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의협-230화 (230/262)

<-- 230 회: 과소평가 -->

‘망할!’

더 이상 내공이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연곡진이 한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자 제갈 사혁은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팔목에 있는 혈도를 눌러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설사 자하신공으로 인해 모든 내공이 소진되었다 하더라도 무림인으로서 매일 매일 단련해온 이 육신의 힘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건 없다!’

연곡진의 종아리를 연신 걷어찬 제갈 사혁은 그가 주춤거리자 재빨리 턱을 아래에서 위로 후려쳤다.

“후우! 후! 후! 후!”

내공을 모우기 위해 숨을 빠르게 몰아쉰 제갈 사혁은 용권연신(龍拳鍊身)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반야신공(般若神功)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러자 시야가 넓어지고 눈앞에 있는 연곡진이 더 이상 커 보이지 않았다.

반야심공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내공의 부재를 메울 수 없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 하지만 이 모든 것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강함이다!”

제갈 사혁은 연곡진을 향해 용조수(龍爪手)를 펼치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꺼져라!”

양손으로 원을 그리며 두 손으로 동시에 장법을 펼치자 제갈 사혁은 입에서 피를 쏟으며 물러났다. 연곡진은 제갈 사혁을 쫓아가 숨통을 끊으려 했고 주먹을 휘두른 그 순간 연곡진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

“천지유벽세(天地柔劈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무공도 이제는 사용할 때마다 힘이 들었다. 하지만......

“네 이놈!”

어째서인지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전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연곡진이 또다시 아귀처럼 달라붙자 제갈 사혁은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며 연곡진의 공세를 받아냈다. 이 둘의 싸움은 마치 두 마리의 대호(大虎)가 발톱을 세우고 싸우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분명 이 싸움은 무림맹과 배교의 싸움인데 이 두 사람의 사사로운 결전은 이 거대한 전투를 집어삼켜 버렸다.

‘더 세게! 더 세게!’

두 사람의 투박한 주먹이 서로를 향해 날아갈 때마다 힘에 의해 발생하는 압력 때문에 그들 가까이에 있는 자들은 귀가 먹먹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겪었다.

“고작 그거냐!”

연곡진의 주먹 한방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바닥을 구르던 제갈 사혁은 앙갚음을 하려는 듯 똑같은 자세로 똑같이 주먹을 날렸다.

“죽어라!”

연곡진이 제갈 사혁에게 밀리자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배교의 무사가 제갈 사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붉은 피를 뒤집어쓰는 대신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

“........”

한동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서있던 제갈 사혁은 연곡진이 펼친 종려장(終勵長) 맞아 나가 떨어졌다.

연곡진에 의해 나가떨어진 제갈 사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양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 감각. 이 느낌!

여전히 남아 있는 내공은 얼마 없고 육체는 더 이상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부족한 내공과 그것을 힘으로 극복하려는 육체 그리고 내공을 대신하려는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한계를 뛰어 넘었다. 아니 그것은 극복도 성장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흐하하......”

“누구라도 좋다. 놈을 죽여라!”

제갈 사혁을 베려다 실패한 배교 무사의 외침과 동시에 그 주변에 있던 배교의 무사들이 일제히 수십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수십 명이 동시에 휘두르는 검은 마치 천라지망(天羅地網)을 연상케 했고 절대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수십 자루의 검은 제갈 사혁의 살에 닿았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은 더욱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흐하하하!”

광인의 웃음소리에 실린 압도적인 힘에 의해 수십 자루의 검이 부서지며, 부서진 파편은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내가.... 내가 돌아왔다!”

되돌아왔다. 그것은 깨달음도 또 다른 가능성도 아니었다. 다른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을 다시 얻게 됐을 뿐이었다.

“죽어라!”

배교의 무사가 불나방처럼 뛰어들자 제갈 사혁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배교의 무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잘려나가는 것은 그가 입고 있는 화산파의 도복뿐이었다.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제갈 사혁은 그 시체를 연곡진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죽은 자의 시신에서 기가 새어나와 연곡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록 배교의 진정한 후인은 아니지만 마혼십형기는 연곡진과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그는 점점 성정하고 있었다. 조금 더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만 성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맞서야 하는 제갈 사혁은 이미..... 이미 모든 것을 이뤘다.

꽃을 피우려 한다면.....

“짓밟아 버리면 그만이다!”

연곡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제갈 사혁은 그것을 이마로 받았다.

“이런 걸 주먹이라고 내지르다니.... 간지럽다!”

그의 어깨를 잡은 제갈 사혁은 배교의 무사들이 있는 쪽으로 연곡진을 던졌다.

“놈을 막아라!”

사방에서 자신을 노리는 칼이 날아왔지만 제갈 사혁은 오직 힘을 연곡진에서 쏟아 부었다.

연곡진의 위에 올라탄 제갈 사혁은 무방비 상태인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사정없이 번가라가며 때리기 시작했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이 난리가 나자 무림맹을 상대하기 바쁜 오경을 익힌 배교의 무사들도 싸우기를 포기하고 연곡진에게서 제갈 사혁을 떼어놓기 위해 뛰어왔다.

“놈이 검에 베어지지 않습니다!”

“달라붙어라! 달라붙어서 떼어내란 말이다!”

검에 베이지 않는 상대를 앞에 두고 평정심을 잃은 배교의 무사들은 그자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어 힘으로 연곡진과 사혁을 떼어내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막주. 괜찮으십...... 윽!”

연곡진의 상태를 살피던 배교의 무사는 연곡진의 손아귀에 잡혀 마혼십형기에 의해 내공을 흡수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배교의 무사 한명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 물었다.

“이 싸움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눈앞에 있는 적들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지도자는 살기 위해 부하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검을 휘둘러야 하는가? 젊은 배교의 무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그 해답을 선배에게 구하고자 했지만 그 역시 해답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막주를 살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무엇을 위해서 말입니까?!”

“배교를 위해서.....”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교주를 보세요. 자신이 살기 위해 우리의 내공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막주와 교주. 이것이 연곡진을 부르는 두 사람의 차이였다.

살막이 있던 시절부터 연곡진을 따랐던 자와 살막이 배교가 되는 과정에서 출세를 위해 그를 모시는 자.

“너는 모른다. 괄시 받으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 말과 함께 그는 검기를 덧붙이며 제갈 사혁을 향해 달려갔다.

“죽어라! 제갈 사혁!”

검기가 서린 한 자루의 칼을 휘두르며 적이 다가오자 제갈 사혁은 그의 검을 한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칼로도 벨 수 없었던 그의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잊고 있었군. 도검불침의 약점이......”

검기로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이 괴물을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이젠 끝이다!”

“그리고 이것도 잊고 있었어.”

“!”

그 순간 밝게 빛나던 그의 검이 빛을 잃었다. 그리고 제갈 사혁의 몸에 달라붙은 배교의 무사들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광인이 된 뒤로 사용하지 않은 흡정마공(吸精魔功)이었다.

빛을 잃어버린 검을 힘껏 쥐자 검은 힘없이 부러졌다.

“이!”

배교의 무사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자 제갈 사혁의 그의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잡고 서서히 힘을 주었다.

“이놈!”

제갈 사혁의 손목을 붙잡고 반항을 하는 그의 의지는 적이지만 대단했다.

“너는 도대체 뭐냐?”

“힘.”

너의 의지는 좋다. 하지만 나의 힘은 언제나 너의 의지를 뛰어넘는다.

“끄아악!”

머리에 힘을 가하자 배교의 무사는 병장기의 충돌음보다 큰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나는 나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너도.... 너도 그런가?”

등 뒤에 서 있는 연곡진은 이미 수많은 배교 무사들의 기운을 흡수한 상태였다.

============================ 작품 후기 ============================

정말 죄송합니다.

당초 휴재 다음날 연재를 시작하려 했는데 망할 호프집 알바가 오래가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호프집 사장님이 제 선배라는 점과 저라도 안 도우면 진짜 망할 것 같은 가게 때문입니다.

호프집 앞에 여대가 있는데 그거 믿고 가게 열었다가 이꼴이 났죠.

그 선배는 여대생들은 학교 앞에서 단체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한 거죠.

남여가 같이 다니는 대학이면 모를까....

화산의협 이야기를 하자면 도검불침의 부활. 입니다.

이럴 라면 왜 환골탈태와 함께 도검불침을 재물로 삼아 날려먹은 건가?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 이걸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극한의 싸움으로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뜬 게 아니라. 그냥 원래대로 다시 강해졌다. (도검불침도 무협에서 강함을 표현하는 방법이기에)

무형지기도 다루고 이미 마화천과의 싸움에서 더욱 더 스스로를 갈고 닦았습니다.

연곡진과의 싸움에서 제갈 사혁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때문에 이 이야기를 쓰기 전에 환골탈태 이벤트로 도검불침을 날리고 다시 되찾는 쪽을 구상했습니다.

뭔가 있어보이게 말하자면 흡정마공과 도검불침.

이것은 사혁이 회귀를 하고 얻은 능력이란 점이죠.

이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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