부에서도 대대적인 마교침공을 건의하는 자가 늘어날 게 분명했다.

“배교가 마교를 총 공격하면 우리는 배교를 친다. 일종의 빈집털이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요?”

“조직이란 그런 거야. 무림맹을 봐. 나 때문에 정사대전이 터졌잖아.”

굳이 자기를 빗대어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찌 됐든 봉명공이 마교를 무너트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이상 배교를 뿌리 뽑기 위한 제갈 사혁의 모략은 시작됐다.

배교를 무너트리면 제갈 사혁은 화산파와 제갈세가 그리고 청하와의 관계를 이용해 무당파를 움직여 정사대전을 휴전이라는 명목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단 흑사련과 마교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흑사련이 봉명공과 동조한다고 해도 삼파전이 아닌 일대 일 상황에서는 마교를 상대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다. 봉명공. 나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날 제갈 사혁의 의도대로 천중기가 흑호를 살해하고 배교의 성역을 무너트린 사건이 중원무림에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제갈 사혁은 무림맹에 돌아와 쉬지 않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운기조식을 하지 않지만 천중기와 대면하고 나서 어떠한 자극을 받아 몸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머리색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이긴 한데.... 벌써 하루 가까이 운기조식 중이네.”

임무에서 돌아온 청하는 씻지도 않은 채 피비린내 나는 옷차림 그대로 제갈 사혁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 사혁이 운기조식에 들어갔을 때 청하는 임무를 떠났고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제갈 사혁은 운기조식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참! 신아. 흑운 공주는 어디에 있어?”

“흑운 누나는 무너지기 전에 피했어요. 지금은 호남 분타를 임시거처로 잡았고요.”

“나는 걱정이 안 되고 흑운 공주는 걱정이 되나보죠?”

때마침 제갈 사혁이 정신을 차리자 청하는 제갈 사혁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일어났네요.”

“운기조식하면서 날 바뀌었나보네요?”

“하루정도 지났어요.”

하루 지났다는 말에 제갈 사혁은 입술을 비쭉 내밀더니 이내 청하의 몸에서 나는 피냄새를 맡고 인상을 구겼다.

“으아~ 피비린내......”

“사랑이 부족해서 그래요.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냄새 따윈 뛰어넘어야죠.”

“여자들은 사랑으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청하는 제갈 사혁이 시답잖은 말장난을 하는 것 보니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제갈 사혁이 운기조식에 들어간 뒤 이신에게 사혁이 천중기를 만나고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몸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상황은 어때요?”

“배교에서 벌써 반응이 올라왔어요.”

“빠르네요.”

흑호의 죽음으로 인해 배교의 반응은 제갈 사혁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성역을 찾기 위해 사천을 침범한 배교의 무사들은 모두 빠졌어요. 들리는 말로는 서장을 집중 공격해 신강으로 쳐들어간다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 없죠.”

“무림맹은 소집령을 내렸어요.”

“예상하고 있었어요.”

“예상했어요?”

“당연하죠.”

사실상 소집령은 제갈 사혁이 내리게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정식으로 소집령이 떨어지자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의 모든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논의된 것이 바로 배교 총 공격.

정사대전을 떠나 배교 총 공격의 명분은 무림맹에 있었다. 때문에 과반수가 넘는 정파의 문주들은 이에 찬성을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배교는 마교를 공격하기 위해 무림맹과 흑사련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모든 병력을 서장에 집중했다.

무림맹은 이에 선발대가 될 문파를 뽑고 사천과 운남의 경계 지역에 은밀히 배치했다.

무림맹의 선발대는 당연히 화산파였고 화산파는 제갈 사혁을 필두로 배교 총 공격에 참여했다.

사문에서 결정이 내려지자 18세 이상의 화산파 본산제자와 속가제자 연합인 화산지회의 전 회원들이 사천과 운남의 경계에 모였다. 배교 총 공격이다 보니 화산지회 내부에서도 기수가 높은 선배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화산지회를 이끌어가는 건 121기다. 그들의 나이는 평균 45세였고 그런 그들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현장에 나온 속가제자들은 나이가 많았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121기인 봉기(鳳氣)가 지금 모인 화산지회 출신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에게 고개를 숙이자 그 밑에 있는 기수들과 제갈 사혁을 포함한 본산제자들도 고개를 숙였다.

“많이 늙었구나.”

“늙다니요. 이제 한창 때입니다.”

매화검수와 평검수를 포함한 18세 이상의 제자들은 전부 25명. 그리고 생업과 부양의무를 지닌 자들을 제외한 속가제자들은 30여 명가량이 모였고 이들을 지위하는 건 장문진인의 사형인 도청진인이었다.

“모두 모였느냐?”

도청진인의 물음에 제갈 사혁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네. 사백.”

“모두 듣거라. 선두는 우리 화산파가 맡게 되었다. 경험이 없는 너희는 많이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서 도청진인은 18세 이상으로 구성된 제자들을 쳐다봤다.

정사대전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 하지만 제갈 사혁이 화산파의 제자이고 정사대전의 명분이 된 이상 의무는 아니나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니 됐다.

“그럴 땐 옆에 있는 너희의 형제를 믿어라. 그들이 너희를 보호해줄 것이다.”

거사를 앞두고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기꺼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것이 화산파의 자존심이었다.

제갈 사혁이 가장 앞줄에 서서 대기하자 화산지회의 선배가 옆에서 제갈 사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서라. 후배. 후계자가 죽으면 사형들 뒤처리 힘들다.”

그는 제갈 사혁에게는 사숙에 해당하며 현 화산파 수뇌부인 도자 항렬과 사형제 지간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보다 선배님이 먼저 쓰러지시면 이 후배가 엎고서라도 적진에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흥! 입은 살았구나.”

제갈 사혁을 제외하면 앞줄 대부분 노련한 화산지회의 선배들이 맡았다. 앞줄이면 생환가능성이 가장 적었고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그들의 나이는 제갈 사혁의 사숙 뻘이었다.

출진에 앞서 그들은 한잔씩 술을 나눠마셨다. 원래 이런 건 승리하고 난 후에 마시는 게 보통이었지만 싸움이 끝났을 때 자신의 옆에 있던 동료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 뒤가 이왕이면 무당파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일단 진격을 시작하면 선발대인 화산파가 홀로 출발하고 이어서 하루 뒤 두 번째 문파가 출진한다. 아직 두 번째로 출진할 문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난 정사대전에서 곤륜파 다음으로 전공을 세운 무당파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선배님. 검현군. 너무 믿는 것도 안 좋습니다.”

제갈 사혁이 왜곡된 발언을 하자 화산지회 선배는 제갈 사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멍청한 놈아. 선발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게 뻔하디 뻔한데 후속대가 무당파가 아니면 무당파 놈들은 후방에서 꿀 빨면서 올 것 아니냐!”

과연 화산파의 속가제자다운 사고방식이었다.

출진을 앞두고 모두들 긴장한 기색이 역역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투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 작품 후기 ============================

이번편도 장면전환이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쳅터가 끝나서 그렇습니다.

"다음날 정식으로 소집령이 떨어지자......"

부터 다음 쳅터 인데 연재 용량 맞추려고 "다음날" 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썼습니다.

원래는 다음쳅터입니다.

이번편은 이제 배교 총 공격입니다.

제갈 사혁에게 너무 많은 포커스를 맞춰서

(주인공이니 당연하지만 정사대전이기 때문에 시아를 확장해야 하는데....)

배교의 존재감이 잘 어필되지 않아서 어제 좀 고민을 했습니다. 약간 급조된 스토리라고 할까요?

다음 쳅터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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