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회: 배교침공 -->
황룡대주는 총사 여망상에게 주공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단독으로 침입한 듯 했지만 배교의 술수는 얕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살막인가.”
황룡대주와 제갈 사혁이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들을 맞이하는 자들은 검을 맞대는 무사라기보다 은밀하게 목숨을 취하는 살수에 가까웠다.
다음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수십 개의 암기가 날아왔고 제갈 사혁은 서둘러 무형지기를 펼쳐 암기가 날아오는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신매속천보(迅魅速千步)를 펼쳐 암기 사이를 요리조리 피한 황룡대주는 두 자루의 검을 좌우 양방향으로 휘둘러 적들의 숨통을 끊었다.
“황룡대주. 내가 무형지기를 써서 암기를 무력화 시키면 암기를 쳐내야죠!”
“방금 그게 무형지기였어? 난 또 일부러 느리게 던진 줄 알았네.”
두 사람은 개인으로서는 상당히 뛰어났지만 서로 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목표물이 어디 있는 줄은 알아요?”
“원래 높은 사람은 꼭대기에 있는 법이야.”
“말 되네.”
주공이 어디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두 사람은 배교의 본단 건물 상층부까지 쉬지 않고 올라갔다.
“뭐야. 이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일 꼭대기 층까지 올라온 두 사람을 반기는 건 수 십구의 시체들이었다.
“우리 말고 누가 왔나본데요.”
“우리 말고 누가 와?”
일전에 흑호의 일로 마교 교주인 천중기와 만난 적이 있는 제갈 사혁은 천중기를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배교가 서장 지역을 쳐들어왔는데 천중기가 단독행동을 할 리 없었다.
시체가 만들어낸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한 두 사람은 점점 짙어지는 혈향(血香)에 마른침을 삼켰다.
“꼭 이럴 때 뭔가 터지더라고요.”
“에이~ 설마.”
“아니요. 내 팔자는 더러워서 나쁜 예감일수록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지거든요.”
제갈 사혁은 배교 내에서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열려있는 문을 끝으로 더 이상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제갈 사혁은 손가락으로 열려 있는 문을 가리키며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손짓으로 뜻을 전했다.
‘하나 둘!’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문 앞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벽에서 주먹이 뚫고 날아와 제갈 사혁을 공격했다.
“!”
제갈 사혁이 무언가에 의해 공격당하자 황룡대주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칼날 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사람이 아니라 흡사 쇠를 베는 느낌이었다.
“뭐지?”
“무림맹의 쓰레기들이군.”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사내는 근육이 터질 말듯 묘한 몸을 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힘이 주입된 느낌이었다.
“연곡진(煙曲溱)?”
황룡대주는 제갈 사혁을 날려버린 인물의 이름을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연곡진. 배교를 만들고 정사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네놈의 이름은 뭐지?”
“이름 따위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부르지. 황룡대주라고!”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값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호승심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황룡대주!”
제갈 사혁은 황룡대주를 외침과 동시에 연곡진에게 달려 들어가 그의 왼쪽 가슴에 정확하게 외공권을 찔러 넣었다.
“제갈 사혁이군.”
연곡진은 제갈 사혁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거 영광인데 배교의 우두머리께서 내 얼굴도 다 알고 말이야.”
“니놈의 단전을 부순 게 나다.”
“!”
설마 연곡진이 직접 제갈 사혁의 단전을 폐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전을 잃고도 무공을 사용하다니 놀랍군.”
“내가 상식을 뛰어넘는 남자거든.”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연곡진의 왼쪽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연곡진의 몸에서 보랏빛 내공이 흘러나와 호신강기를 이뤘다.
“이 무공을 복원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네가 아느냐?”
연곡진의 상태는 뭔가 이상했다.
“막주님. 아직 완전하지 않은 무공입니다.”
마침 연곡진이 부셔버린 문틈 사이로 주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공의 두 손을 피로 물들어 있었다.
“상관없다. 이 정도의 힘만으로도 무림맹의 버러지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놀고 있네!”
상대를 비웃으며 발을 쭉 뻗어 연곡진의 목을 휘어감 듯 후려쳤지만 연곡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농담을 하는 것 같으냐?”
“!”
“!”
잠시 후 배교의 본단에서는 보랏빛의 섬광이 일어나고 무림맹과 배교의 무사들이 난전을 치루고 있는 전장 한 가운데 제갈 사혁과 황룡대주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콜록! 콜록!”
“이런 미친!”
그리고 잠시 후 연곡진이 그 두 사람을 뒤따라 뛰어내렸다.
“교주님!”
“막주님!”
무림맹과 싸우던 배교의 무사들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난전 속에서도 그들의 주군인 연곡진을 알아보았다. 누구는 그를 교주라 부르고 누구는 그를 막주라 부르며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저자가 배교의 교주.....”
총사 여망상은 연곡진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황룡대주보다 피해를 덜 입은 제갈 사혁은 황룡대주를 부축하며 서둘러 무림맹 측 진영으로 향했다.
“방금 뭐였지?”
“뭐긴 뭡니까. 무식하게 내공을 폭발 시킨 거죠.”
“우리 살아 있는 거지?”
“일단은요.”
연곡진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뭐지 명성대침을 강화한 건가?’
명성대침의 효과와 비슷했지만 뭔가 달랐다.
“크윽.....”
그러던 중 연곡진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막주님. 왜 그러십니까?”
배교의 무사 한명이 그가 걱정이 되어 다가가자 연곡진의 그 자의 팔을 붙잡았다.
“마... 막주님! 으.... 으아악!”
그 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연곡진의 몸속으로 그 자의 내공이 빨려 들어갔다.
“!”
멀리서 얼핏 봤지만 제갈 사혁은 연곡진이 행한 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흡기?!’
설마 연곡진이 흡정마공을 익힌 것일까?
그가 흡정마공을 익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갈 사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럴 리가 없다. 흡정마공은 오직 나밖에 사용하는 자가 없다.’
“마혼십형기(魔魂拾形氣)라니.....”
그때 만공의 입에서 흡정마공이 아닌 전혀 다른 이름이 나오자 제갈 사혁은 마음을 바로 잡고 만공에게 방금 전 말한 무공에 대해 물었다.
“만공 선생. 그게 무엇입니까?”
“마혼십형기. 나도 어렸을 때 딱 한번 봤네. 저건 배교 교주의 상징과도 같은 거야.”
“상징?”
“자네 흡기라고 들어봤나?”
흡기라는 노골적인 표현에 제갈 사혁은 절대 동요하지 않았다.
“들어는 봤습니다. 그럼 저 무공은 사람의 내공을 흡수하는 마공이란 말씀이십니까?”
제갈 사혁은 저것이 흡정마공이냐는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아니 조금 다르네. 저 무공은....... 마혼십형기는 배교의 내공심법을 익힌 자들의 내공을 흡수하는 마공이네.”
흡정마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흡기를 주 목적으로 하는 마공인 이상 그 위력은 누구보다 제갈 사혁이 잘 알았다.
“약점은 없습니까?”
“약점이라면 저자가 교주의 진정한 후인이 아니라는 게 약점이겠지.”
“네?”
“저 무공은 배교 교주의 혈통을 지닌 자만 익힐 수 있네. 벌써 폭주하기 시작했구만.”
만공의 말대로 연곡진은 자신의 부하들을 흡기 아니 잡아먹고 있었다.
“막주. 이겨내셔야 합니다!”
배교의 본단 위에서 주공이 연곡진을 향해 소리치자 제갈 사혁은 백호대 대원이 들고 있는 창을 빼앗았다.
대송사와 주공의 대화.
시간 그리고 배교 교주의 기다림. 결국 이 모든 건 마혼십형기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도 제갈 사혁의 추측이 맞다면 오경을 비롯해 이 모든 건 주공의 작품이 틀림 없었다.
‘너만 죽으면 배교를 몰살 시키는 건 시간문제다.’
제갈 사혁은 주공을 죽이기 위해 내공을 한껏 불어넣어 창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이 던진 창을 누군가 몸을 던져 막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연곡진이 자신의 부하 한명을 무슨 돌멩이 던지듯 던져서 주공을 대신해 창을 맞도록 했다.
‘이 새끼가!’
주공을 죽이는 게 실패로 돌아가자 제갈 사혁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내 앞길을 가로막아? 네놈 따위가!’
연곡진은 제갈 사혁이 주공을 노리자 흡기를 멈추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봉황대주!”
“봉황대 앞으로!”
총사 여망상이 초영을 부르자 초영은 봉황대에게 명령을 내려 연곡진과 맞서게 했다. 하지만 연곡진의 압도적인 무위 앞에 봉황대는 한낱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아니 봉황대뿐만이 아니었다. 백호대 황룡대 그리고 백사단까지도 전부 연곡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면 권풍이 일어나 어지간한 무림인은.......
‘이런 미친.... 배교를 멸문시키기 위해 온 우리들 중에 어지간한 무림인 따위가 있을 리 없잖아!’
연곡진이 날뛰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갈 사혁은 그 난전 속으로 파고들어가 연곡진의 얼굴을 있는 힘껏 때렸다.
“그 무공은 배교의 정통성이 없는 네놈에게 과분한 것이다! 알고 있느냐!”
제갈 사혁은 광인이 된 연곡진을 향해 현재 배교가 가지고 있는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을 자극했다.
“총사.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가능하겠는가?”
연곡진은 귀신과도 같은 무력으로 순식간에 다섯 부대의 전력을 절반 이상으로 꺾어버렸다. 그런 자를 제갈 사혁 혼자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무림맹의 총사라지만 듣기 거북하군. 화산파는 천하제일이오.”
부상을 입은 화산지회의 속가제자가 여망상을 향해 화산파가 천하제일임을 말하자 제갈 사혁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
“뭘 그렇게 쳐 웃느냐? 내가 틀린 말 했느냐?”
“아닙니다. 선배님. 그렇죠. 화산파의 무공은 천하제일입죠.”
“미친놈. 여태까지 그것도 몰랐느냐? 니놈은 후계자 자격이 없다. 자격이!”
“저놈을 죽여서 그 용서를 빌겠습니다.”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자하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색의 기운이 흘러나와 온몸을 감싸자 제갈 사혁은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제갈 사혁이 연곡진과 맞설 준비가 끝나자 총사인 여망상은 전열을 가다듬고 주저앉은 무림맹 연합을 일으켜 세웠다.
“무당파에서 선봉을 맡아 주시오!”
“청광 이하 무당파는 총사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연곡진에 의해 크게 피해를 입었지만 내내 대열의 중간에 위치했던 무당파는 화산지회와 다섯 부대에 비하면 비교적 전력 손실이 적었다.
연곡진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사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망상은 제갈 사혁을 이용해 사기를 불러 일으켰다.
“마화천을 꺾은 제갈 사혁 소협이 배교의 우두머리인 연곡진을 상대할 것이오! 정의는 우리에게 있소! 절대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화천을 언급하며 무림에서의 제갈 사혁의 위치를 그들에게 인식 시켜주는 한편 여망상은 이를 이용해 사기를 불러일으켰다.
“가자!”
그리고 그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 작품 후기 ============================
새벽에 글을 쓰다가 저장이 안되서 싹 날아갔습니다.
열받아서 그냥 잤죠. 근데 컴퓨터를 저도 모르게 발로 차서 지금 컴퓨터에 왱왱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혼십형기. 흡정마공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거기에 무협의 흔한 설정을 더했습니다.
별로 특별할 건 없는 무공이지만 연곡진도 흡정마공을 익혔다. 라고 해버리면 어이가 없어서 다른 무공을 만들었습니다.
주공을 향해 창을 날렸는데 그것을 연곡진이 막아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는 상황을 그들에게 대입시켜봤죠.
그 덕에 제갈 사혁은 머리에 나사가 풀렸습니다.
PS. 원래 한글 프로그램 Alt F4 누르면 저장 하시겠습니까? 라고 떠야 하는데 안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