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회: 배교침공 -->
땀을 흘리기보다 타인의 피를 흘리며 나아가는 화산파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3일간 쉬지 않고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서 후발대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갈 사혁은 자신들의 뒤를 따라 운남으로 오게 될 후발대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도청진인 역시 이 의견에 동의했다.
제아무리 화산파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한계에 부딪히는 건 당연했다.
“표시는 잘 남겼느냐?”
“지나온 곳마다 표식을 남겼으니 곧 뒤따라 올 것입니다.”
후발대는 선발대가 출발하면 이틀 뒤에 출진한다. 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틀 뒤 무림맹에서 보낸 후발대와 만날 수 있었다.
운남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젖은 나뭇잎 위가 푹신푹신 하게 느껴졌다.
“왜 한꺼번에 오지 않는 거죠?”
옆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던 무덕은 이러한 식의 병령운영을 이해하지 못했고 제갈 사혁은 흙이 잔뜩 묻은 더덕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꺼번에 몰려가서 한꺼번에 함정에 빠지면 전멸이야.”
“하지만 이런 식은 비효율적이잖아요.”
“무슨 나라 세우냐? 병장기 들고 한꺼번에 몰려가서 끝장 보게.”
실제로 지난 정사대전 당시 흑사련과 마교가 전면전 비슷하게 펼친 적이 있었는데 함정에 빠져서 흑사련의 절반 가까이 되는 세력이 사라졌다. 무림맹 역시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전면전을 치룰 때 선발대를 먼저 보내 간을 보고 문제가 없으면 후발대에 합류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호남(湖南), 광서(廣西)가 원래 흑사련 땅이었는데 그 일로 땅덩어리 유지가 힘들어지니까. 지배력을 줄이고 귀주(貴州)에 집중한 거야. 그 덕분에 조직운영이 쉬워지고 흑사련이 살아난 거지만.”
“광서는 지금도 정파인들이 들어가기 힘들잖아요.”
“흑사련은 이번 정사대전을 계기로 광서에 대한 세력 확장을 꾸릴 거다.”
바로 그때 도청진인이 육포를 가지고 다가왔다.
“세력 확장이요?”
무덕은 흑사련이 세력 확장을 꾸미고 있다는 말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 그 정도는 누구나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그럼 여기서 이러면 안 되잖습니까. 사백!”
흥분한 무덕이 벌떡 일어나자 제갈 사혁은 먹다 남은 더덕 끄트머리를 무덕의 이마에 던졌다.
“그러니까. 여기서 배교를 끝장내야지 이 멍청아! 그리고 흑사련이 세력 확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오히려 우리한테는 고마운 일이야.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까.”
흑사련의 속셈을 알고도 무림맹 상부가 배교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한 이유는 제갈 사혁과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무림맹 역시 무림의 현 체제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었다.
무림맹을 배신한 세력과 흑사련을 배신한 세력 그리고 배교라 주장하는 살막이 모여 만든 이 세력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셋이서 나눠 먹던 걸 넷이서 나눠 먹어야 한다면 어떻겠느냐?”
도청진인의 말을 이해한 무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덕이 화산파 내에서는 제갈 사혁의 다음이지만 여기서 사정이 어떻고? 저기 사정이 어떻고? 하는 얽히고설킨 무림의 관계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산에서 이틀을 보낸 화산파는 예정대로 후발대와 만나게 되고 후발대로부터 무림맹의 결정사항을 듣게 됐다.
“어서 오십시오.”
“함께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상대로 후발대는 무당파였고 무당파는 속가제자가 없는 순수 문파의 전력만 데리고 왔다.
무당파 본산 제자 50명. 그 중 장로들의 직계제자만 13명이었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성곡(成穀). 성제진인보다 나이가 많지만 성제진인의 사제에 해당했고 오히려 직계제자인 청(淸)자 항렬이 성제진인과 동년배처럼 보였다.
무당파의 본산제자들 중에는 제갈 사혁에게 검을 휘둘렀던 청하의 사매 청리(淸悧). 태린(台麟)이라던 그 꼬마도 보였다.
‘신이 녀석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신의 한수였나?’
제갈 사혁은 이신을 이번 싸움에 데려오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청하 사저의 남자.”
태린과 눈이 마주치자 태린은 자기도 모르게 청하의 남자라는 말을 꺼냈고 무당파 제자들의 시선은 제갈 사혁에게로 고정되었다.
청하의 남자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하필 많고 많은 단어 중 가장 노골적일 수 있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청하 사매의 ‘요거’면 제갈 사혁?”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제갈 사혁에게 다가와 대뜸 어깨동무를 했다.
“나는 청광(淸光)이라고 한다.”
“컥!”
등을 세게 때리며 친한 척을 하는 청광.
무당파의 대사형이며 지난생애에서 청하가 죽고 정사대전이 터지자 가장 먼저 마교로 쳐들어간.....
“우와! 이 사람이 사저를 데려갈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럼 우리들의 매형?”
“그 피곤한 성격 어떻게 다 받아줬데?”
“화산파라는 거만 빼면 사저. 시집 잘 가겠네요.”
사저며 매형이며 하는 소리가 농담으로 들릴 정도로 그들은 전부 제갈 사혁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실제로 제갈 사혁이 무당파의 청자 항렬 제자들을 본 것은 지난생애에서도 지나가면서 잠깐이었다.
당시 무당파 제자들은 날이 선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청하의 죽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제갈 사혁에게 지금처럼 장난기 많아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다.
“그런데 매형이 마화천을 이겼다면서요?”
나이도 제갈 사혁보다 많으면 이젠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매형이라 불렀다.
“이겼다고 해야 하나? 그냥 더 오래 서있었다고 해야 하나?”
봉명공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들의 나이는 서른셋이나 다섯. 게다가 청하의 사제...... 그 대단한 제갈 사혁도 행동은 물론이고 언행까지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청하 소저는 무당파 내에서 몇 번째 입니까?”
“위에서 세 번째. 나이는 밑에서 두 번째.”
“노... 높네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처남이 10명이 넘는다는 생각에 제갈 사혁은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무당파가 합류하면서 도청진인은 성곡진인으로부터 총 공격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저희가 출발하면 다음날 총사가 오대주들과 함께 운남으로 넘어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최대한 위로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구파일방에서 병력이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대주들과 함께 총사인 여망상이 온다는 말에 도청진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사천 경비는?”
“흑사련과 뒷거래를 했습니다. 광서에 있는 문파들을 물리는 조건으로 3일 동안.....”
지난 정사대전을 겪었던 도청진인은 뒷거래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건가? 사지성 이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어지간하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도청진인이지만 흑사련 련주인 사지성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3일 동안 사천을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광서에 있는 무림맹 소속의 중소방파를 물리고 자기들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서 광서 지역을 차지.
뭔가 되게 양보한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흑사련은 가만히 앉아서 입만 몇 번 나불대고 광서지역을 차지했다.
배교만 아니었다면 이런 어이없는 조건은 들어주지 않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배교를 무너트리기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배교를 무너트리는 것. 그것 말고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휴재가 이틀이나 된 점 죄송합니다.
일은 토요일에 끝났는데 근육통이....
지인(정확히 아는 형의 아는 형님)의 가게 일을 돕는데 호프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같은 처지의 3명의 노예가 있었죠.
서빙은 무리고 주문 받는 일을 했는데 와~ 장난 아니었습니다.
새벽 1시 쯤 넘어가자 테이블 말싸움이 일어났는데 이걸 보는데 뭐랄까요.
제갈 사혁이 깽판치는 객잔의 점소이가 된 기분이랄까요?
"아 ㅅㅂ 바쁜데 왜 싸우고 ㅈㄹ이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주문 받는 일만 했는데 다음날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술집 일은 할 게 못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당으로 받은 돈을 일요일날 식비로 다 썼다는 점입니다. (정식 알바가 아니라 2만원 받았음)
근육통 때문에 밥을 못해서 시켜 먹고 또 시켜 먹다가 결국.....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 건가? 먹기 위해 일을 한 건가?
이래저래 정말 기묘한 주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