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회: 배교침공 -->
제갈 사혁은 만공이라면 이 상황을 타계할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 판단했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운남에 도착한 만공은 확실한 해결법을 제시해주었다.
총사 여망상과 오대주 그리고 도청진인과 성곡진인이 자리한 곳에서 제갈 사혁은 직접 만공을 소개 시켰다.
“만공 선생이십니다. 지금은 화산파에서 배교에 대해 연구를 하시고 계십니다.”
평소라면 만공에게 하대를 했겠지만 지금은 보는 눈도 많고 그의 힘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존댓말을 했다.
“화산파에서 배교를 연구하다니?”
여망상은 무림맹의 머리답게 제갈 사혁의 소개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뭐가 이상하십니까?”
제갈 사혁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뭐가 이상하냐고 묻자 만공의 출신을 알고 있는 도청진인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성화문은 사술이나 주술을 연구하는 문파입니다. 만공 선생은 그곳의 문주이신데 문파의 존립이 어려워져 저희 화산파에 손님으로 계십니다.”
제갈 사혁은 일부러 만공이 배교를 연구한다고 말해 여망상이 의문을 갖도록 만든 뒤 만공의 과거 신분을 배교가 아닌 성화문으로 못 박은 뒤 화산파의 이름으로 만공을 감쌌다.
“성화문이라면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네. 음.... 계속하시게.”
여망상의 눈에서 의구심이 사라지자 제갈 사혁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으며 만공에 대해 소개했다.
“만공 선생은 평생 배교만을 연구하셨기 때문에 오경의 약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만공 선생.”
제갈 사혁은 만공을 앞으로 데려왔고 만공은 앞에 나와 오경의 파훼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오경은 쉽게 말해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외공이네. 상대의 목을 자르거나 급소를 공격해 즉사 시키는 것 말고는 겉으로 드러난 약점은 없네.”
목을 베면 죽는다. 그건 여기 있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오경을 익힌 배교의 무사들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기 때문에 목을 베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약점이 있네. 바로 장법이지.”
“장법 말입니까?”
“내공권은 안 되는 겁니까?”
황룡대주가 내공권법은 안 되냐고 묻자 만공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꼭 장법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네.”
장법으로 오경을 무력화 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오경은 내공으로 사람의 촉감을 둔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느리게 만들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는 외공이다. 게다가 누구나 익힐 수 있고 다른 외공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장법으로 타격을 하면 전신을 감싸고 있던 내공이 흐트러지고 기의 흐름이 뒤틀려 죽음에 이르네.”
“생각보다 대단한 건 아니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백호대주 혜성은 별것 아니라고 단정 지었지만 백사 대주의 달랐다.
“오직 약점이 장법 하나뿐이라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확실히 장법 이외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고수간의 싸움을 떠나 정사대전과 같이 단체전투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목을 베거나 급소 공격으로 즉사 시킬 수 있지만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약점이 10개라면 오경을 익힘으로서 그 약점을 5개로 줄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오경을 익힌 자들도 허수아비는 아니다. 얌전히 ‘나 좀 베어주시오!’ 하면서 목을 내밀 리 없었다.
다행히 화산파와 무당파는 장법을 기본적으로 누구나 익히고 있어서 대항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오경을 익힌 자는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핏줄이 눈에 보인다네. 이것으로 오경을 익힌 자들을 구분하면 될 것이야. 그리고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경을 복원한 건 최근일 것이네. 그렇다는 말은 상대도 오경의 약점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테고......”
뒷말을 흐리며 만공이 눈치를 주자 제갈 사혁은 그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은밀하게 장법을 사용해서 적들이 오경의 약점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란 말씀이군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로 마교가 배교를 멸문시킬 때 마교는 이 오경의 약점을 끝까지 모른척했고 이를 이용해 배교를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이 잘 해결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래주신다면 손자 분이 일하는데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만공과 제갈 사혁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에 지나지 않지만 보답할 것이 있으면 확실하고 넉넉하게 해주어야 오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래주면 고맙겠네.”
만공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은 세상천지 하나 뿐인 자신의 손자다. 그에게 베풀기보다 손자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면 확실하게 만공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제갈 사혁의 말대로 운남에서 벗어나지 않은 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배교는 서장침공에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운남을 침공한 무림맹에 관해서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림맹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무림맹을 공격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여망상의 지휘아래 어둠을 틈타 공격을 개시했다.
곤명에 은밀히 진입한 무림맹은 배교의 무사들이 쉬고 있는 막사를 급습했다.
화살을 쏠 수 있는 소수의 대원들이 불화살을 날려 막사에 불을 지르자 배교의 무사들은 칼을 빼들고 뛰쳐나왔다.
‘핏줄.’
핏줄이 드러난 배교의 무사를 발견한 제갈 사혁은 호황을 휘둘러 노골적으로 목을 노렸고 뻔한 공격을 예상한 배교의 무사는 침착하게 공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왼손으로 장타를 때리자 배교의 무사는 눈과 귀 등의 칠공(七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배교 무사 한명을 처리하자마자 누군가 제갈 사혁에게 검을 휘둘렀다.
온몸의 갑각이 일깨워진 상태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제갈 사혁은 당황했고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느꼈다.
‘네놈이 우두머리냐?’
제갈 사혁은 송풍검(松風劍)을 펼쳐 상대를 휘어잡으려 했고 상대는 배극구검에 포함된 보법 중 하나인 술신신행(術申迅行)을 펼쳐 공격을 피했다.
배극구검은 배교의 무사들이라면 누구나 다 익히고 있다. 하지만 같은 검법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검을 몇 번 맞대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제대로 익혔군.’
그리고 그는 오경을 익히지 않았는지 얼굴색도 정상이었다.
제갈 사혁은 상체를 빠르게 움직여 상대의 검을 피하는 한편 상대의 발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
그는 발을 밟히자 당황했고 제갈 사혁은 검 손잡이로 상대의 쇄골을 부러트렸다.
아무리 배극구검을 제대로 익혀봤자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밟고서 자신보다 강한 자들과 대면해온 제갈 사혁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마지막이다.”
제갈 사혁이 놈의 심장에 호황의 이빨을 들이민 순간 어디선가 쇠구슬이 날아와 호황에 붙었다.
‘뭐야 이건!’
호황의 검면에 붙은 쇠구슬은 강한 회전을 하며 진동을 일으켜 기어이 검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오경을 익힌 배교의 무사들을 모두 처리해갈 때쯤 배교의 무사들과 똑같이 검은 흑의를 뒤집어 쓴 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배교에 가담했다. 그 덕에 방금 전까지 제갈 사혁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배교의 무사는 어느새 멀리 도망치고 없었다.
“배교의 천주 주공(蛛跫)이라고 한다.”
남장을 하고 천으로 얼굴도 가리고 있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사형!”
무덕의 외침과 함께 순식간에 배교의 무사 두명이 제갈 사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은밀함은 살수의 그것과도 같았는데 배교의 전신인 살막이 살수집단임을 감안할 때 이들은 배교 무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제법이네.”
제갈 사혁이 뿜어낸 무형지기에 의해 가로막힌 그들의 검은 그에 닿지 못했다.
무형지기에 의해 꼼짝 달싹도 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을 움켜쥔 제갈 사혁은 고통스럽게 그들의 숨통을 끊었다.
“배교의 천주 주공이다..... 라고 말하면 뭐 있어 보이는 줄 아나? 계집.”
그와 동시에 제갈 사혁의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와 주공의 아마를 노렸지만 그녀의 옆에 있던 배교의 무사가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어느새 오경으로 무장한 배교의 무사들은 화산. 무당 그리고 무림맹 다섯 부대에 의해 모두 목이 떨어져 나갔다.
“화산과 무당 그리고 무림맹 최대전력인 다섯 부대를 상대로 고작 배교의 천주임을 밝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지껄이지 마라. 설사 네가 배교의 교주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제갈 사혁의 도발에 주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망파진(網波陣)을 펼쳐라!”
“아니. 주공. 그대는 물러나시오.”
검진을 펼쳐 공격을 하려는 그때 곰 가죽을 뒤집어 쓴 거구의 사내가 주공을 가로막았다.
“대송사(大頌士).”
주공의 입에서 대송사라는 별호가 나오자 총사인 여망상은 인상을 구겼다.
“진짜 그대가 대송사인가?”
“그렇다. 배교의 천주인 대송사이다.”
대송사. 아직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배교의 2인자로 불리는 자였다.
“대송사. 직접 막을 생각인가?”
“주공. 그대는 배교의 유산을 복원해야 할 의무가 있소. 이 자리는 내가 맡겠소.”
주공과 같은 천주지만 단지 직함만 같을 뿐이다. 사실상 천주라는 직함을 가진 자들의 우두머리격인 자가 바로 대송사였다.
“시간은 이쯤하면 잘 끌었소. 어서 가시오. 막주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막주는 살막의 지도자이며 현 배교의 일인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귀가 밝은 여망상은 그들의 대화에서 두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됐다. 배교의 유산. 그리고 시간을 끌었다. 여망상은 이것을 두고두고 곱씹었다.
“자신 있는 자부터 와라. 그게 아니면 한꺼번에 와도 좋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너무 짙어 원인모를 두통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동안 천주라고 지껄이던 놈들은 하나 같이 별 볼일 없는 놈들이었지만 대송사는 격이 달랐다.
‘재미있겠는데.’
“비무라..... 재미있구나.”
“!?”
제갈 사혁이 한 발짝 나선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해 서둘러 등을 돌렸다.
“사백?”
“비키 거라. 무진아.”
도청진인은 검을 집어넣더니 허리에 찬 또 다른 검에 손을 댔다.
‘그걸 꺼내시는 건가....’
도청진인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목검이었다.
“화산파의 도청이라고 하네. 나와 한번 겨뤄보겠는가?”
“심전도학(心全道學)........”
“나를 알고 있는가? 이거 영광이군. 뒷방 늙은이를 다 알아주다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설마 도청진인이 직접 나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화산파의 대사형이었으며 현재 무림의 손꼽히는 명숙. 그리고 무엇보다 심전도학이라는 그의 별호는 정말 유명했다.
“저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가?”
황룡대주가 도청진인에 대해 궁금해 하자 백사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파. 단지 그것만으로 저분이 유명한 건 아니야. 사문의 장로자리야. 짬밥되면 그냥 하는 거니까. 잘 봐. 저분이 왜 유명한지 알게 될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청진인의 목검이 허벅지만한 대송사의 팔뚝을 찌른 순간 대송사의 팔뚝에 멍이 들었다.
“이야! 역시 대단해!”
겨우 평범한 찌르기 한번 했을 뿐인데 백사대주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황룡대주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뭐죠? 선배. 그냥 평범한 찌르기잖아요.”
황룡대주는 도저히 뭐가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백사대주는 그런 황룡대주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잘봐.”
백사대주는 황룡대주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대송사의 팔뚝에 생긴 멍 자국을 가리켰다.
“대송사는 아침에 운기조식을 했을 거야. 그리고 아침수련을 했겠지. 오늘은 꽤나 몸 상태가 좋았을 거야. 무림맹에서 배교를 치러 온다니까. 기대가 됐겠지.”
“선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황룡대주는 백사대주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물론 내 상상이지. 하지만 말이야. 무림인도 멍이 드나?”
무림인도 멍이 드냐니 사람인 이상 멍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몸 상태가 아주아주 좋은데 첫 공격에 멍이 드는 게 가능하냐고.”
“!”
무림인은 신체보호를 목적으로 외공을 익힌다. 달리 외공을 익히지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내공을 수련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내공수련에 영향을 받아 외공을 익힌 듯한 효과를 얻는다.
만약 대송사가 외공을 익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 정도 되는 고수의 피부가 보통 피부일 리 없었다.
“이제 알았지? 저 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 작품 후기 ============================
만공떡밥은 이 때를 위해 놔뒀습니다.
제갈 사혁이 죽었을 당시에 배교는 배교가 아니라 살수집단 살막이었으니까요.
근데 그걸 제갈 사혁이 회귀 기억으로 샤바샤바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만공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오늘 연재 끝내면 게임이나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쓰면서 내용을 바꾸고 바꾸고 합니다.
3일 연속 7K 저질 용량이라니.....
점점 쓰면 쓸 수록 생각은 많아지네요.
쪽대본을 쓰는 드라마 작가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