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회: 배교침공 -->
대송사는 도청진인의 목검을 피해 주먹을 날렸고 도청진인은 이를 막기보다는 장법으로 쳐냈다.
힘과 힘의 충돌. 양쪽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나도 나이가 들었군.”
도청진인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공실력과 상관없이 언젠가 사람의 몸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도청진인에게 그 때가 찾아온 것이다.
“사백.....”
그 모습을 보며 제갈 사혁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청진인은 공격의 강도를 낮추지 않았다.
대송사는 도청진인의 공격을 받고 몸이 퍼렇게 멍들었지만 쇳덩어리 같은 주먹을 내지르며 도청진인을 힘으로 밀어 붙었다. 단순하지만 위력적인 주먹이었고 도청진인의 기술로서 압도적인 힘에 대항했다.
주먹을 내지를 때 큰 동작을 보이는 대송사의 허점을 파고들어간 도청진인의 매화청심장(梅花淸心掌)으로 그의 가슴에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대송사의 무릎이 반쯤 꿇리자 공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서 대송사의 상태를 살폈다.
대송사 역시 오경을 익힌 자들처럼 핏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도청진인은 대송사도 오경을 익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장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대송사는 곧 숨을 고르더니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는 오경을 익히지 않았다.
“과연 화산파.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겠소.”
그러면서 대송사는 품에서 목함을 꺼냈고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 제갈 사혁은 서둘러 도청진인에게 소리쳤다.
“사백. 저자의 목함을 빼앗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
하지만 이미 대송사는 복부에 대침을 꽂은 뒤였다.
“크아아아아!”
대송사의 괴성과 함께 몸이 부은 것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점점 가라앉았다.
“명섬대침(命殲大鍼)?!”
이 모습을 본 만공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말하는 명섬대침은 아마도 배교인들이 대침의 이름인 듯 했다.
“만공 선생. 저게 무엇인지 아시오?”
“명섬대침이네. 저걸.... 저걸 도대체 누가....”
“왜 그러시오?”
“오경과는 다르네. 명섬대침은 교주의 비전..... 그게 어떻게?”
그렇다면 이건 복원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주의 비전이라면 분명 일인전승일 것이고 배교 이외에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배교가 멸문할 때 배교의 무공은 모두 마교가 가져갔네. 그들이.... 명섬대침은 거짓된 이름을 들먹이는 그들이 복원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네!”
만공의 말대로라면 이건 화산파가 멸문한 뒤 화산파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하신공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뭔가 있군.’
살막이 자신만만하게 스스로 배교임을 자처했을 때는 솔직히 뭘 믿고 배교를 일으켰나 싶었다. 그런데 만공의 말을 들어보니 배교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일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명성대침을 사용한 대송사의 힘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육중한 체격에서 나오는 힘은 기어이 도청진인의 목검을 부러트렸다.
“사백! 검을 뽑으십시오!”
제갈 사혁은 목검이 부러지자 도청진인에게 허리에 찬 검을 뽑으라고 소리 질렀다. 만약 제갈 사혁이라면 저 상황에서 권법으로 맞서겠지만 도청진인은 다르다. 그는 검사다. 장법이나 권법은 검술을 보조하기 위해 익힌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대송사는 영악했다. 힘과 속도를 이용해 도청진인을 압박하면서 검을 뽑지 못하게 했다.
“쳇!”
졸렬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대송사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었다. 대송사의 속도가 도청진인을 압도한 순간 대송사는 도청진인의 검을 빼앗았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손버릇이 심하군.”
“........”
“공격하지 않는 건가?”
공격하지 않을 거냐고 도발하자 대송사는 말없이 도청진인의 검을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도청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검을 검일 뿐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지 검이 아니네.”
검을 빼앗기고 검은 검일뿐이라고 나이도 적잖이 먹은 분이 젊은 애들이나 늘어놓을 법한 허세를 늘어놓자 제갈 사혁은 속이 타들어갔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 허세가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청진인은 허리에 메고 있던 띠를 풀더니 도복을 벗었다. 그리고는 허리띠에 내공을 주입해 검처럼 세웠다.
“검은 검일뿐이지. 의지를 담을 수 있는 막대기 한 자루면 될 것을....”
그 말과 동시에 도청진인은 검격을 내질렀다.
“!”
그것이 보통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대송사는 서둘러 공격을 피했고 검격이 지나간 자리는 움푹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시작하지.”
사백을 믿는다. 하지만 제갈 사혁은 불안했다. 내공을 불어넣어 강도를 높이는 수법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방법은 내공소모가 너무 심했다.
도청진인 정도 되는 무림인이 내공이 부족해지는 일이 생길 리 없지만 문제는 늙고 노쇠한 몸의 부족한 점을 내공으로 극복하고 있는 그가 저렇게 많은 양의 내공을 소모할 때 생기는 급격한 체력하락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나섰어야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문의 어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보했지만 설마 대송사가 도청진인을 궁지로 몰아넣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학검(神鶴劍)으로 도청진인이 기세를 잡으려 하자 공격을 몸으로 받으며 쌍천장(雙穿掌)으로 도청진인의 복부를 공격했다.
“근성이 제법이군.”
하지만 노년의 오기도 근성 못지않았다.
쌍천장을 맞으면서 도청진인은 손을 뻗어 대송사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한쪽 눈을 잃은 대송사는 인상을 구기며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대풍대종(大風帶終)!”
대송사가 두 손으로 장법을 날리자 도청진인은 대송사에게 양손을 뻗어 장법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두 손이 닿자 대송사는 도청진인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젠장! 내력싸움을 걸다니!”
가까운 거리에서 손을 뻗으니 피할 수 없는 건 당연했고 도청진인 역시 장법으로 맞섰다. 하지만 대송사는 거기에 한술 더 떠 도청진인의 손을 잡고 내력싸움을 걸었다.
내력싸움이 시작되자 두 사람의 몸에서 연기와 같은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 예상대로 대송사와 달리 도청진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력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피부노화가 빠르다. 이대로 가다간.....’
내력싸움에 들어간 이상 이 싸움에서의 패배는 곧 내상으로 직결됐다.
일다경(一茶頃)정도 지나자 두 사람의 내공이 폭발하며 떨어져 나갔다.
“사백!”
“괜찮으십니까?”
도청진인은 심각한 내상을 입어 더 이상 대송사와 대결을 하기 힘들어보였다.
“대송사라했나?”
“사백. 말씀을 아끼십시오. 내상이 심각합니다.”
“싸움의 결판이 났으면 크헉.......”
“사백!”
“사...... 상대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것이 정파인의 도리이니라....”
제갈 사혁은 도청진인의 상태를 생각해 말을 아껴 달라 부탁했지만 도청진인은 패자로서 승자의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내상을 입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대송사는 말없이 고개 숙이는 것으로 도청진인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비록 정사대전 중이라고는 하나 도청진인은 정파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상대를 인정해주었다.
“무덕. 아이들과 함께 사백을 모시고 떠나라.....”
“사형.....”
“화산파는 화산지회와 나...... 화산파 무진(無榛).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사대전 중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도청진인의 패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도청진인 개인이 치룬 대가는 너무 많았다. 제갈 사혁은 도청진인의 안전을 이유로 화산파 매화검수들을 이번 원정대에서 뺐고 이 결정에 무림맹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무림맹의 배교침공은 도청진인과 화산파 매화검수의 이탈이 발생했지만 그 발걸음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이 앞은 갈 수 없다.”
대송사는 배교로 향하는 무림맹의 앞을 가로 막았고 제갈 사혁은 천천히 대송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건방 떨지 마라. 승자로서 사백께서 예의를 갖췄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베지 못하는 것이다. 너의 힘이.... 네가 두려워 손대지 못하고 있다 착각하지 마라.”
그 말과 동시에 여망상이 신호를 주었고 오대주들은 각자의 부대에 명령을 내려 빠르게 이곳을 이탈했다. 무림의 명숙인 도청진인이 대송사와의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면 진작 이렇게 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대송사를 죽이고 싶었지만 도청진인을 꺾고 그 실력을 인정받은 자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갈 사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한 가지 제갈 사혁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더 이상 우리를 막아서지 마라. 배교를 위해서도 이 자리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진 않겠지?”
대송사가 천주인 주공을 대신해 이곳을 맡았을 때 제갈 사혁은 대송사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송사를 죽이기 곤란할 때 이점을 이용해 대송사를 꺾었다.
“네놈....”
대송사는 제갈 사혁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고 이를 악물었다. 대송사는 서둘러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고 제갈 사혁은 대송사를 지나쳐 여망상에게로 갔다.
“총사. 주공이라는 계집을 쫓아야 합니다.”
“알고 있네!”
여망상도 대송사와 주공 간의 대화를 들어 둘 사이에 아니 배교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필력 하락은 피할 수 없나봅니다.
글에 살을 더 붙이고 싶은데 그게 안돼네요.
글은 쓰면 쓸 수록 늘어야 하는데 어째 전혀 그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내 한계인가? 싶어 조금 겁나기도 하고요.
이번편은 조금 지루하지만 전개상 꼭 필요했습니다.
도청진인의 패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공이 명성대침을 알아보고 그게 절대 지금의 배교가 복원 가능한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기 위해서죠.
PS. 오대주들 중 초영만 언급이 안된 것을 깨달았지만 전개상 일부러 언급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서 뺏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