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회: 거부 -->
한편 소천 마을에 부하들을 이끌고 간 봉명공은 흑사련 출신 마교인들을 이용해 교도들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세 가지다.
식량을 이용해 아이들을 담보로 하는 마교의 병령 유지. 강압적인 종교와 마교의 무사로서 자라며 평생 만날 수 없는 가족.
그 중에서도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언급하며 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때문에 그 의견에 동조하는 자들도 제법 있었다.
그래서 이 기세를 몰아 그들에게 함께 마교의 부당함과 싸울 것을 설득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봉명공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혔다.
“대장님!”
봉명공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자 봉명공의 부하인 젊은 무사들은 어쩔 줄 몰라했고 봉명공 또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부당함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권리를 찾자고 했을 뿐인데 자신에게 돌아온 건 돌이었다.
“도.... 돌아가!”
교도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목소리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 작은 외침은 이내 대중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래 돌아가! 우리는 신교를 배신하지 않는다!”
왜 이러는 걸까? 이건.... 그래 더 나은 삶을 위해 젊은 마교의 무사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키는 혁명이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우리를 옹호해주지 않는 것일까?
“감히! 누구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냐?”
봉명공을 향해 던진 돌멩이는 이내 봉명공 측의 분노를 일깨웠고 그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기어이 부하 한명이 검을 뽑은 것이다.
“검을 거둬라!”
정신을 차린 봉명공이 검을 거둘 것을 명령했지만 칼집을 벗어난 검은 그 순간 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마화천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예정된 일이었다.
“너는 알지. 넌 이런 일에 해박하잖아.”
마화천은 제갈 사혁을 보며 말했고 제갈 사혁은 시선을 돌려 신강의 비옥한 농경지를 바라봤다.
“너 망지성이 위험하다고 했지.”
“그래.”
“그게 이 이유냐?”
마교는 본디 종교조직이고 신강사람이면 마교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규모만 본다면 하나의 소국(小國)이라 불러도 될 정도지만 식량문제는 어떻게 보면 마교의 유일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해낸 자가 바로 망지성이었다. 게다가 그 문제를 교도들에게 맡기면서 그 이익 또한 교도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결과 대중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게 된다는 건가?”
“역시 넌 이해가 빠르구나. 거기에 덧붙이자면 종교는 이들에게 삶이야.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또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믿어왔던 거야. 마교인들의 삶은 종교가 만들어준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데 봉명공은 그들에게 그걸 버리라고 하고 있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 자기 자신의 삶을........ 말했지. 지금의 마교인들은 불만이 없다고.”
만약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면 그는 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항이고 저항이니까.”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전을 하려고 한다.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래. 마교가 모든 걸 다 해주는데 봉명공은 사람들에게 저항하라고 말하고 있어.”
현재에 만족하게 된다면 변화를 거부하는 건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자신 역시 무림 3대 세력이 다투는 현 무림에 만족하기 때문에 배교를 적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봉명공을 데리고 돌아가려는 거 아니었냐? 지금 가서 데려오는 게 나을 텐데.”
그 말과 함께 마화천은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멀리서 소동을 감지한 마교의 무사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 소림사에 빚을 만들 수 있겠군.”
“좀 솔직해지지 그러냐?”
“친구이기 이전에 이 또한 사실이다.”
“그래. 넌 그런 놈이지.”
마화천은 마교의 무사들 쪽으로 그리고 제갈 사혁은 봉명공 쪽으로 이동했다.
성난 대중은 봉명공 일행을 둘러싸며 그들에게 돌을 던졌고 봉명공 일행은 저항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들도 칼을 뽑아 대응하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봉명공의 제지도 있었지만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자들은 어쩌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부모의 손에 이끌려 마교의 무사가 되지 않았다면 자신들도 오늘날 이들과 같이 돌을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반격할 수 없었다.
“다들 물러서!”
내공이 실린 목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태양을 등진 채 한 자루의 검을 들고 나타났다.
“물러서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겠다!”
그의 검 끝에서 흘러나온 힘은 평평한 대지에 거대한 흉터를 남겼다.
돌멩이를 던지며 마교의 무사들을 공격하던 교도들은 그 사내로부터 공포를 느끼고 이내 두려움에 떨었다.
“제갈 사혁......”
무뢰배처럼 교도들을 위협한 사내는 제갈 사혁이었고 그를 발견한 봉명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사천에서 귀보와 비무를 벌이고 그의 생사를 놓고 다퉜던 이번 생애에서의 날들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야말로 실패자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마화천이 막고 있기는 한데 어서 빨리 자리를 떠야 할 것 같다.”
“...........”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봉명공은 망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를 거부하고 있다.”
“제갈 사혁.”
“..............”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어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라. 마교를 뜬다. 너희들도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빨리 움직여라!”
모든 계획이 실패한 이상 남은 건 무사히 빠져나가는 일 뿐이다.
“이신.”
“네. 사부.”
“녀석들을 안내해줘라.”
“사부는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제갈 사혁은 호황을 뽑아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는데 가긴 어딜 가냐? 즐겨야지!”
사방에서 마교의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제갈 사혁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곳에서 봬요.”
달리 이신과 퇴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곳은 없었다. 단순할지 모르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게 제갈 사혁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오자 제갈 사혁은 마화천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등 뒤를 맡기기에는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었다.
부상을 입었지만 마화천의 검격은 절대다수의 싸움에서 말 그대로 절대적이었다.
‘한 번에 기선을 제압한다!’
하늘로 높이 뛰어오른 제갈 사혁은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의 초식을 기반으로 삼아 검기를 난사했다.
“등장 한번 요란하네!”
서로에게 등을 진 두 사람은 주위에 널린 마교의 무사들을 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것 없으니까. 확실하게 간다!”
“나도 알아 명령하지 마. 이 새꺄!”
마화천의 명령조에 욕으로 대답한 제갈 사혁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교 무사의 얼굴을 발로 차 목을 뒤로 꺾어버렸다.
호황이 이빨을 드러내자 그들은 살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적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오자 제갈 사혁은 호황을 잠시 내려놓고 육합권법(六合拳法)을 펼쳐 전 방위 대응을 했다.
“비켜라!”
마교의 무사들 중 제법 덩치가 있는 사내가 제갈 사혁에게 달려들자 제갈 사혁은 자신보다 세배는 큰 사내를 허리를 붙잡고 힘겨루기를 했다.
“으아아아!”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제갈 사혁은 그를 뒤로 넘겨버렸고 그 순간 뒤에 있던 마화천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육중한 몸을 반으로 깔끔하게 가르고 그 피를 뒤집어썼다.
“하아아.....”
조용한 기합과 함께 제갈 사혁은 발끝을 날카롭게 세워 질풍연환퇴(秩龍連幻腿)를 펼쳤다. 쉬지 않고 뻗어대는 발차기에 적들은 피멍이 들거나 뼈다 부러졌다.
“죽어라!”
간혹 패기 있게 검을 휘두르는 자들도 있었지만 도검불침(刀劍不侵)의 육체는 칼날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상대를 베지 못하고 부러진 칼날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그의 심장에 박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동료의 죽음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강했다.
“마화천!”
제갈 사혁은 마화천을 부르며 허리를 숙였고 그 순간 원을 그리며 마화천의 거대한 검격이 뻗어 나와 사방을 피로 물들였다.
‘쳇....’
비록 협공을 목적으로 한 공격이었지만 등 뒤에서 뻗어져 나오는 검격에 머리털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이래선 끝이 없는데 길을 뚫겠다!”
거대한 대력검을 들고 마화천이 길을 뚫으려고 한 순간 소리 없이 한줄기의 섬광이 마화천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빗나갔군.”
“은신전(隱身箭)?”
소리 없이 상대를 제거한다고 해서 은신전이라 이름 붙여진 이 화살을 쏘는 무공은 마교 내에서도 사용하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오랜만이야.”
“금강(錦江)......”
마화천을 향해 화살을 쏜 금강이라는 여인은 다른 화살을 장전했고 제갈 사혁은 땅에 떨어진 창을 들어 그 여인에게 던졌다. 하지만 그 순간 마화천의 수기(手氣)가 제갈 사혁이 던진 장창을 부쉈다.
“미쳤냐!”
“저 여자는 안 돼.”
“이 새끼가 지금 싸우다 말고 무슨 소리야!”
여자가 미인이긴 하지만 미인이라서 해서 적을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여전히 상냥하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금강은 또 다시 마화천에게 은신전을 쐈다.
“설마 이거냐?”
제갈 사혁은 ‘이거’ 냐며 새끼손가락을 보이자 마화천은 난처한 듯 웃었다.
“내 ‘처음’을 준 여자랄까?”
“.................”
그 순간 제갈 사혁은 진심으로 마화천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어딜 보는 거야!”
또 다시 날아오는 은신전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든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여기서 한 번 더 쓰면 밑천이 떨어지지만 하는 수 없지!’
마음을 굳게 먹은 제갈 사혁은 집중력을 최대한 쥐어짜 무형지기를 전개해 한 순간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 범위 안에 들어간 마교의 무사들은 평소보다 몸이 둔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들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제갈 사혁은 마화천에게 소리쳤다.
“어서 길 뚫어!”
“신세졌네!”
그 말과 함께 마화천은 눈앞에 있는 적들을 베며 길을 뚫었고 두 사람은 무사히 그 적들의 포위를 뚫고 나갔다.
‘젠장.....’
무형지기를 벌써 두 번이나 쓴 제갈 사혁은 식은땀을 흘렸다. 무형지기를 유지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게 사용횟수기 때문이다.
“네놈의 여자문제만 아니었으면 이기어검의 묘리를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잖아!”
“무형지기를 쓰게 만든 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금강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거든.”
“그 여자 이름이 금강이냐? 널 아주 죽으려 하던데.”
“그날 밤 나와 그녀는 사랑을 불태웠지만 나는 임무를 떠나야했고 임무를 떠난 뒤 보게 된 세상은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웠지.”
그러니까 그 말은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마교를 떠나 임무를 하던 중 그대로 마교를 탈주했다는 이야기였다.
“너 이 새끼 진짜........”
제갈 사혁은 어이없어 말이 안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물체가 제갈 사혁과 마화천을 향해 날아왔다.
“야..... 너 이거 아냐?”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화살이 날아온다.”
무사히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등 뒤에서는 금강과 그녀와 같은 양식의 복장을 한 마교인들이 화살을 쏘며 두 사람을 쫓아왔다.
봉명공의 일에 치인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예상치 못한 남의 애정사에 치이다니..... 정말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말도 없이 휴재를 해서 죄송합니다.
하사관인 동생이 휴가를 와서 워크로 파오캐만 하루종일 하더군요.
딱히 후기 쓸 건 없고요.
질문성 댓글에 답변 해드리자면.
적절한브금 님: 주씨+ 마교+ 스님= 주원장?
여기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주씨인 이유는 단순히 봉명공의 본명인 주인공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님인 이유는 성격파탄자인 제갈 사혁과 트러블을 일으켜야 했기 때문에 소림사 제자로 설정을 잡았고요. 마교 설정은 오히려 후반에 출생의 비밀을 비꼬아보자는 생각에 만든 후반 설정입니다.
앙투안 님: 설정의 피해자죠. 이른바 무림 최고의 고수 3인 중 가장 먼저 등장한 마화천이니까요. 왜 그 있잖아요. 만화에서도 적들을 연상할 때 검은 그림자로 실루엣만 나오는 놈들이 있고 얼굴이 드러난 놈들이 있는데 실루엣만 나온 놈들이 더 강한.... 뭐 그런 거랄까요? 원래 먼저 나온 애들이 좀 그렇죠.