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22화 (222/262)

<-- 222 회: 배교침공 -->

출진을 앞두고 모두들 긴장한 기색이 역역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투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도청진인이 붉은 깃발을 올리며 출진을 알리자 제갈 사혁와 화산지회 속가제자들이 경공을 펼쳐 일제히 운남 땅으로 넘어갔다.

“적습이다!”

정사대전 중 상시 대기 중이던 배교의 무사들은 검은 개미처럼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화산파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고 검을 뽑아 대응했고 두 마리가 짐승이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하늘에서는 붉은 비가 내렸다.

경비를 서고 있는 배교의 무사들은 오합지졸(烏合之卒)에 불과했고 한명 한명이 일당백(一當百)의 실력을 지닌 화산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화산파를 시작으로 배교와 무림맹간의 전면전은 시작되었다.

성벽방어를 꿇고 내려온 화산파는 마을로 진입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상황을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드리며 집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들에게 이 상황은 단순히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자신들의 삶을 무자비하게 짓밟지만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마을에 있는 배교의 무사들은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말단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은 화산파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아!”

양손으로 검을 쥔 제갈 사혁이 상대의 어깨를 베자 피가 사방으로 튀며 몸이 기괴하게 잘려나갔다.

그 뒤 밀려오는 배교의 무사들을 향해 청풍검(淸風劍)을 펼치며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나갔다. 그러한 제갈 사혁을 막을 수 있는 이는 현재로선 찾아 볼 수 없었다.

“흡영공(吸永珙)을 써라!”

배교 측에서 누군가 지시를 내리자 배교의 무사들은 일제히 품에서 어떤 구체를 꺼내 던졌다. 구체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연기를 들이마시자 제갈 사혁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젠장....”

제갈 사혁은 이를 갈며 무릎을 꿇었고 그런 제갈 사혁의 등을 나이 많은 화산지회 선배가 발로 찼다.

“이렇게 약해가지고 어찌 화산파를 이끌어나갈꼬?”

그는 미염공(美髯公)처럼 멋지게 기를 수염을 만지더니 사선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연기를 거둬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방향을 바꾸긴 했지만 분명히 청풍검(淸風劍)이었다.

청풍검을 펼치면서 일어난 검풍으로 인해 연기가 흩어지자 뒤돌아서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제갈 사혁에게 말했다.

“청풍검은 이렇게 쓰는 게다. 알겠느냐?”

한참이나 어린 후배 앞에서 으스대는 노선배의 모습에 제갈 사혁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선배님. 이번 일이 끝나면 제가 술 한 잔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이 노인네 입맛이 까다로워서 4대 명주 아니면 입도 대지 않는다네.”

“이 후배도 입맛이 까다로워 그 이하는 한 방울도 마시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배교의 무사들이 끊임없이 몰려오자 호황에 내공을 주입한 제갈 사혁은 부드럽게 보법을 펼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 배교의 무사들이 사용하는 검술이 충영검법(沖靈劍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충영검법은 무림맹을 배신한 방파 중 한곳인 만상문(萬象門)의 무공이었다.

검을 거둔 제갈 사혁은 주변에 있는 건물 위로 올라가 내공을 최대한 끌어 모아 배교의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만상문은 들어라! 배교가 너희의 문주를 유배 시키기고 너희를 종처럼 부리고 있다. 우리는 너희와 헛된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제갈 사혁의 외침과 함께 만상문 출신의 배교 무사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화산파를 이끌고 있던 도청진인은 서둘러 사혁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진아. 무슨 일이냐? 만상문이라니?

-사백. 그들이 사용하는 검법은 충영검법입니다. 이들이 진정 만상문이라면 이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쓸 때 없이 피를 흘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갈 사혁은 무림맹을 배신하고 배교로 넘어간 이들을 살리기 위해 설득한다기보다 화산파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이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제갈 사혁이 배교에 의해 납치된 후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도청진인 또한 목소리에 내공을 불어넣어 제갈 사혁과 함께 만상문 출신 무사들을 설득했다.

“나는 화산파의 도청진인이오! 그대들이 여기서 물러난다면 만상문의 안전은 보장하겠소. 그대들도 들었을 것이오! 이 아이는 화산파의 제갈 사혁이오.”

“제... 제갈 사혁!?”

제갈 사혁의 이름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배교에 납치된 뒤 귀환한 그가 하는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역시 문주님은...’

‘그럴 줄 알았어!’

말은 안하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도 확신은 없지만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을 이끌던 문주가 보이지 않게 되고 배교에서 사람 내려와 문주를 대신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 검을 내려놓으시오! 그대들의 안전은 내가 보장하겠소.”

도청진인이 다시 한 번 신변보호를 약속했지만 그들은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출세를 위해 문주를 따라 배교에 왔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들 알고는 있었다. 문주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 하지만 이들은 배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놈들이 가족을 해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 검을 놓지 않을! 윽.....”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갈 사혁의 검이 날아와 만상문 출신 무사의 목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런 제갈 사혁의 행동을 아무도 비난하지 못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가족을 구해주겠다는 소리를 자신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 알았다.”

도청진인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가 펼친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은 적들의 피로 매화꽃을 피웠다.

-이번 일의 후폭풍은 클 것이다.....

도청진인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갈 사혁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손을 뻗어 멀리 있는 호황을 무형지기로 거둬들였다.

“전력을 다해 덤벼라.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배교멸문으로 향하는 길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설사 이들과 협력을 한다하더라도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아무런 희생자 없이 일이 마무리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협력을 약속한 순간 인질로 잡힌 가족들이 모두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배교가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이유는 이들을 쉽게 조종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들을 없애면 배교는 굳이 이들의 가족에게 손을 쓸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만약 누군가의 희생 없이 이번 일이 마무리 될 수 없다면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화산파를 물리친 뒤 오늘밤 가족을 품에 안고 내일 또 검을 들 것이냐? 아니면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내놓아 가족의 영원한 안전을 지킬 것이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 ‘배교의 무사들’은 화산파를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화산파를 쓰러트려도 좋았고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해도 좋았다.

선택?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힘든 결정 강요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내어주기 위해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제갈 사혁은 앞으로 이 앞에 어떤 길이 펼쳐져 있건 또는 자신과 검을 마주하는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이 싸움에 몸을 던졌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부턴 정말로 배교를 무너트리기 위한 패도(霸道)의 길만 걸을 뿐이다.

“만약.... 누군가 살아서 돌아가거든 이들의 가족에게 알려라. 너희의 아들. 너희의 남편. 너희의 아비를 죽인 자. 여기에 있다!”

일생 단 한 점의 은원(恩怨)도 남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은원은 무림인의 숙명과도 같았다.

‘나를 원망한다면 오라. 그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지 않겠다. 그대가 나를 향해 검을 든다면 나는 나의 삶을 위해 너를 베어주겠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역시 제갈 사혁의 성격을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으니 우리에 협조해서 배교를 물리칩시다.' 가 아닌 '니들이 죽으면 가족들도 안전하다' 라는.

항상 은연중에 글을 쓰면서 저는 제갈 사혁은 정의가 아니다. 라고 글을 쓰고

작품 속 제갈 사혁은 내가 무조건 옳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대중성과는 멀어져 가지만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가는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기득권층으로서 제갈 사혁을 써나갔지만(단순히 안티 히어로 성향만을 드러내며) 점점 가면 갈수록 제갈 사혁은 어떤 인물인가? 라는 내용으로 써나갔습니다.

그렇게 변한 건 없습니다. 여전히 그는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치죠.

그렇지만 생각을 달리하니까. 제갈 사혁에 대해 쓰기가 편해졌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